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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31화 (232/379)

231화. 고속 수련 (1)

사부.

이제껏 수많은 죽음과 회귀를 반복하는 동안, 설휘는 단 한 번도 사부를 모신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어찌어찌 노고수 둘을 갑자기 사부로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휘는 상황을 가볍게 생각했다.

‘뭐, 잘못되면 죽고 다시 돌아오면 되지.’라고.

혹여 만에 하나, 이 길이 잘못되었을 경우도 미리 생각해놓았다.

저장을 해 놓지는 않았지만,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 길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곤마에게 여지도를 달라고 해서, ‘처음으로 시작하기’를 선택해 거기서 다시 건네주면 되니까.

해서 설휘는 우선 이들의 제자가 된 다음, 야무지게 사부의 능력을 빼앗아올 심산이었다.

물론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뭔가 좀 잘못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은 건 두 노고수의 대화를 듣고 난 뒤부터였다.

“자정을 기준으로 정오까지는 내가, 정오부터 자정까지는 네가 가르치기로 할까?”

“밤에는 내가 해야 한다고. 빙공은 극음의 무공이야. 양기가 가득 찬 정오가 되면 수련도 그렇고 효능도 떨어져.”

“그렇다면 내가 정오부터 자정까지 저놈 몸을 쓰도록 하지. 어때?”

보통 밤이라 하면, 술시부터 시작해 인시까지를 말한다.

저녁부터 새벽까지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그냥 하루를 정확히 반으로 잘라냈다. 자정부터 정오로. 이건 그들이 가르칠 수련 시간이다.

그러니 이런 의문이 당연히 따라왔다.

‘잠은 언제 자는 거지?’

무예의 상승에는 수련이 다가 아니다.

외공처럼 그나마 쉬운 것조차 몸을 만드는 것에는 섭생- 식사가 절반이고, 나머지 반은 잠이라고 한다.

헌데 지금 이 두 사람은, 여섯 시진(12시간)의 수련은 너무 부족하다, 자신의 수련에는 휴식 시간이 없으니 네가 배려하라니 하며.

수련 시간 외의 휴식 시간이나 잘 시간은 아예 헤아리지도 않는 것이다.

‘쉴 시간을 안 주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휴식 없는 수련이라는 것은 설휘의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좋아, 그렇게 하지.”

“좋아. 협상은 끝났고.”

그렇게, 설휘의 의견 따위는 전혀 반영되지 않으며 결론이 났다.

그때까지도 설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저질렀던 거짓말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를 말이다.

***

“자, 자리에 서 보거라.”

어느새 자정이 된 걸까?

잠깐 천장을 보고 있던 악비가 다가왔다.

그는 이어 팔을 잠깐 진맥해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몸이 허하군. 지금부터 이 사부의 수련을 시작하겠다. 빙월신공은 최고의 빙공 중 하나로써, 익히기만 하면 금강불괴의 신체를 가지게 되는 터.”

“예!”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단단한 외공은 필수다. 그럼 시작하지. 자, 들거라.”

설휘가 고개를 돌렸다. 악비가 가리킨 곳에는 자신의 키보다 몇 배나 큰 바윗덩어리가 보였고.

“……예?”

당연히 설휘는 사부에게 되물었다.

“들라니까?”

“……저걸요?”

다시 한번 반문하는 그때.

사아아아악.

새하얀 빙공이 악비의 손끝에 맺히기 시작했고, 어느새 표독스럽게 변한 그는.

“드세요. 제자님.”

가르침이 아닌 경고, 아니 협박을 해왔다.

그 모습에 설휘는 냅다 뛰어가 집채만 한 바위를 짊어졌고.

“따라 나와라.”

기우뚱거리며 악비를 뒤따라 나섰다.

쉬이이이잉.

바깥은 어두웠다. 하지만 바닥에 깔린 눈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앞을 볼 정도는 되었다.

“올라가자.”

