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임문(臨文)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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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형근 작가입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20만 권에 대해서는 차후 수정을 검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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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발은 어렸을 때부터 문장을 잘 만들었으며, 젊어서 재능을 인정받아 벼슬길에 올랐다. 양형, 노조린, 낙빈왕과 함께 초당 4걸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시인이지. 그의 시중 오언절구(五言絶句)가 뛰어났다고 하는데. 오언절구가 어떤 의미이며, 그 역사가 어떻게 되며, 어떤 형식의 시인지 알고 있느냐?”
출제관이 물었다. 한시(漢詩)의 내용도 아니고, 그 형식과 의의를 묻는 질문이었다.
단순히 시를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역사, 이해와 그 쓰임을 알지 못하면 전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오언절구는 다섯 자를 사행으로 나눈 뒤, 20자 속에서 시인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시를 짓는 걸 말합니다.”
헌데, 설휘는 거침이 없었다.
“한나라 무제 때, 50여 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농사를 짓지 못해 천하가 도탄에 빠지게 됩니다. 하여 왕은 전국에 있는 민요나 시들을 모으게 되고, 지방마다 떠도는 노래 가사를 통해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음악을 수집하였지요. 이를 악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 한 말기에 오언시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오언의 시들이 당나라 때 들어오면서 사행으로 된 절구로 발달하게 됩니다. 그중 왕발이라는 분도 거기에 영향을 받으신 분이지요. 형식에 대해서 계속 말씀드립니까?”
“…….”
“…….”
물 흐르는 듯한 대답에 좌중은 침묵에 잠겼다.
이미 이 정도의 답변이라면, 오언절구가 어떤 형식의 시라는 것을 알고 있음이 뻔한 터.
“이번엔 선인의 가르침이 담긴 경서(經書)에 대해서 물어보마. 이것도 배강하겠느냐.”
다음으로 맞은편 복면인이 말했다. 이전과 달리 목소리가 걸걸한 것이 나이가 제법 있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허…….”
약간은 충격을 받은 듯한 눈빛을 보이던 그는 곧장 대화를 이어나갔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서 말하길, 일정 경지를 넘어섰을 때, 자연의 흐름이 열리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때 그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음이냐?”
물아일체(物我一體).
호접몽에서 나비가 되어 날았던 장자는, 꿈에서 깬 뒤 이것이 진정한 나인지, 아님 꿈의 나비가 나인지를 궁금해했다.
복면인은 여기서 나아가, 자연의 흐름이 열릴 때 그걸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질문한 것이었다.
“미래를 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농부가 비 올 것을 대비하듯. 자연의 흐름을 안다는 것, 그건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자연이기에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습니다.”
설휘는 여기서 한 번 숨을 멈춘 후 말을 이었다.
“그것은 물아일체 또는 그 이상의 경지겠지요. 사람의 몸도 결국 자연의 것입니다.”
“……!”
경서에 있는 내용을 무공에 접목해 경지를 유추하는 방법.
설휘의 말은 복면인들의 놀라움을 계속 배가시키고 있었다.
“추나요법에 대해 묻겠다. 이것도 배강하겠느냐?”
또다시 다른 복면인이 묻자.
“……그렇습니다.”
“허허허.”
이번엔 노골적으로 웃음을 흘렸다.
이 많은 양의 책들을 전부 읽어보기라도 한 듯한 대답. 그 당돌한 자신감에 그도 모르게 웃어버린 것이다.
“좋다. 추나는 수기법을 통해 환자를 시술하는 것으로 보통은 외치법이라 불리더군. 이 추나법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 추나근요법이고. 이제 묻겠다. 이 의술은 본 마공의 익힌 우리들에게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의술로 행해지는 추나요법과 무인의 신체와의 연관 관계를 잡는 것.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마공을 익힌 의원이 아니라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난해한 질문이었다.
또한 설사 마공을 익힌 의원이라도 해도, 추나요법은 수기법으로 행해지는 민간요법에 가까운 의술. 이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마공의 성질, 그리고 특성을 알고 있어야 했다.
“추나는 신체를 이용해 경혈이나 근막, 척추 같은 전신의 관절을 눌러 신체의 생리와 병리 상황을 조절하는 의술입니다. 인체의 평형을 조절해 주고, 손수 기(氣)를 흘려내면, 인체의 심부(深部)로 침투하여 조직과 기관을 조절할 수 있지요.”
