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41화 (242/379)

241화. 논검 (2)

“이놈 보게?”

구대염은 슬쩍 심기가 불편해졌다.

논검을 스스로 자청한다는 건, 무학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태도가 아닌가.

다른 자도 아닌 극마에 도달한 자신을 상대로 말이다.

“저자가 강호인이란 걸 알고 있느냐?”

구대염은 여기서 중요한 점 한 가지를 짚었다.

보통 본교의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배우는 무공이 있다.

헌데, 중원에서는 잡아온 사내는 명실공히 강호인.

논검을 하기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께 들었습니다.”

“무당파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일순, 구대염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허면, 저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초식을 논검 위에 올리지 못하는 것도 아느냐?”

무당파.

구파 중 하나인 그들의 무공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논검을 한두 번 주고받기도 전에 끝장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거기다 거구의 인물은 그의 휘하의 수하 중 하나.

이런 불리한 조항을 알고도 덤비려 하는 것이냐는 의중도 담겨 있었다.

“그렇습니다.”

“허허허! 허허허허!”

구대염은 호탕하게 웃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스스로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 것이다.

“정말 무모하고도 발칙한 녀석일세.”

해서, 그 모습이 되레 그에게는 흥미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근래 들어 이런 무모하고 어리석은 이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 정도로 배포가 있는 녀석이 없었다.

젊은 녀석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열정이나 당찬 혈기는 버릇없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지우고 제 몸만 사리는 데 급급한 녀석들보다는 훨씬 낫다는 걸,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받지.”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오히려 그런 제안을 한, 녀석의 의도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해서 그는 선수를 양보했다.

“먼저 하게.”

그 말에 설휘는 스윽 돌아보았다.

그리고 창가 쪽, 숨을 돌리고 있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끌려온 사내.

죽음을 기다리는, 마치 나약했던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만 같았다.

‘첫 수가 중요하다.’

일방적으로 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설휘는 사내가 절정에는 도달한 것으로 보았다.

기공 발현을 쉽게 펼쳐내고 상대의 공격에 대처하는 반응 속도 역시 기민했기 때문이다.

다만, 낯선 환경에다 끌려온 입장이라 싸움에 수세적으로 임했다.

거기다 거구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더 날쌔고 외공까지 익혀, 제대로 된 상대의 약점을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소극적으로 싸움에 임하는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어야 했다.

‘승부수를 빠르게 가져가야 해.’

허나, 현실적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실력차.

그것을 뛰어넘어 상대방에게 타격을 줄 방법 또한 찾아야 했다.

설휘는 이미 그 부분은 생각해놓았다.

‘급소를 노린다.’

몸에 호신공을 제아무리 두른다고 해도 급소에 점혈을 당하면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못한다.

물론 그리하려면 싸움의 투로를 완벽히 이해한 뒤 매우 섬세하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설휘는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입신중정(立身中正)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첫 번째요. 타니대수(拖泥帶水)처럼 상대를 살피며 움직이다, 반응하는 순간 좌측 발로 곧장 발식(拔式)을 시도하겠습니다.”

“발식이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곧장 전보(纏步)로 피해냄과 동시에 상대의 어깨를 향해 개파하거나 잡아 던져 보이지.”

입신중정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뒤 한 손은 앞으로 내밀고 다른 손은 허리에 파지하는 동작이다.

타니대수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천천히 움직인다는 말이며,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다 왼발로 발식한다는 건.

상대가 움직일 때 내미는 발을 노리고 찬다는 의미였다.

그에 대한 구대염의 반응은 이러했다.

강호인의 발을 쳐내는 동작을 보고 오히려 더 달려들어서 공격을 무력화시킨다.

거기서 상대의 어깨를 내리찍거나 잡아 던진다는 뜻이었다.

‘그는 정확히 보았다.’

여기서 설휘는 흑마전주의 논리가 빈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거구의 무공이 상대적으로 더 뛰어나기 때문에 강호인의 움직임을 보면서도 반응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설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포호귀산(抱虎歸山)으로 상대를 밀어낸 후, 내력을 끌어올린 상보타공권(上步打空氣)으로 상대를 더욱 물러서거나 회피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일타 선풍각(旋風刻), 이타 파각(破却)을 사용하고 기다린 후, 상대가 달려드는 속도에 맞춰 공격을 아래로 되돌리는 원권(圓圈)을 이용. 빠르게 완맥혈(腕脈穴)을 찍어누른 뒤 아문혈(啞.門穴)을 점혈해버리며 끝을 냅니다.”

