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절대극마공 (4)
공간이동은 정말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송화가 설휘의 어깨를 짚자마자, 내뱉던 주술어가 곧장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소교주, 막으세요!”
이를 가장 빨리 눈치챈 자는 뒤에서 지켜보던 기기아대 궐주였던 서(棲) 제관이었다.
과거 이제자의 휘하에 있던 부대의 장도 살마가 함께 데려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술법이 이미 발동된 뒤였다.
더욱이 송화가 펼친 이 공간이동은 다수를 데려가는 게 목적이 아닌, 한 명.
오로지 설휘만을 이동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빨리 시전되었다.
“평온하시길!”
송화의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스팟.
설휘는 완전히 그곳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
설휘의 시야가 밝아졌을 때는, 이름 모를 방에 있었다.
그리고 잠깐의 기억을 더듬기도 전에, 눈앞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슨 금괴가 이리도 많이…….”
사방에 금괴가 가득 놓인 곳. 뿐만 아니라 귀금속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고, 이를 모를 각종 귀중품도 한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설마, 여긴…….”
순간적으로 설휘는 이 방이 어떤 곳인지를 깨달았다.
적송이 세운 객잔.
이곳은 3층 위, 금고 대용으로 만든 4층 작은방이었다.
처음 지어질 때 구경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이걸 다 모았단 말인가…….”
설휘는 수하들에게 돈을 따로 받지 않았다.
너희들이 만든 거, 너희가 쓰라고.
그런데 송화와 음무기가 경험 때문인지 몇 달 동안 돈을 이렇게나 많이 쌓아둔 것이다.
- 돈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십쇼. 대장.
한 달 전쯤. 송화가 슬쩍 말을 걸어왔던 게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때쯤.
목숨을 걸고 자신을 이동시킨 수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도구함을 여시겠습니까?]
설휘는 도구함을 열어 황금 벨트를 꺼냈다. 그리고 곧장 영약을 선택했고.
[감로수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용했다.
체력과 내공을 어느 정도 회복했음을 느꼈지만, 하나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모든 영약을 사용했고.
[천지설엽초를 사용하시겠습니까?]
[태현화정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만년순천단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상처가 모두 치유되어, 체력과 내공이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
“죽더라도 다시 가야 해.”
설휘는 도구함에 황금 벨트를 넣고 급히 이동하려다가 다시 멈칫했다.
수많은 금은보화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어차피 다시 죽으러 가는 거…….”
설휘는 재빨리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모두 금으로 환산되어 도구함으로 들어왔고.
[130,000]
[210,000]
[330,000]
……
……
[도구함] 1,013,000G
졸지에 어마어마한 양의 금화가 도구함에 들어왔다.
쿠왕!
모든 돈을 다 챙긴 설휘는 천장을 부숴버리며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리를 대강 가늠한 다음, 전력을 다해 뛰어나갔다.
‘제발…… 한 명이라도, 제발…….’
머릿속엔 온통 수하들의 안위만 떠올랐다.
자신을 구하는 모험 수를 던지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수하들.
당연히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억울했다.
파파팟. 파팟.
청호객잔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리가 멀지 않은 데에 있었다.
설휘는 황폐해진 건물이 보이자 곧장 안으로 들어섰고.
“이게…… 뭐야?”
낯익은 이를 발견한 살마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당연하게도 설휘가 다시 나타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상황에 설휘는 잠깐이라도 다른 이에게 시선을 둘 여유가 없었다.
“아아…….”
수하들을 찾던 설휘의 눈가에는 이내 심각한 균열이 생겨났다.
죄다 주검으로 변한 수하들.
그중 얼굴이 불에 탄 이가 요림이란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화공으로 지져서 얼굴이 반쯤 타서 녹아버렸지만, 복장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몸이 짓이겨진 녀석은 적송. 그 옆에는 몸이 이등분으로 갈라진 음무기가 있었다.
“으아…….”
그렇게 고개를 돌리던 와중에 설휘는 자신도 모르게 가느다란 비명을 질렀다.
한쪽에 잘려나간 손.
애기 손처럼 앳된 모양은 송화였다. 그의 시신은 누군가 파먹은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손상되어 있었다.
자신을 구하려고 몸을 던진 소년의 최후는 너무도 끔찍했다.
거기다 용진은…… 시신 자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장…….”
“소, 소령아…….”
온몸을 벌벌 떨던 설휘는 눈을 부릅떴다.
한쪽 구석에서 신음을 흘리는 그녀는…… 살아있었다.
아니, 살아주길 바랐다.
이미 그녀 주위에는 너무 많은 피가 바닥에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소령…….”
설휘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미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변한 것이, 곧장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미, 미안하다. 내가…….”
설휘는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죽었을 거라고 오는 내내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을 직접 목도하니 오히려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
스륵.
때마침 설휘의 뺨에 창백한 손이 얹어졌다.
소령이 말없이 자신의 한 손을 그의 볼에 가져다 댄 것이다.
“우리…… 참 못났어요. 그죠?”
“…….”
“누구 하나 대답도 못 하고 몇 달 동안…… 결국 이렇게…… 이렇게 헤어질 운명이었는데…….”
설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경직된 자세로 그녀의 눈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늦었지만, 그래도…… 조금의 시간은 있으니까. 오늘부터라도…….”
그때 소령의 손이 힘없이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순간 경련하듯이 요동치는 설휘의 눈동자를 향해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1일이에요. 우리.”
스륵.
그게 마지막이었다.
새파래진 입술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설휘는 그 입술을 계속 쳐다보며 생각했다.
왜 계속 움직이지 않는지.
왜 더는 말하지 않는지.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그만큼 어려웠다.
“아, 연애질이었나…….”
