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천마육성 (3)
‘썩은 시체를 먹은 건가?’
설휘는 피비린내보다 더 고약한 냄새에 잠시 코를 틀어막았다.
짐승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악취다.
입가에 구더기가 들끓고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걸 보면, 어디서 제대로 된 먹이를 구한 건 아닌 듯 보였다.
‘스치기만 해도…… 시름시름 앓겠구만.’
오래된 사체를 헤집었다면, 놈들의 입가에 독성이 남아있을 터.
이빨에 살짝 물리기만 해도 석 달은커녕, 며칠도 넘기기 어려울 수 있었다.
크르릉. 크르릉.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녀석. 방금 자신을 상대한 녀석이 수장으로 보였다.
뒤이어 나타난 놈들은 체고가 좀 더 작고, 이빨의 개수도 적어 보였으니.
‘부하들이 먼저 공격해 들어올 것이다. 움직임은 대략 이 정도…….’
설휘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앞서 자신에게 달려든 두목의 움직임을 숫자 열로 잡고 놈들을 팔 정도로 계산한 뒤, 거기에 본인이 취할 수 있는 동작들을 대입해 보았다.
과거에는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이었지만, 지금 설휘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 잠깐…….’
머릿속에 계산된 동선과 움직임들을 본인에게 대입하던 순간, 설휘의 눈가에 작은 파랑이 일었다.
정말 짧은 사이, 수백 번의 가정이 맞물리다가 어느 순간 투로(鬪路)가 자연스럽게 그려진 것이다.
‘이건 시뮬레이션이잖아…….’
초감각이 그려낸 가상의 싸움.
과거 수많이 겪었던 경험과 전투 감각이 살아나자 싸움의 행방이 어떻게 진행될지 눈에 그려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본인의 능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투로의 길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온다.’
카아아앙!
대장이란 놈이 포효하자마자 부하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설휘는 과거의 무공들을 되살리거나 떠올리지 않았다.
순수한 기예만으로.
그들을 맞상대할 생각이었다.
파팟. 파팟. 턱. 턱.
정면에서 달려드는 둘. 그리고 좌우 벽을 타고 올라가는 둘.
하지만 이 모든 움직임은 설휘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먼저.
휘리릭.
눈앞에 달려드는 괴수의 발길질을 바닥을 구르며 피해냈고, 벽을 타고 날아드는 두 마리의 놈들을 보지도 않고 위치를 계산한 뒤.
‘이쯤.’
딱 한 발 뒤로 물러나면서 그대로 검을 위로 찔러 넣었다.
콱!
취이이이!
한 짐승의 목이 칼에 의해 정확히 관통되었다.
설휘는 내려오는 지점을 보지도 않고서 놈의 급소를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하지만, 도약하며 달려들었던 또 다른 짐승의 추가 공격에 설휘는 검을 회수하지도 못하고 피해냈고.
졸지에 세 마리가 에워싸는 형국이 돼버렸다.
카악! 카악! 캬악!
짐승들은 거의 틈을 주지 않고 재빨리 달려들었다.
누가 봐도 그대로 당하리라 여길 만한 그때.
‘지금.’
정말 한 끗 차로 설휘는 도약에 성공했다.
크악! 카앙! 카아악!
그로 인해 놈들은 셋 다 이빨에 물리며 뒹굴었다.
그사이 설휘는 축 늘어진 짐승의 몸에서 검을 회수해 또 하나의 머리에 칼을 쑤셔 박았다.
“이제 두 마리 남았…… 어?”
그때였다.
지켜보던 대장놈이 이를 드러냄과 함께 남은 짐승들이 뒤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혼자서 직접 싸우려는 모양새였다.
“본 싸움인가?”
스으으으윽.
설휘도 집중했다. 어느덧 그의 머리 위에는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로 인해, 눈앞의 투로가 더 뚜렷해지고 확장되기 시작했다.
짐승들과 몇 번 싸운 것만으로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와라.”
파파파팟.
“……!”
확실히 대장의 움직임은 다른 놈들보다 빨랐다. 거기다 단조롭지도 않았다.
다가오는 중에도 몇 번이나 동작을 틀며 설휘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했으니까.
카악!
‘어?’
거의 지척에서 대장 늑대가 방향을 이동시키자 설휘의 얼굴이 굳어졌다.
놈의 묘수에 움직임을 놓쳐버린 것이다.
‘세 갈래 길.’
허나 그 순간에도 설휘의 투로는 살아있었고, 놈이 공격해오는 경우의 수를 하나씩 지우며 대응했다.
