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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25화 (226/379)

225화. 임문(臨文) (1)

눈을 뜨자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허름한 천막이었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괭이를 든 두 사내가 땀을 닦으며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 듯했다.

‘살았구나.’

설휘는 그제야 쓰러지기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두 몸이 붙어있는 괴수 놈을 처리한 뒤, 무너지는 동굴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상황을 보니 누군가 자신을 이곳 막사로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물론 대접은 조금 박했다.

반들반들한 나무판 위에 올려놓고 두꺼운 침요를 대충 던져놓은 걸 보면.

“어이, 일어났냐?”

눈알을 굴리던 중에 자신을 발견한 한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설휘가 욱신거리고 저린 몸을 힘겹게 일으키자.

“새끼. 엄살 부리지 말고 따라와.”

그는 귀찮다는 듯 괭이를 던지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설휘는 얼른 일어나 빠르게 그를 뒤따랐다.

***

한참을 걷던 중 태황각 영내가 보이자, 설휘는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말없이 묵묵히 걷던 사내에게 말을 걸기도 그래서 계속 그를 따라갔다.

곧이어 천일관이 눈앞에 나타나자,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곳이 곤마의 집무실 중 하나였지.’

보아하니 곤마를 만나러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그런 와중에 또 하나 궁금증이 일었다.

과거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왜 태황각 내에 곤마의 집무실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태황각주는 일제자를 따르는 자가 아닌가.

“태황각 소속이었다지?”

때마침 사내가 물어오자 설휘는 급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럼 곤마께서 왜 가끔 여기에 계신지 궁금하겠구나.”

이게 웬걸. 안내를 맡은 사내는 설휘의 궁금증을 알기라도 하듯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본래 천일관은 사제자님의 수련 장소로 쓰였던 건물이다. 단순한 서고처럼 알려져 있으나, 실은 이곳 건물 안에는 사제자님의 수많은 훈련 장비들이 놓여있지.”

“아…….”

그 말에 설휘는 천일관을 다시금 올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서기관이 지내던 1층과 2층 외에는 돌아보지 못했다.

당연히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고.

“무엇보다 사제자께서 처음 부임하셨을 때에 지내셨던 곳도 여기다. 그러니 태황각 영내라고 해도, 이 공간만은 사제자님의 영역인 것이지.”

‘태황각주가 날 여기로 보내기 싫어했던 이유를 하나 더 알았군.’

과거엔 단순히 자신을 싫어서 보내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자, 들어오너라.”

사내는 천일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지하창고로 자신을 안내했다.

문 앞에서 두홍이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해왔다.

‘오랜만이구나…….’

설휘에게 이 지하창고 안은 너무 친숙했다.

꽤 오래된 과거의 기억임에도 왠지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돌아보던 설휘는.

“그런데 어르신, 왜 저를 여기로 데려오신 겁이니까?”

본론으로 돌아가 이유를 물었다.

“그거야 여기가 두 번째 시험 장소니까.”

“예?”

“이번 시험은 문답(問答)이다. 그리고 주제는 이 안에 있는 책에서 나온다.”

“책이라면…… 아!”

설휘의 빼곡히 쌓인 서책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사내는 피식 웃었다.

“자세한 내용은 곧 오실 나각 어르신께서 설명해주실 테니, 나는 이만 가겠다.”

사내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설휘는 잠깐 멍한 표정으로 서책을 바라보았다.

척 봐도 수만, 아니 거의 이십 만에 육박할 것 같은 책들.

단지 무공서만 있는 게 아니라 시, 서, 의술 같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종류의 책들도 많았다.

이 많은 것들을 다 읽는다는 말인가?

‘아니겠지. 그냥 백 권 정도만 추려낸 다음 거기서 출제한다고 하겠지, 뭐.’

설휘는 자신이 너무 지나친 상상을 했다는 생각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책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보기 위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끼이이익.

그때쯤에 다시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시험에 통과했다고? 축하한다.”

곤마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처음 보는 중년인이 서 있었다.

“감사합니다.”

“헌데…… 어떻게 통과했느냐?”

“예?”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네 무위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그게…….”

설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생각해 보니 그의 입장에선 이런 질문을 해오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회월동에 있던 괴수들은 절정에 도달해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한 놈도 제법 있었으니까.

설휘가 뜸을 들이자, 곤마가 재차 말했다.

“여기서 넌 대답을 잘해야 할 것이야. 알다시피, 날 노리는 놈들이 내 주위에 아주 많거든.”

그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하지만 설휘는 그것이 본래의 속내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희미하게 올리는 입꼬리.

왠지 그 모습은 입을 잘못 놀리는 순간 즉시 황천행이라는 경고로 읽혔다.

‘어떻게 대답을 하지?’

설휘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때.

순간 시선을 들었다.

때마침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눈앞에 문자가 나타난 것이다.

<아래를 보고 선택하세요.>

▶ 생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회월동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 괴수들끼리 서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 괴수들 몸속에 영단이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무공을 증진할 수 있었고, 마지막 적까지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 사실은 제가 천미려의 제자입니다.

‘아!’

세 가지 지문을 본 순간 설휘는 확신했다.

첫째와 둘째는 절대 답이 아님을.

일견 대답은 그럴듯해 보이나, 마지막 상대했던 괴수는 차원을 달리했다.

두 놈의 능력은 단순히 영약을 통한 무공 증진으로 처리하기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세 번째 지문은 검증된 답이기도 했다.

과거 자신의 힘을 의심했던 곤마에게 들려주었던 답이었기 때문이다.

