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16화 (217/379)

216화. 용천검 (1)

덜컹덜컹.

험준한 길을 내달리던 마차가 크게 요동쳤다.

오는 내내 이런 불편함이 이어져서인지 마차를 탄 사람들의 표정은 죄다 어두웠다.

“거참. 마부가 문제인 건지, 길이 문제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앞장서 가는 수레꾼들이 문제인 건지.”

마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넷.

그중 50대 줄에 들어선 장대한 체구의 남자가 결국 참지 못하고 불평을 쏟아냈다.

본래 이 마차는 단독으로 출발하여 목적지까지 가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마침 운령표국(運嶺驃國)과 행선지가 겹치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들 뒤를 따라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래도 좋은 기회이지 않소. 이 근방에 산적들이 자주 출몰한다고 하니…… 운령표국 같이 든든한 자들과 함께하면 안전은 보장되지 않겠소.”

맞은편,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받았다.

그는 편한 행장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얼굴은 서글서글했고 눈에 총기가 보일 만큼 인상이 좋았다.

“그깟 산적들, 무공도 익히지 못했을 텐데……. 칼을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는지 모르겠군.”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별것 아니라는 듯 내뱉자, 행장인은 곧장 반박했다.

“어이 형장. 그래도 이 근방 녀석들은 제법 사납소. 녹림 출신이란 말이 돌 정도로. 그거 아시오? 몇 달 전에도 이 근방을 지나던 이들이 금품은 물론, 목숨까지 빼앗겼다니.”

“제대로 된 호위무사 없이 다니니 그런 사달이 나는 거요.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 같은 무도가들은 그런 녀석들을 두려워하지 않소.”

“오호, 무도가라. 무림인인 줄은 대충 예상은 했지만…… 혹 실례가 안 된다면 별호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자신 있게 무도가라고 자랑하는 장한을 보고서 행상인은 관심을 표했다.

“뭐, 말해줘도 모를 게요. 나는 그다지 남에게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지금 말해줄 수 있는 건 사천 성도 주변에 도관 몇 개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정도.”

“오오! 문주님이셨군요. 이거 몰라뵈었습니다.”

행상인은 급히 포권을 해 보였다.

스스로 공치사를 받는 듯한 느낌 때문인지 장한은 어색하게 예를 받았다.

“헌데…….”

그리고 이번엔 장한이 행상인 옆의 인물을 슬쩍 곁눈질하며 물었다.

“옆엔 누구시오? 낮에 같이 타는 걸 보니 같은 일행으로 보이는데…….”

행상인 옆의 사내.

장한만큼 체격이 매우 큰 데다, 정갈히 차려입은 남색 복장을 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죽립을 써서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아, 옆에 계신 분? 제가 산적이나 도적 떼를 대비해 경호로 데리고 온 분입니다. 별호는 귀면대호(鬼面大虎)라 하지요.”

“귀면대호?”

그 말에 살짝 놀란 듯한 장한이 한마디를 더 이었다.

“혹, 흥산에서 열린 장강무림대회에서 입상하신 그분이오?”

“예, 맞습니다. 그때 참석하셔서 7위를 차지하셨지요.”

“이거, 귀인을 늦게 알아봤구려. 반갑소이다. 본인은 송고(宋高)라고 하오.”

장한이 포권하며 예를 표하자, 사내는 슬쩍 죽립을 들어 보이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장한은 그 행동이 전혀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드넓은 땅에서 이름을 알리기란 쉽지 않았다.

구파일방이나 무림맹 출신을 제외하면, 특정 사건에 얽히거나 산발적으로 열리는 무림대회에 출전하는 게 아니라면 별호를 알리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그러니 지금 호위무사를 맡은 사내의 위명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그나저나 운령표국은 굳이 왜 이리 험난한 길로 가는지 모르겠소. 조금만 더 가면 이보다 더 험준한 지역 때문에 마차에서 내려 직접 걸어야 할 텐데…….”

장한이 슬쩍 화제를 돌렸고, 이에 행상인이 답했다.

“목적지가 의빈(宜賓)이라 하지 않소. 주변의 민강(岷江)을 통하거나 상류 쪽 장강을 통해서 물자를 운송하려면 이 길이 가장 빠르오.”

“아하. 수로를 통해 교역을 하는구려. 나는 육로로 가는 것만 생각했소…….”

송고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다시 마차 내부의 분위기가 고요해졌다.

“그건 그런데…….”

행상인는 슬쩍 시선을 장한 옆으로 돌렸다.

깡마른 체격의 사내.

