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기묘한 보물 (1)
쩌저저엉! 쩌엉!
폐허가 되어버린 청호객잔.
그 안에서 폭음과 폭발이 일어났다.
살마와 설휘. 두 극마의 고수가 격돌하면서 일어나는 기공의 분출과 열기, 그리고 여파였다.
치징! 화라라락!
드문드문 기의 공멸도 일어났는데, 극한으로 끌어올린 무공이 서로 상쇄되는 현상이었다.
“크읍!”
“으아합!”
하지만 안타깝게도,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했다.
설휘는 생명을 태우며 빙공, 화공, 심지어는 태극의 수법까지 총동원하여 싸우고 있었지만, 격돌할수록 수세에 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극마의 경지에 오른 지는 고작 반 년. 반면 상대인 살마는 꽤 오래 전에 그 경지에 이르렀고 통달의 궤에 이른 것이다.
[절세풍검을 사용합니다.]
벌써 세 번째, 설휘가 무적의 힘을 사용했다.
“이놈! 그건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이에 살마는 단언하듯 외쳤고, 사방에서 몰아치는 회오리에 한 발짝 물러서며 검에 내력을 집중시켰다.
깜빡. 깜빡.
그리고 설휘의 몸이 점멸하는 횟수를 헤아려, 정확히 다섯 호흡 뒤에 쏘아냈다.
피익!
검에서 뻗어져 나간 건, 수십 개의 실처럼 가느다란 기운이었다. 이건 이제까지 그가 펼친 화공과 달랐다.
멸사강(滅絲罡).
실처럼 가느다란 기공인데, 그 하나하나에 멸화의 기운이 담겨져 있었다.
촤르르륵.
그리고 수십 개의 강기 중 정가운데에 있는 기공(氣功)은 절세풍검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쏘아져 갔다.
다른 수십 개의 기공이 원형처럼 돌며 보호해준 까닭이다.
파악!
설휘의 한쪽 팔이 잘려,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잠깐의 대치 상태.
“크윽!”
설휘는 이를 악물며 잘려나간 우측 어깨를 부여잡았다.
“흐, 이제 그 요상한 무공은 못 쓰겠군?”
팔과 같이 떨어져 나간 풍운극마검을 보며 살마가 웃었다.
그는 상대가 신병이기의 힘으로 이제까지 버텨온 것을 알고 있었다. 검을 잃었으니 더 이상 저항할 거리도 사라진 것이다.
“못 쓰면 뭐?”
설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은 한 팔로 무극초풍신을 펼쳤다.
“……!”
살마는 약간 당황했지만 빠르게 피해냈고.
파팟.
이에 설휘는 남은 내력을 모조리 부어 넣으며, 천마군림보를 펼쳤다.
“또 그 짓이냐!”
이에 살마 역시 똑같은 무공으로 대응했다.
쩡! 쩌저정!
살벌한 교전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맥없이 끝이 났다. 몸이 내외로 다 엉망이 된 설휘가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간 것이다.
쾅! 쿵. 쿠당!
“크억!”
바닥에 쓰러진 설휘.
그의 온몸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처가 가득했다. 특히 불길로 인해 입은 화상이 몸의 절반가량이었다.
저벅저벅.
그런 그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오는 살마.
쿨럭쿨럭!
설휘가 쿨럭거리다 겨우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자, 살마가 풋 웃으며 말했다.
“곤마의 유산이라고 잔뜩 기대했는데…… 이리 보니 굳이 찾아 나설 필요가 있었나 싶군.”
느긋한 비아냥.
조금 전까지 지독한 격전을 치렀음에도, 그는 설휘를 평가절하하고 있었다.
“……그래도 찾아 나섰을 놈이.”
그러자 설휘가 픽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왜?”
“절대극마공. 익히기가 쉽지 않았겠지. 그러니 혹여나 곤마, 혹은 내가 이미 익히고 있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을 테고……. 점점 불안해졌지?”
“……!”
살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휘는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들어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어떻게 알았냐고? 보이거든. 네가 절대극마공을 익히지 못한 게. 주야장천 사대극마공의 화공만 난사하잖아. 보고도 모르면 병신이지. 그런 상황에 혹여라도 누가 절대극마공을 쓴다고 하면, 네 자존심이 그걸 허락할 리…….”
콱!
“크악!”
