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절대극마공 (2)
휘릭. 차악!
일제자가 바닥을 향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잔뜩 집중하고 있던 설휘는, 그 동작이 공격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저 별 의미 없이 흥을 내는 동작이라고 여겼을 뿐.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스스스슥.
‘……어?’
바닥에서 미미하게 일렁이는 기운.
그걸 보자마자 이상하게도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잠깐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고 생각했을 즈음.
화르르륵!
설휘로부터 딱 세 걸음 정도의 위치.
솟아오른 화염의 불꽃이 사방에서 에워싸며 완전히 포위당해 버렸다.
설휘는 즉각 모든 단전을 개방했다.
솨아아아아.
치솟던 불의 고리가 내리꽂히던 그때, 설휘의 검 끝에 뇌전의 빛이 번쩍였다.
동시에 생성된 검은 폭풍은 머리로 날아들던 불의 고리를 사방으로 흩날려버렸다.
무극초풍검.
살아 움직이는 불의 고리를 사방으로 흩어버린 것이다.
“컥!”
“어억!”
그 여파는 상당히 컸다.
적당히 물러나 있던 초마 고수들 몇 명이 떨어져 나갔고, 바닥에 있던 시신들까지 휘말려 객잔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온다!’
잠깐의 시야가 확보되자, 설휘는 온몸에 긴장을 끌어올렸다.
자신에게로 쏘아져오는 살마의 움직임을 읽은 것이다.
다시금 내력을 끌어올린 설휘가 무극초풍검을 펼쳤고.
맞은편 살마 역시 그대로 화공을 손으로 뿌려댔다.
쿠와아아아아!
강력한 두 개의 무공이 충돌했다.
뇌전과 함께 피어오르는 검의 폭풍과 멸화(滅火)의 기운이 담긴 불의 고리.
‘제길!’
설휘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처음에 멸화의 고리가 힘이 모자라 밀려난 듯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는 걸.
뇌전을 맞고도 크게 흔들리지 않던 멸화의 고리는 폭풍을 휘감으며 자신에게 쏘아진 것이다.
설휘는 검을 들었고, 불의 고리가 자신에게로 오자마자 순간적으로 비틀었다.
사량발천근.
태극의 힘을 이용한 수법으로 전력을 다해 밀어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어?’
뭔가 잘못됐다.
비틀어 흘려냈어야 할 멸화의 고리가, 움직이지 않고 강한 빛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폭발의 징조였다.
콰콰콰콰 쿠와아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거의 객잔의 절반이 통째로 터져나가자, 지켜보던 이는 무조건 설휘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호오. 쉽게 쓰러지지 않는구만?”
살마는 여전히 살아 있는 설휘를 보고 짧게 감탄했다.
불꽃이 터진 곳에서 열 걸음 뒤로 물러난 지점.
완벽히 폭발을 피하지는 못했는지 옷이 반쯤 찢겨 있었다.
뚝. 뚝.
오른쪽 팔에 상처를 입은 듯, 찢긴 소매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폭발하는 순간, 전력으로 물러섰음에도 피해를 본 것이다.
거기다가 문제가 생겼다.
‘지혈이…….’
빠르게 혈도를 짚었지만,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지혈이 되지 않는다.
어떤 무공이기에 출혈이 잡히지 않는단 말인가?
지지직.
“윽…….”
할 수 없이 설휘는 화공으로 상처 부위를 지져버렸다. 출혈은 막을 수 있었지만, 부상은 더 커져 버렸다.
“흐, 아직 극마의 초입인가 보군. 사대극마공 풍을 극한까지 익히지 못한 걸 보면…….”
살마가 설휘를 보며 웃었다.
그는 이미 초입을 뚫고 통달 단계까지 간 몸이다. 비교해 보니 여러모로 부족해 보인 것이다.
‘무공도 그렇고…… 확실히 놈은 나보다 위다.’
설휘도 설휘대로 판단했다.
움직임, 그리고 내공. 고작 한 번 검을 맞대보고도 상대가 자신보다 한 단계 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다 화온마공보다 한 차원이 높아…….’
무엇보다 멸절공.
화온마공의 극의를 넘어선 화공. 지옥의 불이라는 이 힘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생성해냈다.
