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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33화 (234/379)

233화. 실전 (1)

절대고수인 사부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은 넉 달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본래 약속했던 두 달 후의 무공 평가.

기일이 다가오자 사부들의 합의로 석 달이 더 추가되었다.

평가의 방식 또한 달라졌다.

자신들이 가르친 독문 무공을 상대측 사부에게 펼침으로써, 그 강함을 검증받기로 한 것이다.

사실 설휘의 성과가 어느 단계를 넘어서자, 악비와 초아란은 속으로 욕심이 났다.

가르치기만 하면 그 이상의 결과를 보여주는 제자의 성취가 만족스러웠다.

특히 초식에 대한 이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들보다 더 뛰어난 식견과 응용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해서 기한을 석 달을 더 늘리고, 자신들의 장기를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흔히 주력 무공 뒤에 따라오는 보조 무공들.

초아란은 그중에서도 점혈법(點穴法)을 중요하게 가르쳤다.

“잔설일점(殘雪一點)이란 건, 혈마수를 익힌 자들에게는 축복과 같은 점혈법이다. 보통의 점혈법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한 수법일뿐더러, 효과 역시 몇 배는 더 강해지지.”

그녀는 본인의 혈자리 몇 개를 짚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보이는 이 혈도를. 잔설일점을 이용하면 단 한 번의 점혈만으로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행동불능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아…….”

설휘는 자연스레 감탄이 나왔다.

그녀가 가르치는 잔설일점이란 점혈법은 정말이지 활용도가 높을 것 같았다.

특히 혈마수를 익힌 지금, 별도의 무공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해서 설휘는 그녀의 가르침을 평소보다 더욱 집중해서 들었다.

“특히 사혈을 짚었을 때에, 일반적인 방식보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효과를 보인다. 그럼 시범을 보일 테니 따라 해라.”

잔설일점을 익히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미 혈마수를 익혀 손끝의 예민함이 극도로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점혈법은 본인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중요했지만, 대상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다.

혈마수는 거기에 특화된 무공이라, 어찌 보면 이런 점혈법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이혈대법(移穴大法) 역시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운용방식을 알려줄 테니 이것도 따라 해 보아라.”

뒤이어 알려준 이혈대법은 말 그대로 신체의 혈도를 인위적으로 옮기는 것.

누군가에게 점혈을 당한다고 해도 파훼할 수 있었다.

초아란에게 점혈법과 이혈대법을 배웠다면, 악비에게는 신법을 배웠다.

사실 악비가 신법을 가르쳐준다고 했을 때, 설휘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천마군림보와 천마잠행술을 익힌 적이 있었기에, 그보다 더 나은 신법이 있을까 했다.

역시나 악비가 처음 설명을 이어갔을 때만 해도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무아신벌(無我迅伐)이라는 신법이 있다. 이는 빙공을 쓰는 자에게 매우 유용하며, 때론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악비가 시험을 보이기 위해 신법을 펼치자마자 그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쩌엉! 쩌엉!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던 그가 어느새 허공을 제멋대로 밟기 시작한 것이다.

발을 내딛자마자 공기를 얼려버리는 독특한 신법은 허공답보라는 최상승 경공술을 너무도 쉽게 펼쳐 보였다.

거기다 가속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하자, 신법의 속도는 극단적으로 빨라졌다.

환영이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수많은 환영이 뒤이어 따라붙는. 거기에 방향 전환이 일어나도 가속이 떨어지기는커녕 더 빨라지는 현상까지 보였다.

천마군림보가 환영을 실체로 만드는 비정상적인 신법이라면, 이것은 정상적인 범주에서도 눈을 의심케 하는 신법이었다.

투욱.

다시 설휘 앞으로 다가온 악비가 손을 들어 보였다.

“자, 이 신법을 펼치면 빙월신공을 사용함에 있어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내공을 굳이 끌어올릴 필요도 없으니까.”