설휘가 비명을 질렀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의 살마가 허벅지에 칼을 쑤셔 박은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화르르르.
“크아아아악!”
놈은 검을 통해 화공을 밀어 넣었다. 불의 고리가 상처를 통해 온몸으로 번져가자, 설휘는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콰악!
그럼에도 살마는 설휘의 머리채를 부여잡아 눈을 맞췄고.
“……마음대로 지껄여라. 네게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선사해 줄 테니.”
으드득!
설휘의 발언이 역린을 건드린 것인지, 놈은 이를 갈며 분노를 표출했다.
“크아아아아!”
화르륵. 화르륵.
설휘의 비명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그의 몸 곳곳을 고기 굽듯 지져버렸다.
“하…… 내가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고통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 혈맥을 따라 흐르는 끔찍한 화염의 고통.
그 와중에 문득, 설휘가 실실 웃으며 말을 꺼냈다.
“내가 사대극마공을 어디까지 익혔을 것 같나?”
“뭐?”
그 말에 살마의 눈이 커졌다.
순간적으로 싸한,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흥! 뭐, 네가 또 다른 사대극마공이라도 익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냐?”
“어, 익혔어.”
“미친놈. 그딴 개소리 집어치…….”
“사대극마공 화(火). 극에 오르면 상단전 백회혈에서 들어온 기의 흐름을, 손바닥 중심인 노궁혈(勞宮穴)이 중심이 아닌 원기(元氣)를 들이부어서 태우는 신공이지. 천지간에 생명을 태우는 힘보다 강한 것은 없으니까…….”
“……!!!”
살마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설휘가 정말로 사대극마공 화의 정수를 읊고 있어서였다.
“너, 너 어떻게……?”
“그야 네 덕분이지.”
끼드득.
설휘는 남은 한 쪽 팔을 힘겹게 들었다.
화기에 바싹 구워져버린,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팔.
“뭐냐. 이건?”
그에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는 살마에게.
“이건 이제껏 신세 진 것에 대한 보답이다. 내 수하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긴 죗값을 포함해서, 이번 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로 돌려주마.”
설휘가 웃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손이 붉어졌다.
“헛?”
그 모습에 살마는 기겁하듯 칼을 다시 움직였다.
푸욱!
뺐던 칼을 급하게 설휘의 배에 쑤셔 넣은 살마.
끄륵.
설휘의 목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이미 기술 발동 조건이 떠 있었고.
◆ 사대극마공 화(火) 특성 기술표 ◆ [최종단계]
[대멸천분공(大滅天焚功)] :
(사혈을 집은 뒤) ↓ A 또는 B
천운이라고 해야 할까.
이 특수 기술은 목숨만 내놓으면 곧장 발동이 가능한 기술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실로 끔찍한 거였지만.
“늦었어. 목을 노렸어야지.”
설휘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함께 특수 기술이 발동되었다.
[대멸천분공(大滅天焚功)을 발휘합니다.]
지지직지지지직.
기분 나쁜 울음소리와 함께 타오르는 불의 띠.
그것은 바닥이 아닌, 높게 솟은 공중에서 불의 띠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이 띠는 설휘를 중심으로 둥근 원을 생성하고 있었다.
“아…….”
순간 고개를 든 살마. 그는 불의 띠를 보자마자 기겁하며 소리쳤다.
“모두 도망쳐라!”
팟! 파밧!
외침이 떨어지자 유패와 향개가 즉각 움직였다. 살마 역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약했다.
허나, 그건 불의 띠가 생성되기 전이어야 의미가 있었을 행동이었다. 이미 발동된 대멸천분공은 바닥에 거대한 진폭을 일으켰고.
구구구구궁.
수십 장까지 높게 솟더니, 그들이 벗어나기 전에 이미 불꽃이 주변을 에워싼 것이다.
쿠-----------아아아아앙!
그리고 폭발했다.
한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리는, 사대극마공 화(火). 그 정점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
[여덟 번의 목숨이 남았습니다.]
설휘는 칠흑 같은 공간 안에 있었다.
그 역시 화마에 목숨을 잃었고, 동시에 눈앞에 친숙한 문구를 맞이했다.
늘 보던 익숙한 글귀였지만, 이번엔 설휘는 과거처럼 담담하지 못했다.