대화중에 한마디 끼어들 법도 한데, 자신들이 탈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 자.

그렇다고 그저 평범한 농부나 상인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천으로 감싸긴 했어도, 그 역시 기다란 검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어디로 가시우?”

그래서 행상인은 슬쩍 운을 떼어 이유를 물어봤다.

“…….”

예상한 대로 대답은 없었다.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 걸 보면, 귀찮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행상인은 포기하지 않았고.

“소협. 어디 가시오?”

다시 한번 물었을 때였다.

갑자기 사내가 눈을 크게 뜨면서 전혀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돌아왔구나.”

“예?”

그 말에 마차 안의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사내에겐 모두 관심 밖이었다.

<규정된 지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전투방식을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설휘의 눈앞에 펼쳐진 글귀.

항주에서 다시 사천으로 돌아왔던 건, 바로 이것을 위해서였다.

적어도 예고된 싸움이라면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투방식 <자유제>

눈앞에 뜨는 익숙한 문구까지 생성되자, 설휘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전에는 이런 설정이 귀찮을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몇 번의 죽음으로 인해 지금은 이런 능력이 더없이 반가웠다.

그때였다.

“윽!”

“헉!”

끼이익.

마차가 급히 멈추자, 설휘에게 모였던 시선이 다시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송고가 창문을 내려 밖의 상태를 살폈다.

“무슨 일이오?”

행상인이 물어오자, 송고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문제가 생겼소.”

“어떤…….”

“일단 내려보시는 게 좋을 것 같소.”

***

설휘가 탄 마차에서 사람들이 나왔을 때는 이미 분위기가 극도로 고조되어 있었다.

주변을 뒤덮은 산적 떼들만 해도 대충 이백이 넘어갔다.

일개 도적놈들이라 하기엔 그 수가 많았다.

“이거, 아마도 협상을 하지 않겠습니까?”

행상인의 말에 송고는 고개를 저었다.

“표사들이 칼을 꺼낸 걸 보면, 협상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겠지.”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앞서 나아간 호송 수레 주위로 표사들이 결연에 찬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크게 소리쳤다.

“끌끌. 협상은 결렬됐다. 남자들은 모두 죽이고, 귀중품과 여자들은 데려가라!”

“와아아아아!”

사방에서 달려드는 산적들.

졸지에 소란에 휘말린 송고와 행상인은 급히 마차를 벽 삼아 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들에게도 산적들 서너 명이 달라붙었다.

슈슈슉!

시작은 좋았다.

빠르게 칼을 휘두르는 기세에 산적 한 명이 쉽게 목숨을 잃었다. 더욱이 행상인 옆에 있던 무사도 뒤이은 산적 한 명을 단칼에 날려버렸다.

“오! 확실히! 사천에서 도관 운영하시는 분이 맞구려.”

“그대의 호위무사도.”

이에 행상인 옆에 있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경계했을 때.

스스스슥.

이번엔 무려 다섯이나 그들을 에워쌌다.

거기다 앞서 넝마를 입은 놈들과 달리 제법 잘 차려입은 복장의 놈들이었다.

“무공을 익힌 자들이오.”

송고가 경계하며 소리쳤다. 이마 옆 태양혈이 솟아 있는 것이, 쉽게 볼 인물들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것 같소.”

호위무사도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었다.

무공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도 숫자의 우위는 결코 무시할 것이 못된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의뢰인의 목숨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극도의 긴장감이 이어지던 그때.

드르륵.

채 닫히지 않은 마차 문을 열며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수세에 몰린 일행들도, 상대를 압박해가던 적들도 그곳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

설휘는 한 번 정도 눈길을 줬다. 그 뒤로는 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는 마차에서 나올 때 바꿔놓은 전투방식이 반응하고 있었고.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까요?>

친절하게 물어오자, 곧장 대답했다.

“여기 산적들을 간단히 해산시키는 방법은?”

<분석 중……/>

눈앞에 분석이란 글귀가 뜨고, 답을 내놓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찾았습니다!>

<머리 위에 제거라고 떠 있는 인물들을 죽이세요. 모두 셋입니다.>

순간 저편에 떨어진 사내들 머리 위에 ‘<제거>’라는 게 떴고, 그에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어?”

“이봐, 거기로 가면 당해!”

호위무사와 송고는 사내가 자신들을 지나치자 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설휘는 자신들을 둘러싼 놈들에게 너무 쉽게 다가갔고.

“하앗!”