“……!”

흑마전주는 눈을 부릅떴다.

단 두 번의 논검 만에 승부를 던진 것도 그러했지만, 논검에 올린 동작들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보통은 한두 개의 수, 많아도 네 개의 수를 예상하지 않았다.

싸우는 도중 변수가 많을뿐더러 상대에게 반박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무려 일곱 동작을 논검으로 펼쳐냈다.

이는 반박할 수 있는 부분 역시 일곱 개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변수가 그만큼 가변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런 담담함이라니.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건가.

“포호귀산이 무엇인지 강호인은 아느냐?”

구대염은 먼저 질문했다.

어차피 상대가 종지부를 찍은 이상, 자신이 논검을 파훼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작은 논점부터 부수려는 의도인 것이다.

“알고 있을 겁니다. 태극권의 37식입니다.”

“너, 태극권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책으로만 배웠습니다.”

“허…….”

당당하게 나오자 구대염은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을 말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가 문제점일까…….’

구대염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상대의 논리를 부수려면 허점이 있어야 했다.

거구가 녀석의 말처럼 곧이곧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혹은 특정 무공으로 파훼하면 되는 것이다.

‘상대가 달려드는 속도에 맞추는 건 태극권만의 장점이다. 그러니 상대의 공격을 받아 흘리는 방법인 원권을 이용하는 게 부자연스럽지가 않다. 거기다 손목을 비틀 때 완맥혈을 누르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

구대염은 앞서 녀석이 말했던 논검의 처음을 다시 되짚어 보였다.

‘저 강호놈이 포호귀산으로 내 수하의 공격을 막을 수 있긴 한 걸까? 물론 밀어낼 수 있다면 상보타공권으로 권기(拳氣)를 날리는 건 어려움이 없을 터. 당연히 내 수하는 막아내거나 피할 테고.’

그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의 점검 끝에 구대염은 결국 거슬렸던 부분을 지적했다.

“일타 선풍각, 이타 파각이라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그 초식을 쓴다면, 내 수하는 강호인에게 여유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 쓰러트리거나, 기술을 파훼해낼 터.”

그 말에 설휘가 시선을 들었다.

상대가 패를 보인 것이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꿈틀.

설휘는 빤히 바라보자, 구대염은 입꼬리를 씰룩댔다.

결코 달갑지 않은 눈빛이었다. 자신의 말에 확신하듯 믿음이 깔린 그런 느낌.

“좋다. 확인하지.”

여기까지 오자 구대염은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강호인의 발차기 동작에 자신의 수하가 밀려 나가는 그림이 절대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봐라.”

그가 손짓하자 무사 하나가 조심히 다가왔고, 구대염은 앞서 설휘가 말한 것과 자신이 말한 것을 전달했다.

이후, 수하는 정원에 서 있는 강호인과 거구에게 다가갔다.

“흑마전주님. 혹여 강호인이 제 얘길 잘 수행하지 않을 가능성은…….”

“그건 걱정 마라.”

구대염은 그 점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강호인에게 전달했다. 앞서 네가 말한 것만 잘 따라 한다면…… 살려서 돌려보내 준다고 했으니까.”

설휘는 강호인을 바라보았다.

납치당한 그의 운명은 결국 여기서 결정될 것이다.

‘여기에 내 목숨과 당신의 목숨이 걸렸구려.’

한두 번의 예측이 아닌, 무려 일곱 번의 가정.

설휘는 솔직한 심정으로 자신이 말한 것들이 전부 구현되리라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있었다.

스윽. 스윽.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강호인.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한 무사의 전달사항을 전해 듣던 중 약간의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흑마전주와 마주보고 있던 설휘를 바라보았다.

‘부디 그대가 내 말을 잘 알아들었길 바랄 수밖에 없겠소.’

설휘는 짧게 묵례를 했다.

그가 자신을 믿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한편, 반대쪽 거구에게는 구대염이 말한 논검 부분만 전달되었다.

당연하게도 논검에 대한 지적은 구대염이 했으니, 설휘가 말한 마지막 행위.