복수를 한다고 했지만, 수하들의 죽음이 채 아직 머릿속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소령이 선물을 주고 떠났구나.’
그나마 목숨의 수를 보고, 소령을 떠올렸을 때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사귄 지 1일.
그 시간은 정말이지 원망스러울 정도로 짧았다.
눈 깜빡이는 몇 번.
그것이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었다.
‘유패는…… 먼저 죽이지 못했구나.’
설휘는 죽는 순간을 떠올렸다.
분명히 화마에 자신만이 아니라, 유패와 향개 또한 휘말렸다.
그런데도 목숨에 변화가 없다는 건, 자신이 먼저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 천력 95년, 제2장-1.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 천력 98년, 7월 마지막 날.
□ 천력 98년, 본 스토리_운명의 날.
그리고 어김없이 나타나는 시간의 기록들.
설휘는 그걸 보고서 지체 없이 두 번째를 선택했다.
<‘천력 98년, 7월 마지막 날.’의 기록을 불러드립니까?>
승낙 직후, 뿌연 시야와 함께 익숙한 공간에 왔음을 느끼자마자.
“이 개 시발 새끼드으으을!!!!”
곧장 욕설을 토해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대극마공의 화를 익힌 기쁨 따위는 없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겪었던 충격과 고통이 뇌리에서 가시지 않고 있었다.
수하들의 죽음. 그것도 잔인하게 죽어 시체로 변한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제껏 수많은 과거 회귀를 했음에도, 이번에는 끔찍한 정신적인 고통이 이어졌다.
“반드시……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설휘의 눈에 강한 집념이 맺혔다.
어떻게 해서든, 일제자의 놈들을 모두 격살시켜야 한다.
그들의 죽음을, 비통한 외침을 반드시 이 두 눈으로 봐야 했다.
설휘는 그 다짐을, 아침이 올 때까지 하고 또 했다.
***
본 스토리라는 분기에 접어들 때까지, 설휘의 시간은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영약을 구매했고, 송화를 구했고, 기려사대와 유패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결코 가볍게 지나가지 않는 상황이 있었다.
[금만중]
“아, 정말 놀라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천축과 내지, 그리고 남만과 북단에 숨겨진 각종 기묘한 보물이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건 천우신조의 기회입니다. 금액만 맞춰주시면 어떻게든 반드시 구해오겠습니다.”
이제껏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이유 중 하나.
바로 금만중이 제시했던 절대 보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설휘는 또다시 이 지점으로 삶을 되돌려야 한다고 확신했다.
<어떤 것을 구입하시겠습니까?>
[권] 환영수갑(幻影手鉀) 1백만G
[검] 용천검(龍泉劍) 1백만G
[도] 천형괴도(天形怪刀) 1백만G
[창] 혈마창(血魔槍) 1백만G
[활] 귀면마궁(鬼面魔弓) 1백만G
[옷] 음양쌍룡포(陰陽雙龍袍) 1백만G
[부채] 태양섭선(太陽摺扇) 1백만G
설휘는 먼저 도구함에 돈이 있는지 확인했고.
<용천검을 구입하시겠습니까? ‘1백만G’가 듭니다.>
드디어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용천검을 구입하셨습니다.>
구입하자마자 문구가 떴고.
[금만중]
“이걸 구매할 재력이 있으셨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단언컨대, 이번 삶은 이것이 최고의 선택이 될 겁니다!”
놈은 ‘이번 삶’이란 묘한 말을 내뱉으며 조용히 사라져갔다.
“대체 뭘까…….”
설휘는 빠르게 도구함을 열어보았다.
척 보아도 희귀한 모양의 검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즉각 용천검을 도구함에서 가져왔고.
척.
손에 자연스럽게 놓여졌다.
“좀 뭔가…….”
길이는 삼 척 팔 촌 정도.
대검이라 하기엔 조금 짧은 길이다.
그리고 검 자루에는 각기 색이 다른 구슬 넷이 박혀 있었다.
스르릉.
검을 한 번 뽑아 보았다.
외견은 평범했다. 재질도 그렇고 뭔가 비범하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이게 무슨 백만금이나…… 어?!”
그런데 중에 상단에서 깜빡거리는 뭔가가 있었다. 혹시나 설휘가 도구함을 여는 것처럼 선택을 해보니.
[모든 특수 기술이 재정립됩니다.]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글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