공중제비.
그 행동은 주요했다.
허공을 찢어발기듯 물어뜯기 공격을 시도하던 놈의 이빨을 간발의 차로 피해내며 서로 몸이 교차된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삼 장 정도 거리를 벌린 후, 대치 상태가 되었고.
그때쯤 설휘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놈의 움직임을 잡아야 하는데…….’
고민스러웠다.
자신이 아직 놈의 속도에 대항할 수 없다는 걸 느낀 것이다.
‘시간의 밀도를 더 늘릴 수 있다면 승산이……. 맞아! 그 방법이 있었지.’
설휘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곧이어 다시 검을 곧추세웠고. 이어지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카악!
녀석이 달려들자, 설휘의 선택 역시.
파앗.
그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피이이이이-
찰나였지만, 설휘는 두 눈으로 확실히 보았다.
자신이 달려나가는 순간, 놈의 눈이 흔들리는 모습을.
시간의 밀도는 모든 만물에게 공정하다.
허나, 상대의 예측이 빗나갔을 땐 밀도가 달라진다.
머릿속에서 인지하는 시간의 흐름에 ‘변수’가 들어옴으로써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설휘는 그걸 노렸다.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놈의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설휘의 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카아아앙!
놈이 이빨을 드러내며 포획하려 드는 지점을 포착.
몸을 반쯤 회전시키며 동시에 두 손으로 잡은 칼을 옆으로 찔러 넣었다.
패애애액! 크어어엉!
예상은 적중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놈은 목에 칼이 박힌 채로 강하게 저항했다. 강대한 힘을 내세워 칼을 집고 있던 설휘를 떨쳐내려 했고.
여의치 않자 갑자기 벽으로 내달리며 설휘를 압사시키려 했다.
“으아아합!”
그 순간, 설휘는 단전의 힘을 모두 개방했다.
하단전에 있는 진기가 손끝으로 전달되었고, 이내 검끝에 응축되자마자.
촤아아아악!
괴수의 목을 가까스로 잘라낼 수 있었다.
툭. 뚜두두둑.
온몸에 피 칠을 한 설휘.
딱 한 치 남아있던 벽을 슬쩍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과거에 비밀무사를 선택했다면 무조건 죽었겠군.”
특수 기술도 그렇고, 상대할 무공도 마땅치 않다.
더욱이 여기 있는 놈이 이 동굴 안의 주인도 아닐 터.
대체 어떻게 이걸 극복하라는 건지,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의리라곤 없는 놈들이구만.”
조금 전까지 있었던 늑대 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대장이 죽은 걸 보고 겁에 질려 도망갔으리라.
“그때 왜 시간의 결박이 풀렸는지…… 이제 좀 알겠구나.”
괴수와의 싸움을 복기하던 설휘는 자연스럽게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천마와의 싸움.
그때 빙원핵축압이라는 절대에 가까운 특수 기술을 사용했다.
그런데 천마는 그 절대 영역을 부수고 자신의 목을 베었다.
그 말은 놈이 가진 시간의 밀도가 자신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는 것.
“그게…… 극마와 탈마의 차이겠지.”
자신은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었지만, 놈은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터.
아니, 세상의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설명이 되는구나. 내가 가진 능력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 건지.”
시뮬레이션의 능력. 그리고 시간 결박의 능력이 가진 성질이 무언지 온몸으로 체득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기본을 밟으며 나아가다 보면 분명 극마에 올라서도 더는 헤매지 않을 것이다.
가야 하는 길이 어딘지만큼은 분명하게 알고 있을 테니까.
***
두 달이 흘렀을 때쯤.
회월동 주변에 있던 임시 막사 안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제 내내 내린 비로 인해 창고와 보급품을 정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대체 여기 지원 병력은 언제쯤 오는 건지…….”
이곳의 책임관인 북취명(北聚命)은 불평을 쏟아냈다.
회월동 관리 인원은 고작 다섯이었다.
괴수들이 폭주하지는 않는지, 밖으로 나가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주기적으로 식량도 넣어야 해서 손이 많이 갔다.
이렇게 비라도 오면, 창고에 물이 새서 관리하기가 참 불편했다.
“원래 비밀무사 한 명을 키우는 게 쉬운 게 아니야.”
“대장.”
식량 창고를 정리하고 나오던 북취명의 눈이 커졌다.
