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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35화 (236/379)

235화. 실전 (3)

“그래서…… 사제자를 도와달라는 것이냐?”

초아란과 악비. 그리고 설휘는 한곳에 둘러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둘 다 설휘가 펼친 무공에 한 번 당해서인지, 무공 평가에 대해서는 서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무공이 낫냐 하는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분위기가 눈 녹듯 가라앉자, 그 틈에 설휘는 사부들에게 급히 부탁했다.

“예. 사부님들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천마의 다른 제자들은 권력 쟁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단단한 기반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각 제자들마다 합류한 이름 있는 고수들이 셀 수 없을 정도지만, 사제자의 뒤를 봐주는 건 단체는커녕, 일개 고수의 지원도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설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며 사부들의 눈치를 살폈다. 본교 상황이 이렇다고 언급하는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두 사부는 그 부분에 대해선 지적하지 않았다.

다만, 사제자에 대한 평가가 박할 뿐.

“그럼 사제자는 천마가 될 재능이 없는 거지. 고작 제자들의 권력 싸움에서 그 정도 격차가 있다면…… 우리가 도움을 준들 크게 달라지겠느냐?”

악비의 발언은 지극히 현실에 입각한 발언이었다.

뒤이어 나온 초아란의 발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력이란 것은 특출한 재능이나 뛰어난 기지를 가졌다고 해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원하는 이득을 안겨다 줄 수 있어야, 비로소 권력 또한 움직일 수 있는 거지. 다만 그리하려면 보통 그걸 실현해 줄 ‘큰 기반’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이해시킬 ‘업적’이 필요하다.”

“…….”

“제자야. 괜한 놈 기대하지 말고 어서 빨리 다른 제자로 갈아타거라. 괜히 시간과 노력만 낭비할 뿐이다.”

“그게…….”

설휘가 잠깐 뜸을 들이자, 사부들의 의아한 시선이 한데로 모였다.

그때 설휘가 입을 열었다.

“사제자는…… 천살성이라고 합니다.”

“뭐?!”

“……!”

순간, 사부들의 얼굴에서 스쳐 지나가는 황당함.

그 모습을 보니, 아직 사제자에 대한 소문은 그리 많이 퍼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은거고수라 애초에 그런 얘길 듣지 못했거나.

잠깐 침묵이 이어진 후, 초아란의 물음으로 대화가 재개됐다.

“그 녀석, 몇 살이냐?”

“정확히는 모르나 스물은 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뭐?! 그러고도 아직 살아 있단 얘기냐?”

“그렇습니다.”

“……허!”

초아란은 상당히 놀란 듯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악비는 뭔가 셈을 하는 듯 손을 꼼지락대더니 말했다.

“허허. 열여섯을 넘기지는 못하는 천살성이 스물까지 살았다라,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구나. 사제자가 힘을 개방했을 때, 얼마나 강한 위력이 나올지.”

“강한 위력이라는 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때마침 설휘는 그간 궁금했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곤마의 강함. 자신이 대충 유추해 보는 게 아니라, 절대고수의 시선에서 바라본 바를 듣고 싶었다.

그 말에 악비가 아닌 초아란이 대신 답해주었다.

“제자야. 보통 천살성의 고수는 열여섯에 스스로 산화하고 만다. 그때의 힘이 하늘에 닿는다고 알려졌지.”

“대략 극마의 수준이란 말입니까?”

“적어도 거기에 부족하진 않겠지. 헌데 그 힘을 숨기며 살아간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더욱이 한 해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 힘은 가늠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강해질 거다.”

“허면…… 탈마까지도 가능하다는 거겠지요?”

“아마도.”

‘아.’

설휘는 온몸의 털이 삐죽 섰다. 그라면 천마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예상했지만, 그건 그저 가능성에 불과했다.

그런데 사부의 얘길 들어보니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으음.”

대화를 잠깐 멈추자, 악비가 시선을 돌렸다. 곰곰이 뭔가를 고민하던 그가.

“뭐, 제자의 소원이라면 못 갈 것도 없지.”

결정했다는 듯 대뜸 승낙을 해왔다.

