210화. 절대극마공 (1)
퍽. 퍼버벅!
순식간에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흑의인 스무 명. 그들이 객잔 안을 한 번 훑자, 곳곳에서 피와 죽음이 일어났다.
개중에는 무림인, 심지어 해남파 제자까지 있었다. 하지만 나름 병기를 소지하고 막아선 이들 중에, 상대의 일검을 받아내는 자가 단 하나도 없었다.
“너희들. 이곳에 가만히 있거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움직여선 안 된다.”
흑의인들이 1층을 순식간에 점령해 나가는 중에.
설휘는 수하들에게 이르며 송화에게 눈짓했다.
‘최악의 경우, 너희들만이라도 달아나라.’
그런 의미를 담은 것인데, 송화는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구함을 여시겠습니까?]
아직 자신을 노리는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전시상황임에도 혹시나 하고 건드려본 도구함이 빠르게 반응해왔다.
설휘는 도구함에 있는 풍운극마검을 꺼냈고, 1층으로 향했다.
“사. 살려…….”
푹! 콰직!
쓰러진 이들을 하나하나 확인 사살해서 시체로 만들 즈음, 흑의인들의 눈에 한 사내가 잡혔다.
저벅저벅.
2층에서 걸어 내려오는 한 사내.
1층에 즐비한 피와 죽음이 보이지 않는지, 담담하게 걸어오는 그를 보고, 멀리서 누군가 소리쳤다.
“저자입니다! 저자가 맞습니다!”
상인 금만중.
설휘와 몇 번 마주한 그가, 곧장 알아보고 반응한 것이다.
“호오.”
뒤쪽에 서 있던 살마의 눈이 커졌다.
재밌게도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언제 봤던가? 잠깐 고민하던 그는, 이내 과거의 기억을 생각해내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그 미친놈이구만……?”
유원궁에서 봤던 놈.
당시 자신이 다른 제자들에게 뿌려놓은 감시조 중 하나를 데리고 왔던 녀석이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곤마의 유산을 찾아 나선 끝에 마주친 것이 이놈이라니.
“어떻게…… 날 찾은 거지?”
설휘는 살마를 정확히 보고 물었다.
지독하게 날 서린 마기.
복면을 썼다 해도 살마의 존재를 모를 수 없었다. 애초에 스스로 마기를 감추지도 않았고, 이미 과거에 한 번 만나본 적이 있기에.
스륵.
복면을 벗으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살마.
“네가…… 곤마의 유지를 이어받은 사대극마공의 계승자인가?”
“……?”
“모른 체할 것 없다.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당황인지 뭔지 모를 설휘의 뻣뻣함에, 살마는 코웃음을 쳤다.
사대극마공.
마교의 교주 천마가 제자들에게 하사한 무공으로, 각각 네 가지 성질을 가진(지, 수, 화, 풍) 마공.
이는 후계자 쟁투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나아가 사대극마공을 모두 취합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취합의 의미는 간단했다.
사대극마공의 네 가지 성질을 한데 모으면, 천마의 본신 무공인 절대극마공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천마의 안배대로, 제자들 간의 싸움에서 승리한 살마는 사대극마공을 모두 얻는 데 성공했다.
사제자 곤마는 자신의 수하들을 지켜달라는 거래로써 사대극마공 풍을 맡겼고, 이제자와 삼제자의 사대극마공은 둘 모두 기습을 당해서 그런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절대극마공으로 취합하며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된다.
“뭐? 곤마의 극마공을 익힌 자가 있다고?”
“예. 사제자 휘하의 수하 중에 목격한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크흠.”
일제자 살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대극마공은 천마께서 제자들에게만 하사한 무공.
간혹 그분께서 자신이 아끼는 수하에게 알려줬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대극마공의 풍.
그걸 남긴 자가 곤마, 천살성이라서 문제다.
천마가 그에게 준 것은 사대극마공의 하나. 하지만 놈은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조각으로, 사대극마공의 진체를 꿰뚫어보는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추정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는 사대극마공의 한계를 넘어서서, 절대극마공에까지 닿았을지 모른다.
그만큼 천살성은 위협적인 존재다.
이제자와 사제자가 상잔한 자리에서 보인 초인적인 무력은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헌데 그 곤마가 자신만의 오의, 심득을 남긴 것이 있고, 그것을 계승받은 자가 있다면.
언제고 그자는 최악의 경우, 자신을 방해할 수 있는 자로 성장할지 모르는 일이다.
“어디에 있느냐?”