악비의 말에 설휘는 바위를 짊어진 채 계속 그를 따라갔다.

이걸 왜 들고 가야 하는지, 이딴 게 수련인지 항의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고 올랐지만.

“어허. 걸음이 느려진다. 떨어뜨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야. 난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섬뜩한 말에 항변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끄윽…….”

바위를 지고 이동하면 할수록 설휘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그가 초인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바로 내공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공이 만능은 아닌 법.

체력적인 고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휘이이이잉!

더욱이 동굴 밖은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가 몰아닥치고 있었는데.

“좋아, 좋아. 이런 추위가 체력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켜주지.”

사부란 녀석은 이상한 소리를 해대며 앞장서 걸었다.

그날부터 산봉우리 올라타기가 시작되었다.

당연하게도 도중에 힘들어서 몇 번이고 바위를 놓을 뻔했고, 그때마다.

“휘청거리네. 몸이 너무 가벼운 모양이야. 돌을 좀 더 큰 걸로 할까?”

기상천외한 헛소리를 해대는 통에 도통 바위를 놓을 수 없었다.

“허억. 허억…….”

그렇게 해가 모습을 드러낼 때쯤. 설휘는 어찌어찌 돌을 운반하는 것에 간신히 성공했고, 동굴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뻗어버렸다.

“일어나. 인마.”

정신을 차려 보니, 또 다른 사부 초아란이 쌍심지를 켜고 있었다.

반로환동. 실제 나이야 어쨌건 앳된 얼굴의 소녀를 보자 귀엽다고 잠깐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서 곧장 사라져버렸다.

“그, 그게 뭡니까?”

채찍.

딱 봐도 엄청나게 견고하게 만들어진 그것이 그녀의 한 손에 들려 있었다.

“시끄럽고, 따라와.”

그녀는 설휘를 동굴 안쪽으로 데려갔다.

굴은 깊고도 깊었다. 어디까지 이어진 걸까? 한참을 걷던 중에 설휘는 잔뜩 놓인 항아리들을 발견했다.

“여기다.”

초아란은 항아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혈마수를 익히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손을 단련시키는 게 첫 번째다. 시작만큼은 강호의 철사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

“예…….”

“허나, 수련은 혈마수가 훨씬 더 어렵다. 특히 손에 독이 스며들게 만드는 과정은 꽤나 곤욕스럽기까지 하지.”

“예? 손으로 독이 스며든다고요?”

설명 중에 어이없는 말이 나오자 설휘가 곧장 반문했다.

이에 초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없다. 그냥 손을 집어넣고 한 달 푹 고아 내면 끝이지. 고통은 좀 있겠지만, 그게 뭐 어떠랴. 이 독은 너를 매우 강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 말에 설휘는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았다.

츠으으으.

“아…….”

시꺼먼 모래. 녹분이 일어나는 걸 보면 두말할 것도 없이 독이 맞았다.

스물스물.

거기다 그 안에 이상한 곤충들도 살고 있는 듯했다. 설휘의 안색이 허옇게 변하자.

“해독제는 내가 가지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아, 그리고……”

초아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통증이 지독할 것이다. 저도 모르게 손을 빼게 될 거야. 그러니 내가 도움을 주마.”

“도움이라면 어떤…….”

“손을 빼면 바로 채찍으로 후려쳐 주마. 중독의 고통 따윈 한순간에 잊게 될 거다.”

한마디로 패서 강제로 몸에 익히게 만들겠다는 말.

“자. 입수.”

“아…….”

설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도망가고 싶었다.

“넣어, 이 새끼야.”

하지만 희번덕거리는 초아란의 눈동자를 보고 급히 손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고.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지독한 독성에 살이 타들어갔다. 괴성을 질러댔지만 초아란은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다.

부들부들. 움찔!

독물은 지독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설휘는 고작 일각을 넘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는데.

짜악!

채찍에 처맞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고.

짜악!

또 차리기를 반복했다.

