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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52화 (253/379)

252화. 추구하는 목표 (3)

설휘가 그동안 여러 회차를 겪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것들은 ‘완벽하게’ 통제받지 않는다.

사람, 날씨, 환경 같은 변하지 않는 물리적인 것들은 원래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완벽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송화였다.

처음에 시뮬레이션은 송화를 구하며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설휘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그것을 극복했다.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설휘 역시 생사가 갈리는 격전을 겪었다.

하지만 전지전능한 줄 알았던 시스템의 시뮬레이션을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해결해 냈다.

‘불확실한 변수,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흐름.’

지금에 이르러서 생각해 보면 그건 계산을 포기했다는 쪽이 더 옳았다.

시스템의 허점이 나타나는 부분은 사람의 마음, 각 개인이 가지는 내면의 생각이었다.

유패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는 인간관계에 큰 비중을 둔 사람이었기에, 내려진 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기기아대를 회군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을 도왔다.

그저 단편적인 계산이라면 그렇게 될 리가 없었다.

개개인의 내면의 깊은 곳에서 스스로 판단하려는 심리. 말하자면 자아(自我)를 건드려야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천미려의 말은, 설휘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파문을 일게 했다.

그녀가 말한 ‘그들이 자신의 반을 알고 반은 모른다.’는 말.

이건 천미려가 시스템의 존재를 알고 있고, 어쩌면 그들을 이용하기까지 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대체 그대는 어떤 존재인지…….”

“잠깐만요.”

설휘가 말하는 도중 슬쩍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천미려.

그녀는 뭔가를 확인하는 듯한 동작과 함께, 이내 밝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찾아왔네요.”

“……?”

“잘 얘기해 보세요. 절반의 성공을 쉽게 버리지 마시고요.”

투욱.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서 활짝 열린 창가로 몸을 날렸다. 지붕을 밟고 올라간 것인지 삽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계시는가?”

“……!”

익숙한 목소리. 설휘는 누군지 알아챘다.

흑마전주인 구대염이 이곳까지 발걸음을 한 것이다.

잠깐 천미려가 사라진 창가를 보던 설휘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아직 시간은 많다.’

언제고 그녀가 했던 말에 대해서 좀 더 깊은 대화를 해야 할 듯싶었다.

***

구대염은 방문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애초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설휘는 그를 보자마자 곧장 물었다.

구종명의 제자를 건넨 후 이곳에 찾아온 걸 보면, 전하고자 하는 의중이 있어 보였으니.

“확실히 넌 재밌는 구석이 많은 녀석이구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녀석.”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내가 사제자 밑으로 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쪽은 비대칭 전력이다.”

“……?”

“최근 전주들 중 다섯 전주가 다른 제자들에게 붙었다. 가용 전력에서 차이가 나니, 내가 가더라도 극적인 효과를 얻을 수는 없을 거란 말이다.”

‘허락한 건가.’

말은 뻗대는 투였지만, 설휘는 얼굴이 밝아졌다.

흑마전주의 영입. 흑마부대의 편입으로 인해 사제자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될 수밖에 없다.

곤마는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의 조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해서 난 기대를 해보려 한다. 은둔고수 세 명과 천살성을 가진 군주. 거기에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인물. 장로의 목을 가져올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너라는 인물을.”

“…….”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자신을 보고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말은, 왠지 간지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서 검증을 해보러 왔다. 과연 네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

‘자존심이 상했던 건가.’

설휘는 구대염의 속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일전에 논검에 패했던 것, 그리고 자신의 반박이 논파 당했을 때에 불쾌해 했던 표정들.

아마도 그때부터 자신을 굴복시키려는 마음을 가졌을 터였다.

츠츠츠츠.

구대염의 주위로, 지반을 흔들 정도로 강렬한 기파가 퍼졌다. 그 모습에 설휘의 표정이 굳어졌다.

화공도 아니고 빙공도 아닌 순수한 마공.

이런 류(流)의 마공은 그도 처음 접했다.

‘나도 그와 같은 상황일까.’

설휘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극마에 오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거기에 환골탈태까지 이뤄졌는데, 이상하게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과거의 극마와 다른 변화가 하나 생겼다.

자신의 내공이 추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갑자인지 예상을 할 수 없으니, 얼마나 강해졌는지 본인 스스로도 알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이다.