설휘는 여기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마공은 본디 파괴적이고 위험한 기운이지만, 본디 이 기운 역시 자연의 기운. 그로 인해 추나법 역시 마기(魔氣)를 주입해야 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또한 극양과 극음을 위주로 하는 무공이라면 손바닥과 발바닥에 먼저 수기법을 이용해야 하며, 술법자들은 전신을 먼저 살펴보는 게 다릅니다. 치료 원리는 다섯 가지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피부 마찰을 이용하여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첫 번째요, 근육의 신전을 이용해 근육을 자극하여 몸속에 피를 잘 돌게 하며 손상된 곳을 복구하며 근육 중 경락을 통해 산(酸), 장(脹), 마(麻), 삽(澁), 통(痛)의 감각을 발생시켜 전신의 조절 반응을 일으키는 게 두 번째. 염증과 체내의 결핍, 손상이 이는 것을 수기법을 통해 균형 상태를 만드는 유착 해소가 세 번째. 관절 활동이 네 번째. 통증 역치를 높여줌으로 통증을 해소하는 게 다섯 번째입니다.”
“…….”
“…….”
좌중에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물으면 묻는 족족 술술 나오는 대답에 그저 당황, 놀람, 경악이 비밀무사들에게 찾아들었다.
믿을 수 없었다.
고작 석 달 만에 이 안에 있는 책들을 모두 살피고, 이해까지 했다는 것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선 이런 답변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무공 부분만 강론했던 비밀무사들과 범위가 완전히 다른데도 말이다.
“놀랍군. 마치 너는 이 안의 내용을 모두 살핀 것처럼 보이는구나.”
한동안 침묵하던 곤마가 입을 열었다.
“…….”
설휘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만 숙였다.
예상했던 대로, 곤마의 말투가 뭔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분명히 우호적인 반응이었는데, 지금은 누가 보아도 경계를 잔뜩 하는 느낌을 주었다.
“좋아. 이번에 내가 물어보마.”
복면인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모일 때 그가 말을 이었다.
“본래 천살성은 열여섯까지 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헌데 나는 그 이상을 살고 있지. 그 이유가 뭔 줄 아느냐?”
“……!”
전혀 예측하지 못한 질문.
이제껏 질문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물음이었다.
“왜, 어려운가? 그렇지 않을 텐데……. 네가 여기 있는 책을 모조리 볼 정도의 특출한 머리라면 분명 찾아냈을 텐데 말이지.”
설휘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알고 있는지 모르는 것인지,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에 곤마가 차갑게 냉소 지으며 말했다.
“원래 그런 것이다. 모든 책을 겉핥기처럼 내용을 읽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
“천살성은 열에 아홉은 죽고, 살아도 그다음 해에는 반드시 죽는 불치병이지요.”
그에 설휘가 곤마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좌중의 시선은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 설마하니 말이 끊길 줄 몰랐던 곤마 역시 약간은 당황한 듯했다.
“그런데도 살아있다면 필시 정상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곤마가 찡그리며 되물었다.
마치 네가 알긴 하느냐는 듯한 빈정거림. 잔뜩 거슬린다는 투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을 거라 예상됩니다. 첫째는 영약. 극양의 심법으로만 통제할 수 있는, 최상급 영약을 몸에 때려 박아 몸이 발화하는 시점을 뒤로 미루려고 했을 겁니다. 둘째는 혈세천하 같은 무공을 통해 생명의 원기를 태워나가는 방식. 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발화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천천히 태우며 죽는 방식이지요. 이 경우 이십 세까지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나, 이후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 됩니다.”
“…….”
설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여기서 이 모든 것을 말해도 괜찮겠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최상급 영약들은 어찌 마련했는지 모르나, 적어도 혈세천하의 무공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
곤마가 침묵했다.
영약과 관련해서는 설휘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내놓은 답변이었다.
자용초.
극양의 심법에 필요한 최상승 영약.
아마도 이것이 천살성의 저주를 푸는 것과 관계된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다음으로 혈세천하.
곤마가 저술한 수많은 책들 중, 유일하게 영성이 관계되는 무공이었다. 이것이 천살성과 연관이 있는지 어떤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반응으로 보아 어찌어찌 때려 맞힌 듯했다.
“그럼 또 하나 묻지.”
곤마의 눈빛이 다시 변했다.
이제는 마치 시험이 아니라, 범인의 취조를 하기 위함인 것처럼 흉험한 기색이었다.
“내가 다른 제자들을 모두 처리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사제자님……?”
“주군……!”
시험장이 갑자기 소란스럽게 변했다.
이건 이미 비밀무사를 뽑는 범위의 질문이 아니었다. 지난한 미래를 고려해야 하는 대계.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지기나 책사에게 해야 할 질문이었다.
당연히 그의 심복인 복면인들은 당황스러워했고, 설휘 역시도 이 질문에는 곧장 입을 열지 못했다.
