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기묘한 보물 (2)
“……정립?”
설휘는 무슨 소리인가 하여 고개를 갸웃했다.
혹여나 싶어 특수 기술을 하나 선택해 열어보니.
◆ 소신수마공 특수 기술표 ◆
[빙공극저화] : ABCD (동시에)
이게 떴다.
본래는 빙원핵축압까지 상승시켰지만, 현재는 초마 전인 상태라 당연하게도 빙공극저하로 나타난 것이다.
“뭐 달라진 것도…… 가, 가만!”
대수롭지 않게 보던 설휘의 눈에 들어온 지점.
본래 이 기술은 피를 눈에 묻혀야 발현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건……?”
설휘는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기술표를 펼쳐보았다.
◆ 화온마공 특수 기술표 ◆
[수라폭열공] : → → A 또는 B
“이게 뭐야…….”
확실히 달라졌다.
예전의 요구 동작. 특수 기술이 요구하던 복잡한 요구 동작이 사라졌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바뀌어 있었다. 너무 간편해서 정말인가 싶을 정도로.
“그렇다면 이것도?”
설휘는 마지막으로 사대극마공의 초풍신을 열어보았다.
◆ 사대극마공 風 특수 기술표 ◆
[초풍신] : ↓↘, A
‘역시나!’
설휘는 그제야 이 검의 진정한 능력이 무언지를 깨달았다.
바로 자신의 가장 큰 무기인 특수 기술. 그 발동 조건을 극도로 줄여준다는 것.
만약 이 능력이 극마에 올라서도 적용된다면?
특수 기술의 특성상 내력 소모는 거의 전무하다.
즉, 경천동지할 파괴력을 지닌 특수 기술도 무한대로 간단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이거라면…… 놈들에게 복수할 수 있어!’
설휘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극마에 오른 뒤 쓸 수 있는 최고의 능력.
이것들을 한두 번이 아닌 수십 수백 번을 사용한다면, 상대가 제아무리 경지가 높더라도 잡을 수 있다.
거기다 지금 자신은 사대극마공의 화도 익힌 상황이 아닌가.
‘이리 된 거, 굳이 놈들과 싸우지 않아도……. 아냐,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돼.’
설휘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잠깐 다른 길로 가볼까란 생각이 들자, 스스로 자책하며 부정한 것이다.
일제자와 그 휘하의 놈들.
잡을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한다.
이번 생에서 일제자를 꺾어, 수하들이 잔인하게 죽은 그때의 울분을 갚아야 한다.
현생의 수하들이 기억을 못 할지라도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번 생의 수하들은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해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본인이 일제자에게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번 생은 홀로 간다.’
설휘는 목표를 정했다.
일제자와 주변의 극마고수 모두를 제압하는 게 첫째.
그리고 둘째로는 그리하면 정말 2년을 넘길 수 있을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AI가 말한 미래를 지켜보라는 것이, 일제자를 처리하는 게 위기의 마지막이라면.
그다음 생은 주어진 삶에 제대로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설휘는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 속으로.
***
[본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곤마와 대면하고 음무기, 송화와 함께 항주로 향하는 것까지는 이전과 똑같이 진행했다.
과거에 잃어버린 풍운극마검과 수하들의 병기가 신경 쓰여서 곧장 해남도로 향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이미 엄청난 신검이라 할 수 있는 용천검을 얻은 상황이다.
그리고 이번 생은 수하들이 강해지는 게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항주에 도착 후, 종리세가가 부탁을 해왔다.
처음에는 의뢰를 받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돈이 많아서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금 5만 냥을 얻어 본래의 거처로 돌아온 후.
“받거라.”
음무기와 송화에게 1만 냥을, 각각 오천 냥을 둘에게 나눠주었다.
“헤헤. 주신다면야.”
“대장, 이런 거금을…….”
음무기는 경박하게 웃었고, 송화는 걱정스러워할 정도였다.
설휘는 그런 모습이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몇 번의 삶을 되돌리는 가운데, 이들이 자신에게 안겨다 준 돈이 얼마나 많았던가.
설휘에겐 그저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부담 가질 것 없다. 너희가 이제껏 나한테 한 게 얼마인데…….”
“예? 저희가 뭔가 대단한 걸 했습니까?”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그냥 받아라.”
이후 하오문과 접촉했고, 잠룡재가 접근해왔다.