해서 구대염을 보며 생각하고 있었다.

새로 얻은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고.

그 힘이 마공으로 구현될지, 아님 정종무공으로 구현될지도 솔직히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지금의 설휘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스릉.

설휘는 흑월대에서 받은 검을 빼내며 자연스럽게 기운을 운용했다.

구대염처럼 기운을 끌어올리지도, 다른 이들처럼 마공의 기공을 검에 싣는 것도 아니었다.

검 주위에 스치는 미약한 기류가 검 끝에 담기길 바랐다.

휘르르륵.

그러자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기운이 검 끝으로 스며들었고, 이내 새하얀 빛이 존재를 드러냈다.

“너, 방금…….”

그 모습을 보던 구대염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한마디를 또다시 내뱉었다.

“설마 심검의 경지인가?”

수중무검 심중유검(手中無劍 心中有劍).

도가계통 검가에서 주로 나오는 표현으로, 손에는 검이 없으나 마음먹은 곳에는 검이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정신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검의 기운 자체가 강맹했다.

검 끝에 담긴 기운은, 단순히 내공을 끌어올리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거라서요.”

“처음……?”

구대염의 눈빛이 이내 가라앉았다. 동작은 능숙해 보였지만, 거짓을 고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에.

예상하지 못한 기세였지만, 어차피 이제 와서 말을 돌릴 수도 없었다. 곧 실전이 펼쳐질 거란 생각에 다시금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츠츠츠츠측.

두 사내 사이로 기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내기가 아닌 무형의 진기라 그런지, 공증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확인해 보지. 흉내 내기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구대염이 입꼬리를 올리자마자 움직였다.

사악!

설휘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였다면 어떤 신법을 펼치는지, 언제 기습을 날리는지에 집중하며 즉각 반응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가 빠르게 회전하는 사이에도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은 것이다.

‘기의 파동.’

설휘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부자연스러운 흐름, 거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쩌엉!

한순간 설휘가 사라짐과 함께, 공중에서 격돌이 일어났다.

따로 검기를 날린 게 아니라 근거리에서 한 번 검을 나눈 것이다.

쿠와아아앙!

두 번째는 처음 부딪힌 곳에서 십 장이나 떨어진 지면이었다.

서로 모습을 드러내며 순간적인 뇌전이 그들에게로 쏘아졌는데, 둘 모두 피해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

쿠와아아앙!

원구(圓具)처럼 생긴 폭풍이 나타남과 함께, 땅의 지반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충격.

강기보다 한 차원 높은 검막. 그걸 펼쳐낸 구대염의 필살의 일격이었다.

스으으으.

그 일격을 맞은 설휘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타났다.

그걸 본 구대염의 눈썹이 흔들렸다.

“흘려냈는가…….”

“운이 따랐습니다.”

그 말에 설휘는 짧게 예를 표했다.

“놀랍구나. 높게 쳐줘도 극마에 막 오른 자인 줄 알았는데, 이미 통달의 수준까지 왔다니.”

“…….”

“훌륭하도다.”

구대염이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설휘의 무위에 탄복한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그건 설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자신이 이 정도의 무위를 펼쳐낼 줄은 모르고 있었다.

이건 모든 능력이 비상식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군. 자네는 서둘러 혈사전주(血死殿主)를 포섭하게.”

“…….”

“우리 세력이 늘었다곤 하나, 다른 제자들 역시 세력을 갖췄을 터. 이럴 때일수록 일당백의 고수들이 같이 연계하여 움직여야 한다. 죽음을 도외시한 무인이라면 혈사전주가 제일이니.”

“아.”

설휘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음에 크게 끄덕였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 조언도 필요할 것이고. 하지만 좋구나. 곤마 님 밑에 이런 아이가 있다는 게.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

“좋은 날이구나. 제법 즐거운 날이야. 껄껄껄.”

흑마전주는 그렇게 돌아섰다. 그는 어깨가 한층 가벼워진 모양이었다.

반면 설휘의 눈빛은 사뭇 진지해졌다.

흑마전주 한 명의 포섭으로 끝이 아니라니. 대체 이 세력전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음…….”

설휘는 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힘. 왠지 이제는 확실히 좀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더욱 불안했다.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이보다 강해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기에.

