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24화 (225/379)

224화. 천마육성 (5)

강호사에서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사람으로 보통 셋을 꼽는다.

첫째는 천무지체(天武肢體).

태어날 때부터 무공을 익히기에 최상의 신체로, 적절한 수련과 지도를 받으면 태산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웬만한 내가기공의 공격에도 호심공으로 신체를 보호하며, 노력에 따라 입신의 경지는 쉽게 넘볼 수 있다고 한다.

둘째는 천살성.

어떤 무공이든 한 번 보고 그 진의를 깨치는 천재.

서적만으로도 복잡한 무공을 해석할 수 있고, 딱 한 번만 봐도 기억할 수 있는 암기력의 소유자.

다만 열여섯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것 때문에 저주받은 재능이란 말이 있으나,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무신(武神)에 가까운 존재라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염력(念力).

태어날 때부터 상단전이 개안, 보통의 인간과는 달리 자연의 힘과 교류할 수 있다고 전해져 온다.

이 염력을 지닌 이는 무공을 익히지 않고도 수많은 고수와 싸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놈들…….’

그리고 바로 설휘의 눈앞에 있는 이들이 염력을 쓰고 있다.

타고난 것인지 별도의 훈련을 받은 것인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하나, 적어도 지면을 흔들고 돌멩이를 제 마음대로 조종하는 걸 보면 상당히 수준 높은 염력이라 해도 무방했다.

구구구구궁.

“한 놈은 염력자에, 한 놈은 무인인가?”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휘날리는 가운데, 설휘의 눈은 괴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개의 몸 중 좌측은 손바닥으로 계속해서 염력을 부리고, 우측의 놈은 어디서 챙겨왔는지 검을 쥔 채로 일어서고 있었다.

실로 거대한 압박감.

검만이 아니라, 저들이 뿜어내는 마기의 양이 숨 막히는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온다.’

파파팟.

잠깐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놈이, 갑자기 바닥을 박차고 달려왔다.

속도 자체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쿠웅!

천장에서 송곳처럼 찔러오는 돌들.

일시에 쏟아져 온 급습이다. 순간적으로 뒤로 피했으나 이내 뭔가에 턱 하고 걸렸다.

“……?”

천장만이 아니라 바닥에서 치솟은 암벽이 뒤로 이동하던 설휘의 몸을 막은 것이다.

‘이런!’

그사이 지척까지 다가온 괴수의 칼이 보였다. 설휘는 치솟은 벽을 밟고 곧장 공중제비를 시도했고.

쿠왕!

본래 그가 있던 지점에 거대한 대검이 꽂히며, 솟아오른 암벽을 부숴버렸다.

“하앗!”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킨 설휘는, 검을 내지르던 놈의 틈을 노려 자신의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빠각!

허나, 끝까지 검을 뻗지 못했다.

사방에서 날아온 돌멩이들에 의해 가로막힌 것이다.

“칫!”

그렇게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자.

이번엔 놈이 검을 가로로 그으며 마공을 발출했다.

슈아아아앙!

설휘는 몸을 구르다시피 하며 놈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상황을 살피는데.

“아…….”

십 장 가까이 파인 바닥. 조금 전 놈이 뿌렸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건 좀 너무한 수준인데…….”

딱 한마디를 내뱉고, 이번엔 설휘가 달려들었다.

휘리리릭!

역시나 돌들이 시야를 어지럽게 방해했고,

쩌엉!

그런 돌멩이를 부숴버리자마자, 검을 든 괴수의 일격을 받아내야 했다.

콰아아앙!

괴수가 뻗은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한쪽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

“쿨럭!”

삼 장이나 밀려나간 설휘.

이번엔 상태가 좋지 못했다. 가까스로 놈의 일격을 밀어내지 못했다면 저 무너진 동굴에 깔린 건 자신이 되었을 터였다.

“난이도가 좀 높은 수준이 아니잖아…….”

마공의 힘만으로 보자면, 거의 초마에 육박한 수준으로 보인다.

거기다 염력까지 부리는 자.

대체 이런 놈들을 상대로 어떻게 생존하라는 건지 되묻고 싶었다.

- 건방지다. 쥐새끼.

- 건방지다. 너무.

놈들도 슬슬 짜증이 일어오는지, 불만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사이 설휘는 머릿속으로 냉정히 사태를 짚기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 없는 상황인 이상, 놈들의 약점을 노려야 했다.

‘패도적인 만큼 선이 굵다.’

너무나 강인한 힘 때문인지, 검의 움직임이 너무도 직관적이다.

이걸 달리 말하면 검의 운용, 즉 검술을 따로 익힌 것 같지 않다는 것.