다름 아닌 총 책임관이라 할 수 있는 나각(羅珏)이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일개 회월동을 담당하는 북취명과 달리, 나각은 비밀무사를 양성하는 모든 관리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에겐 상관 위의 상관인 인물이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그냥. 바람 좀 쐬다가 왔지.”
투욱.
나각이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자, 북취명도 따라 앉았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요즘 사제자께서 고민이 많으시다고.”
“꽤 중요한 결정을 내리실 모양이야. 그것 때문에 고심도 꽤 깊으신 것 같고…….”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 모든 부대가 자리를 이탈하지 말라고 지침이 내려온 것도 그렇고…….”
“높으신 분들이 결정한 일이니. 자넨 이곳만 신경 쓰면 되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짧게 담소를 나눈 북취명과 나각.
몇 마디 안부와 함께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화제가 돌아갔다.
“그래, 이제 시간이 꽤 됐으니…… 시신은 수거해야 하는 게 맞겠지?”
“시신이라면……?”
“어허, 두 달 전에 들어온 아이 말이야. 그간 들어간 아이가 고작 한 명인데 그걸 기억 못 하나.”
“아, 그 아이 말씀입니까. 하하.”
고개를 끄덕이는 북취명.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자, 나각이 의아한 시선을 띠며 물었다.
“뭐야? 아직 살아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어떻게? 직접 확인한 건가?”
거듭된 물음에 북취명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분명 아직 살아있습니다. 안에 있는 괴수들의 개체 수가 부쩍 준 것도 확인했고요.”
“개체 수? 설마, 그 아이가 괴수들을 죽이기까지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허, 설마 그럴 리가. 태황각 내에서 소속도 없던 일개 무사라고 했는데…….”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흐음.”
막사 안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회월동 안의 괴수들은 일류 고수들을 능가하는 힘과 신체, 그리고 감각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무리를 이루는 괴수 중에는 절정의 고수들도 까다로워 할 정도의 힘과 신체를 가진 놈도 있다.
그런 놈들을 상대했다는 건, 이미 놈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뜻이 아닌가.
“혹 백랑(白浪)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흑웅(黑熊)은?”
“한 달 정도 되었지요.”
“식시귀(食屍鬼)는? 설마 그놈도 죽었나?”
“……예.”
“허허허. 하하하하!”
나각은 크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이가 없었다.
백랑과 흑웅은 그렇다고 쳐도, 식시귀는 그야말로 야귀.
눈 깜짝할 사이에 천장과 바닥을 몇 번이나 오가는 속도에, 피부는 웬만한 가죽 몇 개를 뭉쳐놓은 만큼 두껍다.
거기다 피를 갈구하는 야성.
어둠 속에서 발휘되는 그것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다.
여기서 살아남았던 선택받은 자들도 대부분 그와 싸우지 않고 피하면서 생존하지 않았던가.
“실혼두귀(失魂頭鬼)는? 설마 그 녀석도 잡은 건 아니겠지?”
“그 녀석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터라…….”
“그래, 그랬지. 나도 참.”
나각은 방금 물어본 질문을 창피해했다.
본래 실혼두귀는 회월동 안에 있는 괴수가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잡거나 할 만한 그런 것이 못된다.
“그래도 정말 놀랍구나. 이쯤 되면 그냥 나오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구나.”
“저도 그래서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런데?”
“어제 내린 비로, 회월동 입구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뭐?”
북취명은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수하들을 시켜 열심히 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워낙 돌멩이들이 많아, 이게 며칠이 걸릴지는…….”
“그래서 인원 보충을 해달라고 한 거구만.”
“예.”
나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윗선에 보고를 드리마. 회월동을 한시라도 빨리 원상복구해야 할 테니.”
“감사합니다.”
북취명의 얼굴이 밝아졌다.
앓던 이가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투욱.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서던 두 사람.
밖을 나가려던 나각이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예.”
“회월동이 이리 충격을 받으면 과거 제관들이 걸어놓은 금제에도 영향이 가지 않나?”
“그럴지도 모르지요. 제가 기기아대 쪽에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아니야. 굳이 그럴 것까지야……. 우리 쪽 훈련 상황을 소문낼 일도 아니고.”
“하긴……. 이제자 쪽 수하들이니까요.”
북취명은 나각의 의도를 이해했다.
“별일 없을 걸세. 그럼 일 보게.”
나각은 그렇게 말을 남기며 돌아섰다.
금제해놓은 실혼두귀에 이상이 생길까 좀 찜찜하긴 했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굳이 윗선에 보고해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제라는 게 또 그리 쉽게 깨어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