***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자정부터 오전까지 미친 듯이 체력훈련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혈마수 수련이 이어졌다.

질긴 게 인간이라, 독항아리의 독물에 익숙해질 때쯤에는 모래 쥐기 수련이 이어졌는데.

“정확히 이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

초아란이 손수 시범을 보였다.

푹. 스윽.

그녀는 항아리에 담긴 모래를 손에 쥐고는 한쪽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무게는 기계적일 정도로 일정했다. 분량도 무게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처음엔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기가 막혀서 그녀가 한 줌 퍼낸 모래알을 세기까지 했는데, 정말로 한 톨 한 톨 정확히 일치했다. 가히 신기라고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자. 해보거라.”

팟.

그러고나서 설휘의 차례.

당연히 실패했다. 그에 초아란의 눈썹이 치솟았다.

“한 톨 당 한 대. 우선 이백 대 맞자.”

“아…….”

초아란은 때리는 것도 장인에 가까웠다.

피부가 상하지 않게. 정확히 말하면, 상하지 않는 피부만을 골라서 공격했다.

때로는 살짝 후려치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주었고.

“자. 다시.”

그렇게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유지하면 맞는다. 아니면 고통에 몸부림친다.

차라리 기절하는 게 휴식임을 깨달은 설휘는, 드디어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죽을까?’

“끄아아악!”

하지만 쓰러질 때마다 초아란은 손을 썼다. 분명 온몸에 기혈이 뒤틀리듯 들끓었는데, 정신을 잃고 나면 놀랍도록 몸이 회복되어 있었다.

그래서 또 하루의 수련을 어찌어찌 끝마쳤다.

“뭐?! 벌써 거기까지 진도가 나갔다고?”

그랬더니 놀라는 악비. 초아란의 수련 방식을 묻던 그는 갑자기 뭔가 이마를 툭 하고 치더니.

“우리도 진도를 빼야지. 오늘부터는 암벽 타기다.”

“…….”

다른 수련으로 나아갔는데, 당연하게도 악비는 단순한 암벽 타기 따위를 시킬 녀석이 아니었다.

“헉. 헉헉.”

절벽을 기어올라온 설휘는 목적지를 앞에 두고 멈칫했다. 정상에 서 있던 악비가 자신을 보고 씨익 웃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 그거…….”

“어. 선물이야.”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는 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 수많이 돌덩이가 놓여 있었다.

긴 줄에 비끄러매인 채로.

터억.

그는 그 줄 가운데 하나를 잡았고.

“아, 아니지요?”

설휘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부정했다.

저 돌들이 자신의 몸을 덮친다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그야말로 비명횡사할 상황.

“걱정 마라. 외공 단련에 이만한 게 없으니까…….”

스륵.

줄 하나가 풀리자마자 돌들이 쏟아내려지기 시작했다.

“야이…… 씹새끼야아아아아아아!”

설휘는 그것을 보며 처음으로 욕설을 했고.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악비는 그런 행동을 대승적인 차원에서 눈감아주었다.

***

설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수련은 한 달을 넘어서고 있었다.

수련의 강도는 더 올라갔고, 이 미친 사부들은 서로 경쟁하듯 심하게 몰아쳤다.

‘죽여줘. 죽게 해달라고.’

몸은 둘째 치고, 설휘는 정신적으로 한계에 왔다.

몇 번은 버티다 못해 죽기 위해서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다.

“거기까지.”

“컥!”

그런데 그때마다 귀신같이 눈치채며, 사부들이 사고를 예방했다. 거기다.

“참아라. 죽을 때 죽더라도 악비의 무공이 약하다는 걸 알려주고 죽어.”

초아란은 친절하게 말을 건넸고.

“초아란. 그녀의 무공이 가짜라는 걸 보여주기 전까진 안 돼. 깊은 안식은 그다음이다.”

“으아아아!”

악비 역시 그녀에 뒤지지 않았다.