빈틈을 노렸다고 생각한 산적 셋이 동시에 칼을 찔러 넣자, 그때 설휘가 움직였다.

촤아아아악-

스쳐 지나가는 한 번의 검술.

그것만으로도 이 상황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미 바닥에 세 명의 목이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무슨…….”

“아…….”

“허허.”

지켜보던 송고, 호위무사뿐만 아니라, 행상인 역시 그저 입을 쩌억 벌리고 바라봤다.

그런데 사내의 무위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곳곳에 있는 산적들 사이를 빠르게 파고들었고, 어느새 저편에 있는 두목으로 보이는 인물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위험!”

송고가 다시 외쳤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번쩍임과 함께 맥없이 허공을 긋는 칼질들. 비명. 그리고 하늘로 치솟은 세 명의 목이 입을 다물게 했으니까.

“두목이 돌아가셨다!”

“여기 괴물이 있다! 상대하지 말고 도망쳐라!”

“살고 싶으면 퇴각하라니까!”

공포와 혼란, 그리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주변을 수놓았다.

산적 떼는 누구 할 것이 없이 도망쳤고, 당연하게도 송고와 호위무사 주변의 산적도 퇴각하기에 바빴다.

“……기인인가 봅니다.”

행상인의 한마디에 송고는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고.

“사천에 도관이 있다는 얘기는…….”

“귀면대호라는 별호도…….”

호위무사란 자도 동시에 말을 받았다.

“잊어주시오.”

“잊어주시게.”

그의 무위에 비해, 자신들의 무위는 너무도 초라했기 때문이다.

***

운귀고원(雲貴高原)

운남, 귀주 두 성의 대부분과 사천성의 일부를 포함한 지역으로, 강호에서 네 번째로 큰 고원지대로 알려져 있다.

동남부는 얕지만, 북서쪽은 지대가 높아서 산지가 많고 골짜기가 깊다.

설휘는 이곳을 수련 장소 겸 대련하는 곳으로 정했다.

고원 지하에 석회암 지대가 있어 남에게 방해받지도 않을뿐더러, 누굴 사장시켜도 소문이 새어 나갈 리 없기 때문이었다.

“늦으면 반년, 빠르면 사 개월 정도…….”

적당한 터를 골라 자리에 앉은 설휘는 일제자가 나타날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전생에서는 일 년하고도 반년이 조금 넘었으니, 이번 생은 그와 비슷하거나 더 빠를 수 있다는 걸 계산한 것이다.

‘AI, 턴제…… 모두 있구나.’

설휘는 전투방식을 돌리면서 확인했고, 역시나 이전처럼 선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AI는 위기에 처하거나, 그런 전투를 하지 않는 탓인지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강제로 불러들이긴 쉽지 않겠지.’

과거에는 이놈을 일으키려 절벽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다.

AI가 나올 만한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극마에 오른 자신의 상태로는 웬만한 방법을 써도 쉽지 않을 터였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놈을 불러들이기가 쉽지 않은 그런 상황.

‘뭐, 그건 천천히 하면 되겠고…….’

정작 설휘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이것.

전투방식 <시뮬레이션 Lv2>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까요?>

반나절이 지나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설휘가 다시 이것을 사용했다.

“살마가 나를 찾아올 시간은?”

그냥 재미 삼아 한번 말해보았고.

<계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결과를 토해냈다.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까요?>

설휘는 자세를 고쳐잡고 다시 물었다.

이번엔 진지하게, 그동안 고민해왔던 질문을 뱉었다.

“절대극마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분석 중……/>

시뮬레이션은 곧장 작동했다.

설휘는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것을 얻는다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찾았습니다.>

“……!”

설휘의 눈이 커졌다. 역시나 시뮬레이션. 전능하진 않다 해도, 만능한 건 사실이었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천마 제자들에게 얻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알고 있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그것이 불가능하니 물어본 것이고.

<그리고 둘째는…… 교주의 비밀교서 안에 있습니다. 들어가기 위해선 열쇠가 필요합니다.>

“어?”

설휘는 순간 머릿속에 번쩍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비밀교서라면.

그동안 임무 수행을 하면서 꾸준히 얻었던 그걸 말하는 건가.

순간 설휘는 도구함을 바라보았고.

[도구함을 여시겠습니까?]

안을 확인했다.

거기에 있는 잡화란으로 시선을 내렸고.

<잡화>

무관도 각종 서류, 비밀교서 지도(3/4), 비밀교서 열쇠

“아! 이거였구나.”

확인했다.

저 지도의 위치만 알면…… 지금 바로 절대극마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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