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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21화 (222/379)

221화. 천마육성 (2)

[스물두 번의 목숨이 남았습니다.]

눈앞에 뜨는 익숙한 문구.

본래 일곱으로 줄어들어야 할 목숨이 열다섯 개가 더 늘어나 있었다.

‘유패를 죽였기 때문인 건가…….’

중요 인물 제거에 대한 보상.

하지만 그 결과를 받아든 설휘의 입장은 오히려 착잡한 마음이었다.

과거였으면 기회가 늘었다고 안도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족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쯤 소령은……’

그리고 때마침 설휘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인물.

비록 자신은 죽었지만, 그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소령은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미 죽어서 돌아갈 수 없지만, 살아있는 그녀의 상황은 다른 것이니까.

‘뭐 하나 쉬운 게 없구나…….’

설휘는 자책했다.

죽었던 생에 대한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극복해야 하는 벽이 너무도 높아, 주변인의 삶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전 생에 남겨진 수하들의 삶이 행복해지려면, 자신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설휘의 복잡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나타난 선택지문은 또 다른 삶에 대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었다.

■ 천력 95년, 제2장-1.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 천력 98년, 7월 마지막 날.

□ 천력 98년, 본 스토리_운명의 날.

곤마가 제시하는 삶.

설휘는 이제 더는 같은 지점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이제 삶의 목표를 다르게 정해야 한다.

거대한 적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좀 더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게 필요했다.

그게 무공이 됐든, 삶의 지혜가 됐든.

<‘천력 95년, 제2장-1.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의 기록을 불러드립니까?>

설휘의 선택은 첫 번째였다.

실로 오랜만에 돌아가는 ‘곤마의 선택지’였다.

***

새하얀 빛이 사라졌다.

설휘는 곤마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지문을 선택해야 했다.

[세 가지 중에 선택하세요.]

▶ 곤마의 핵심무사 되기

▷ 곤마의 호위무사 되기

▷ 곤마의 비밀무사 되기

선택은 세 번째였다.

<‘곤마의 비밀무사 되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선택 후에.

경고 섞인 문구도 나왔다.

<선택지문 중 ‘난이도’가 가장 어렵습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지금에 와서는 피할 이유가 없었다.

설휘가 그렇게 선택하자, 곤마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의외로군.”

“……예?”

“열에 아홉은 죽어 나가는 선택이다. 그런데도 정말 비밀무사가 되고 싶은 것이냐?”

다시 한번 심사숙고하라는 곤마의 말.

설휘는 담담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곤마는 그런 자신을 한참을 노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선 슬쩍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천광.”

“옙!”

팟.

어디서 나타났는지, 순간 흑의를 두른 인물 하나가 다가와 예를 표했다.

“이 아이를 회월동(回月洞)으로 보내거라.”

“예? 이 아이를 말입니까?”

천광의 눈빛이 빠르게 설휘의 몸을 훑기 시작했다.

상대가 복면 사이로 눈만 드러냈음에도, 설휘는 그의 감정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상당히 부정적이란 것을.

예상대로 그는 곤마를 향해 다시 말을 건넸다.

“사제자님. 이자는 태황각 내에서도 소속이 없는 일개 무사로 보입니다. 선별된 자들이 투입되어도 대부분 죽어나가는 곳이 회월동인데,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이런 아이를 투입시키려 하십니까?”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길 원하지 않느냐. 그리고…….”

곤마는 나름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말을 이었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가능성이 너무…….”

“더는 묻지 말고, 회월동으로 투입하거라. 필수 장비와 물품들은 부족하지 않게 넉넉히 지급해 주고.”

곤마는 뒤돌아섰다.

더는 이 부분에 관해 얘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천광은 할 수 없이 결국 예를 표했다. 그리고 곤마가 사라지자, 설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쯧. 따라오너라.”

***

회월동.

총 3단계로 나뉘는 곤마의 비밀무사 훈련 과정 중 첫 번째.

훈련 요령은 간단했다.

석 달간 동굴 안에서 그저 생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회월동에 대해서 들어봤느냐?”

