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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18화 (219/379)

218화. 용천검 (3)

천마육성 시뮬레이션.

무작위로 추출된 인물을 선택한 뒤,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하나의 게임.

‘시뮬레이션 Lv2’가 내놓은 답에 따르면, 게임이란 일종의 놀이로써, 여러 규칙을 정해놓고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행동하는 것을 가리켰다.

그리고 앞에 생존이란 것을 붙여놓은 건 플레이어가 최후까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천마육성이란 건,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만들어내는 것. 역설적으로 천마가 된다면 이 시스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설휘는 그래서 더 의아함을 느꼈다.

같은 플레이어일진대, 그 시작점이 천마라니? 천마를 육성하는 시스템에서 천마로 태어났다는 말을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보통 마교주를 뭐라고 하나?”

AI는 설휘의 얼굴을 보고 여기서 질문을 해왔다.

“본명을 부를 때도 있지만…… 개파조사의 별호를 따서 몇 대 천마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 천마란 본교 내 절대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강호의 별호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거지. 즉, 천마육성 시뮬레이션이란 천마 같은 절대자를 육성해 내어, 교주직에 오르게 하는 것. 그리되면 시스템이 추구하는 천마가 될 수 있는 거다.”

“아, 그럼…… 다른 플레이어는 태어날 때부터 천마이며 교주이기도 했단 말입니까?”

“그래. 그는 시작점 자체가 완전히 달랐지. 탈마에 오른 채로 시작하게 된 것이니.”

설휘는 그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결국 그 ‘천마’란 플레이어를 죽이고, 본인이 ‘천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와 몇십 번의 대련 끝에 한 가지 알아낸 게 있다면…… 그는 우리와 목표가 다르다는 거다.”

“목표가 다르다?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우리의 목표가 천마가 되는 것이라면, 그의 목표는 천마를 지키는 것일 테지. 다른 말로 ‘시스템’이 안배해 놓은 인물로 유일하게 선택받은 자.”

AI, 사유강은 설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도전자들에게 희망을 빼앗고 절망을 즐기는, 그런 놈인 것이지.”

“…….”

설휘는 이제 자신의 목표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동시에 무력감이 몰려왔다.

극마에 올랐다고 세상을 다 가졌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전황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탈마라니.

그것도 탈마를 이긴 탈마가 아닌가.

대체 얼마나 강해져야 그와 싸울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그에게 닿을 수나 있는 것인가?

“이제야 알겠느냐? 과거에 내가 왜 이 얘길 너에게 하지 않았는지…….”

“예.”

설휘는 이해가 되었다.

당시 그의 경지는 고작 초마. 그때 이런 얘길 들었으면, 극마에 오르기 위해 미친 듯 노력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너무 막막해서 포기하고 말았으리라.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설휘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말해라.”

“사유강 님은 AI가 된 후, 저 같은 플레이어를 얼마나 상대해보신 겁니까.”

과거 사유강은 본인이 들어오기 전에 대략 5천만 명이 도전했다고 들었다.

그 후에 본인이 AI가 됐을 것이니, 설휘 본인처럼 몇 명을 상대로 AI가 되어 대상을 도왔는지 궁금했다.

“천만 정도?”

“……!”

“숫자로 세었던 게 대충 그쯤 되었다. 그 뒤로는 굳이 셀 필요가 없다 생각해서 잊어버렸지.”

“아…….”

“뭐, AI가 되어도 생각처럼 그렇게 지루하진 않아. 대충 절반은 시작부터 뒈지기 일쑤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플레이어 중에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

대부분 극마에 오르지도 못하고 죽기 일쑤였다고 했다.

“극마에 넘어선 녀석들은 백여 명쯤 되었지. 그중에서 탈마는 고작 셋. 물론 천마놈에게 무참히 깨졌지만…….”

AI가 설명을 하면 할수록 천마의 대단함만 계속 두드러지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에도 느꼈지만, AI는 천마를 경멸하면서도 질투하는 감정을 같이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설휘.”

“예.”

상대가 탈마란 걸 알게 되자, 설휘는 이전보다 더욱 깍듯이 예를 표했다.

“내가 왜 너에게 모든 걸 이리 친절하게 알려주는 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멍청하고 나약한 놈이라서다.”

“예? 아…… 예…….”

설휘는 속으로 울컥했지만, 그렇다고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AI는 무려 탈마에 올랐다. 그 눈높이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조롱하려고 말하는 게 아냐. 오히려 칭찬에 가깝지.”

말을 이어가는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넌 말이야. 내가 본 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밑에서 시작했어. 솔직히 말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정도로 바닥이었지. 그런데도 넌, 계속 야금야금 올라와서 나를 만났다.”

“…….”

“생존하는 과정은 더욱 흥미로웠지. 이것을 ‘놀이’라고 인식하는 플레이어들의 대부분은 실리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것, 그리고 불리한 것을 적절히 이용하지. 그리하여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방식을 사용해.”

AI의 표정은 이전보다 조금 밝아져 있었다.

“헌데, 너는 실리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고 살아갔어. 누군가를 구하고, 정을 느끼면서 사는 것. 그것이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놀이와는 다른 길이지. 그 의미 없는 저항이…… 맘에 들었다.”

“…….”

“그래서 보고 싶어진 거야. 가장 밑에서 시작한 자와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한 자. 당연히 후자가 이길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놈에게 없는 것을 넌 가지고 있으니, 한번 기대를 해보는 거다.”

