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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245화 (246/379)

245화. 잠행 (2)

흑월대는 태황각의 휘하 부대 중 하나로, 정관 앞에 지어진 흑무관 건물에서 생활한다.

부대는 토(土)부터 시작해 금(金)까지. 모두 7개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 전력은 흑토대가 제일 약하고, 흑금대가 제일 강하다.

그리고 설휘가 태황각주에게 배정받은 곳은 흑월대.

7개 부대 중 서열 다섯 번째인 곳이었다.

참고로 주력인 흑목대와 흑금대를 제외한 부대는, 대부분 주어진 훈련시간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 대부분은 잡무였다. 태황각 주변의 정비나, 담벼락 및 도로의 보수공사 같은 허드렛일.

때마침 흑월대는 설휘가 도착할 때도 무너진 외벽을 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뭐?”

흙투성이가 되어 한창 작업 중이던 한 남자가 일을 멈추고 눈을 치켜떴다.

쪼르르 그에게 달려와 보고하던 무사 하나의 말을 듣고 난 뒤의 반응이었다.

“정말 설휘냐?”

“예. 그렇습니다. 한 시진 전에 태황각주께서 독대하고 내보내셨고, 지금은 흑무관에 들어가 복장을 갈아입고 있다고 합니다.”

“허.”

적명의 표정은 당연히 굳어졌다.

새카만 아랫놈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 나타난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흑월대로 전출되다니?

“대장. 누군가 연줄을 맺고 온 게 아닐까요?”

옆에 있던 칙산이 걱정스럽게 말을 붙였다.

그럴 법한 질문이었다. 딱히 말도 없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 것도 그랬고,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로 태황각주가 독대한 후에 내보낸 것도.

어찌 보면 기연. 윗분들의 심부름 하나를 해결하고, 그 참에 재주 하나를 얻어서 돌아온 게 아닌가 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혹이 될 일이다.

흑월대 같은 잡병 부대에겐 한 번쯤 있을 법한 일인데, 가끔 그렇게 돌아온 놈이 생각 외로 큰 뒷배를 얻었을 경우다.

다들 고만고만한 잡병들 사이에서, 갑자기 방귀 좀 뀌어대는 큰놈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뭐, 직접 보면 알겠지. 다들 여기까지 해라!”

적명의 외침에 부대원들은 작업을 마무리했다.

한낮에 무거운 걸 지고 한참 동안 작업한 뒤라 다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했다.

“모두 모여봐라.”

적명의 외침에 서른 명 조금 넘는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곧 그의 주위로 부대원들이 모이자 적명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늘 신입이 들어왔다. 그래서 내가 재미있는 내기를 제안하지. 놈에게 신고식을 해줄 생각인데, 재미난 의견이 있는 자에겐 내 한 달 월봉을 지급하도록 하지.”

“오!”

“제안만 하면 됩니까? 직접 하는 게 아니고?”

다들 눈을 불을 켜며 적명의 제안에 환호했다.

신고식을 표방한 괴롭히기. 매일이 고달픈 잡병 취급의 흑월대로서는, 이만한 오락이 없었다.

누가 개고생을 하든 피똥을 싸든, 어차피 자기가 당할 일이 아닌 이상, 처참하게 망가지는 꼴을 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사가 머리를 긁었다.

“충성을 증명하라고, 스스로 자기 이빨을 뽑으라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흑월대 전통이라고 하면서.”

나름 괜찮은 제안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흑월대의 인물들 중에서, 어금니가 성한 이는 별로 없었다.

개중에는 상관의 뺨따귀에 어금니 셋쯤 박살 난 이도 있었고, 정말로 저런 괴이한 악습 때문에 스스로 이를 뽑은 이도 있었다.

어느 곳을 가나, 밑바닥 인생일수록 더더욱 서로를 돕기는커녕 자기 아래로 깔아뭉개는 법이다.

“다른 사람은?”

적명이 기억해 두고 묻자, 다른 이가 말했다.

“뭔가 일을 좀 하고 온 모양인데, 가진 돈을 다 내놓으라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제일 부담 없고 실익이 있는데요?”

“음. 그것도 좋긴 하지만.”

돈이라. 가장 깔끔하고 이득이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너무 민숭민숭한 거 같아 적명이 아쉬운 투로 얘기하자 무사들이 나서며 적극 의견을 개진했다.

“목에 밧줄을 매어 천장에 매달아 놓고, 얼마나 버티기는가 내기하는 것은요?”

“마보 자세로 주먹을 맞으면서 버티는 겁니다. 몇 대에 쓰러지는지 횟수 맞추기로 하고요.”

“오동나무에 거꾸로 묶어서 언제쯤 살려달라고 하는지 맞추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나하나, 듣기만 해도 살벌한 제안들이었다. 자칫하면 성한 사람 하나 망가뜨릴 수 있는 혹독한 고문.

