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뮬레이션-250화 (251/379)

250화. 추구하는 목표 (1)

화산파 일대제자 이수.

그는 이번 정파회합에서 벌어지는 토벌전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은 자였다.

구종명이 언질을 내렸기에, 화산은 이미 마교놈들이 이곳으로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수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서쪽에 포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사냥감에 불과한 마인들이 내려오기를.

화산파 장로 구종명의 제자라는 위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도 떡을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제자인 이구명도 있었으나 그는 조금 더 공을 탐했고, 실적을 세우기 위해 따로 움직이다가 설휘에게 발각되었다.

“지옥? 크크큭. 어디서 재미있는 놈이 굴러들어왔군.”

어찌 되었든, 이수로서는 설휘의 말이 같잖아서 비웃음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도 피식피식 웃었다.

일대제자 이수의 무위는 초절정.

그렇기에 그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사사사사삭.

이수가 경신법을 펼쳤다. 그 움직임은 감탄할 정도로 깨끗한 화산파의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였다.

방위에 오행의 묘리가 스며 있는 데다, 상황에 따라 매화의 꽃잎처럼 예리하고 빠르게 운용 가능한 화산의 상승 보법 중 하나.

일순간에 엄청난 속도의 보법이 펼쳐졌고, 이수가 설휘 앞까지 도달하기까지는 고작 눈 한 번 깜빡일 순간에 불과할 정도였다.

“……!”

허나, 이수는 막 매화검법을 펼치기도 전에,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설휘의 앞에 선 순간.

마치 금단의 영역에 들어선 것처럼, 해선 안 되는 짓을 저질러버린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게 이수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솨아아아아-

사늘한 한기가 스쳐 지나가고, 이수의 목이 잘려나가 버렸다.

너무도 빠른 동작이라, 동작을 본 사람조차 드물었다. 애초에 초절정의 무위를 가진 이수였다.

그가 고작 마교의 잡졸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인식하기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투욱.

바닥에 굴러떨어진 이수의 목.

휘두른 검을 멈추고 천천히 주변을 응시하고 있는 설휘.

“이, 이게 뭐야?”

“어어? 어어…….”

그제야 모든 상황이 모든 사람에게 제대로 각인되었다.

“우선 한 명은 제멋대로 나대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놈!”

채앵! 창!

아직 얼떨떨한 가운데, 주변에 있던 사내 몇 명이 급히 칼을 빼 들며 달려들었다.

허나, 이번엔 더욱 쉽게 제압당했다.

촤아아아악.

그저 한 번의 움직임. 그것만으로 무려 다섯의 목을 쳐버린 것이다.

“엉겁결에 달려든 다섯 놈도 죽었고.”

“…….”

일순, 분위기가 살얼음판처럼 차갑게 변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

그 속에서 설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공포로 온몸이 굳어버린 이들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한 자들.

그리고 공격을 해야 하는지, 수비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을 향해.

“이젠 내 손에 모두가 죽는다.”

짤막하게 선언했다.

그 말에 무당과 소림의 대장 노릇 하는 놈들의 외침이 들렸고.

“저 녀석을 죽여라!”

“모두 덤벼!”

그 외침을 들은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달려들었다.

“애송이들.”

그 순간. 설휘의 검 끝에서 검광이 피어 나왔다.

지이이잉.

극마에 달한 절대기공이, 주변을 에워싸는 모든 이들에게로 뻗어나갔다.

***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급하게 걸음을 한 구종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무슨…….”

사방에 피가 낭자했다. 주검이 된 백여 명의 시신들 속에는 화산파 소속의 무인들도 보였다.

“오셨소이까?”

산처럼 쌓인 시신들 속에서 뭔가를 살펴보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무당파의 진무관주.

먼저 도착해서 상황을 분석하고 있던 그가 말을 건넨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포획했다고 여겼던 마교놈들이 한 짓입니다.”

그 말에 구종명이 곧장 발끈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이곳에 모인 마교놈들은 많이 쳐줘 봐야 일류. 그중 천라지망을 뚫을 정도로 고강한 녀석은 없습니다!”

“그렇소이까?”

진무관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이 죽었을까요?”

그 눈에는 시퍼런 살기가 이글거렸다.

“진무관주…….”

“처단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교류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이런 식으로 저희들에게 보답을 하는 겁니까?”

“진무관주. 이건 오해요. 마교 쪽에서 이 정도로 고강한 놈들이…….”

“정신 차리시오, 구 장로! 놈들은 마교입니다!”

“……!”

진무관주의 갑작스런 호통이 터져 나왔다.

“마교! 그놈들은 과거부터 추악하고 더러운 짓을 일삼던 놈들입니다. 애초에 믿은 것 자체가 실수이외다! 믿을 수 없는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무슨 기대를 하셨습니까!”

“…….”

당황한 구종명은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게, 진무관주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자파의 제자들이 수도 없이 죽었다. 아무리 한배를 탔다고는 해도, 이런 예상치 못한 인명피해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또한 그곳이 하필 마교였다.

스윽.

구종명의 시선이 한쪽에 머물렀다. 잘려나간 목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수…….’

화산파의 촉망받던 일대제자.

그런 아이까지 죽었다.

장문인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걱정이 들었다.

“생각을 달리하셔야 합니다. 구 장로.”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소림의 혜초. 탁한 목탁소리처럼 딱딱하게,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마교는 오로지 절대 악으로 간주하셔야 합니다. 협력이나 교류가 아니라, 그들의 약점을 찾고 파고드는 데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

“화산이 그동안 진행해 온 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압니다. 큰 손해를 감내해야겠지요. 하지만 이대로 계속되다간…… 이 강호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구종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리 되니 어떤 말로도 반박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역겹다.’