천광의 물음에, 그의 뒤를 보며 따라가던 설휘가 말했다.

“처음 듣습니다.”

“이곳은 사제자께서 비밀무사를 양성하기 위해 특별히 만드신 곳이다. 이곳에서 체력과 내공, 전투적인 감각과 임기응변을 익힐 수 있지.”

“…….”

“훈련도 쉽다. 특별히 정해진 조건 같은 건 없이, 그저 석 달만 버티면 되는 거다.”

“……간단하군요.”

멈칫.

순간 천광이 걸음을 멈췄다.

설휘의 말이 신경을 건든 것이다.

“간단하다라.”

그는 그 자리에서 돌아서며 설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 동굴 안에 무엇이 있는 줄 알면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거다.”

“무엇이 있습니까?”

“괴수들이 있지.”

“괴수?”

천광은 잠깐 여기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본래 회월동은 기기아대의 수련 장소였다. 기가아대는 각종 술법과 기문둔갑을 연구하는 자들이라는 건 너도 알 터. 그들은 산짐승들을 데려다 수많은 실험을 했지.”

“허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이…….”

“그래. 각종 신법에 걸린 짐승들이 들어있지. 짐승들의 상당수는 죽었지만, 워낙 많은 양을 데려온 터라 살아남은 녀석들도 제법 되었지. 본래 회월동은 기기아대의 실험이 끝나고 원래는 폐쇄했어야 할 구역.”

천광은 거기서 힘주어 말했다.

“우린 이곳을 훈련 장소로 정하여 지속해서 관리했다. 그 안엔 인간의 힘보다 몇 배는 월등한 짐승들이 있을 터고, 강시 같은 놈들도 있을 터. 넌 그곳에 들어가서 석 달을 살아남아야 하는 거다.”

“……그렇군요.”

‘허?’

천광은 잠깐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이 정도 얘기를 하면 보통은 겁에 질리거나, 적어도 긴장을 하기 마련인데 이 아이는 담담해 보였다.

혹여나 자신의 눈을 속이려 하는가 싶어 눈을 뚫어져라 봤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너,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게냐?”

혹시나 하여 다시 물었더니.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반문을 해왔다.

해서 천광은 더는 설명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회월동 안에 들어가 직접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니까.

투욱.

산길을 타고 한참을 이동하던 중이었다.

바위 위에 임시로 지어진 가건물이 보였고, 그 길로 좀 더 올라가자 임시막사로 보이는 곳에서 무사들이 걸어 나왔다.

“어? 무슨 일이십니까?”

한 무사가 천광을 알아보았는지, 간단한 예의를 차리며 물었다.

“훈련할 아이를 데리고 왔다.”

“어떤…….”

무사들의 시선이 설휘에게로 이동했고.

“아, 이 아이는 이번엔 어디서 선별된 겁니까?”

반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선별된 아이는 아니다.”

“예?”

“사제자님의 지시로 데리고 온 거다.”

그 말에 대장으로 보이는 무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군요.”

“물품들을 보급해 주거라.”

“알겠습니다.”

무사 하나가 대답 후에, 창고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뭔가를 들고 나와 설휘에게 건넸다.

“받거라.”

[하령검(河零劍)을 얻었습니다.]

[은선단(銀仙丹)을 얻었습니다.]

[금창약 10개를 얻었습니다.]

[화섭자 3개를 얻었습니다.]

[벽곡단 100개를 얻었습니다.]

설휘가 그것을 받아들고, 천광을 바라보자.

“네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이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설휘는 물품들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이내 말했다.

“검 하나만 받겠습니다.”

“뭐?”

“영약과 음식, 그리고 치료약은 안 주셔도 됩니다.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천광은 순간 잘못 들었는가 하여 멍한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봐, 지금 네가 들어가야 할 곳은…….”

천광이 다시 입을 열자.

“생존 훈련 아닙니까?”

“……?”

“적진에 홀로 남겨져 그들에게 추적을 당해야 할 때, 이런 물품들이 항시 있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천광은 대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놀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별것 아니라 치부했던 아이에게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저기인가요?”

