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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54화 (255/379)

254화. 혈사전주가 내는 시험 (2)

정적이 일었다.

혈사전주의 제안. 내 수하들과 함께 교육을 받아 보겠냐는 말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지금 자리에 모인 이들은 마교 교주 천마의 직속 제자들. 최소 서열 30위권 안의 거물들이다.

그럼에도 혈사전주는 거침이 없었다. 오히려 느긋한 말투로 채근했다.

“이거, 이거. 제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나 봅니다. 혹 기분이 상하셨다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어쩌겠습니까?”

유들유들한 얼굴. 분명히 고개를 숙이며 하는 말인데, 그 안에 묘하게 뼈가 있었다.

“…….”

“……”

“…….”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그 정도 말속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침묵은 길었고, 그 가운데서 설휘는 혈사전주를 살폈다.

‘이게 서열 7위가 가진 배포인가.’

팔전주 중 최고 서열. 그리고 임무달성률이 십 할에 달한다고 알려진 조직.

본교 최강의 부대 중 하나라는 혈강대를 이끄는 수장.

무위 또한 한때 부교주 물망에 오를 정도였다.

그쯤 되니 천마의 제자들, 훗날 차기 교주가 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나올 수 있을 터.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긴 침묵을 깨고 손을 들어 올린 사람이 있었다.

“호오. 이제자 마후 님께서 직접 말입니까?”

“아. 아쉽게도 그건 곤란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많아서 말입니다. 대신 제 수하 중에 하나를 혈강대의 집체교육에 보내겠습니다. 귀기(鬼基)라는 녀석입니다.”

“적운의 귀기(鬼氣)! 과연, 그 정도라면 부족함이 없지요.”

타악.

혈사전주가 손바닥을 주먹으로 두드리고, 마후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귀기? 적운의 귀기…… 아!’

설휘는 기억을 더듬어, 과거 만답서생에게 들었던 교내의 고수 목록을 떠올렸다.

귀기. 마후가 각별히 아끼는 세 가지 패(牌) 중 하나로, 기습에 한해서는 극마의 고수도 죽일 수 있다는 평을 듣는 고수.

주 무기는 암기였지만, 사실은 단병접전에도 능했다. 저돌적인 성격 때문에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핏기만 가득하다고 해서 붙은 별호가 적운(赤雲).

‘무조건…… 이길 생각이군.’

설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적운의 귀기 정도면, 혈강대의 집체교육에 넣기에는 과한 인물이다. 자칫하면 모욕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후는 여기서 승부를 보려고 한다. 모욕이든 무시든, 다 무시하고 반드시 혈사전주를 영입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혈사전주의 시선이 남은 제자들에게로 돌아갔다.

“저도 받아들이겠어요. 제 휘하의 주서린(主敍璘)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요?”

이번에 손을 든 것은 삼제자 아령이었다.

“오? 주서린이라면 저도 들은 적 있습니다. 삼제자님을 보좌하는 책사로, 여인임에도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무재를 가진, 가시 많은 장미라지요?”

주서린.

혈사전주의 말처럼 그녀는 아령의 책사였다.

두뇌가 영활하고 아는 것이 많으며 몽골어, 왜어, 천축어까지 모르는 언어가 없고, 해독하지 못하는 밀어가 없다고 할 정도.

흔히 말하는 두뇌파지만, 무위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일류와 절정, 초절정과 초마에 오르는 일련의 과정이 정말로 놀랍도록 빨랐다고.

그것이 몇 년 전의 평가니, 몇몇 사람들은 그녀가 지금쯤 극마에 오르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무공의 성취도 빨랐다.

“다들 작심한 모양이군. 좋다, 그렇다면 우리 쪽에선 요수광(寥修光)을 보내지.”

이번엔 일제자 살마가 입을 열었다.

“허, 일제자께서도 진심이시군요.”

“이거 참, 이번 영입은 만만치 않겠구만.”

“그러게.”

혈사전주는 담뿍 미소를 지었고, 아령과 마후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수광.

마교 내부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보를 좀 다뤄 본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일단 살마의 비밀무사이며, 그가 가장 아끼는 두 사람 중 하나.

이제자 마후의 귀기가 저돌적이고 피를 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면, 그는 극도로 신중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람을 처리하고 다니는 전형적인 암살자였다.

