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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23화 (224/379)

223화. 천마육성 (4)

천장에 몸을 뒤집은 채, 잠시 숨을 고르는 녀석들.

설휘는 처음엔 이것들이 그저 흔한 박쥐인 줄만 알았다.

허나, 몇 번 상대해 보고 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놈들은 피를 빨아먹는 흡혈박쥐다. 거기다 독도 지니고 있었고, 부지불식간에 이동하는 공능까지 선보였다.

그런 것들이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니 설휘 입장에서는 여간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우리, 이번이 네 번째지?”

사주경계하는 놈들을 향해 설휘가 피식 웃었다.

첫 번째는 괜히 달려들었다가 피해만 봤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수십 마리의 숫자도 숫자지만,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는 공능이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나름 신법을 펼치며 싸웠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오히려 팔뚝을 물리기까지 해서 독을 빼내고 해독하느라 일주일을 고생했다.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집채만 한 곰과 한창 격전을 치르던 상황이었다.

동굴을 무너뜨릴 정도로 파괴적인 힘에 고전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이놈들이 나타나 합세했다.

헌데, 그날 운수가 좋으려 했는지, 적아를 가리지 않는 놈들의 습성 때문에 오히려 도움을 받아 곰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이 정도 만났으면, 이제 매듭을 지어야지.”

덤벼들기 위해 준비하던 놈들을 보며 설휘는 최대한 움직임을 절제했다.

이제까지 몇 번을 경험해 본바, 무턱대고 달려드는 승부는 자제하는 게 좋았다.

놈들에게는 강한 독성이 있어, 한창 교전 중에 물렸다가는 신체 부위를 잘라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끄그그그 찢찌찌!

울음소리도 괴기스러웠다. 설휘는 그 소리가 서로 간에 교신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고민하는 것 같으니…… 이쪽에서 먼저 선물을 주지.”

지이이잉-

검끝에서 피어나는 응축된 기운.

그걸 본 박쥐들이 갑자기 경련하듯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기운을 알아차렸군.’

싸울지 피할지를 망설이던 놈들 중 유독 평온한 자세를 지닌 박쥐가 있었다.

설휘는 놈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놈이 대장이라는 걸.

공간이동을 처음 선보였던 것도 바로 이 녀석이었다.

끼끼긱!

괴이한 소리와 함께 놈들이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쥐들의 움직임을 본 게 아니라 한순간 자리에서 사라진 걸 인지한 거다.

휘리리릭.

그런 황당한 상황 속에서도 설휘의 검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이전과 달리 찌르는 동작이 아닌 이어지는 원형을 그리는, 이른바 무화(舞花, 꽃춤) 같은 동작이었다.

찌지지지짖!

검이 휘둘러짐에, 눈앞으로 다가온 십여 마리의 박쥐들이 급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상하상수(上下相隨) 상련부단(相連不斷).

간단한 휘두름으로 보이지만, 실상 그 휘두름 안에는 절(節-관절)과 절식(節式-초식)의 깨달음이 녹아있었다.

그로 인해 생성된 기경(氣勁)이 흐름을 타고 관통되자, 단순한 휘두름에 기류가 담겼고.

그 힘으로 박쥐들이 한쪽으로 밀려나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효과가 있다!’

설휘의 눈이 빛났다.

박쥐들의 심리는 알 길이 없으나, 적어도 지금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정한 공간을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공능이 막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강함은 결국 부드러움 앞에 잡히지.’

처음엔 이 기괴한 박쥐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싶었다.

마치 과거에 자신이 펼쳤던 빙공극저하를 놈들이 쓰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몇 번을 경험해 보고는 설휘는 다시 한번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굳이 보이지도 않는 놈들을 보려고 하는가?

보이지 않으면 그들을 죽일 수 없는가?

‘그렇다.’란 답이 어느 순간 ‘아니다.’로 변했다.

보이지 않아도 싸울 수 있다.

놈들이 어디로 이동할지 예측할 수 있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놈들이 어디로 이동할지 어떻게 예측하냐고?

그에 대한 답은 쉬웠다.

“저들의 목표는 나니까.”

찌지지지직!