살마는 묘하게 신경이 쓰여서 그 존재를 집요하게 캐물었고.
“죽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 행적이 묘연해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다들 별것 아니라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그의 죽음을 본 자는 있는가?”
“수하들이 증명했다고 합니다.”
“그래?”
잠깐 미묘한 표정을 지었던 살마는 더욱 자세히 물었고.
“……그럼 그 수하들은?”
“그게…….”
그 수하들이 얼마 전에 빠져나갔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살마의 뇌리에서 경종이 울렸다.
‘금선탈각의 계.’
매미가 껍질을 벗고 빠져나가는 것처럼.
곤마는 최후의 마지막 씨앗을 남기고 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최대한 빨리 폐관을 마무리 짓고 나오겠다. 그동안 놈의 향방을 찾아라.”
설휘라는 놈.
곤마 휘하에서 그가 기거했던 곳이 있다고 들었다.
살마는 시아영을 시켜 놈의 체취를 맡게 한 후 흔적을 찾게 했고, 근래에 빠져나간 설휘의 수하 녀석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조사하게 했다.
그리고 서너 달간의 폐관 수련 후.
“역시나.”
살마는 그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다는 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
곤마의 유산.
그건 살마의 망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타난, 가장 거슬리는 싹이었다.
“그래. 어디 실력 한번 볼까?”
그것으로.
이십의 초마고수가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여기가 내 무덤인가…….’
한편.
설휘의 머릿속에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이번 생은 묘하게도 즐거웠던 적이 참 많았다.
수하들과 함께 사는 것. 그들의 웃음이 곧 자신의 웃음이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본인이 마교 출신이란 것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운명은 변하지 않았다.
정확히 2년이란 시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위기를 극복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큰 위기가 찾아올 테니까.
‘시스템’이란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그 모습을 달리하여 자신에게 나타날 것이다.
설휘가 수많은 반복된 삶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 죽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더 중요하다.’
바로 그만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
적어도 이번 생에서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도망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스윽. 스윽.
점차 자신을 포위해오는 흑의인들을 보며 설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보인다. 놈들의 움직임이…….’
상단전이 열렸기 때문일까.
뚜렷하진 않지만, 머릿속으로 수많은 움직임이 그려지고 있었다.
검을 맞대지 않았음에도, 놈들이 어떻게 공격할지.
어떤 식으로 반응해올지.
마치 과거의 시뮬레이션을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수많은 투로(鬪路)가 만들어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투욱.
‘온다.’
앞서 한 명이 매섭게 파고들 때, 그때가 공세의 시작이었다.
파파팟.
마치 합을 맞춘 듯 좌우에서 더욱 빠르게 치고 들어왔고, 또 하나는 공중을 도약하며 곧장 기공(氣功)을 뿌렸다.
도합 네 방향.
물리적인 공격과 더불어 원거리 기공 발현을 통해 승부를 지으려고 한 것이다.
슈슈슉! 피융!
초마의 고수들.
완벽한 합을 이룬 데다, 놈들의 움직임 역시 범인의 눈으로는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그 공격의 연계에 설휘는 단숨에 제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 형세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바뀌었다.
가가각!
정면과 좌우에서 짓쳐 들어오던 흑의인들.
그 세 명의 검이 모두, 설휘의 검 하나에 결박된 채 막혀버렸다.
“헉…….”
“이 무슨…….”
검착(劍着).
절식 중 하나인 착식(着式)으로, 흡입력을 발휘해 상대의 검을 빼앗아 제압하는 기술이다.
더욱이 설휘는 이 기술을 공중에서 쏘아내는 기공을 피하면서 펼쳐 보였다.
상대는 모두 초마의 고수들.
그들이 펼치는 검의 속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계산하며 일거에 묶어버리는 행위. 이는 사실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흥.”
놈들이 내보이는 잠깐의 망설임.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패애애액!
재빠르게 튀어나간 설휘의 검은, 놈들의 목을 너무도 쉽게 날려버렸고.
투투툭.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하고 흑의인 셋의 수급이 땅을 굴러다녔다.
“요란만 하지, 실상은 기본이 안 되어있군.”
설휘의 짤막한 한마디.
그것이 그들을 자극했는지. 이번엔 무려 여덟이 설휘를 포위하듯 달려들었다.
타닥! 바밧!
‘숨 쉬는 곳…….’
설휘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극마에 오르며 자연스레 발화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호흡과 내기의 감지력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이 내력을 불어넣는 것도 마치 귀에 들리듯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세 명은 맨 검. 다섯은 내기.’
