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극한의 훈련 (2)
반 시진 정도 흘렀을까.
목표 지점을 향해 내달리는 혈강대원들. 그들은 멀어지고 좁혀지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세 개의 대열로 나뉘었다.
가장 앞서 달리는 선두.
그리고 선두와는 거리를 두고 너무 뒤처지지 않게 달리는 중간.
마지막으로 제법 뒤처지고 있음에도, 무슨 이유인지 간격을 유지하는 자들.
타닥. 타닥. 허억. 허억.
물론 뒤처지는 대열이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집체교육에 참가한 이들은 상당히 빨랐다. 내공 없이 오로지 몸의 체력만으로 움직여야 함에도.
파파팟.
선두에 있던 대여섯 무리의 움직임은 내공을 쓴 것처럼 정말로 눈부셨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무조건 우리가 앞서나간다!”
“체력에도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자!”
이들은 대부분 혈강대 서열 7위에서 10위 사이의 조장들. 주로 최전선에 제일 먼저 투입되는 이들이었다.
자타 공인 가장 강한 이들이었으니, 실제 체력으로도 내공으로도 모자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총 삼백 리.
솔직히 말하면 백 리 정도는 혈강대원 모두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무리하게 가져다 쓴 체력에 한계가 온다는 점이었다.
“쿨럭쿨럭!”
“크으으으…….”
거기다 남쪽, 산길로 접어드는 쪽에서는 체력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지구력도 함께 필요했다.
험한 산길은 분명히 오르막도 힘들었지만, 내리막은 다소 체력적으로 쉬운 대신 위험했다.
내공으로 유지가 힘든 몸에 가속이 붙게 되니 자칫하면 땅을 뒹굴기가 일수.
그래서 그런지 점점 벌어지는 둘째 대열, 셋째 대열과 달리.
첫째와 둘째는 줄어들고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적당히 숨을 고르고! 체력을 안배해! 우린 산길로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달릴 테니!”
후아. 후아.
두 번째 대열을 이끄는 선봉장은, 앞서 첫 수업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던 혈강대 부대장이었다.
그는 내공이 사라졌다는 걸 직감한 뒤부터, 지금 상황을 머릿속에 그렸다.
선두보다 너무 멀어지지 않게 체력을 비축하면서, 혹여나 있을 만약을 대비한다는 것.
혹여 그 와중에 내공이 돌아온다면, 앞서 나아가는 대원들을 죄다 때려눕힐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찜찜한 게 있다면…….’
자신들과 함께 달리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집체 교육생 둘.
특히 그중 주서린이란 여인은 제법 신경이 쓰였다.
대원들 몇몇은 아직까지 노골적인 살기를 띠고 있었으니까.
파파파팟.
마지막 대열에 있는 무리들도 여전히 내달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 역시 예리했다.
“단순히 체력적인 시험은 아닐 터. 어차피 기회는 생길 거니 초조해하지 말거라.”
무리 중에 선두에 달리고 있는 대원은 뭔가 좀 달랐다. 여유가 있었고, 또한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
“…….”
“…….”
그의 말에 대원들은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마치 순응하고 있는 듯한 행동으로 보였지만, 이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가장 후미에 있는 자들. 이들이 혈비가 숨겨놓은 요원들이었기 때문이다.
툭. 툭. 툭.
한편, 그들 대열과는 전혀 동떨어진 장소에 위치한 한 명이 있었다.
냅다 달리는 이들과 달리, 소롯길을 유유자적 걸어가는 한 사내.
바로 설휘였다.
‘산공독의 효과가 사라질 시기는, 한 시진 정도.’
그는 몸, 아니 머리에 남아 있는 산공독의 양을 계산하고 있었다.
대충 신경을 교란시키는 양을 계산해 보건대, 대략 그쯤 되어 보였다.
‘선두에 있는 이들이 최대로 달려봤자 이백 리가 한계. 산공독이 사라지면, 가장 후미에 있는 자들이 먼저 치고 나갈 것이다.’