다시 한번 천장에 거꾸로 붙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한 번의 공격이 막혔으니, 이번엔 파상적인 공세를 취해올 것이다.

단순히 추측만은 아니었다. 저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두고 천장에서 에워싸고 있었기에.

키아아악!

한 박쥐의 울음소리.

다른 박쥐보다 몸통 하나가 더 달린 놈이 신호를 주자 박쥐들이 일거에 천장에서 몸을 날렸다.

“하아아압.”

설휘는 검끝에 묘리를 담아 빠르게 휘둘렀다.

그런데, 이번엔 놈들이 한 반자 늦게 달려들었다.

머리를 쓴 것이다.

쉬쉬쉬쉭! 쉬쉬쉬식!

설휘의 검이 휘둘러지는 게 멈추자마자, 놈들은 공간이동을 했다.

그 순간 수십 마리가 설휘의 눈앞까지 다가와 이빨을 드러냈고.

“그 정도 대비도 안 해놨겠나.”

설휘의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쩌저저저저정!

몰려오는 한기로 인해 놈들은 일시에 얼어붙었다.

검이 멈추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있던 기류의 흐름 안에는 빙정의 기운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빙공(氷功)이었지만, 소신수마공과 달리 마공의 힘을 띠지 않았다.

그야말로 순수한, 극음의 내력이었다.

“하압!”

설휘의 검이 다시 움직이자, 반쯤 몸이 얼어붙은 박쥐들이 쭉 쓸려나갔다.

두목으로 보이는 놈의 머리도 함께 잘려나갔다.

찌지지지직!

몸체가 작은 탓에 살아남은 박쥐들은 죄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설휘는 그런 놈들을 굳이 쫓지 않았다.

“이젠 이곳의 주인이 누군지 좀 알았으려나.”

그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바닥에는 박쥐들의 사체가 난무했다.

몸이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에서 박살 난 놈도 있었고, 그냥 날개만 얼어붙은 채 죽은 놈들도 있었다.

파다닥. 파다닥.

그중에서 대장으로 보이는 놈의 몸통은 계속 움직였다.

그 모습이 신기하여 손으로 잡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여기서 이 문구가 떴다.

[편라실(蝙羅實)을 섭취하시겠습니까? 승낙/거부]

‘……?’

설휘는 그걸 보고 잠깐 머뭇거렸다.

이게 먹는 거였나? 그리고 편라실이라는 게 대체 뭘 말하는 거지?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지문이라 그런지, 설휘는 잠깐 고민했다.

‘이번 생에는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목표를 세웠다.

‘시스템’이란 녀석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아가기로.

그러니 이런 영약의 느낌이 나는 것이라고 해도 요행을 바라고 섭취할 수는 없었다.

대단한 영약일수록 더더욱.

‘가만, 영약이 아닐 가능성도 있잖아?’

그랬다.

이건 영약으로 추정되지만, 그렇다고 영약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독약일지도 모른다.

“독약. 그래, 어려운 난관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던지려고 했던 박쥐 대장의 몸통을 다시 집어 든 설휘.

먹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정리한 그는 과감히 승낙을 선택했고.

[독에 내성이 생겼습니다.]

[설휘 님의 신체가 만독불침으로 변합니다.]

시스템은 영약으로 화답을 해왔다.

“와…….”

설휘는 짧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형용키 어려운 여러 감정들.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론 머리와 다르게 가슴은 빠르게 한마디를 더 내뱉게 했다.

“다른 놈 것도 확인해 볼걸…….”

그냥 한 말이다.

진짜 하겠다는 말이 아니니 문제 될 건 없지 않은가.

***

설휘는 막다른 벽 앞에 서서 그어진 숫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하루를 일(一), 닷새를 오(五)의 형식으로 표기해놓긴 했는데, 사실 이게 정확한 기록인지는 그 역시 헷갈렸다.

“대충 두 달은 넘었으려나…….”

지내는 곳이 동굴이다 보니, 밤낮 구분이 어렵다.

먹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날이 이어지면,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기 일쑤였다.

특히 특이한 괴수를 만날 때면 일단 자리를 피해 운기요상에 집중하다 보니, 하루 이틀을 훌쩍 넘겨 기록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 이런 것도 마지막이군.”