무위 또한 추정이 어려웠다.

초마는 이미 가뿐히 넘어선 고수. 다만, 극마에 다다랐는지 어떤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일제자 휘하의 극마고수가 모두 밖으로 나왔다는 보장은 없지.’

설휘는 과거 살마와의 싸움을 떠올렸다.

그 당시 요수광이란 자는 다른 일이 있었는지 따라오지 않았다. 그러니 무위의 추정은 불가.

“그럼 남은 분은…….”

혈사전주의 시선이 움직이자, 다른 제자들도 그를 따라 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자리에 앉아 있는 곤마였다.

“다들 이러시니 저도 받아들이지요.”

곤마는 그런 시선을 보면서 무덤덤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옆을 보며 말했다.

“제가 보낼 이는 설휘. 여기 옆에 있는 이자입니다.”

“…….”

“…….”

정적.

이전처럼 싸늘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썩 묘한 느낌이었다.

혈사전주만 흥미로운 얼굴이었다.

“자, 좋습니다. 그럼.”

짝짝.

혈사전주가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한 시진 뒤, 오후에 집체교육을 시작할 겁니다. 저희 교육을 담당하는 당사에, 참여할 인원을 보내주십시오. 그럼, 전 교육을 준비하러.”

그렇게 제 할 말만 하고, 혈사전주는 예를 표하며 걸어 나갔다.

“……흥.”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살마는 불쾌한 얼굴로 걸어 나갔고, 마후는 곤마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넨 참. 재밌는 구석이 있어.”

그러고선 몸을 돌렸다.

“풋!”

그리고 아령은 대놓고 비웃음을 짓고선 물러갔다.

“곤마 님…….”

“걱정 마라.”

곤마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밝아 보일 정도로 미소를 드러냈다.

“너라면 충분히 해낼 것이다.”

“…….”

“그렇지 않으냐?”

설휘는 잠시 다른 제자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한때는 경의로울 정도로 무섭고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왠지 모를 조급함이 보였다.

“최고점을 받아 보이겠습니다.”

그래서 설휘는 곤마에게 장담했다.

아마도 혈사전주를 설득하는 게, 이번 비밀무사가 되는 마지막 관문임을 인식하면서.

***

혈강대의 당사였다.

전각만큼이나 크게 지어진 건물 안에, 오십에 가까운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일개 분대를 이끄는 분대장급 이상의 간부들이 집체교육을 받기 위해 나와 있었던 것이다.

상반기와 하반기.

일 년에 두 번씩 시행하는 이 집체훈련에는, 혈강대를 대표하는 정예 고수들이 모두 모인다.

교육 훈련 과정은 모두 네 가지.

첫 번째 수업은 이론 수업, 두 번째는 복합훈련 수업이다.

세 번째는 전술 교육, 네 번째는 실전 수업이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모두 혈사전을 대표하는 정예 고수들. 그럼에도 이론 시험과 복합훈련 시험 때는 반 이상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3주간 교육을 받은 후 치르는 시험은, 그만큼 어렵고 통과하기도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다.

특히 전술 시험을 통과한 인원은 열 명이 넘은 적이 없다고.

마지막은 고작 한두 명만 통과할 정도로 극한에 가깝게 어려운 시험들.

하지만 그런 철저한 실력 위주가 혈사전주, 그리고 혈강대가 알려지게 된 이유였다.

여기에서 획득한 성적은 간부들의 추가 개편에 반영된다.

시험에서 고득점을 할 수 있다면, 언제든 혈사전주를 위시하는 혈강대장이나 부대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모인 걸까요?”

당사에 모인 수십 명의 무인들.

그들을 내려다보며, 2층에서 한 장년인이 물었다.

혈사전 교두 심완청(沈玩淸).

첫 번째 이론 수업을 담당하는 그는, 앞서 혈사전주에게 언질을 받았다.

천마 제자들이 보내온 인물 넷이 이곳에 합류해서 함께 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그런 것 같다. 대충 다 온 것 같구나.”

노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받았다.

백발과 흰 수염이 어깨까지 내려앉은 그는 총교두 소천괴(蕭天魁).

이번 집체교육의 책임자이자, 모든 시험을 주관하며, 잘못된 것을 시정하는 일을 맡았다.