하지만 적명은 그저 고개만 갸웃했다. 남을 망가뜨리는 자극적인 놀이는, 가면 갈수록 역치가 높아지는 법. 이제껏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괴롭혀 온 만큼, 어지간한 괴롭힘은 그냥저냥 싱거워 보이기만 했다.

어차피 자신만 안 당하면 되니까.

“흑무관 뒤편에 정자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식사를 하게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오?”

그때였다. 한 무사의 말에 적명의 혹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자? 거기 흑금대장 수련장소잖아?”

“예. 마침 지금 시간이 밥때이기도 하잖습니까. 거기서 식사를 시키면 나중에 흑금대장이 나왔을 때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좋은 생각이다! 운상(運相). 너에겐 내 한 달 치 봉급을 지급하마.”

“감사합니다. 대장!”

사내는 두 손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했고, 그를 보는 적명의 입가는 씰룩거렸다.

흑금대장은 태황각 내 최고의 고수인 신비랑이다.

그는 재작년에 무관도에 떨어진 뒤 절치부심하며 수련을 하고 있었다.

작년의 무관도 시험을 거룰 정도로 열의를 보이고 있으며, 지금은 상당한 성취를 보인다는 얘기가 많았다.

분명 이번 해의 무관도 시험은 무난히 통과하여 더 큰 곳으로 갈 것이라고, 그런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상황이었다.

‘아주 재밌는 일이 벌어지겠구나.’

적명은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힘껏 감췄다.

그리고 한 무사를 시켜 방금 운상이 말한 대로 하도록 일렀다.

***

“어후.”

설휘는 배정받은 방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간사한 것이 사람이라, 이제껏 자신이 지냈던 곳과 비교하면 협소해도 너무 협소했다.

태황각 흑토대부터 흑금대까지.

사람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편히 누울 공간을 제외하고는 따로 공간을 내어 만들지 않은 것이다.

‘곧 임무가 떨어지겠구나.’

사실 설휘에게 좁은 방이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곳에 머물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자리에 앉은 설휘. 그는 조금 전 태황각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정파연합의 회합 자리라면…….’

미래가 조금 달라진 걸까? 아님 태황각주가 말을 다르게 표현할 걸까?

정파회합이라면 그곳에 화산파만 있다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똑똑히 어느 연무지대처럼 정파회합 자리라고 분명 말했다.

‘뭐, 그냥 말했을 수도 있겠지.’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일.

설휘는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이곳에 들어올 때 받았던 도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남청색. 그리고 우측 쇄골 아래에 그려진 월(月)이라는 글자.

옷감은 싸구려 재질이고,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경장이었지만, 설휘에겐 다른 의미로 기분이 묘했다. 과거, 이 복장을 입은 자들을 얼마나 선망했던가.

이렇게 흑월대 복장을 하고 있으니, 마치 선망했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안에 있느냐?”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설휘는 인기척을 냈다.

“들어오십쇼.”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흑월대 출신으로 보였다.

가슴 아래에 월(月) 자가 선명히 박혀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설휘는 담담히 물었다.

“음, 바로 따라나서거라.”

“……?”

한마디 하고 돌아서는 사내.

설휘가 이해하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곧 식사시간이다. 너는 오늘 특별히 배정된 곳에서 먹을 테니, 군말 말고 따라오거라.”

‘식사시간?’

설휘는 의아해했다.

흑월대는 태황각에서 딱히 대단한 취급을 받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식사는 다 같이 모여서 한 번에 처리하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알려주는 게 아닌, 특별한 곳이라니?

“뭐 하느냐. 어서 나오지 않고.”

짜증스런 외침에 설휘는 바짝 그의 뒤를 쫓았다. 일단은 어울려주기로 했기에.

***

안내받은 곳은 이름 모를 유원이었다.

‘허.’

태황각에 있을 동안 한 번도 가보진 못한 곳이며,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다.

설휘가 그렇게 사내를 한참을 따라가자 정자 하나가 보였다.

거기엔 마침 좌상으로 보이는 탁자와 커다란 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여기서 식사를 하면 된다.”

가까이서 보니 백숙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이런 귀한 음식을 내놓은 것이다.

“감사합…….”

예를 표하던 설휘의 동작이 멈칫했다.

안내했던 사내는 인사도 받지 않고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가 사라지자 설휘는 정자 중앙에 가서 앉았다.

수저가 놓인, 잘 차려진 백숙 그릇.

그걸 보던 설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신고식.

꽤 예전 일이긴 하나,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해왔던가. 그도 밑바닥에서 치사하고 비열한 수가 오가는 걸 많이도 봤었다.

그러니 이 정도는 뻔히 보이는 수법이다. 딱 봐도 흑월대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명소. 이런 풍광 좋은 곳에서 혼자 밥을 먹다간, 뭔가 큰일이 난다는 것쯤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맛을 한번 볼까?”

하지만 설휘는 피하지 않았다.

자고로 매복은 예상하지 못했을 때나 피해가 큰 법. 이미 상대의 노림수를 읽은 이상, 여기에 어울려 주었을 때 그들의 반응이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우적우적.