설휘는 두꺼운 가죽을 중요 부위에 칭칭 감았다.

흑웅이란 큰 곰을 잡고 나서 벗겨낸 가죽이었는데, 박쥐들을 상대할 때 톡톡히 효과를 보았다.

곰 가죽이 워낙 두꺼운 탓에, 박쥐같은 작은 짐승들의 이빨에는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더 잡을 놈이 있을까 싶군.”

회월동은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더 강한 괴수들이 튀어나오는 구조였다.

특히 동글 끝에 있던 인간 얼굴을 한 짐승은 정말이지 상당히 난폭했다.

움직임도 그렇지만, 손발이 떨어져 나가도 죽일 듯 달려드는 투쟁심은 마치 이성을 잃은 광마를 보는 듯했다.

다만, 그놈도 너무 자만한 탓에 평범한 공격을 막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지만.

그 이후로 더는 위험한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다른 생존자들과 달리 자신은 너무 괴수들을 소탕하는 데 힘을 쏟은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괴수들이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점점 입구 쪽으로 나타나는 걸 알기에, 어차피 맞닥뜨려야 한다고 여겼지만.

뭐, 어쨌든. 싸움은 대충 여기서 끝이 난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빙공이나 화공을 쓰려니 내공 소모가 너무 심해.”

현재 설휘가 사용하는 화공과 빙공은, 본교에서 배운 마공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태초의 힘.

순수한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중이었고, 그로 인해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새로 만들어가는 무공이다 보니, 그 위력이 마공을 사용할 때보다 강하지도 않은 데다 별도의 기초 심법이 없어 내력 소모가 극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게 옳다.’

설휘는 확신했다.

스스로 심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점이 많지만, 장점 또한 있었다. 내공 소모를 줄이는 법을 찾아낼 수도 있고, 더 강한 힘도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무당에서 말하는 내가공부가 아니겠는가.

“그럼 이제 떠나볼까?”

설휘는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 상대했으면 더는 적을 상대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안에 있는 놈들이 없으니 석 달을 굳이 채울 필요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설휘는 그렇게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동굴의 괴수들은 기초를 쌓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검의 운용은 과거에 있었던 무당의 가르침이 컸으며, 내공의 운용은 기본 운용에다 소신수마공과 화온마공의 묘리까지 더해 좀 더 단단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 저건 뭐야?”

그렇게 거의 입구까지 나왔을 무렵. 설휘의 눈에 신기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똬리를 틀고 있는 어떤 존재.

멀리서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머리는 두 개, 팔은 네 개, 다리도 네 개.

피부는 사람의 피부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피와 상처로 가득했고, 하얀 가루들이 전신을 덮은 모습이었다.

척 보기로는 두 사람인데, 등짝이 서로 딱 붙어 있는 게 심히 기괴해 보였다.

“야. 귀찮게 하지 말고 나와. 이제 나가야 해.”

설휘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돌아섰다.

“허…….”

설휘는 직감했다.

인간이다. 어떻게 된 건진 모르지만, 두 몸이 붙은 인간.

더욱이 두 눈에서 나오는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내기.

밖으로 분출되는 마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초절정, 아니 어쩌면 그걸 능가할 수도 있는 기운이다.

마기를 쏘아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굳을 정도였으니.

- 인간. 인간이다.

- 인간이다. 인간.

놈이 말을 했다.

똑같이 움직이는 입 두 개가 비슷한 말을 했다.

“넌 뭐냐?”

- 나? 너?

- 너? 나?

“이거 진짜…… 너무하는군. 이런 고수를 여기 집어넣고 생존하라니.”

설휘는 검을 집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압박감이 들었지만, 어차피 피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자, 어서 빨리 해보자고.”

설휘의 말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그 순간.

투투투투투투툭.

지반이 흔들리고 사방에서 돌멩이들이 치솟았다.

‘염력?’

- 싸우자.

- 싸우자.

그리고 전면에 있던 놈들의 눈빛이 샛노랗게 변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 앞에서, 설휘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죽을 수도 있겠는데?”

설휘의 말이 지금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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