***

마교는 평화로워 보였다.

늘 그렇듯 외부 경계병들은 철통처럼 주변을 순시했고, 내부에서도 별다른 소란이나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

허나 사제자의 기행은 사원팔전을 넘어, 이미 총단 수뇌부까지 깊숙하게 퍼져 있었다.

은거하던 절대고수를 무려 3명이나 영입하고, 그와 더불어 흑마전주가 곤마의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몇몇 장로와 마교의 수뇌부 인물들은 그 소문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로 확인되자, 다들 놀라움에 휩싸였다.

특히 사제자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뭣이! 흑마전주까지 영입했다고!”

일제자는 흑마전주 영입 소식을 듣자마자, 문짝을 부숴버릴 정도로 격노했다.

별것 아니라고, 아니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사제자의 전격행보는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도 이번에 전주 세 분을 포섭하지 않았습니까.”

절대고수 영입 소식을 듣고 일제자와 휘하의 고수들은 가장 빠르게, 그리고 미친 듯이 주변을 활보했다.

그동안 조금 뭉그적거리던 대상, 전주들을 포섭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흑마전주는 전주들의 중심이라고 알려진 자다.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아야 해!”

그럼에도 일제자 살마는 만족하지 못했다.

흑마전주가 누군가.

마교의 주전력인 흑마부대의 장이다. 그들은 중원 침공 때 최전선에 설 무사들이었다.

충성도도 정평이 나 있고, 무력 또한 높지 않은가.

“이리 된 이상, 절대고수의 수를 늘려야 한다. 더 강한 고수를 찾아야 한다!”

그의 외침에 수하들은 모두 부복했다.

그리고 그들도 일제자가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대단하군. 이게 막내의 저력인가.”

이제자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두 명의 전주를 포섭해냈지만.

그럼에도 사제자가 흑마전주를 포섭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그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수하들에게 은마원을 조사하라 이르거라.”

마후의 관심은 은마원. 은거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있었다.

절대고수의 수를 맞추기 위해서, 가장 쉽고도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자님. 그들은…….”

뜻밖의 명령에 수하들이 갸웃했다.

대외적으로 은마원은 삼제자를 지원하다고 알려져 있지 않은가.

“생각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해라. 그들은 분명히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마후는 코웃음쳤다.

어차피 제대로 된 은거고수들은 괴짜들.

누군가에 의해 움직인다면 진짜 은거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지?”

덕분에 셋째 제자 아영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어 있었다.

사제자가 부상하자 일제자와 이제자가 본격적으로 세력 형성에 힘쓰기에 나섰다. 이대로 가다간 모든 이들에게 잡아먹힐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선 사정상 추가적인 영입이 어려웠다.

“주군. 이리 된 거, 뇌옥의 죄수들을 섭외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죄수?”

“예, 총단의 뇌옥에 거하는 죄수들이 있습니다. 성정이 포악하여 감금되었으나, 그중에는 극마에 다다랐다는 놈들도 있으니. 그들을 빼내 와서 전력으로 삼는 겁니다.”

“그러다 혹여나 문제가 되면…….”

삼제자 아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죄를 지어 뇌옥까지 내려간 이들, 그들을 끌어들인다면 차후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매우 높았다.

“그럼 적절히 이용해야지요. 놈들의 소속이 사제자라고, 겉으로는 그렇게 하는 겁니다.”

“좋아. 그렇게 진행해.”

아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에 군사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저희 역시, 전주를 한 분이라도 반드시 영입해야 합니다.”

“지금 누가 남아있지?”

“교주의 명을 따로 받는 벽마전주(壁魔殿主), 그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 자명합니다. 그분을 제외하곤 혈사전주가 계십니다.”

“……혈사전주. 그분도 중립이 아닌가?”

“그렇긴 하나, 적어도 벽마전주와는 입장이 다릅니다. 다른 세력이 채가기 전에…….”

“그래. 지금 준비해.”

아령은 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미 여섯의 전주가 포섭된 상황.

교주의 명을 받는 벽마전주는 누굴 따르는 자가 아니었기에, 이제 남은 자는 혈사전주였다.

물론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건 다른 제자들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뜻했다.

한편, 그 시각.

혈사전 건물 앞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바로 혈사전주를 설득하기 위해 온 설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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