신법을 쓰면 쓸수록, 수많은 빙공의 힘이 악비의 몸에 축척된 듯 보였다.

그가 들어 올린 손의 빙공의 힘이, 평소보다 몇 겹은 더 쌓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니 설휘는 빙월신공을 쓸 때 이 신법을 굳이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설휘는 초아란과 악비의 가르침대로 수련하기 시작했다.

혈마수와 빙월신공.

그렇게 설휘는 정신없이 무공 수련에 빠졌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

결전의 날이 밝았다.

설휘는 홀로 이름 모를 봉우리에 올라 산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날만큼은 별도의 수련이 없었기에 사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살을 에는 추위가 몰아쳤음에도 설휘에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의 경지는 어느덧 초마의 극에 다다라 있었다.

‘선택할 시간이 온 건가.’

안정적이던 단전의 흐름이 요 며칠간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머리맡이 시큰시큰했고, 눈가에는 형형하다 싶을 정도로 강렬한 기광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설휘는 알고 있었다.

이는 극마의 징조라는 걸.

‘혈마수와 빙월신공에서 얻은 심득이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이겠지.’

과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 때엔 상, 중, 하단전을 합일시키는 방법으로 극마에 올랐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이전의 방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어떤 무공을 익혔느냐에 따라, 극마의 수준이 달라질 텐데…….”

이번엔 세 개의 단전을 합일시키는 방법으로 극마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어떤 식으로 개안할지 정해둔 길이 없어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멈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 극마에 올랐던 설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대극마공 풍.

극마에 오른 뒤 대체 어떻게 더 강해져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환생하여 처음부터 배웠다.

그런데 여기에 이르러서 무턱대고 극마에 오를 수는 없었다.

“두 가지 무공의 도움을 얻으면…… 탈마에 오를 수 있을까.”

혈마수와 빙월신공.

이 두 가지 무공 역시도 극마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혈마수는 자연의 기를 변형시킨 마공. 그것을 한 번 더 비튼 힘.

이 무공으로 극마에 오른다면, 분명 자연의 기(氣)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빙월신공으로 극마를 이룬다면?

그 역시 완전히 어려움에 빠질 공산이 크다.

초인의 몸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

빙월신공의 능력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다.

천미려의 말처럼 자연을 이해하는 게 탈마에 올라서는 지름길이라면.

빙월신공의 능력을 넘어서는 힘 역시도 대자연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일 터.

과연 그 정도의 담론을 이해할 정도로 자신은 준비되어 있는가?

‘뭐 하나 쉽지가 않구나.’

결국 두 신공 중 하나를 선택해 극마에 오르면, 이전과 똑같은 결과가 나타날 게 뻔했다.

물론 극마의 벽을 한두 개 정도 뚫을 수도 있겠지만, 그뿐.

탈마는 감히 노려보지도 못한다.

그랬기에 설휘는 극마에 오르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의 가르침이 필요해. 그게 안 된다면…….’

설휘는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숙제였다.

어떤 무공이든, 결국 자신이 해결하지 않으면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직까진 극마가 되어서는 안 됐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천천히 숙고하고 움직여야 하니까.

***

동굴 안에는 세 사람이 한데 모여 있었다.

드디어 몇 달간 고된 수련의 성과를 검증하는 날이 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

혈마수와 빙월신공 중 어떤 무공이 대단한지 우열이 가려질 터였다.

“강호에선 삼 초를 양보한다고 하더군. 우리 둘 다 제자에게 세 수를 양보하는 걸로 하지. 어때?”

악비가 먼저 제안을 하자, 초아란은 별다른 말 없이 승낙했다.

“그럼 누가 먼저?”

“네가 먼저 해.”

초아란이 선수를 넘기자 악비는 쉽게 수락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 준비를 끝마친 설휘에게 말을 건넸다.

“자, 그동안 배웠던 혈마수의 무공. 최강의 초식을 펼쳐 보거라. 참고로…….”

