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극한의 훈련 (1)
“어이, 어이…….”
“이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밖으로 나온 혈강대원들 사이로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저 피를 보아서가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수많은 죽음을 보았고 경험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대원을 죽인 자가 같은 혈강대가 아닌, 위탁 교육생이라는 것.
거기다 제대로 된 싸움이 아닌, 기습적인 살초를 펼쳤다는 것. 무엇보다 장소가 다름 아닌 집체교육을 이제 막 시작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이 개 같은…….”
“저년, 내가 처리하지.”
척. 척.
머리에 피가 솟구친 대원 몇몇이 팔을 걷어붙였다.
안 그래도 혈강대가 받는 이번 교육에, 외부의 교육생들이 들어온 것에 대해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피를 뿌리니, 그 불편함은 노골적인 적개심으로 변했다.
특히 살수를 쓴 것이 여자라는 것.
죽은 이들과 딱히 친분까지는 없었어도, 같은 혈강대의 이름에 진흙이 뿌려진 기분이었다.
검을 꺼내고 다가서는 무인 서너 명은, 이번 일을 곱게 넘어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덤벼. 젖비린내 나는 것들.”
주서린이란 여인은 그런 흉악한 분위기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까닥까닥, 자신에게 다가온 사내들을 손가락질하며 도발하고 있었다.
스으으으으.
검 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 주서린의 검기를 본 혈강대 몇이 경호성을 울렸다.
“저. 저건……!”
“흑마공이야. 제길…….”
흑마공(黑魔功).
마교를 대표하는 최상승 마공 중 하나로,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검은 기운을 띤다.
파괴력 하나는 다른 무공에 비할 바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만큼 익히기가 까다롭다.
특수한 종류의 약과 독을, 어릴 때부터 번갈아 먹이며 연공시켜야 하고, 여차하면 체내에 도는 독기를 감당하지 못해, 애꿎은 애만 죽게 만드는 괴랄한 무공.
허나, 그런 만큼 대성에 이르기만 하면 단숨에 초절정에 육박할 수 있는 신공이다.
“어. 이거 어쩌지?”
“글쎄다…….”
당연히 혈강대원들의 기세가 주춤했다.
그들 또한 식견이 부족하지 않은 자들. 다른 무공도 아닌 흑마공을 펼쳐 보인다는 것은, 초절정을 이미 넘어섰다는 방증이다.
“겁먹지 마. 우리 세 명이 합세하면 제압할 수 있어.”
하지만 이들의 선두에 선 적혈명(狄血瞑)은 여전히 기세가 사나웠다.
방금 주서린이 죽인 녀석들은 그의 밑에 있던 조장들이다. 그리고, 그는 집체교육이 시작되기 전, 혈강대 서열 9위의 고수였다.
반면 상대는 아직 젊은 데다 여인.
아무리 흑마공을 익혔다 해도 십성까지 오르진 못했을 터. 주위에 있는 이들도 모두 서열 10에서 20위 내에 있는 이들이다.
이런데도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면, 두고두고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할 터.
“동시에 달려든다! 준비…….”
짝짝!
“야아, 이놈들 아주 여유가 넘치네 그래.”
헌데, 막 도약하기 직전, 귀를 찌르는 요란한 박수소리가 있었다.
“헛.”
“음…….”
그에 혈강대원들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멎었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교관 복장을 입은 이가 나타난 것이다.
짝짝. 짝짝.
내공이 실려 귀를 콕콕 찌르는 박수소리. 그걸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교관은 스윽.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혈사비를 이끌고 있는 혈비(血秘)다. 이번 집체과정에서는 복합훈련 수업을 맡았지.”
“혀, 혈사비…….”
“어우…….”
혈강대원들의 얼굴이 굳어지고, 설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혈사비.
부대 자체가 정예인 혈강대에서, 또 한 번 가려 뽑은 최정예 부대.
혈사전주를 마지막까지 호위하는 요원들로, 전주의 목숨이 질 때 같이 진다고 알려진 이들이다.
“아니. 저 어르신이 왜…….”
“이거…… 이번 집체교육 왜 이래?”
“…….”
설휘는 주변의 수군거림 또한 귀에 담았다.
혼란스러움과 은근한 두려움.
아무래도 혈비라는 교관이, 평소에는 이렇게 등장하지 않는 듯했다.
“수업을 하기 전에 미리 말해두지. 조금 전 당사에서 혈강대원 두 명이 죽었다. 하지만 교두는 그 일에 대해 조사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아보지 않을 것이고, 책임을 묻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 어차피 교육 중에 다른 교육생을 살해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지.”
“……!”
“…….”
솨아아아.
바닥을 훑고 황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집체교육에 다른 부대원들의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억울하면 힘으로 증명하는 것이지. 강자존. 그게 우리 혈강대원이 아니겠냐?”
꿀꺽…….
혈강대원들이 마른침을 삼키고 눈에는 불을 켰다.
강자존.
강한 자 뜻대로 모든 것을 한다는 마교의 불문율.