▶ 사실은 제가 천미려의 제자입니다.

설휘는, 세 번째를 선택했고.

<‘사실은 제가 천미려의 제자입니다.’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뭐?!”

눈에 띄게 당황하는 곤마.

설휘는 그의 반응에도 담담했다. 어차피 천미려는 자신이 본교에 있을 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 진상을 알 길이 없을 터.

“그래. 그런 것이라면…… 이해가 되는구나.”

그 말을 끝으로 곤마는 웃음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건넸다.

“그런데…… 왜 내 밑으로 들어오려고 한 것이냐?”

“사부님께서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장할 수 있고, 또한 저를 이끌어줄 인물로 곤마 님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리 말씀하셨더냐?”

“예.”

한번 거짓말을 하니, 뒤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 말에 곤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이내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중년인이 나섰다.

“비밀무사는 총 세 가지 시험이 있다. 이번 건 두 번째 시험으로 첫째는 암기력을 알아보는 것, 둘째는 원하는 무공을 어느 정도까지 아는지 이해력을 알아보는 시험이다. 석 달이란 기간 안에 넌 여기 있는 책들을 읽고 참고삼아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많은 책을 말입니까?”

설휘가 당황해하며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비밀무사는 상황에 따라 여러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어떨 때는 적진에 들어가 동태를 살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며, 때론 생소한 직업을 가져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인 소양이 있어야 하며, 무공의 이론에 대해서도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정통해야 한다. 또한, 깊지는 않아도 시, 서, 의술을 보는 눈도 있어야 한다.”

나각은 한쪽 책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안에는 모든 것들이 비치되어 있다. 모든 질문은 열 개로 나뉘며 임문(臨文-책을 보고 말하는 것)이 허용되며 배강(背講-외워서 말하는 것)을 할 시엔 큰 점수를 얻는다.”

“아…….”

설휘는 입을 쩌억 벌렸다.

너무나 방대한 서책에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그사이 나각은 거기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이 안에 있는 서책은 모두 곤마께서 집필하신 거다.”

“예?!”

설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곤마를 바라보았다.

이 책들을? 이십만 권이나 되는 이 어마어마한 양을?

‘아, 그래서 그랬던가.’

설휘는 눈을 껌뻑였다.

예전의 소희마공. 그는 자신이 그걸 들고 있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되었다.

그가 자신을 만나러 온 게 명백해지는 상황이 아닌가.

‘내가 경험했던 비밀무사와 다른 건가?’

설휘는 과거에 비밀무사가 된 적이 있었다.

과거 마태룡을 구하고 온 뒤 곤마가 자신을 비밀무사로 임명했다.

그런데 이번 건 뭔가 그것과는 다른 임무가 주어질 것 같았다.

“석 달의 시간을 주겠다. 문제는 강호의 문파와 무기, 영약, 무공, 시, 서, 독, 치료법.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게 설명이 끝이 났는지, 곤마는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툭툭 쳤고.

“고생하게나.”

한마디를 남기고서 뒤돌아섰다. 옆에 있던 중년인도 그와 함께 떠났다.

“하하.”

설휘는 황당했다.

쳐다만 봐도 질식할 것 같은 이 많은 양의 서적.

이걸 석 달 만에 다 읽으라니.

그저 말문이 막혀 한참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저기…… 곤마 님.”

13층에 다다랐을 때였다.

나각은 곤마를 향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왜 그러느냐?”

“굳이 그렇게까지 하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후훗, 왜? 맘에 들지 않느냐?”

끼이이익.

문을 열며 곤마가 방 안으로 들어갔고, 따라오던 나각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무리 특출한 아이라 할지라도 석 달 안에 저 많은 양을 소화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읽을 수야 있겠습니다만, 이해할 수 없으니. 그건 읽었다고도 할 수 없겠지요.”

“…….”

“보통은 무공에 한해서만 물어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신 겁니까?”

“그냥.”

“……?”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곤마는 한쪽 옷장에 외의를 걸어놓은 뒤, 나각을 바라보았다.

“천미려 님의 제자라고 하지 않았느냐. 본교에서도 손에 꼽는 절대고수. 그런 분이 들인 제자라 하니, 내 그 능력이 몹시 궁금해졌다.”

“허나, 이 시험은 곤마 님의…….”

“난 그 아이를 적극 활용할 것이다.”

“예?!”

의아해하는 나각을 보며, 곤마는 이전과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녀석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이류의 수준이었다. 내기를 운용하기는커녕, 몸의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아이였지.”

“…….”

“헌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단 두 달 만에 절정을 넘어 초절정에 육박해 있다. 너는 단 석 달 만에 그 정도의 성장이 가능하리라 보느냐?”

“……불가능하지요.”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

나각은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허면, 저 아이가 곤마 님께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제자들이 보낸 첩자일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건 아직 장담할 수 없지. 정말로 천미려의 제자일 수도 있으니까. 해서 우선…….”

곤마는 나름 확신에 찬 듯 말했다.

“그 녀석의 머릿속을 파헤쳐 볼 것이다. 어떤 걸 얼마나 알고 있는지, 또 어떤 걸 모르고 있는지.”

나각은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놈이 어떤 부분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는지, 혹은 부족한 부분이 무언지에 따라 놈의 속내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넌 궁금하지 않으냐?”

“예? 어떤…….”

곤마가 창가로 걸어갔다. 천일관 아래를 그렇게 내려다보던 그가 차분하게 뒷말을 이었다.

“저 아이가 하늘에서 내려준 재앙일지, 아님…….”

“…….”

“선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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