그는 어디서 막대기 하나를 가져오더니, 자신의 몸 주위로 원을 그려 보였다.

“날 이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면, 너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지.”

그는 상당한 여유까지 부리며 자신만만해했다.

애초에 그는 설휘가 어떤 공격을 해도 쉽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전력을 다해야겠지…….’

설휘는 손에 쥔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서 초아란이 건넨 병기. 척 봐도 검기 따위는 쉽게 실을 수 있는 명검이었다.

이 정도의 검을 들고 어설프게 싸웠다간, 초아란에게 크게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츠으으으.

설휘가 내공을 주입하자, 검 끝에 붉은 기운이 샘솟기 시작했다.

혈마수의 핏빛 기운.

본래 손끝에서 파생되는 이 기운은, 검자루를 잡자 검신을 타며 뻗어 나왔다.

‘이놈 봐라?’

한편, 여유롭게 지켜보던 악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혈마수를 나름 익혔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설휘가 무려 삼 척이나 기운을 피워낼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삼 척이라면 혈마수 8성 이상의 성취다.

혈마수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10성이라고 볼 때, 8성이면 엄청난 성취를 이룬 것이다.

“시작하겠습니다.”

“오냐.”

그럼에도 악비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극마란 그런 것이다.

어떤 경우의 수와 압박에도 대응할 수 있었다.

‘악비 사부는 분명 벽을 쳐서 막을 것이다.’

그를 보던 설휘의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였다.

악비가 저리 자신만만해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전에 한 번 경험해 보았던 빙공으로 세운 벽.

단순히 기공 하나로 쏘아 올리는 벽이 아닌, 몇 겹으로 둘러친 절대방어의 빙공을 생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단단한지, 무려 강기도 뚫을 수 없을 정도의 벽 말이다.

‘내게 방법은 두 가지다. 빙공의 벽을 치기 전에 혈사공(血邪功)을 쏘아내거나, 아님 빙공의 벽을 뚫어내거나.’

후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니, 설휘는 첫 번째를 선택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시간과 거리가 가장 중요했다. 고도의 집중력은 덤이었다.

고오오오-

“언제 오느냐?”

검을 쥔 채 가만히 노려보는 설휘. 그런 그를 보며 악비가 여유롭게 물었다.

설휘는 알고 있었다.

그저 태연하게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자신이 공격하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반응해 올 것임을.

‘하지만 빈틈이…….’

몇 번, 몇십 번을 머릿속으로 그려봐도 좀체 상대의 빈틈은 보이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으니 손도 움직여지지가 않는 것이다.

뚝뚝.

정신적인 소모 때문일까.

설휘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거기다 눈앞이 어지러워지는 현상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설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싸움의 투로를 그렸다.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하던 중에.

갑자기 설휘에게 신기한 변화가 생겨났다.

휘이이이잉.

머릿속에 쏘아내는 장면이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비친 것이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기류들도 보였다.

‘상단전이 열린 건가?’

설휘는 직감했다.

중, 하단전이 서로 합일이 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의도치 않게 개안을 해버렸다는 걸.

“하압!”

설휘는 더는 지체할 수 없어 검을 들어 기류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

쩌저저적!

예상대로, 기운을 쏘아내기 전에 악비가 빙벽을 생성해냈다.

‘실패……?!’

일순 안타까워하던 설휘의 눈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쿠와앙!

올려쳐진 빙벽 뒤쪽으로 커다란 울림과 함께 악비가 삼 장이나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에 지켜보던 초아란이 황당하게 바라보았고, 설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어떻게…….”

그리고 곧 이유가 드러났다.

초아란의 질문에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혈사공을 쏘아내며 허공섭물을 펼친 것이냐?”

허공섭물.

쏘아지는 혈사공의 힘을 틀었다.

그로 인해 빙벽 위로 날아간 혈사공이 다시 방향을 바꿔 악비를 공격한 것이다.

마치 어검술과 흡사한 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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