이걸 모르는 혈강대원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말한다는 건…….
죽이든 방해하든,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닥치는 대로 경쟁해도 된다는 것. 아니, 그렇게 하라고 등 떠미는 것이다.
상대가 주서린이든, 아니면 주서린을 공격하느라 등을 보이는 자든.
그 누구든 적이 될 수 있다는 무한 경쟁.
스르륵.
덕분에 이제껏 주서린에게 향하던 살기가 흐트러졌다. 다들 모두가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 좋아. 이제야 좀 자세가 잡히는군. 그래야지.”
큭큭큭.
교관이 살벌해진 장내에서 웃음을 흘렸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기력 쓰지 마라. 누군가에게 향하는 적개심. 분노 같은 거. 내 너희들에게 예언 하나 하지. 이제부터 수업 중 그런 감정을 가질 여유는 주어지지 않을 거다.”
“…….”
“……?”
혈강대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교관의 말은 지나치게 의미심장해서,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혈사비(血死秘). 준비해라.”
하지만 교관은 혈강대원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 번 슥 훑은 뒤 말했다. 그러자.
사사사삭.
“헉!”
“이게…….”
갑자기 대원들 뒤에서 나타난 수십 명의 혈사비.
그들은 교육생들이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준비해놓은 복면을 꺼냈고.
“아!”
“뭐야!”
복면을 대원들에게 씌우기 시작했다.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배력신보군.’
설휘는 갑자기 뒤에 나타난 존재를 느꼈다.
힘을 쓰면 벗어날 수 있지만, 그랬다간 자신이 노출되고 만다. 그래서 반항하지 않고 다른 이들처럼, 대처하지 못하는 척을 했다.
‘어째, 이것도 교육과정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사삭.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자신에게 복면을 씌운 인물은, 그 외에 다른 위해 행위를 가하지 않았다.
찌리릿.
헌데 그 순간.
갑자기 목덜미 아래가 시큰거리고 무감각해지더니, 그 느낌이 쭈욱 아래로 타고 내려왔다.
‘이건! 산공독이다!’
설휘는 순간 깨달았다.
산공독. 내공을 흩트리는 약물의 총칭으로, 이것에 노출되면 일정 시간 동안 운기 행공을 할 수 없게 된다. 효과는 짧게는 1각부터, 길면 하루까지.
‘조건을 만들려는 건가.’
이제 보니 자신보다 앞서서 휘청거렸던 혈강대원들도, 다 이 산공독에 당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설휘는 또 하나를 도출해 냈다.
‘내공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 동일한 조건?’
이번 수업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그거였다.
이번 집체교육에는 혈강대 부대장. 서열 2위까지 참석했다. 원래라면 그가 당연히 이번 교육에서 1위를 차지할 터.
하지만 이 교육과정. 혈강대 집체교육은, 바깥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건, 교육 중에는 다 똑같은 교육생 신분이라고 누차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내공이 많은 쪽이 유리하다.’
수업 내용은 그럴 것이다. 그래서 산공독으로 모두의 내공을 쓰지 못하도록 강제로 만든 것이다.
그래야 평등한 교육 기회가 되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내공의 길을 유지해야 한다.’
설휘는 숨을 참았다. 의식적으로 단전에 작은 방 하나를 상상으로 만들었고, 상단전에 있는 길을 열었다.
최소한의 내공.
잠영투체술은 풀리더라도 역용술을 유지할 수 있는 내공은 있어야 한다.
‘흐읍.’
설휘는 전신에 퍼져가는 독을 붙잡아, 아주 가느다란, 겨우 내공의 명맥만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유지한 채, 나머지 산공독은 혈맥을 따라 흐르도록 두었다.
“으윽.”
“읍.”
복면을 벗고 보니, 죄다 휘청이며 몸의 중심을 잠시 못 잡는 혈강대원들 천지였다.
“훈련의 가장 기본은 체력이다.”
그 모습을 보며 혈비라는 교두가 입을 열었다.
“내공의 도움을 받는 수련이 아닌. 외력을 기르는 것. 몸이 강해야 정신도 강해지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
펄럭.
혈비는 한쪽에서 내민 두루마기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움직일 곳이다. 본교의 외벽을 타고 남쪽으로 향한 뒤. 북쪽 총단 주변 외길을 돌아 이리로 오게 될 것이다. 거리는 삼백 리. 방식은 선착순. 먼저 들어오는 자가 고득점자다.”
“아…….”
“후아…….”
다들 독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혈비의 말에 집중했다.
“경쟁이니만큼 옆에 있는 동료. 혹은 경쟁자를 방해하는 행위도 허용한다. 단, 죽이면 감점을 당하고, 감점을 많이 당하면 탈락이다.”
수업의 내용이 밝혀졌다.
내공을 쓰지 못하는 몸으로 삼백 리의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
체력과 의지력은 당연히 필수이며, 심지어 선착순. 같은 길을 달리는 모두가 경쟁자다.
‘지독하군.’