설휘는 그렇게 닭다리를 들었고, 기분 좋은 냄새를 맡으며 한입 베어 물었다. 그렇게 한 입, 한 입. 천천히 음식을 먹어가고 있었다.

저벅저벅.

반쯤 음식을 먹었을 때였을까.

주변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설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뒤에.

“……너, 여기서 뭐하고 있지?”

인기척을 내며 한 사내가 정자 위로 올라오며 말을 걸었다.

설휘는 그제야 시선을 들어 그를 봤다.

‘대충 알겠군.’

설휘는 그가 예전에 본 신비랑이란 걸 알아보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그의 힘과 비교해서 훨씬 더 성장한 상태라는 것도 알아보았다.

얼마 가지 않으면 절정에 도달할 거란 것도.

“밥 먹고 있다.”

“…….”

설휘의 대답이 어처구니가 없던 것일까.

신비랑은 잠깐 기가 막힌 표정으로 변하는 듯하더니 잠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흑월대냐?”

“그래, 오늘 임명받았지.”

“오늘? 허…….”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화가 날 법함에도 너무 냉정해 보일 정도로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허면, 여기가 어딘 줄은 모르고 왔겠군?”

그는 냉랭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 유원은 넓어 많은 대원들이 쓰기에 적합하다. 다만, 우리 흑금대와 흑목대가 사용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여긴 흑금대의 전용공간이다. 이 정자는 내가 사용하는 곳이며 바로 옆에 내 수련공간이 있다.”

“쩝쩝. 그래?”

설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신비랑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너무 태연한 기색이라, 나름 참았던 이성의 끈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그는 초인적인 인내로 다시 말을 걸었고.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이곳은…….”

“알았다고. 네 공간인 거.”

빠뜩.

결국 이성이 존재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와버렸다.

만약 지금 한창 수련 중인 정중동(靜中動)의 심득. 고요함 속의 움직임이 있다는 의미를 고민하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쳤을 것이다.

“결국, 피를 봐야…….”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신비랑이 검자루에 손을 올리자.

“아. 생각났다.”

설휘는 완전히 분리해버린 닭 날개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 마지막 초식은 힘을 빼는 거다.”

“……?”

“네가 펼쳤던 마지막 초식 말이다. 그건 힘을 빼야 제대로 검풍(劍風)을 생성할 수 있지.”

흠칫!

그 말에 곧장 달려들 것 같던 신비랑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이내 얼굴이 붉어지며 목청이 커졌다.

“이놈. 내 무공을 훔쳐본 거냐!”

“훔쳐보기는, 닭 먹으면서도 알 수 있는 건데…….”

“뭐라고……?”

“여기서도 보인다. 네가 펼쳤던 검술. 공기를 때리며 흘러내는 수많은 바람결이.”

“무슨…….”

상대의 알 수 없는 말에 신비랑은 눈을 껌뻑였다.

하지만 설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점점 기세를 일으키며 몰아가는 과정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응축된 바람을 폭발시킬 때, 그 힘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어.”

“……!”

신비랑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그가 수련하고 있던 마지막 흑금대의 무공, 파도풍검(波濤風劍)에 대한 새로운 주해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이놈이, 나도 아직 생각 못 한 것을 어떻게?’

지금에 이르러서 이 사내가 자기 자리에서 멋대로 닭을 뜯고 있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강한 검풍을 펼치기 위해서 내력을 실은 초식. 거기서 힘을 빼라고 하다니?

이는 계속 힘을 실어서 실패한 그간의 행적과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이었기에 더 당황했다.

‘2촌. 아니 3촌. 그 정도만 힘을 빼면 한 번 더 휘두를 수 있다는 건가?’

그렇게 신비랑이 멍하니 서 있자 설휘는 마지막으로 발라먹은 목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빠른 걸 추구하면 할수록 왜 몸에 힘을 빼는지 알아? 바로 정확성과 집중이 부족해지기 때문이지. 보통 거침없이 몰아칠 때는 내력을 전부 발산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

“내력을 빼고 난 뒤에도 그 힘이 온전히 전달되는 데 주의점을 둬야 하고. 그 뒤에는 본인의 기초 체력과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다. 알아들었으면 저리 가. 더 모르겠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

신비랑의 눈이 번뜩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설휘가 내뱉은 건 자신의 검로에도 통하는 깊은 심득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고인은…… 어떻게 이곳에 발걸음을 하신 겁니까.”

그래서 태도가 자연스럽게 변했다. 행동도 눈빛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뭐. 어쩌다 보니.”

설휘는 꺼억, 하고 지저분하게 트림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며칠 있지 않을 거니까. 태황각주가 준 일감을 좀 맡았거든.”

“아…….”

“그럼 수고해라. 이번엔 무관도 꼭 합격해야지.”

“예. 그러겠습니다.”

파밧!

설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비랑은 크게 허리를 숙이며 포권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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