이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순서를 외울 정도였다.
그사이 설휘는 개인 수련을 위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수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단 일주일 만에 극마에 오를 수 있었다.
전투를 겪으면서 얻은 경험.
거기다 세 단전을 운용하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게 큰 도움을 주었다.
더욱이 이번 생에는 극마에 오르니 이전과 다른 변화도 목격했다.
[빙원핵축압을 익혔습니다.]
[지옥멸절공을 익혔습니다.]
[대멸천분공을 익혔습니다.]
과거에 익혔던 특수 기술을 곧장 익힐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절세풍검을 익혔습니다.]
‘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변화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절세풍검이라니.
풍운극마검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설마 이건…… 사대극마공 풍의 최종 기술이라서 뜬 것인가?’
과거에는 이 절세풍검을 따로 시도한 적이 없었다.
사대극마공 풍의 최종 단계의 기술이었지만, 풍운극마검을 소지하고 있으면 그냥 펼칠 수 있는 능력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가.
과거에는 사대극마공 풍의 최종 단계라는 특수 기술 역시 뜨지 않았다.
그런데 풍운극마검이 없는 이때에 갑자기 뜨는 걸 보니, ‘그 검’이 오히려 족쇄가 된 모양이었다.
‘기술표! 기술표를 확인해야 해!’
설휘는 다시금 특수 기술표들을 확인해 봤다.
어쩌면 용천검을 들고 있는 지금, 제일 중요한 능력이었다.
◆ 소신수마공 특수 기술표 ◆ [최종 단계]
[빙원핵축압] : ↓ ↑ A 또는 B
‘달라졌다!’
엄청나게 간결해진 기술.
한정된 공간에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 능력. 그게 고개를 숙인 뒤 다시 들기만 하면 펼쳐낼 수 있는 기술로 변모했다.
◆ 화온마공 특수 기술표 ◆ [최종 단계]
[지옥멸절공] : ← → ↓ A 또는 B
다음으로 설휘는 화온마공을 살펴보았다.
이 기술도 비슷했다. 싸움 도중 언제든 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간결해졌다.
물론 지금 소지하고 있는 용천검을 들고 있어야 시전이 될 테지만.
이번에 설휘는 사대극마공 화 기술표로 시선을 돌렸다.
◆ 사대극마공 火 특수 기술표 ◆ [최종 단계]
[대멸천분공] : ↑ ↗ → ↘ ↓ A 또는 B
“이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전에는 사혈을 짚어 죽음을 선택한 후에야 쓸 수 있었던 기술이, 언제든 사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고작 고개를 조금 위에서 밑으로 내리는 것만으로도!
‘마지막으로…….’
설휘는 사대극마공 풍으로 시선을 돌렸다.
◆ 사대극마공 風 특수 기술표 ◆ [최종 단계]
[절세풍검] : ↓ ↓ ↓ (ABCD)
그리고 네 가지 무공, 서술된 기술표를 보고 환희에 찼다.
‘이젠 이길 수 있어!’
아무리 극마고수가 셋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수준이 자신보다 높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승산이 있다. 체력을 안배하면서 이 절대 무공들을 무작위로 뻗어낸다면, 감히 당할 재간이 있겠는가.
더욱이 한순간 무적이 되는 절세풍검은, 예전과 달리 체력과 내공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번엔 죄다 잡는다.”
설휘는 각오를 다지며 모든 무공을 한 번씩 펼쳐보았다.
하나하나가 천지를 떨게 하는 위력. 빙공과 화온마공, 거기다 사대극마공의 힘까지.
‘이거 심하게 강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용천검의 능력은 너무도 대단했다.
“후우.”
설휘가 그렇게 수련을 마쳤을 때는, 주변은 거의 폐허가 되어 있었다.
특수 기술을 여러 번 펼쳤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그날, 설휘는 즐거운 마음으로 거처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대장. 소식이 왔습니다.”
송화가 본교의 소식을 전해왔고, 설휘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곤마에게 소식을 전달했다.
***
시간과 사건은 한 치의 틈 없이 정해진 대로 흘러갔다.
곤마의 서신이 전달되는 것부터 시작하여, 몇 달 후 그와의 만남까지.
시간을 정확히 지키면 갑자기 사건이 달라지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굳이 달라진 게 있다면 설휘의 마음가짐.
두 번째 곤마와의 만남에서 이전보다 조금 더 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다시 몇 달 뒤.