설휘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절박함.”

“아…….”

칭찬인지 욕인지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설휘는 예를 표했다.

괜히 AI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없으니.

“설휘. 너에겐 그것이 보여. 그것 때문인지 단기간에 성장하는 방법도 다른 이들과 달랐지. 훗날 그것이 너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내 생각은 그렇다.”

설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절박함이라.

그래, 절박했다. 그리고 그 절박함은 계속된 죽음으로 조금씩 변했다.

강한 힘을 동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깨닫기도 했고, 나중에는 수하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또 궁금한 점이 있느냐?”

갑자기 AI가 친절하게 나오자, 설휘는 눈알을 굴리다 말했다.

“그 천마로 태어난 플레이어 말입니다.”

“그래.”

“제가 죽으면, 그 생에도 계속 살아있는 겁니까? 아님 제가 죽고 회귀할 때, 저를 따라오는 겁니까?”

설휘가 이해되지 않는 건 이것이었다.

같은 플레이어라면, 같은 세계에 같이 살아야 했다.

그런데 본인이 죽으면, 그자는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했다.

“궁금할 수 있는 부분이군.”

AI 사유강은 설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네가 처음에 천마냐고 물었을 때, 내가 천마라고 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거다.”

“예? 그게 무슨…….”

“놈은 현재 천마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지.”

“허면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는 겁니까?”

“모른다.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해.”

“……?”

“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거.”

“말도 안 돼…….”

설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지만, AI는 오히려 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네가 할 일은 천마부터 죽이는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현 천마를 죽여야만 ‘그 플레이어’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아!”

설휘는 눈을 부릅떴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상대는 시작부터 교주로 태어난 데다, 계속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얼마나 수련을 했는지는 가늠할 수도 없다.

그간 플레이어가 살았던 연수만큼, 거기다 회귀 횟수만큼 그는 수련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상상도 하기 힘든 그의 강함에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또 궁금한 게 있느냐?”

사유강의 물음에 설휘는 갑자기 말했다.

“제게 절대극마공을 전수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아실지 모르지만, 얼마 뒤에 제가 좀 버거운 상대와 싸워야 해서.”

“……그거야 어렵지 않지.”

“정말이십니까?”

설휘의 얼굴이 밝아지자, AI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리되면, 넌 큰 것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어떤…….”

“탈마로 오를 수 있는 계단.”

“아…….”

설휘는 AI가 깨달음을 말하는 걸 알아챘다.

단순히 체득하여 얻는 것과, 무공을 보고 깨우치며 얻는 것의 차이는 크다.

때문에 여기서 당장 절대극마공을 배웠다간, 나중에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천마군림보와 천마잠형술은 남기고 갔잖아?”

“그렇긴 하죠.”

설휘는 눈을 껌뻑이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리 궁금한 게 많으냐?”

이제는 귀찮아진 듯한 AI를 향해 설휘는 조심히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뭐냐?”

AI가 승낙하자, 곧장 물었다.

“목숨을 무한대로 얻을 수 있는 구간이 존재합니까?”

“…….”

“있군요? 그렇지요?”

설휘의 얼굴이 밝아졌다. 자신이 예상한 것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있지. 그런데 이걸 네가 할 수 있을까?”

“크게 어렵지 않다면야…….”

“그래? 그렇다면 알려주마.”

AI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그중 중간 난이도를 선택해라.”

“그다음은요?”

“선택 후 진행하다 보면 특정 임무 하나가 주어질 것이다. 그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

“그 임무가 뭔가요?”

“정들었던 이들을 죽이는 것.”

“예?!”

설휘의 눈이 부릅떴다.

잘못 들었는가 싶어 그를 바라보니, AI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사령대 조장들이 대상이 될 거다. 죽일 때마다 목숨의 수가 늘어나겠지만…….”

“…….”

“인간성은 상실하게 될 거다.”

***

<본래의 몸으로 돌아갑니다.>

[1,011일. 이 기간 동안은 AI를 부를 수 없습니다.]

AI가 사라지고 난 후, 한 달이 더 흘렀다.

하지만, 설휘는 그 기간 동안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았다.

사유강이 남기고 간 여러 가지의 조언들.

듣기만 해도 뿌연 안개가 사라질 줄 알았으나, 오히려 더 짙어진 느낌이었다.

“인간성의 상실…….”

설휘는 그가 꺼낸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계속되는 삶을 이어 나가겠지만, 그럴수록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사라질 것이다.

정이나 사랑 같은 상투적인 감정이 완전히 지워진 채, 오로지 죽이고 강해지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 것.

- 그냥. 너에게 낭만이란 게 있어 보여서.

낭만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그는 수천 번이나 회귀를 했으니 아마도 감정 따위가 몰살됐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절박하게 삶을 이어가는 자신을 보고 흥미를 느꼈을 터.

사박사박.

때마침 인기척이 들린다.

여기 지하동굴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지 않고선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곳.

아마도 전생처럼 일제자와 그의 수하들이 몰려온 거겠지.

“먼저…… 처리하고 생각하자.”

설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전에는 다짜고짜 적들이 쳐들어왔었다. 그러니 이번엔 자신이 마중을 나갈 차례였다.

설휘의 손에 들린 용천검. 그 자루에 박혀 있는 구슬 네 개가 오늘따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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