강호인의 행동이 가능한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윽고 둘의 논검에 의한 대결이 시작되었다.

스윽.

강호인은 설휘가 얘기한 대로 무술기본공 자세인 입신중정의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느리게, 태극권 특유의 움직임처럼 느리게 상대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놈!”

적당한 거리에서 빈틈을 살피던 거구가 먼저 달려들었다.

당연하게도 상대가 앞발을 내밀었고.

강호인은 설휘가 말한 대로 왼발로, 녀석의 왼쪽 다리를 공격했다.

파앗.

하지만 예상보다 빠른 거구의 움직임 때문에 공격은 실패했다.

그리고 이번엔 구대염이 말한 대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거구가 두 손으로 강호인의 어깨를 잡아채려 했다.

그 순간 강호인은 몸을 숙이듯 낮추며 곧장 거구를 밀어냈다.

‘포호귀산!’

구대염의 눈은 예리했다.

사제자의 가신의 말처럼 태극권을 익히고 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밀어낸 후에 쏘아낸 권기.

이번 동작은 구대염이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거구는 몸을 비틀어 상대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 순간 설휘와 구대염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처음으로 강호인이 움직인 것이다.

쉬익!

그는 다리를 쭉 내밀며 원형으로 돌리는 동작을 펼쳤다.

강력한 일격을 예상했던 거구는 단순히 위협만 하는 움직임에 멈칫했고.

쉬익!

다시 한번 반대쪽 원형으로 돌리는 파각의 움직임에 거구는 기회를 잡은 듯 달려들며 찌르기를 시도했다.

그 순간, 강호인은 손을 들어 거구의 손목을 비틀었다. 상대의 공격을 받아 흘리는 원권을 보인 것이다.

“그만!”

그때였다.

구대염이 갑자기 격노하듯 소리쳤다.

극마고수의 내공이 실린 외침에 강호인과 거구가 휘청거렸고, 주변에 있던 흑마전 고수들도 잠깐 동안 귀를 막는 동작을 취했다.

“뭐냐!”

구대염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설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재촉하듯 다시 말을 이었다.

“선풍각을 왜 저딴 식으로 쓰는 것이냐고!”

두 번의 외침.

그의 분노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강호인은 자신이 알던 선풍각과 다르게 움직인 것이다.

설휘는 그제야 시선을 들며 말했다.

“태극의 선풍각은 중원의 아니, 본교의 선풍각과 다릅니다.”

“뭐?”

“몸을 띄우며 일격을 날리는 동작과 달리, 그들은 땅에 발을 디딘 채 한쪽 발을 움직이지요. 이는 실제로 타격을 주기 위하기보다 근접하면 넘기거나, 혹은 상대의 시선을 뺏는 것에 핵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풍각이라는 초식을 언급해, 내게 함정을 판 것이냐?”

“이건 함정이 아닙니다. 어르신, 생각해 보시지요. 자신을 납치한 자들에게서 놀잇감이 된 저 강호인이 저에게 우호적이겠습니까? 당연히 본파의 선풍각이 아닌, 흔히 쓰이는 선풍각을 펼쳐 보일 가능성이 더 높지요. 그랬다면 당하는 건 제 쪽이었을 겁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처음 보는 이가, 그것도 선풍각을 쓰라고 한다면 당연히 문파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무당파의 선풍각을 사용했다.

‘이놈. 포호귀산으로 포석을 먼저 둔 것이구나.’

구대염은 그제야 깨달았다.

눈앞의 이 녀석은 혹여나 강호인이 알아듣지 못할까 봐 태극권의 무공을 먼저 말한 후.

그다음 선풍각을 언급해 승부를 본 것이다.

“훌륭하다.”

구대염은 처음으로 설휘에게 칭찬을 했다.

결국 논검은 무학의 깊이가 중요했다. 녀석이 태극권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모두 자리를 물러라. 저 녀석은 풀어주고.”

그리고 그는 모두가 들리도록 외치며 자리를 물렀다.

강호인을 풀어줘야 하는 상황에도 수하들은 별다른 반박 없이 곧장 부복했다.

흑마전주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제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해 볼까?”

구대염의 말에 설휘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가 말리는 시간이었음에도, 이제 겨우 한 산을 넘은 것이라는 생각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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