단 몇 합 만에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음에도, 설휘는 놈의 단점을 곧장 발견해냈다.

이건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염력은 어떻게 뚫지?’

문제는 염력. 공격과 수비를 지독하게 만드는 이능.

간간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암석은, 한 번 맞으면 바로 뼈를 부러뜨릴 정도의 위력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운용도 뛰어나, 시야를 막고 퇴로를 막는 방법으로도 쓰이고 있었다.

‘신법이 꼭 빠를 필요는 없다. 놈의 예측만 벗어나면 되니까.’

- 죽인다. 이번에는.

- 죽인다. 반드시.

두근두근.

놈의 반응을 보며 설휘는 흥분되기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결코 싸우려 들지 않았을 법한 상대.

하지만 이번 생은 오히려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려 들었다. 단순히 깡으로 경지를 올리는 대신, 바닥부터 차근차근 자신에 대해 이해를 해갔기 때문이다.

정기신(精氣神).

극마에 이르러서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지금에야 비로소 조금씩 깨치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파파팟.

설휘는 몇 발짝 달려나가다 곧장 신법을 펼쳤다.

특별한 신법을 사용한 게 아닌, 그저 추진력이 빨라지는 기본적인 신법이었다.

드드드득!

예상대로 머리 둘 달린 괴수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거대한 암석이 치솟으며 설휘를 향해 날아들었다.

“훗!”

그걸 본 설휘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치솟은 암석을 밟고 곧장 몸을 회전시켰다.

발차기에는 상영하축(上影下蹴)이란 말이 있다. 위로 속임수를 준 뒤 하단을 차는 기법.

반대로 타상취하(打上取下)도 있었다. 이것을 신법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파팟!

설휘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달려드는 암석 공격을 발판 삼아 더 높이 치솟아 올랐다.

와르르륵!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야를 가리는 돌멩이들.

이미 예상을 한 설휘는 온몸을 비틀어 발로 밀어냈다.

그러자 그 순간, 돌멩이들이 일시에 머리 둘 달린 괴수에게로 쏟아졌다. 놈의 공격을 되돌리는 수법으로 역이용했다.

“크으으으!”

파파팟.

놈은 대범하게도, 한 번의 칼질로 모든 것을 증발시켰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공. 허나, 그사이 설휘와 놈의 거리는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과르륵!

또다시 막아서는 암벽이 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날카로운 종유석 덩어리다.

그리고 그 순간.

괴수는 합을 맞춘 것처럼 설휘에게 달려들었다.

“두 번은 통하지 않지.”

치익!

설휘는 검을 뻗었다.

그 검의 방향은 놈이 아닌 천장에서 떨어지는 종유석. 송곳처럼 예리한 암석 쪽이었다.

치이익!

검끝에 피어오른 기류에 암석이 닿자마자, 설휘는 곧장 그걸 회전시켜 앞에 있는 놈에게 쏘아 보냈다.

사량발천근.

태극의 묘리를 담은 한 수였다.

쿠와아아앙!

거대한 두 기운이 격돌했다.

암석을 부숴버린 괴수의 마공은 월등히 강했다. 허나, 놈이 전력을 퍼부어 그걸 파훼하는 순간,

“……!”

설휘는 이미 그의 등 뒤에 와 있었다.

본인의 진력으로 공격을 가한 것이 아닌, 사량발천근의 기예로 공격을 상쇄시켰기에 그 틈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마무리다.”

기가 잔뜩 응축된 설휘의 검이 그들의 등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두 개체의 등허리가 붙어 있는 지점.

구조상 서로서로 엉켜서 공격이나 방어의 각도가 나오지 않는 그 지점을 약점이라 본 것이다.

그런데.

“……!”

검이 그곳을 관통했음에도 손끝에 감각이 없었다. 놀랍게도, 하나로 엉켜 있던 놈들이 두 명으로 분리된 것이다.

- 카악!

- 가악!

“……!”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두 괴수.

놈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설휘를 향해 기습해 들어왔다.

***

뚝. 뚝.

흥건한 피가 바닥을 적셨다.

가슴 한 부위를 도려낼 듯 피부를 파고 들어오던 괴수의 검은 설휘의 손에 막혀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칼을 들고 있지 않던 괴수의 일격도 코앞에서 막혀 있었다.

창졸간 설휘가 칼을 놓으면서 두 놈이 공격하는 지점을 포착하고, 맨손으로 두 놈의 일격을 모두 막아낸 것이다.

“……까딱했으면 속을 뻔했군.”

몸이 하나로 붙은 척하는 두 사람.

처음에는 무슨 인체 실험으로 만들어진 괴물인가 싶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염력을 쓰면서도 고강한 마공을 쓸 수 있는 2인 1조.