여차하면 경쟁자를 처리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 또한 함정에 가깝다. 이미 모두가 모두를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공까지 금제된 상태.
싸움이 붙었다 하면, 이긴다 해도 상당한 체력을 소모할 터. 그나마 일격에 죽이는 살초라면 해 볼 만하지만, 그조차 감점이라는 요소로 막아 두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체력과 정신력만으로 버티라는, 악랄한 출제자의 의도다.
“자. 그럼 시작.”
……탁.
타타탁!
교관의 말이 떨어지자, 처음에는 멈칫멈칫 하던 대원들이 무섭게 달려 나갔다.
헉헉. 허억.
산공독의 효과 때문에 움직임이 둔하고, 호흡이 눈에 띄게 거칠었다.
그렇게 그들은 당사 밖을 넘어, 교두가 말한 곳으로 한 명도 예외 없이 벗어났다.
두두두둑.
대원들이 사라지자 좌중의 분위기는 다시금 고요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어느새 교두 옆으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고 계셨습니까?”
꾸벅.
혈비는 이미 알고 있는지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던 총교두 소천괴였다.
“앞선 수업부터 지켜봤지. 감점을 받을지도 모르는 집체교육에서 살초를 펼치는데 거침이 없다니. 과연 셋째 제자가 뽑은 주서린답군.”
“첫 수업 전에 규율 위반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이들과 차이점이지요.”
“그걸 차이점이라 부를 수도 있고. 아니면 불순한 존재라 할 수 있지. 생사의 줄타기를 좋아하는 자네에겐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테고.”
노인은 혈비를 직접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어찌 보는가?”
“……예?”
“모든 내공을 없앤 상태로 삼백 리를 뛰어간다? 그런 무식한 방식은 아닐 테지. 다른 것도 아니라 위군자를 썼지 않나.”
“이런, 바로 눈치채셨군요.”
혈비가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이번 수업은 그가 직접 계획한 것이었다.
내공 없이 삼백 리 달리기 선착순.
허나, 이 훈련에는 사실 작은 함정이 있었다.
바로 그들이 쓴 산공독의 지속시간이다.
“군자산은 최소 하루에서 이틀은 걸리지. 그걸로 생각한 녀석들은 죽으라고 달릴 테고.”
산공독 중에서 가장 유명한 독은 바로 당문의 군자산으로, 걸렸다 하면 해독제 없이 해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허나, 이번 시간에 혈비가 준비한 산공독은 이름하여 위군자(僞君子).
당문의 군자산과 효과나 느낌이 거의 같은데, 지속시간이 아주 짧은, 그래서 경멸의 의미로 위군자라는 별명을 단 독이었다.
끽해야 한 시진.
삼백 리는커녕, 달리다 보면 반도 지나기 전에 다시 내공이 돌아오는 것이다.
“간단합니다. 마음이 급해서 전력을 다해 달리는 놈이 있을 것이고, 그 와중에 침착하게 체력을 아끼는 자가 있겠지요. 그러다가 내공이 돌아오면…….”
“체력을 아낀 자가 유리하겠지. 침착함이 기준인가.”
“예. 앞서 간 자들은 뒤에서 쫓아오는 자들에게 사냥감이 될 겁니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 일어나겠지요.”
“옥석을 가리는 방법치고는 피 냄새가 많이 나는군.”
“그래서 규정을 뒀습니다. 죽이면 감점이라고. 죽이는 건 쉬우나, 제압하는 건 더 어렵기 때문이지요.”
혈비는 씨익 웃었다.
“재미있는 훈련이 될 것입니다. 혈비들이 도움을 줄 테지만, 죽는 자는 무조건 나오게 될 겁니다.”
“혈사전주가 허락했는가?”
조금은 경계하듯 묻자, 혈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미리 말씀을 드리고 재가받은 사안입니다.”
“…….”
총교두의 눈빛은 복잡해졌다.
집체교육에 참가한 혈강대원들은 귀한 이들이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천마 제자들께서 보낸 이들이 두각을 보이겠군.”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
의아하게 바라보는 총교두.
혈비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번 집체교육에는 대원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허면……?”
“혈사비 요원들도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초마의 고수들.
혈사전에서 전주 외에 가장 강하다는 혈사비들이 이번 집제교육에 교육생인 척 참관 중이라는 것이다.
“이거, 제자들이 뽑은 이들이 당할 수도 있겠군.”
그 말에 혈비는 대답 없이 웃음으로 답했다.
집체교육.
혈강대원들이 모두 죽는다 해도, 혈사전주는 누군가의 손에 자신들을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랬기에 혈사비의 교관급들도 대거 투입한 것이다.
“그런데…….”
뒤돌아서려던 총교두 소천괴가 물었다.
“예. 말씀하시지요.”
“모두 네 명 아닌가?”
“……뭐가 말입니까?”
“천마의 제자들이 보낸 요원들이.”
“그렇습니다.”
“……헌데 왜…….”
잠깐 뜸을 들이던 소천괴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한 명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