설휘가 한곳을 말하자 천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도 됩니까?”

“그래.”

설휘가 몸을 돌리고 움직이자, 천광은 약간은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동굴 안에 들어온 설휘의 눈앞에 뜨는 글귀들이 있었다.

[난이도가 오름으로 인해 ‘전투방식 <자유제>’가 기본으로 생성됩니다.]

[난이도가 오름으로 인해 비밀무사가 되기 전까지는 ‘특수 기술’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투방식인 ‘시뮬레이션’과 ‘AI’는 특정 사건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턴제뿐만 아니라 자유제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또한, 현재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뮬레이션과 AI는 특정 사건을 통해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특수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까지 걸려 있었다.

“상관없다. 이번 생은 AI를 불러들이는 것 외에는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을 것이니.”

설휘는 다짐했다.

이전처럼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식은 더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완전히 바닥부터 박박 기어올라, 극마에 도달하겠다고.

설휘는 전투방식을 턴제에서 자유제로 바꿨다.

전투방식 <자유제>

“이번 생에는 반드시…….”

설휘는 시선을 내렸다.

손에 쥐어진 검 한 자루.

이것이 이번 선택에서 자신이 가진 유일하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라 생각했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를 것이다.”

설휘는 회월동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어둠에 적응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천장에 인위적으로 박아놓은 야광주가 아니더라도,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희미한 빛들이 동굴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이 정도는 우리들이 배려해 준다는 느낌이었다.

‘피 냄새.’

안으로 조금 걸었을까.

인기척과 함께 비리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다만, 그것이 인간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설휘는 이전 극마가 되었을 때의 감각과 지금의 몸 상태가 상당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그때에는 거의 수십 장 너머의 풀벌레 소리도 들릴 만큼 선명히 각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느꼈던 시간의 밀도도 훨씬 더 두꺼웠다.

지금은 멀리는커녕, 거의 지척 앞에 있는 것도 자세히 느낄 수 없는 상황.

‘그래서…… 내가 보이는구나.’

설휘는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과거에는 자신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몸의 움직임은 그때보다 비교할 수 없는 만큼 느려졌지만, 최대 어느 정도로 움직일지는 예상이 갔다.

검의 속도도 그렇다.

한 번의 휘두름 안에 어느 정도의 세기가 존재하는지.

단전의 흐름 역시 임독맥을 뚫지 못한 내공은 어느 정도로 발현될 수 있을지 모두 짐작이 갔다.

크르르르릉.

‘늑대인가?’

어둠 속에서 짐승의 울음이 점차 강해졌다.

설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첫 사냥이다.

놈을 자신이 어느 정도로 압도하는가에 따라, 이 안에 있는 괴물들을 얼마나 상대할 수 있을지가 판가름 난다.

‘온다.’

감각을 끌어올린 설휘의 눈이 움직였다. 흐릿하게 보이는 뭔가가.

갑자기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일순, 설휘가 검을 휘두름과 함께 몸을 회전시키며 대응했다.

그때까지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느꼈다.

‘어?’

설휘는 눈이 부릅떠졌다.

인간도 아닌 것이, 공중에서 방향을 튼 것이다.

“크악!”

쿵!

놈의 머리에 부딪히며 설휘의 몸이 날아갔다. 그와 함께 벽에 부딪히며 쓰러졌고.

“으윽!”

가슴팍을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

이제야 선명히 보였다.

놈은 사람의 키와 비슷했다. 늑대처럼 생겼지만, 괴이하게 틀어진 얼굴 형태.

크르르르릉. 크르르르릉. 크르르르릉. 크르르르릉.

그리고 울음소리와 함께 서서히 기어 나오는 짐승들.

무려 넷이었다.

각종 술법으로 자아를 상실한 거대한 늑대들이 설휘의 주변을 감싼 것이다.

“그래, 처음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콱.

설휘는 검으로 땅을 찍으며 일어섰다.

얼마나 강한지 예측하기 힘든 놈들. 그런 놈들 앞에서 미소를 보였다.

“그래야 탈마로 가는 길이 좀 보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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