하지만 그 시늉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누구나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설휘조차도 잠시나마 속아 넘어갔고, 마지막 순간에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껴 아슬아슬하게 반응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내가 되돌려줄 차례지?”

- ……!

- ……!

설휘의 손에서 불꽃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화르륵.

그것은 한쪽 괴수의 검을 타고 몸으로 옮겨붙었고, 다른 놈 쪽은 손을 타고 등으로 불이 번졌다.

“으하하합!”

하단전의 모든 내력을 일시에 개방한 화공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지축이 흔들리는 폭발과 함께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두 괴수는 형체도 없이 폭발했다는 점이었고, 불행한 것은 설휘도 일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크…….”

우르릉. 우드드득.

동굴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설휘는 신음만 흘릴 뿐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그의 무공 경지는 턱없이 낮았다. 그런 몸으로 최소 초마급의 상대 둘.

놈들의 숨을 완전히 끊느라고, 단전의 내공을 모두 다 쏟아냈다.

덕분에 몸을 움직일 힘조차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죽기는 좀 억울한데…….”

쿠쿠쿵! 쿠쿠쿵!

설휘는 무너지는 동굴을 허탈하게 바라봤다.

나름 좋은 경험을 하긴 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은 좀 그랬다.

뭐 얼마나 대단한 적을 발견했다고.

“그래. 다음 생에는 지금보다는 더…… 어?”

망연자실하게 뻗어있던 설휘.

그 눈에 이채가 서렸다. 무너지는 안쪽과 달리, 입구에 있던 거대한 벽 일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사람이 서 있는 공간까지 확장되더니.

“어이! 나와! 뭐 하고 있느냐!”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게 느껴졌다.

딱 그때, 설휘는 마지막까지 부여잡던 정신을 놓아버렸다.

***

땅거미가 지는 시각.

곤마는 은영단 영역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 있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여지도란 책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산파 놈들이 얽혀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일제자가 끌어들인 화산파.

일개 문파도 아닌, 구파일방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란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화산파는 소림과 무당에 가려져, 언젠가 중원 제일문파로 도약하려는 야심을 종종 드러냈다.

그러니 심증과 정황으로서는 틀림없었다.

일제자 살마는 개인의 공적을 위해 적과 내통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알고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증거가 필요해.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심증과 정황을 들어 추궁하면 모든 게 끝나는 건가?

아니다.

일제자도 그 정도 대비는 하고 있을 것이다.

그를 따르는 가신 중에는 머리가 뛰어난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닐 터.

자신이 알고 있는 그라면, 모든 일이 발각됐을 경우까지 계산했을 터였다.

‘정파와 손을 잡은 타당한 이유’ 같은 걸 말이다.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우선은…….”

놈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화산파와 손을 잡은 이유.

또한, 그들을 끌어들여 제자들의 실권 다툼에 우위를 차지하려는 불순한 의도까지.

이를 면밀히 알아내고 대비해야, 나중에 뒤통수 맞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선 태황각주의 뒤를 밟을 필요가 있겠구나.”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곤마.

창가로 걸어간 그는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누군가 그를 부르기 전까진.

“계십니까?”

“누군가?”

“나각입니다.”

“들어오너라.”

곤마의 말에 곧 문을 열고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밀무사 훈육 총 책임관인 그였다.

“그래. 무슨 일이냐?”

“통과했습니다.”

“……뭐?”

곤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는 이제껏 애써 설휘의 생사를 묻지 않았다.

회월동에서의 생존. 석 달이란 시간이 길기도 했지만, 그 기간 안에 죽을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서 하는 말이, 통과했다?

“아직 석 달이 다 안 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회월동이 통째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잠깐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안에 있는 짐승들과 그 우두머리들. 그뿐만 아니라, 금제가 걸려 있던 실혼두귀까지 잡아냈습니다.”

“뭐?!”

곤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실혼두귀.

기기아대가 철수하기 전, 처리가 까다로워서 금제를 걸어 가둬놓은 마물.

그건 잡으라고 놔둔 놈이 아니었다.

그 녀석과 싸우지 않더라도, 석 달을 버틴 것만으로도 합격을 줄 수 있는 그런 놈을.

아예 때려잡아 버렸다니.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두 번째 시험을 위해 천일관 지하에 두었습니다.”

“잘했다. 내 직접 보러 가겠다.”

곤마는 탁자로 걸어가 여지도를 품에 넣었다. 그리고 빠르게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 와중에.

“……?”

나각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문으로 걸어가던 곤마의 얼굴에 잠깐이나마 화색이 도는 것 같았다.

그건 이제껏 그를 모신 수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미소’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