그냥 뿜어냈어도 어마어마한 멸절의 힘을,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불의 고리까지 만들어내서 운용한다.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았구나.’
설휘는 수하들이 여전히 2층에 머물러 있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자신은 여기서 죽는다.
그렇다면 죽을 때 죽더라도, 수하들이 자신이 죽는 걸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객잔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게 좋겠다.’
스스스슥.
설휘는 축 늘어진 팔을 다시 들었고, 살마에게 말했다.
“이번엔 내 쪽에서 먼저 할까?”
“호오.”
이미 꽤 중한 상처를 입고도 여유롭게 건네는 설휘의 말에, 살마는 웃어 보였다.
“좋다. 대신에 이번엔 네놈의 목을 친절하게 베어 주지.”
“할 수 있다면.”
스스스스.
설휘는 전력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내력을 급히 끌어올릴수록 소모되는 양이 커진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단전에 내공을 모았고.
파----앗.
극한까지 끌어올린 내공을 이용하여, 최고의 속도로 살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흥!”
육안으로는 절대 쫓을 수 없는 속도.
그럼에도 살마는 여유롭게 설휘가 오는 지점에 칼을 그어댔고,
화아아아악-
놀랍게도, 그의 검보다 불꽃이 먼저 원하는 지점에 닿았다.
그런데.
“……!”
살마는 처음으로 당황한 눈빛을 내비쳤다.
지옥불이 놈의 몸에 닿았는데도 불구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놈은 피해를 받지 않은 듯했다.
바로 특수 기술 때문이다.
[절세풍검을 사용합니다.]
체력과 내공의 반을 앗아가는, 풍운극마검의 절대적인 힘.
사방을 뒤흔드는 폭풍이 아니더라도, 이 수법의 최대 강점은 잠깐이나마 시전자가 무적이 되어 몸이 깜빡인다는 것이다.
쿠와아아앙! 콰쾅! 콰콰카아앙!
사방에서 이는 소용돌이가 객잔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바닥에 있는 시체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정도였다.
화아아아악!
헌데, 그럼에도 살마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풍압을 견뎌내면서 또 다른 공격을 펼쳐 보였다.
“멸화섬(滅火閃)!”
살마의 찢어질 듯한 외침과 함께, 그의 검신에서 쏘아진 자색의 빛.
그것은 공간을 휘감고 있던 소용돌이를 찢고 태워버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깜빡임이 풀리며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설휘를 향해 날아든 것이다.
그 순간, 설휘 역시 필살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하……압!”
번쩍하는 눈부심과 함께 시작된 이것은.
피이이이이-
가느다란 이명을 쏘아내며 주변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멎게 만들었다.
빙원핵축압으로 인해 시간의 밀도가 극도로 압축된 것이다.
‘아!’
설휘는 절세풍검을 뚫고 나오는, 살마의 자색 고리를 보았다.
그건 마치 뱀처럼, 아가리를 벌리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삼키는 듯 보였다.
설휘는 몸을 옆으로 조금 비틀었다.
한 동작.
몸의 반응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게 작용했다.
그는 내밀고 있던 검을 살마에게 조준했고.
‘이거나 먹어라!’
전력을 담은 검강을 생성해냈다.
솨아아아아-
불의 고리가 설휘를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가고, 설휘의 검 끝에 빛이 담기자마자 시간의 흐름은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쩌엉!
그리고 서로의 무공이 교차되며 결과가 드러났다.
“크윽!”
“큭!”
살마는 왼쪽 어깨를 부여잡고 주춤하듯 물러섰고, 설휘 역시 그와 비슷했다.
피했다고 생각한 불의 고리가 왼쪽 팔을 훑고 지나갔던 것이다.
“이노오오옴-!”
반응은 살마가 더 빨랐다.
쫘아아악!
그가 검을 수직으로 내리긋자, 허공에서 광범위하게 생성된 화마가 설휘의 몸을 직격했다.
‘망할!’
단순히 물러나서는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 설휘.
그는 결국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신법을 썼고.
콰아아악!
살마의 공격이 설휘의 몸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콰르르르릉!
지반이 내려앉는 듯한 폭발과 함께 사방에서 피어나는 화공.
앞서도 그랬지만, 살마의 무위는 사람이 펼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지글지글.
