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신비한 사람 (1)
설휘는 멍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황홀한 미모 때문에, 조금 익숙해졌을 때는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그녀의 의도가 궁금하여, 그 뒤에는 딱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어디 아프니?”
그때쯤 다시 한번 말을 거는 여인. 상대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설휘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어?’
예상치 못한 여인이 손길에 설휘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그러다가 일순 몸이 엉키며, 그녀의 몸이 옆으로 눕듯이 내려갔다.
의도치 않게 설휘의 품에 안기는 자세가 된 것이다.
껌뻑껌뻑.
의도치 않는 상황을 만든 설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조금 전까지 딱히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면, 지금은 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절세의 미모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정신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아!”
겨우 정신을 차린 설휘는 그녀를 조심히 밀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슴이 왜 이렇게 콩닥콩닥 뛰는지, 정작 본인도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었다.
다만, 방금 본인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그제야 실감이 갔다.
“저, 저기…… 누구신지.”
설휘가 조심히 뒤돌아보며 운을 떼며, 옆에 있는 여인을 힐끔 보았다.
“그건 내가 먼저 물었는데?”
“……아, 그랬지요.”
담담한 여인의 대답하게 설휘는 과할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마음을 다잡고는 급히 예를 갖췄다.
“저로 말씀드리면…… 천마 넷째 제자이신 곤마 님의 수하입니다. 아직 정식 요원은 아니고, 비밀리 임무를 수행할 역량이 가졌는지를 시험 중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당신을 만났고요.”
설휘는 자신의 상황을 소상히 밝혔다.
그녀가 천미려일지 몰라서…… 아니, 천미려가 확실해 보였기에 있는 사실 그대로 말했다.
“사제자?”
그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갸웃했고, 이내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눈웃음을 보였다.
“아. 교주께서 벌써 넷째 제자를 받으셨는가 보군요.”
벌써라는 그녀의 말에 설휘는 쉽게 수긍했다.
그녀가 모습을 감춘 것도 오래전 일일 테니.
적어도 그때에는 곤마가 없었을 테니까.
“재밌네. 천마 제자들의 싸움이라니. 후훗.”
그녀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뒷짐을 진 채 설휘 주변을 걸었다.
‘대체…….’
설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연신 감탄했다.
매우 고혹적인, 그러면서도 청초한 아름다움이 섞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극음의 무공으로 절대 반열에 올라서인지, 그녀에게서 풍기는 냄새도 뭔가 신비로웠다.
“그런데 왜 여기 들어온 거죠?”
투욱.
그녀가 걸음을 멈추며 설휘에게 물었다.
“귀한 분을 모시기 위해 왔습니다. 향후 제자들의 권력 싸움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을요.”
“그게 누군데요?”
여인의 물음에 설휘는 잠깐 고민했다.
눈앞에 있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왔다고 그냥 말해야 할까. 아니면 시치미를 떼고 천미려란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 기분이 상하지 않을지, 혹은 어떤 말을 하는 게 더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결국 설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천미려 님이십니다.”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거짓을 말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을 살피던 중.
“나?”
그녀는 본인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역시 그녀였구나.’
예상대로였다. 하긴, 사부님들이 직접 찾아온 곳이니 그녀가 천미려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천미려 님이십니까?”
설휘가 재차 확인하며 묻자, 그녀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고개를 돌리며 어디론가 천천히 걸었다.
사뿐.
이렇게 보니 그녀는 신을 신고 있지 않았다. 옷도 이런 추운 날에 매우 얇은 옷.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와 새하얀 옷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차림은 어울렸다. 이 추운 날씨에 그런 복장이 오히려 더 그녀를 신비롭게 했으니까.
‘왜 말이 없지.’
그녀는 조용히 주변을 걸었다.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기도 했고, 땅을 보며 걷기도 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걸음걸이가 끝났을 때쯤. 그녀는 설휘 앞에 섰다.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본교로 데려가서 사제자를 돕게 하겠다는 거죠?”
“예? 아, 예……. 그러고 싶습니다.”
“굳이 내가 도울 필요가 있을까요? 임독맥을 뚫고, 자연의 기를 품으며, 상단전을 개안할 정도의 당신이라면…… 사제자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어? 알아본 건가!’
자신의 몸을 꿰뚫어 본 듯한 그녀의 말에 설휘는 급히 말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저의 능력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만큼 사제자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총단에서도 그를 따르는 장로나 전주는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해서 저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천미려 님께서 사제자에게 힘을 보태주신다면…….”
”후우. 재미없어…….”
“……?”
그녀가 고개를 저어 보이자, 설휘는 급히 입을 막았다. 괜히 불편하게 하거나 화나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럼 우리 이렇게 하죠.”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자신을 보며 제안을 해왔다.
“날 설득시켜 봐요.”
“예?”
“왜 내가 사제자를 도와야 하는지. 나의 청정을 깨트리고, 내가 생활하는 공간을 부수면서까지 날 불러냈으니…… 그만한 각오는 하고 있지 않겠어요?”
‘아.’
설휘는 그녀의 말 속에 송곳이 숨어 있다는 걸 느꼈다.
자신이 이곳을 부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참고로 날 설득시키지 못하면…….”
그녀는 한 발짝, 한 발짝 걸어왔다. 그렇게 걷던 그녀는 코끝이 서로 닿을 듯 얼굴을 밀착시키더니, 짧게 말을 이었다.
“여기서 온전히 나가긴 힘들 거예요.”
“……!”
설휘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
동시에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 다시금 상기하고 있었다.