수하들이 찾아왔다.
“솔직히 당시에는 좀 서운했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그날의 첫 대화도, 용진이 먼저 했다.
“대장?”
설휘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재차 물었고, 뒤늦게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다. 정말……”
그러고도 뒷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되는 삶이 지칠 만도 하건만, 수하들을 이렇게 보고 있자니 설휘의 가슴은 울컥했다.
자신을 대신해서 희생했던 것에 대한 고마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다시 만남이 주는 행복.
“참…… 그렇게 말하면, 우리를 버리고 도망간 게 용서될 줄 알았습니까!”
용진이 버럭 되물었지만, 반박하지 않는 설휘로 인해 분위기가 또다시 요상하게 흘러갔다.
그러던 중.
송화가 음무기를 데리고 왔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설휘가 말을 꺼냈다.
“아쉽지만…… 우리는 내일부터 헤어질 거다.”
“예?”
“무슨?”
듣던 수하들은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겨우 죽지 않고 다시 만난 게 오늘이다.
그런데 그간 쌓인 회포를 다 풀지도 못했는데 헤어져야 한다니.
그럼에도 설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새 신분을 정해서 살아라. 그간 너희가 하지 못했던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서. 돈이라면…… 여기에 있다.”
설휘는 도구함에 있는 돈을 모두 꺼냈다.
그리고 음무기와 송화를 제외하고서 각각 1만 냥씩을 나눠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영문입니까?”
“대장! 왜 이러는지 말씀이라도 해 주세요!”
요림과 적송이 급히 물었지만, 설휘는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게 내 꿈이다.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걸 보는 게. 그러니…… 더는 토들 달지 말도록.”
설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더 같이 즐기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헤어질 때 감정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울컥.
까닭 없이 십 대 때로 돌아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오후의 하늘은 맑았다.
곤마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빌어먹도록 쾌청했다.
수하들이 모인 거처를 홀로 나선 설휘가, 조금 떨어진 길목에 서서 하늘을 볼 때였다.
탁. 타닥.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휘는 자리를 피할까 했지만, 이내 멈췄다. 가벼운 발걸음의 주인이 누군지를 알아차렸기에.
“대장!”
“소령이구나.”
급히 달려왔는지 숨소리가 꽤 거칠었다.
“무슨 이유가 있으신 거죠? 아니면 처음부터 이렇게 갑자기 헤어지려고 하신 건가요?”
“…….”
설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자꾸만 전생에서 죽어가던 와중에 자신을 바라봤던 그때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왜 그런 걸까.
그녀는 지금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도 않은데.
“대장……?”
너무 빤히 바라봐서일까. 소령의 볼에 약간의 홍조가 생겨났다.
그에 설휘도 깨달았다.
“소령아.”
그녀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름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 정도로 보고 있는 걸까.
“혹여나 내가 1년 뒤에도 살아있다면…….”
설휘는 여전히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행동은 쭈뼛쭈뼛했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이번 삶에 대한 보상은 적어도 힘이 아닌,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네게 청혼을 해도 되겠느냐?”
“……!”
설휘의 말에 소령의 눈은 부릅떠졌다.
‘1년 뒤에 살아있다면’이라는 말에 놀란 것인지, 청혼이란 말에 놀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황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성급했구나.’
그 모습을 본 설휘는 자신이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이번 생은 수하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부담을 주는 행동이라니.
“아, 미안하구나. 그냥, 이 얘긴 못 들은 걸로 해다오.”
그래서 이내 고개를 돌리고 다시금 걸었다.
스스로 자책하며 돌아선 것이다.
“……서호(西湖).”
그런데.
“서호는 외호(外湖), 북리호(北里湖), 서리호(西里湖), 악호(岳湖), 소남호(小南湖). 다섯 개의 호수가 있다고 해요. 그중 외호(外湖)는 시내와 가깝고 볼거리가 많아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네요.”
“……?”
설휘는 고개를 돌렸다.
방금 그 말은, 자신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대장.”
소령은 시선을 들었다.
이전처럼 부끄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그녀는 설휘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고, 살짝 미소까지 지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오세요.”
“…….”
설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반드시 이길 거라 생각했지만, 장담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시스템’이란 덫은 항상 생각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무모하다 해도 꼭 말하고 싶었다.
“그러마.”
이번 생은 반드시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