그 행동에 설휘와 초아란이 바라보자 그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사제자 밑으로 들어가면 조금 불편한 상황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못 갈 이유는 없지. 주변의 눈치를 볼 나이도 지났고…….”

“…….”

그 말에 초아란은 잠깐 고민하는 듯 시선을 떨어트리더니, 이내 설휘를 보며 물었다.

“꼭 가야겠느냐?”

설휘는 느꼈다.

그녀답지 않은 진지한 어조라는 걸.

아니, 어쩌면 이게 그녀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사제자 밑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래?”

그 말에 초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가겠다.”

“아, 사부님…….”

“과정이 어떻다고 한들, 넌 내가 거둔 첫 제자다. 사부가 되어서 제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휘는 흥분되었다.

천미려를 데려오는 것은 사실상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이 정도의 고수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준비하거라.”

“……?”

“오래 끌 것 있느냐? 당장 가자꾸나.”

***

채비라 할 것까진 없었다.

초아란에게 건네받은 검 한 자루. 해진 신발과 옷은 사부님들이 주는 걸로 대충 신고 입었다.

휘이이이잉.

대설산답게 밖은 여전히 강한 추위가 느껴졌다. 악비가 선두에 초아란이 뒤를 이었고, 설휘는 그들을 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중 설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본래 가야 할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서북쪽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사부님. 본교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설휘가 물었고, 악비는 담담히 말했다.

“당연하지. 우리의 목적지는 거기가 아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악비와 초아란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둘 중 초아란이 말했다.

“우선, 들렀다가 갈 곳이 있다.”

“그게 어딥니까?”

“곤륜산 북단에 있는 목자탑견산.”

“……!”

설휘는 귀를 의심했다. 낯익은 장소였다. 아니, 장소가 아닌 이름이었다.

과거 자신이 안내를 받을 때 들었던, 빙공의 흔적이 나온 두 곳 중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설휘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

두 사부가 천미려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이미 늦었더라도 이실직고해야만 한다.

자신이 천미려의 제자가 아님을.

뒤따라가며 조금 고민하던 설휘는 이내 앞서 걷던 악비의 발을 멈추며 말했다.

“사부님. 사실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모습에 악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냐?”

“사실 제자가…….”

말을 꺼내려던 설휘는 흠칫했다.

마음먹고 말을 하려 했지만, 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천미려의 제자라고 알고 있던 사부들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그것이 거짓이었다고 고하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천미려 님의 제자가 아니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

설휘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리고 천천히 악비 뒤에 있는 초아란에게로 시선이 이동했다.

“뭘 그리 놀라느냐. 이미 알고 있던 문제를……. 천미려 님이 제자를 받지 않는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지. 뭐, 갑자기 마음이 달라지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그분을 옆에서 보지 않은 자들의 말일 터고.”

“허면…… 왜 저를…….”

“왜 눈감아줬냐고? 우리가 언제 그랬냐?”

“예?”

설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이번엔 악비가 나서며 말했다.

“지난 몇 달간, 너를 심히 고문하지 않았느냐. 아침저녁으로 말이다. 본래라면 포기하고 떨어져 나갔어야 했는데…… 너는 그걸 극복해냈지.”

“그래서 더 맘에 들었다. 비록 입은 거짓을 놀릴지언정, 가르침을 배우는 데는 누구보다 진심인 것 같아서.”

고문에 가까운 수련.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성장만을 의도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간 했던 수련들은 정상보다는 비정상에 가까웠으니.

“사부님. 제자의 못난 허물을 아셨다면 굳이 천미려 님을 뵙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물론 설휘의 목표는 천미려였긴 했지만, 거짓말이 다 까발려진 마당에 굳이 천미려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뛰어난 극마고수 둘이 옆에 있지 않는가.

“너는 사제자가 뒤를 맡길,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예?”

악비의 물음에 설휘는 흠칫했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건, 단순히 한 가지 의미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다들 본교의 고수들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 상황에서 사제자의 뒤를 봐줄 인물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믿을 만한지도…….”

“그거야…….”

당연히 그런 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두 사부를 데려가는 게 아닌가.