“왜 대답하지 못하느냐? 이제껏 너는 내가 내민 시험의 답안을 훌륭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고민에 대한 것도 알 것이다. 앞날이…… 피할 수 없는 앞날이, 내게 어떻게 이빨을 드러낼지를. 그렇지 않나?”
“……!”
“……!”
갑작스레 대화의 흐름이 위험한 곳으로 흘렀다.
앞날. 미래.
사제자 곤마가 가장 우려하는 것.
과할 정도로 그는 설휘에게 답을 요구하며 몰아붙였다. 마치 그가 당연히 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당연하게도 좌중의 분위기가 매우 달아올랐다. 곤마가 왜 저렇게 열을 띠는지, 설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금 이 순간.
무언가가 일어나려 한다는 것은 다들 느끼고 있었다.
좀처럼 속내를 열지 않던 사제자가, 갑자기 자신의 천형과 미래를 극복할 방법을 얻기 위해, 그간의 침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드러냈기에.
“곤마 님의 앞날을 위해서는…….”
이윽고. 이제껏 굳건히 닫혀 있던 설휘의 입이 열렸다.
“당연히 다른 세 명의 제자를 죽여야 합니다. 허나, 그들 역시 야욕을 가진 자들. 먼저 일제자가 칼을 꺼내들 것입니다.”
“……!”
곤마의 얼굴이 굳었다. 설휘가 말한 것은 그 또한 수없이 예상하고 생각해 보았던 바다.
하지만 이제까지 저렇게 확실하게 단언하는 수하는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미래를 확신하는 듯한 태도. 일단은 주군인 자신 앞에서 자신의 몰락을 전제로 말하면서도, 그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말씀드리지요. 후계자 쟁투가 가속화되면, 가장 만만한 셋째 제자가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 시기에 둘째 제자 마후가 곤마 님께 동맹 제의를 해올 것이고.”
“이봐.”
도중에 복면인이 말렸지만 설휘는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말해 올 겁니다. ‘어차피 너는 주인이 될 수 없는 몸. 수하들의 목숨이라도 건지려면 자신에게 협력하라’고. 그리고 곤마께서는 그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봐!”
“이 자식이!”
복면인 몇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만큼 설휘의 행동은 무례함을 넘어서고 있었다.
“…….”
하지만 정작 그 무례함의 대상이 된 곤마는, 손을 내저으며 주변의 소란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물었다.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군. 앞날을 미리 보기라도 했나?”
“예.”
“……?”
“미래를 점쳐 보았습니다. 사제자님께서 그러하셨듯이요. 닥쳐올 미래.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알아도 피할 수 없는 나락. 그 때문에 시도하고 좌절하고, 그리고 노력하다가 주저앉으신 것. 아닙니까?”
“…….”
곤마가 꾸욱 눈을 눌러 감았다. 파르르 눈꺼풀을 떠는 그의 모습에, 좌중이 모두 침묵했다.
“너는…….”
곤마가 입을 열다가 말고, 다시 뭔가를 물으려다가 말았다.
그간 계속해서.
수없이 좌절하면서.
곤마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미래를 계산하고, 점치고, 살아남기 위해서 발악해왔다. 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앞날은 오직 어둠뿐.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노력했고, 그만큼 크게 좌절하여 엎어진 것이 바로 그였다.
그런 그의 지독한 외로움.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었던 힘든 시기를, 갑자기 도깨비처럼 나타난 잡졸이 다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귀신처럼 속내를 알아맞히며. 하나하나 불가능한 임무를 맡겼는데도 거짓말처럼 수행해 내는 놈이.
“너는…… 앞으로 뭘 하려고 하느냐.”
아무래도, 이 녀석과는 따로 많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곤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 시험의 장을 대충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저는 사제자님을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
“…….”
침묵이 흘렀다.
좌중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제껏 그 누구도 곤마 앞에 이런 말을 하는 이는 없었다. 세상 모든 걸 다 안다는 만답서생도, 충성 하나만으로 똘똘 뭉친 패기 넘치는 무사들조차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왜?”
그 때문에 곤마의 반응은 좀 황망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빈축도, 마음이 든든하구나 하는 의례적인 웃음도 보이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설휘.
이놈이 하는 말은 현실로 일어날 것 같아서.
그리고 대체 자신에게 왜 이러나 싶어서.
“아직 낭만이 있지 않으십니까?”
“…….”
“수하들을 지켜내고, 권자의 자리에 올라 별 욕심 없이 행복하게 살 거라는 목표를 가지고 계시지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항주에 몰래 잠행해서 술이나 한잔 크게 마시면서.”
“…….”
어느새 입이 쩍 벌어진 곤마. 그런 그에게.
“저도 그렇습니다. 아직 저에게도.”
설휘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낭만이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