목숨 백 개.
성공하면 여태까지 중 가장 많은 목숨을 얻게 되는 시험.
하지만 다르게 보면 목숨 백 개에 해당하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녀를 설득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완전히 생각의 틀을 벗어난 행동이 필요해.’
설휘는 오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어쩌면, 천미려를 데려가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닐까.
애초에 대화로 설복시킬 수 있긴 한 걸까.
그러니 접근법을 과거와 완전히 달리 가져가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그래서…… 저질러버렸다.
목숨 백 개를 얻을 수 있는, 비상식적인 접근 방식을 생각하다 보니.
설휘는 그만 눈앞에 있는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버린 것이다.
“…….”
잠깐의 입맞춤.
이후 급히 뒤로 물러서는 설휘.
하지만 입을 맞췄음에도 천미려는 여전히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설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입맞춤을 끝낸 뒤 그녀의 얼굴을 보자, 설휘는 그제야 자신이 한 행동을 인지했다.
보통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계속 머릿속에 떠올리다 보니.
지금처럼 미친 척 행동을 해버린 것이다.
“…….”
정적이 흘렀다.
동굴 안쪽이라 지나칠 정도의 고요함이 동굴 속을 맴돌았다.
‘다음 생에는…….’
결국 설휘는 미래를 계획했다.
다음 생에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지금 상황을 망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죽더라도 조금 덜 고통스럽게 해주길 바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입을 맞춘 뒤 그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무슨 의미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천미려가 물었다.
설휘는 심장이 터질 정도로 요동치는 상황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오히려 그러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았기에.
더욱이 어차피 최소 한 번은 그녀의 손에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스륵.
천미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설휘의 얼굴 쪽으로 가져가는가 싶더니.
팟.
급히 설휘의 팔목을 낚아챘다.
‘이, 무슨…….’
설휘는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했지만, 별다른 얘길 꺼내지는 않았다.
그사이 천미려는 설휘의 손목을 잡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올렸고. 설휘와 시선을 맞췄다.
“아, 거짓말. 진심이었다니…….”
“예?”
알 수 없는 중얼거림에 설휘는 되물었고, 천미려는 별다른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흥얼거리듯 콧소리를 내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되는 거지?’
설휘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대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정도는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손등을 만진 건 진맥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
“거기서 뭐하고 있느냐?”
“뭔가 재미난 걸 본 것이냐?”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던 설휘 앞에 사라졌던 사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뭡니까?”
설휘는 그들의 손과 어깨에 들쳐진 풀과 잎을 물었다.
형형색색 한 것이…… 척 봐도 일반적인 약초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 이거? 전부 다 영약이라고. 강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지.”
“특히 젊어지는 데 아주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너도 하나 주련?”
악비 옆에서 초아란이 영약 하나를 권유하자 설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반로환동의 고수.
이미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저런 걸 먹는 걸 보면, 젊어지려는 욕구가 상당히 강한 듯 보였다.
“헌데…… 천미려 님은 아직이시더냐?”
악비가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설휘가 조심히 대답했다.
“이미 오셨다가 가셨습니다.”
“뭐?!”
“어?!”
순간 당황한 두 노인.
설마하니 벌써 이곳에 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얼굴들이었다.
“어떻더냐. 뭐라 하시던?”
초아란이 뒤이어 묻자 설휘는 여기서 잠깐 머뭇거렸다.
그도 그럴 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
너무 빤히 보길래 그냥 입맞춤을 해버렸다고 하면, 곧장 미친놈 소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냥 궁금증만 묻고…… 별다른 말은 없으셨습니다.”
설휘는 슬쩍 에둘러서 대답했다.
그러자 초아란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그분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크게 없으시긴 하지.”
“그래도 이렇게 행패를 쳐놨으면, 분명 책임을 물으셨을 텐데……. 이상하군.”
악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설휘는 뭔가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사부님. 혹, 천미려 님의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아십니까?”
“그게 왜?”
악비가 그런 걸 왜 묻냐는 듯 반응하자, 설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이어지는 초아란의 한마디.
“백 살은 족히 넘으셨지. 그분을 뵌 지도 벌써 오십 년이 넘어가니…….”
“아…….”
백 살이 넘는다.
이제야 그녀의 나이를 조금 실감했다. 하지만 지금 설휘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도 계속 죽어나가면, 백 살은 먹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뿐.
“어? 천미려 님.”
“아!”
그러던 중 그들 앞으로 천미려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라진 행색에 설휘의 눈도 덩달아 커졌다.
조금 전에는 썩 신비로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복장이 아닌가.
가만, 그런데 왜 이런 옷을 입고 온 거지?
“아, 너희들도 왔어?”
복장이 어떻든, 그녀의 미모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천미려는 씨익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고.
“그럼 같이 가면 되겠네.”
“……어디를?”
“천마 넷째 제자 만나러.”
“예?”
“……?”
의아한 표정의 악비와 초아란.
하지만 그들이 놀랄 부분은 이것 하나뿐이 아니었다.
“아, 그리고 소개할게.”
천미려가 설휘 옆에 서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다들 인사해. 내 애인이야.”
“……?”
“…….”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황당하게 쳐다보는 두 사부.
그런 두 사람보다 더욱 난처한 얼굴이 되어버린 설휘. 동시에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단어가 있었다.
‘개족보…….’
개족보도 이런 개족보가 없었다.
경악스러움과 황당함이 그들 사이를 지나갈 때, 설휘는 결심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절대 안 된다고.
“설휘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부인 악비와 초아란을 향해 진지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르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