“사제자가 다른 제자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웬만한 고수들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수세에 몰리면 배반하는 수하들도 생겨날 터.”

“…….”

“하지만 천미려 님 같은 분이 뒤에 선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다른 제자들에게는 경고, 동시에 사제자의 수하들에겐 엄청난 버팀목이 될 터.”

악비는 설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천미려 님은 본교 내에서 교주 다음으로 유명한 분이시니까.”

‘아.’

설휘는 그제야 그 말을 이해했다.

사제자에겐 고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강한 구심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천미려는 강호에 맹위를 떨쳐 본교의 이름을 드높인 자.

그녀는 위명만으로도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 만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설휘의 지척까지 다가간 초아란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탈마를 목표로 하는 너에게 길을 제시해줄, 아마도 본교 내 유일한 분일 거다.”

그 말에 설휘는 더는 거부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사부가 제자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조금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

산은 매우 험했다.

거기다 발목까지 쌓인 눈을 밟으며 걸어가야 했고, 매섭게 부는 겨울바람도 이동을 더디게 했다.

무엇보다 고산지대에서 흔히 발생하는 호흡이 쉽지 않게 되는 현상은, 웬만한 범인들은 발길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범인들보다 월등한 신체를 가진 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방해 요소가 아니었다.

빠르게 가장 높은 봉우리를 밟자, 악비가 말했다.

“여기서 산맥으로 이어지는 길 중간에 동굴 하나가 있을 것이다.”

사부들은 천미려가 있을 위치를 가늠하고 있었다.

과거에도 몇 번 와 보았다는 얘기에, 설휘는 더는 질문하지 않고 그냥 믿고 따랐다.

‘어?’

그들의 말대로 산길을 내려가는 비탈길 중간에, 상당한 크기를 가진 동굴 하나가 보였다.

그 안으로 잽싸게 들어간 설휘는 몇 발짝 걷지도 못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우와!”

설휘의 시선을 잡아끈 건 엄청난 크기의 천고였다.

6층의 대전각의 높이보다 몇 배는 높았다. 거기다 천혜의 자연 환경이 주는 신비로움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동경하게 만들었다.

한편, 멀찍이 앞서나간 악비는 초아란을 보며 말했다.

“불러도 나오지 않으시겠지?”

“아마도.”

“그럼 결국 그 방법밖에 없을라나. 나중에 후환이 두렵긴 하지만…….”

“쯧쯧. 명색이 제자를 둔 사부라는 녀석이. 겁나면 비켜, 내가 할 테니까.”

“누가 겁난다고 했나?”

그들은 잠시 티격태격한 후, 각자 한 곳을 바라보며 자리에 섰다.

곧이어 내기를 끌어올렸고,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벽을 향해 기공을 발산했다.

쾅! 콰콰콰콰쾅!

극마고수의 기공은 하나하나가 동굴 전체가 흔들리는 거대한 폭발로 이어졌다.

“사부님…….”

그 모습에 놀라 급히 다가온 설휘가 묻자.

악비와 초아란이 한곳으로 손짓했다.

“비켜서 있거라.”

“지켜보거라.”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공격.

콰콰콰콰콰콰쾅!

기공을 마음껏 발산하자 벽이 부서져 나갔고, 동굴의 천장 일부도 내려앉았다.

그렇게 한동안 그 짓을 하더니.

“자, 그럼 하루 정도 기다려볼까?”

“그럼 난 이 안에 있는 영약이나 찾으러 가지.”

“아, 나도.”

두 사부는 냅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설휘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다가, 한참을 기다려도 사부들이 돌아오지 않자 그냥 바닥에 누워버렸다.

“하…….”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하루 정도 기다려본다고 했으니…….’

그래서 눈을 감았다.

딱히 할 것도 없으니, 그냥 시간을 때운 것이다.

그렇게 잠이 좀 들었을 때였나.

눈을 다시금 떴을 때,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감지했다.

“너 누구니?”

여인이었다.

가녀린 목과 잡티 하나 없는 백옥 같은 피부. 그리고 말 못 할 황홀함이 젖어드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절세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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