“저 아이가 귀기란 자겠군요?”

장내를 내려다보던 장년인이 한곳을 가리켰다.

이리저리 흩어지고 모이고 하는 대원들 사이에, 홀로 조용히 서 있는 한 사람.

체구는 작았다. 소년이라 하기엔 컸고 성인이라 하기에는 작은, 거기다 깡마른 체격이라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았다.

“묘한 기운이군. 과연 마후의 한 팔이라 할 만해.”

소천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겉모습은 평범 또는 그 이하인데, 기감으로 느낄 때는 달랐다. 귀기가 뿜어내는 차가운, 그리고 거친 야생의 느낌은 멀리 북녘의 혹한 지대를 연상하게 했다.

머리를 길게 길러 눈앞을 완전히 덮은 것이,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우습고, 알 만한 사람이 볼 때는 서늘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이거 4단계는 무조건 갈 것 같군요. 혈강대원들 중에 몇 명이나 적수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혈강대 서열 1, 2위는 대적할 만할 걸세. 귀기라는 자, 아직 초마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걸로 보이니까.”

“그럼에도 이 정도의 음습한 감각이라니……. 아마도 품속에 넣은 왼팔이 살초겠군요.”

“그래.”

소천괴의 말에 심완청은 시선을 돌렸다.

“그럼 또 어디 보자……. 저기 있군요, 요수광.”

노인의 시선이 따라갔다.

벽에 등을 대고 조용히 주변을 훑어보는 자.

깡말랐지만, 귀기라는 자보다 키가 컸다.

얼굴은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고, 눈동자만 주변을 훑고 있었다.

“이리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살기가 느껴질 정도라……. 오히려 좋군요.”

심완청은 똑똑히 보았다.

요수광의 오른손에 쥐어진 갈고리.

특이한 병기로 보이는데, 저걸 실전에 쓴다면 실력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이 정도 인물들이 있어야, 우리 혈강대에게도 좋지.”

역시 괴인은 괴인을 알아보는 걸까.

소천괴는 살의에 찬 요수광이란 녀석을 보면서도 웃음을 보였다.

죽음과 삶, 그 경계선을 걷는 걸 즐기는 자. 개백신살(開魄神煞)이라 불리는 그다웠다.

“둘은 찾았고. 나머지는?”

“저기 저 여자, 진작부터 우릴 보고 있었습니다.”

심완청이 가리키는 손짓에, 소천괴는 쉽게 그 대상을 찾을 수 있었다.

여인이었다. 몸에 서책을 껴안고 머리에는 두건을 쓴 여인.

남자로 가득한 혈강대원들 사이에 있는 것이 어색해 보였지만, 또 그게 홍일점처럼 눈에 띄었다.

그런 그녀는 주위를 훑어보다가 이따금씩 2층에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미 당신들이 거기 있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과연. 무인처럼 보이지 않는 복장과 체구, 하지만 이 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듯하군. 이번 집체는 꽤 수준이 높겠어.”

“향후 교주가 될 이들이 내놓은 요원들이니 당연히 그러해야지요.”

“셋째 제자의 수하, 주서린. 확실한 무위는 알려지지 않았지?”

“척 봐도 초마는 넘어 보입니다.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군요.”

심완청 역시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이런 뛰어난 인물들을 가르친다는 것, 그리고 시험을 본다는 건 그에게 상당한 즐거움이었다.

그런 두근거리는 마음을 드러내며 심완청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나머지 한 명은…….”

그런데 이번에는 쉽게 찾지 못했다.

몇 번을 훑어보았지만 딱히 대단한 인물이 보이지 않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요. 넷째 제자의 수하로 보이는 이는…….”

“숨었다.”

“예?”

심완청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노인 소천괴는 뭔가를 발견했는지, 상당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숨었어. 우리 눈을 피해서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희 눈을 왜 피해…….”

“괜히 주목받고 싶지 않은 거겠지.”

“……?”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짓는 심완청.

하지만 소천괴는 빙그레 웃으며 끄덕였다.

“역용술과 잠영투체술이라……. 이거 상당한 물건이 들어왔어.”

그는 심완청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재밌을 것 같구나. 이번 혈강대 집체교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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