좌우와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은 물리적인 공격이며, 다섯은 내기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걸 제 육의 감각으로 파악했다.
파앗.
이어진 설휘의 판단은,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을 먼저 제압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직접 달려 나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놈 하나의 가슴팍에 칼을 찔러 넣고.
푸욱!
그 반동으로 다섯 걸음 거리를 튀어나갔다.
“……!”
갑작스레 표적이 움직이자, 흑의인들의 시선이 조금 흔들렸고.
그사이 설휘는 모든 단전의 기를 합일시키며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사아아아아-
그의 눈앞에 밀려드는 서리처럼 싸늘한 한기.
빙원핵축압을 펼치지 않아도, 시간의 밀도를 조정하는 소신수마공의 능력이 발휘되며 생긴 현상이었다.
단 한 호흡.
그 정도의 시간만 결박했음에도 치명적이었다,
창졸간, 설휘의 검에서 피어 나오는 기류가 한 번 크게 요동쳤고.
파파파파파파파팟.
새하얗게 피어 나온 기류가 모두 일곱 방향으로 쏘아지며 흑의인들에게 꽂혔다.
퍼펑! 퍼퍼퍼! 퍼펑!
기류를 맞은 놈들은 저마다 튕겨나갔다.
객잔의 벽이며, 천장이며, 바닥이며 할 것 없이 사방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스으으으.
그리고 이내 부서진 객잔 안으로 목재가루가 연기처럼 흩날렸다.
그리고 곧 그 중심에 선 설휘가 놈들의 대장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증스러운 놈. 그간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일제자 살마가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상당한 놀라움과 짜증이 섞인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먹잇감을 발견한 놈처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어졌다.
“제가 처리하습니다.”
이제껏 지켜보던 향개가 예를 갖추며 말하자.
“아니다. 내가 하지.”
“허나…….”
“폐관 후의 첫 먹이다. 양보할 수야 없지.”
살마가 냉정히 거절하며 피식 웃었다.
그는 손짓으로 수하들을 물리며 천천히 설휘 앞으로 걸어갔다.
투욱.
몇 발짝 남겨놓고 살마와 설휘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크크, 요망한 놈. 그때 겁 대가리 없이 설쳐대던 이유가…… 이거였나?”
살마는 당당히 서 있는 설휘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글쎄. 간자들을 심어놓는 네 솜씨가 부족한 걸 탓해야 하지 않을까.”
설휘 역시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오호, 이 새끼가. 극마에 오르니 뵈는 게 없는가 보구만.”
“어디 너만 할까. 유산이고 뭐고 곤마께서 목숨을 버려가며 부탁을 했으면 지킬 생각을 해야지. 여기까지 와서 패악질을 부리는 거냐.”
“오, 이놈 봐라?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곤마를 언급하자, 살마는 상당히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알기로는, 오로지 자신과 곤마만 알고 있는 비밀 협정. 그걸 이 녀석이 언급한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역시 곤마의 유산이다. 그렇게 더욱 심증을 굳히는 차에.
설휘가 말했다.
“이쯤 되면 솔직해져 보시지. 단순히 내가 사대극마공을 익혔다고 해서 찾은 건 아니잖아?”
“……?”
“실은 무서웠던 거지. 사대극마공을 익힌 자가 언젠가 자신을 해하지 않을까. 아니, 자신보다 강하지 않을까.”
설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안 그래?”
“허허허…….”
살마가 재밌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든 얼굴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해야 할까.”
차가웠다.
“……?”
“뭐 그런 것도 없진 않겠지만, 실상 내 목적은 말이지.”
천천히.
딱딱하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는.
차라리 띠지 않는 것이 좋을 만큼 흉악한 살소였다.
“난 살인을 좋아해.”
“……?”
“특히 너같이 자존심이 강한 놈들을 꺾는 게 너무 좋다. 아주 내 심장을 뛰게 하지.”
쥬륵. 할짝.
긴 혀를 뱀처럼 내밀며 입술을 핥는 그의 미소.
마치 뱀이 짓는 미소처럼 혐오스러웠다.
“자아, 그럼…….”
살마는 다시금 표정이 변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진지한 모습으로.
“어디, 극마에 오른 실력 한번 볼까?”
챙!
검을 뽑아 들었고.
화르르륵.
동시에 검신에서 자색의 빛을 뿜어내는 불꽃이 피어 나왔다.
살마(煞魔).
사대극마공 화(火)의 정점에 오르면 생기는 불의 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