협력하자는 그들의 말은, 항상 자신들 쪽의 이익을 대변할 때만 사용됐으니까

“……알겠습니다. 내 두 장로께 오늘 일에 대해선 반드시 사과하고 필요하면 갚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좀 더 사태를 정확히 알아보고, 다음에 따로 말씀하시지요.”

구종명은 두 노인을 일별하며 예를 표했다. 그리고 말없이 산을 걸어 내려갔다.

으드득.

그런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있었다.

***

“오늘따라 비가 거세게 내리는구먼.”

창가를 바라보는 흑마전주 구대염의 표정은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기분이 좋은 것처럼 입꼬리를 올리다가도, 이내 뭔가 울적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으니까.

“저번에는, 비가 내리는 게 좋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옆에 서 있던 부전주가 조심히 말을 걸어왔다.

변덕이 심하고 기분이 수시로 널뛰는 흑마전주는, 보좌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랬지. 이렇게 궂은 날씨에는 항상 뭔가 사달이 나더라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흑마전주는 끄덕였다. 그러고선 뒤돌아서며 웃어 보였다.

“난 그게 좋아. 해결해야 할 사건이 생기면 거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예…….”

부전주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흑마전주의 말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최근 벌어지는 천마 제자들 간의 권력투쟁이 심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은거했던 절대고수 두 분이 갑자기 사제자를 지원한다는 말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제까지 잠잠하게 물밑 작업으로 이루어지던 포섭이 전면적으로 드러났다. 사방에서 영입과 협정이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당연하게도, 8대 전주는 포섭의 제 일 순위였다.

바로 엊그제, 전주 중 두 명이 제자들의 권고에 응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던 전주들이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흑마전주는 일전에 거절했던 적이 있기에, 아직 대놓고 기별을 전해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조만간 저들이 다시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쳐올 것을.

그리고 말이 구애지, 어떻게 보면 협박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름지기 거래는, 웃으면서 칼을 들이밀 때 더 좋은 조건이 나오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아직 소식이 없느냐?”

“아, 사제자의 가신으로 온 녀석 말입니까?”

부전주는 재빨리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구파의 장로, 그만한 자의 목을 가져오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하긴.”

“그리고 설사 구파 장로의 목을 가져온다고 해도, 저는 반대하고 싶습니다.”

구대염이 시선을 돌렸다.

“왜지?”

“사제자께선 천살성을 가진 분이 아닙니까. 혹여나 언제 어떤 사고로 죽게 된다면, 그 뒤를 누가 이어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절대고수 두 분의 생각도 어떤지 모르고. 변수가 많습니다.”

기존에 세를 형성한, 혹은 촉망받는 이가 힘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되면 자신들의 입지가 작아질 것이고, 결국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흐음.”

흑마전주는 그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는 창가를 보던 표정 그대로,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손님이 오셨습니다.”

밖에서 소리가 들렸고, 누구냐는 그의 물음에.

“이전에 왔던 사제자의 가신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익숙한 인물이 거론되었다.

***

설휘는 구대염이 내어주는 의자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구대염이 물어왔다.

“그래. 장로의 목은 들고 왔는가?”

구대염의 말에 설휘는 기다렸다는 듯 목함을 들이밀었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구대염은 이내 목함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이자는 누군가?”

목함 안을 내려다보며 기대를 잔뜩 담은 물음을 던지는 구대염.

그도 구파 장로의 얼굴을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설휘는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구파 장로의 목은 들고 오지 못했습니다.”

“…….”

잠깐 침묵이 흘렀다.

구대염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상대는 가져와야 할 것을 가져오지 않았음에도 당당했다. 해서 그의 시선이 오히려 의아하게 바뀐 것이었다.

“허면, 이 목의 주인은 누구냐?”

“흑월대장 적명이란 자입니다.”

“적명? 흑월대장이라면…… 태황각주의 부대?”

“예.”

“……허.”

구대염은 짧은 탄식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맞은편 설휘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왜 장로의 목이 아닌 이자의 목을 가지고 온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자의 목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충분? 허허. 하하하.”

설휘의 어이없는 행동에 웃고 마는 구대염.

분명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었다.

그럴진대.

평소 같으면 상대도 하지 않았을 그일진대, 이상하게도 계속 말을 붙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의 목이 다른 제자분들에게 내 사정을 말하기에 충분한 명분이란 말이지?”

“다른 제자들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흑마전주께 바치는 명분으로는 괜찮을 듯 보입니다.”

“또다시 말장난을 하려는 거군.”

그는 피식 웃었다.

이 녀석의 대화는 정말이지 불쾌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대화를 멈추지 못하게 하니까.

“그래, 우선 들어보지. 그자의 목을 왜 들고 온 건지.”

설휘는 생각했다.

이곳으로 오면서 수없이 생각했던 것.

화산파 구종명의 목을 가져와야만 그를 설득할 수 있는 걸까?

정론은 그럴 것이다.

시스템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고.

허나 이제껏 겪은 많은 경험들을 비춰 보건대, 자신에게 주어진 시스템은 만능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일을 알려주는 데는 분명히 대단하나, 그 안에 완벽하지 않은 점도 보였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송화를 살릴 수 있었던 건, 바로 유패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설휘는 그 점을 파고들었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장로의 목이 아니라도 그를 설득시킬 수 있으리라고.

시스템이 내미는 주어진 답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것도 답이 될 수 있다고.

적명의 목을 들고 온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설휘는 담담히 고개를 들어 보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