선두에 있을수록 체력이 떨어진 상태로 싸워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뒤처져 있으면, 다른 이들이 먼저 손을 쓰는 것에 밀리고 말 터.
침착함과 대범함, 신중함과 과감함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 이번 수업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 뭔가 하나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설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요지는 대충 알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중요한 것 하나가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스윽.
설휘는 저편의 산을 바라보았다.
남쪽 방향, 자신이 올라야 할 곳. 그리고 저길 지나쳐 호수를 넘으면 총단이 나올 것이다.
거기에 길게 늘어진 외길. 이를 따라가서 혈사전 당사로 돌아와야 한다.
목적지는 반드시 경유해서 가야 할 터.
‘좀 더 빨리 가는 방법은 없을까?’
기존 혈강대 대원들에게 이곳은 뒷마당에 가깝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곳 지리를 잘 아는 그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가는 길목에 있을 은폐와 엄폐에 용이한 위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매복해 있다가 맘에 안 드는 이들을 기습해서 처리할 생각도 할 것이다.
타닥.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설휘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산봉우리로 보이는, 가장 높은 나무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 방법이라면…….’
지름길을 찾는 것.
지금으로선 설휘에게 제일 중요한 전략이었다.
그는 혈강대원들의 이동 경로를 머릿속에 그렸다.
남쪽엔 산이 있고. 내려가는 길에는 다시 호수를 지나야 했고. 그길로 올라가다 보면 총단이 보인다.
총단까지 가다 보면 그 주변을 휘감고 있는 외길이 보인다.
이 길은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어, 대략 오십 리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
질러가려면 이 구간뿐. 하지만 절벽에다 협곡이 무성한 험로다.
높이도 높이지만 사방에 기암괴석이 즐비하니, 어설프게 거리만 보고 달렸다간, 늦어지는 건 기본이고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었다.
“헉헉. 이, 이제 총단이 보인다…….”
“대략 백 리 정도 남은 건가!”
호수를 지나고 앞서가던 선두에 있던 대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총단 건물이 보인다는 건, 세 번째 목적지가 다가왔다는 것.
이제 조금 더 달려서, 주변을 감싸고 있는 외길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끝이 난다.
다들 점점 도착점이 보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어?”
“이게 뭐지……?”
대원들의 표정들이 하나둘씩 변했다.
뒤늦게 느낀 것이다. 내공이 점점 돌아오고 있다는 걸.
“이런. 그냥 산공독이 아니었어.”
“효력이…….”
기존의 내력이 돌아오자, 눈빛들이 하나둘씩 달라졌다.
다들 바로 계산이 된 것이다. 자신의 몸 상태와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그리고 그들 사이로 은연중에 삐져나오는 한마디.
“씨발…….”
소름이 끼쳤다. 단순한 달리기 시험에서, 사냥 수업으로 바뀌었음을 직감한 것이다.
“숨어!”
“엄폐할 곳을 찾아!”
여섯 대원들은 모두 이동을 멈추고 주변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체력이 거의 고갈된 상태에서 내공 증진.
이는 신법을 펼칠 최소한의 외공이 남아있지 않음을 뜻했다.
달리 말해, 뒤에서 달려오는 이들의 사냥감이 된 것이다.
***
혈사비 요원인 적혈명(狄血瞑)은 산봉우리에서 나뭇가지를 밟고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헉, 헉…….”
내공이 돌아오자마자 혈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선두 지역으로 보이는 곳. 힘을 비축해놓은 두 번째 대열이 달려들었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마지막 대열은 앞선 선두 지역까지 가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요수광. 이놈이 분탕의 원흉이군.’
적혈명은 알고 있었다.
마지막 대열에 합류하여, 때를 기다리고 있던 한 명.
그는 내공이 돌아오자마자, 가까이 있던 혈강대원의 팔과 다리를 잘라버렸다.
도중에 몇 명이 덤벼들었지만, 그들 역시 오래 싸우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대체 천마 제자들은 무슨 생각인 거야.’
척 봐도 초마에 다다른 실력자들.