말이 사부지, 쌍 또라이들이었다.

다만, 모든 것이 설휘에겐 최악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었다.

‘이게 되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수련 중에 약간의 놀라움과 의아함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특히 모래 쥐기 수련이 그랬다.

처음에는 일정량을 쥐는 것은커녕 처맞기 일쑤였는데,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는 것이다.

그간 처맞는 거 외에는 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설마…… 이걸 의도한 건가?’

이쯤되니 설휘는 초아란이 든 채찍에 눈이 갔다.

처음에는 그냥 고통을 주려고 들고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건 시간이 지나자 알게 되었다.

매번 독기에 기절하고 난 뒤, 처맞으면서 깨면 거짓말처럼 몸이 회복된다.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라면 맞아 죽든, 중독으로 몸이 상해서 죽든, 죽어도 진작 죽었어야 했다. 말이 수련이지, 수련을 빙자한 고문이 계속되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죽기는커녕, 오히려 소정의 성취를 이뤘다는 것은.

‘온몸의 혈자리를 자극시킨 거다. 기의 흐름을 극대화시키려고…….’

그 채찍질. 매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

수련하던 도중에 기를 운기해 보았는데, 하단전의 움직임이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음을 확인했다.

‘외공 수련도 그랬지.’

그냥 영문 모르게 바위 들기. 산타기. 외줄에 매달리기 등등. 그런 마구잡이식 수련에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좋다. 좋아. 이제 좀 든든해졌구나.”

투웅!

하도 처맞다 보니, 외부의 충격에 전혀 균형을 잃지 않는 균형 감각이 체득되었고.

“졸리냐? 음. 가벼운 모양이군. 좀 더 무거운 것으로 해 볼까?”

분명 잠을 거의 재우지 않는데도 체력이 스스로 회복되는 괴이한 체질로 변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모종의 회복 수단을 마련해 둔 것이다.

“자. 해 보거라.”

체력 수련이 끝난 정오가 넘어가는 시각.

수련 기간 중에 처음으로 동굴 밖으로 나온 초아란이 설휘를 향해 지시했다.

설휘 앞에는 동굴 밖으로 꺼낸 항아리 여섯 개가 주변에 놓여 있었다.

“손을 넣어서, 모래를 쥐라 말씀이십니까?”

설휘는 평소와 같은 수련인 줄 알고 물었다.

“그렇다. 다만 이번엔…… 항아리에 손을 넣지 않고 모래를 쥐어라.”

“예?”

설휘는 귀를 의심했다.

항아리에 손을 넣지 않고 모래를 쥐라고?

“손끝의 감각을 살리거라. 그리고 며칠 전에 알려줬던 혈마심법을 같이 운기하거라.”

이게 무슨 개짓거리인가 싶었지만, 설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그녀는 괴짜이긴 해도 사기꾼은 아니다. 분명 시키는 데 의도가 있을 것이다.

스윽.

그래서 설휘는 정신을 집중했다.

혈마수의 내력심법, 혈마심법은 정신과 손끝 두 곳에 모든 집중을 해야 펼쳐낼 수 있는 마공이었다.

스으으으으-

한낮임에도 매서운 바람이 설휘의 옷깃을 스쳤다. 그렇게 한참을 있던 설휘는.

패애애액-!

몸을 돌리며 손을 뻗었다.

그녀의 당부대로 항아리에 손을 대지도 않았기에 그냥 손을 뻗어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투욱.

자리에 다시 멈춰 선 설휘. 그의 눈가에는 경악과 흥분이 맺혀 있었다.

“사부님……?”

그 모습에 초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투투투툭.

설휘의 손아래로 흘러나오는 모래.

손을 대지 않아도 이미 손아귀에는 모래가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게 혈마수의 기본 공(功)이다.”

초아란은 설휘에게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한 달하고도 닷새.

개처럼 처맞고 구르며 배운 혈마수를, 처음으로 선보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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