이름에서처럼 지옥불을 생성하듯, 바닥을 완전히 불지옥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허나,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불꽃이 내려앉았던 범위 밖에 설휘가 서 있었던 것이다.
“천마군림보라니…… 어처구니가 없구만.”
무려 열 개의 환영 같은 실체를 만들어냈고, 그중 아홉 개가 사라졌음에도 목숨을 보전했다.
천마의 주력 무공답게,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신법을 펼친 것이다.
“살기 위해서 별짓거리를 다 하다 보니…… 익히게 됐지.”
설휘의 익살스럽고 느긋한 목소리에.
“아무래도 넌 정말 사지를 찢어 죽여야겠구나.”
살마는 이미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작 일개 마인 따위가 천마의 무공이라니…….
너무나 위대해 먼발치에서밖에 볼 수 없었던 그분의 무공을 펼치다니.
우드득!
살마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도저히 이 분노를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이제 떠났는가?’
반면, 설휘는 그제야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천천히 놈의 무공을 버텨내며 사대극마공의 화를 익히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하들이 이놈들에게 죽는 꼴을 보는 건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그래, 이번엔 진짜로 약속하지. 네놈을 태워 죽인다는 걸.”
화르르르.
살마는 자신의 검으로 화공을 피워냈다.
분명 설휘의 검강을 어깨에 맞았는데도, 전혀 타격을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설휘는 왼팔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거기다 출혈도 있었고, 체력과 내공은 반 이하로 뚝 떨어져 있었다.
‘몇 번만 더 버티면 익힐 수 있을 것 같은데…….’
놈의 무공을 몇 가지 경험했다.
마교를 떠나서도 적용되는 시스템의 능력 중 하나.
무공을 보았냐 보지 않았냐는 문제가 안 된다.
상대가 무공을 펼치기만 하면 그것이 하나둘씩 쌓여, 언젠가 체계를 갖춘 무공으로 완성되니까.
“아니다. 생각해 보니 더 좋은 수가 있구만.”
껄껄껄껄!
“……?”
갑작스레 웃기 시작하는 살마. 그 변화에 설휘는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유패, 향개.”
“예, 주군!”
“하명하십쇼.”
유패란 말에 설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유패라니.
곤마가 마후를 죽일 때 죽지 않았나?
“이 근처에 놈의 부하들이 있다.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을 터. 모두 잡아 오너라.”
“알겠습니다.”
“옙.”
그 말에 설휘의 표정이 급변했다.
‘들켰어.’
놈들은 이미 자신의 수하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멈춰!”
향개와 유패로 추정되는 인물이 움직이자, 설휘는 급히 놈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극마고수.
설휘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고.
화르르륵!
이내 살마가 극한의 화공을 쏘아대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크큭.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살마는 그런 설휘를 향해 웃어보였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놈에겐 알아낼 것이 많다. 곤마가 어떤 걸 전수했는지 말이야.”
“닥쳐라!”
설휘는 재차 내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많은 내기를 소모한 탓에, 끌어올릴 수 있는 건 고작 2갑자가 되지 않았고.
“하아아압!”
사혈을 짚어 진원진기까지 뽑아내서, 겨우 사방에 하얀 서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빙공이라니……. 정말 흥미로운 놈이야.”
살마는 그 모습을 보고 껄껄 웃어댔다.
“마음껏 짖어대라!”
패애액.
순간적으로 설휘의 몸이 열 개까지 불어났다.
천마군림보.
전신의 모든 내력을 폭발시킨 최고의 한 수로 승부를 결정지을 생각이었다.
“바보 같은 놈.”
그때였다.
목표점을 잡고 공격하려던 설휘의 눈빛이 흔들렸다.
파바바바밧!
놀랍게도 살마의 몸도 자신처럼 불어났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보다 두 명이 더 많은 무려 열두 개의 환영이었다.
“그걸 어디 너만 익힌 줄 아느냐?”
화르르륵.
살마의 환영이 들고 있는 검에서 불꽃이 생성되었다.
무려 열두 개.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 환영들이 설휘를 향해 제각기 달려들던 그때.
“개새끼들…….”
화르르륵.
설휘의 검에서도 불꽃이 피어났다.
화온마공의 마지막 단계이며 결정이라 할 수 있는, 멸화공(滅火功)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