살마는 설휘가 보이는 기행을 누구보다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진 놈이 갑자기 슉 하고 나타나더니 뭔가 실성한 채로 움직이는 모습.
그 모습이 재미있어 쭉 지켜보았더니, 그 행동의 끝에는 여인과 감정팔이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더욱 웃음을 자극한 것이다.
“껄껄. 미리 좀 말하지. 그랬으면 더 극적으로 만날 수 있게 갈기갈기 찢어줬을 텐데…….”
그는 이 상황이 웃겨서 도저히 참기 힘든 듯 보였다.
삶과 죽음은 오로지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살마의 신념으로선 저런 행동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어?”
그런 그에게 또다시 특이한 광경이 목격됐다.
한참을 부르르 몸을 떨던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천천히 뒤돌아 서던 녀석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계집애가 우는 것처럼, 옷섶이 축축이 젖을 만큼 줄줄 흐르는 게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우는 거냐? 와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설휘의 행동은 모두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마인들 대부분이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여기 있는 자들은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웃음이 천천히 잦아들 때쯤.
고개를 푹 숙인 설휘가 입을 열었다.
“내 너희들에게 맹세하지.”
목소리에 목울음이 가득 찬 것이,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못한 모습이었다.
“나는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던 설휘.
그 모습에 주변의 웃음기가 싹 가셨다.
피가 얼굴에 전부 쏠린 듯한, 핏대가 얼굴 전체에 드러난 흉측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조금 전 울고 있던 모습과 대비되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거지만, 너희들을 한 명도 데려가지 못할 수도 있다. 허나…… 이거 하나만은 확실히 약속할 수 있다.”
“…….”
“너희들은 또다시 날 만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때의 만남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설휘는 말을 이었다.
“극마든 뭐든, 너희들을 죄다 도륙해버릴 거니까.”
투투툭.
그 말을 끝으로 설휘는 혈(穴)을 짚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살마의 표정에 비웃음이 감돌았다.
“내공을 증폭시켜서…… 뭘 어쩌자는 거냐?”
비웃음에도 설휘가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하자 재차 코웃음을 쳤다.
극마에 오르고도 감정 따위를 조절하지 못한다는 건 실로 형편없는 행동이다.
그런 것이 모이면 판단이 흐려지고 명줄을 앞으로 당긴다.
당연하게도 그 행동에 대한 대가는 죽음으로 돌려받을 것이다.
파앗.
설휘가 움직이자, 살마가 빠르게 반응했다.
아무리 놈이 원천진기를 이용하여 일시적으로 체력과 내공을 극대화했다고 해도, 결국 극마의 초입.
더욱이 이전에 그토록 중한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통달에 오른 자신의 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쉬익.
살마는 설휘가 오는 동선을 정확히 막아섰고, 그대로 찍어 눌렀는데.
‘어?’
베는 순간 알았다.
지금 이 앞은 놈의 분신이라는 걸.
천마잠형술을 통한 눈속임으로, 본체는 이미 자신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앗.
설휘는 살마를 지나 한 흑의인에게 다가갔다. 영물을 품속에 지니고 있던 여인, 시아영이었다.
캬앙!
역시나 영물답게 곧장 빠르게 반응했다.
보통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반사 신경.
허나, 이미 극마에 오른 설휘의 움직임은 영물 따위가 감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콰직!
설휘의 검이 쏘아지자, 영물은 입을 쩌억 벌리며 몸이 굳어버렸다.
목부터 꼬리까지 관통한 설휘의 칼로 인해 그대로 즉사해버린 것이다.
“이, 이 개자식……!”
순간 분노한 여인이 소지한 단검으로 반격해 보려 했지만.
“…….”
그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설휘는 쏘아낸 살기만으로 그녀를 얽매어버린 것이다.
“지금껏 뒤에 숨어서…….”
“…….”
“시시덕거리니 좋았나?”
콰직!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가슴에 칼을 박아 넣었다. 뿐만 아니라.
화르르륵!
“키아아아악!”
검에 화공이 실리자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단순히 죽이는 것이 아닌, 끔찍한 고통까지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파파파팟.
그사이 옆에 있던 흑의인들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특히 기기아대 서 궐장이라 불리는 이가 정신계 술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읍!”
그런데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입이 봉쇄당했다.
포박술.
과거 송화가 가르쳐준 술법을 설휘가 시전해버린 것이다.
스스스슥.
하지만 여전히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주변에 있던 초마의 고수들은 빠르게 반응해오며 설휘를 향해 검기를 뿌렸다.
하지만 헛된 행동이었다.
설휘의 몸에서 생성된 기류들. 그것들이 소리 없이 그들의 머리통을 감쌌고, 곧이어 누구 할 것 없이 죄다 터져버렸다.
퍼퍼퍼퍼퍼펑!
순식간에 십여 명의 초마가 떼죽음을 당하자, 장내에는 싸늘함이 물들었다.
순식간에 극마고수 셋과 설휘 혼자만 남은 것이었다.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향개와 유패가 공격 자세를 취하자 살마가 외쳤다.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의사를 또다시 내비친 것이다.
“역시 넌 내 손으로 죽여야 해.”
수하들의 죽음 때문에 분노를 드러내는 살마. 설휘는 그런 그의 말을 비웃어 보였다.
“네 손이 아냐.”
“…….”
“내 목숨은 내 결단에 의해서지.”
“뭐 어쨌든.”
화르르륵.
살마는 기를 주입했다. 불의 고리가 피어오르며 포악한 모습을 드러냈다.
“태워 죽이든 찢어 죽이든, 어차피 네 결말은 정해져 있어.”
“내 결말? 그럼 나도 정해주지.”
설휘는 살마를 응시한 채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넌, 네놈의 무공으로 죽게 될 거다.”
“……?”
“사대극마공 화. 그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