순간순간의 전투 기지는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요수광의 전투는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쉬쉭! 파박!
바로 혈사비의 고수들.
혈사전주를 보위하는 최정예 고수들이 주위로 합류했기에, 요수광 역시 쉽게 싸움을 걸지 않았다.
‘벌써 죽는 이들도…….’
선두를 슬쩍 보니, 몇 명은 이미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그들 중심에 서 있는 한 명.
키 작은 외양에, 품속에 손을 집어넣은 한 명의 괴인.
‘귀기. 살벌한 녀석.’
저 녀석의 이름은 적혈명도 알고 있었다.
능력 자체가 차원이 다른 이.
제아무리 혈강 대원들이라 하더라도 누구 하나 제대로 손을 쓰는 자가 없었다.
‘주서린은 눈에 띄게 살기를 드러내지는 않는군.’
한 번 살기를 뿜어내서일까. 그녀는 딱히 병기를 꺼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곧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같은 대열에 있던 녀석들이 기습을 노릴 테니까.
앞서 싸웠던 그 이유로 다시 한번 싸움이 일어날 것이었다.
‘그나저나…… 왜 한 명은 안 보이지?’
주변을 살펴보던 적혈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혈강대 집체교육은, 일제자부터 사제자의 수하까지 총 네 명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사제자의 수하로 짐작되는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건지 모르겠군.’
스윽 스윽.
몇 번을 살펴보던 그는 결국 넷째 제자의 수하에 대한 내용은 한지에 적지 못했다.
대충 자신이 분석한 걸 기록한 그는, 옆에 기다리고 있는 전서구 다리에 끈을 봉합했다.
파드드득!
그가 기술한 내용은 곧 총교두와 혈사전주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렇게 전서구를 날려 보낸 뒤, 다시 마지막 대열로 합류하려고 시선을 돌렸다.
‘어?’
그러던 순간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산을 오르는 남자.
얼핏 보면 혈강대원 같은데, 행동을 보면 또 전혀 아닌 것 같았다.
느긋한 걸음걸이도 그랬지만, 자신과 눈이 마주친 뒤에도 주변의 경관을 보는 것이 그랬다.
마치 이번 수업에 참관하는 대상이 전혀 아닌 것처럼.
‘설마…….’
그냥 무시하려던 적혈명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힐끗힐끗 자신을 바라보는 게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이다.
그는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곳으로 달려 나갔다.
“너, 뭐냐!”
“…….”
급히 사내의 앞을 막은 적혈명.
상대가 입은 혈강대원 복장을 보고 그는 강하게 소리쳤다.
“혈강대원이 수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이따위 짓을 하고 하는 것이냐!”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설휘는 갑자기 나타난 대원을 보고서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었다.
“방금 전서구. 수뇌부에 보고한 거지?”
“……?!”
“교육 상황을 보고하는 인원이 있다는 건…… 그냥 혈강대원이 아니란 말이겠고.”
적혈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말하는 투도 그렇고, 뭔가 기분 나쁜 예감이 팍팍 느껴졌다.
“그래, 네 말대로 나는 그냥 일반 대원이 아니다. 그러는 너는…… 어?”
순간 그의 입이 멈췄다.
눈앞의 상대. 그의 얼굴이 스르륵 본래대로 돌아오는 걸 본 것이다.
“일반 혈강대원이 아닌 사실을…….”
설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위에다가 보고하면 어떻게 될까?”
적혈명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인물의 목줄을 겨냥하고서 재빨리 보법을 펼쳤다.
퍼억.
그런데 단 한 걸음.
거기서 그의 공격이 막혔다.
그가 뻗은 손가락은 설휘의 다른 손에 제지당하고 있었다.
“너, 설마…….”
단 한 번에 손가락이 막혔다. 설휘는 그가 내민 손의 손가락을 꽉 부여잡고 말했다.
“그래. 맞다.”
적혈명은 직감했다.
이 정도의 내공을 가진 자. 그리고 이런 순발력과 기예라면.
오직 한 명밖에 없었다.
“내가 곤마의 수하, 설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