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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58화 (259/379)

258화. 극한의 훈련 (3)

‘나보다 위다.’

적혈명은 직감했다.

사내의 손아귀에 잡힌 자신의 손.

힘으로 밀어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려 일 갑자의 내력을 동원해 뿌리치려 했는데도 미동조차 없었다.

‘외공을 전문으로 익힌 건가?’

동시에 산공독을 마신 처지.

분명히 내공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도 태산처럼 단단하다.

단순 내력으로, 또는 힘으로도 제압하기가 불가능한 상대.

감정이 복잡해진 적혈명에게 설휘가 말을 걸었다.

“우리 거래할까?”

“……뭘 말인가?”

“너라면 목적지까지 가는 지름길 정도는 알고 있을 터. 그걸 알려주면 너희들이 집체교육에 참관했다는 걸 입 다물어주지.”

“…….”

“어때?”

설휘의 말에 잠깐 고민하던 적혈명은,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혈강대 집체교육의 수업과 시험은 공명정대하게 치러진다. 네가 입을 열어 봐야 그런 게 존재한다는…….”

“그럼 왜 본부에 보고를 하는 거지? 동등한 조건이라면서.”

“……!”

적혈명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놈. 제대로 알아챘다. 조금 전, 수뇌부에 보낸 전서구를 보았던 것일 터.

‘이 자식…….’

눈앞에 있는 이자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그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답을 내린 그는.

패애애액.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공력을 펼쳤다.

상대의 눈앞에서 광범위하게 화공을 터트린 것이다.

그런데.

사아아아악.

“……?!”

열기는 생각처럼 뻗어나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설휘의 다른 손에 의해 제지된 것이다.

꽈악.

“으악.”

그리고 여전히 잡혀있던 다른 한 손을 설휘가 비틀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투욱. 툭.

이어지는 점혈. 혈도를 몇 번 짚인 그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럼. 이러는 건 어떨까?”

설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내 존재를 본부에 보고하고, 나는 너에게서 지름길을 알아낸다.”

“…….”

“어때? 너도 나의 정체를 알게 되어서 좋고, 나도 지름길을 알아서 좋고.”

눈앞에 있는 이자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그는 잠시 고민했다.

“네가 내 존재를 본부에 보고하고, 나는 너에게서 지름길을 알아낸다.”

하지만 이내 답을 내린 그는.

패애애액.

“…….”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공력을 펼쳤다.

“어때? 너도 나의 정체를 알게 되어서 좋고, 나도 지름길을 알아서 좋고.”

상대의 눈앞에서 광범위하게 화공을 터트린 것이다.

그런데.

그 말에 신음을 흘리던 적혈명이 미묘하게 떨리는 눈으로 말했다.

사아아아악.

“……?!”

“귀하의 거래는…….”

열기는 생각처럼 뻗어나가지 않았다.

“착각하지 마. 지금 거래를 제안한 게 아냐.”

정확히는 설휘의 다른 손에 의해 제지된 것이다.

콰악.

설휘는 녀석의 머리채를 잡고 쳐들었다. 이후, 자신의 눈과 마주치게 한 다음.

나긋나긋이 말을 이었다.

“협박하는 거다.”

***

“하악. 하악.”

달려가는 대원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씩씩대는 마른 소리. 보통의 무림인은 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공을 일으키지 못하고, 일반인처럼 체력의 소모가 극도로 심할 때만 발생하는 현상.

‘앞인가? 뒤?’

사내는 자신을 추적해오는 인물을 대강 짐작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터억!

그리고 큰 나무에 등을 대고 뒤를 쫓아오는 자에게 외쳤다.

“와라!”

사박. 사바박.

극도의 긴장감과 함께 잠깐의 정직이 찾아들었다.

미세한 인기척을 잡기 위해 귀 기울이던 사내가, 조심히 앞으로 방향을 틀었고.

다시 달려가려는 자세를 취하던 그때.

쉬이익.

빛을 반사하던 은사(銀絲)가 그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삽시간에 목을 감아버렸다.

“큽!”

사내의 몸이 나뭇가지 위로 부웅 떴다. 그리고 목에 걸린 은사로 인해 발버둥치기를 몇 번.

추욱.

이내 힘을 잃고 물먹은 종이처럼 늘어졌다.

“한 명은 처리했고.”

사박.

그가 쓰러지고 난 다음 나뭇가지 사이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수광이었다.

보통은 목에 감은 은사를, 귀밑까지 끌어올려 완전히 숨을 끊는 법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이면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쉭! 쉬익! 타닥.

그는 재빠르게 달려 앞서가던 인물들을 이런 방식으로 제압했다.

그리고 다시 나뭇가지를 밟고 오른 뒤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남아 있네?”

산을 내려오며 점점 이곳으로 다가오는 사내가 두 명.

탁.

그는 다시금 더 높게 펼쳐진 나뭇가지를 밟으며 몸을 은폐시켰다.

그렇게 때를 기다리며 몸을 낮췄는데.

‘어?’

뭔가 이상 조짐을 느꼈다.

달려오는 사내 뒤로, 비호처럼 질주하는 인물을 본 것이다.

“제길!”

“잡힌다. 더 달려야 해!”

전력으로 달려나가던 두 사내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누군가 자신들을 쫓는다고 인식할 때, 처음에는 제대로 싸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동료 서너 명이 제대로 된 저항 없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자, 그들은 싸우는 걸 포기하고 도망을 선택했다.

허나, 그런 움직임이 그에게 발각된 것일까.

허억. 허억.

바닥까지 힘을 짜내어 놈에게서 달아나려 하는데, 어떻게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몇 장 내로 달라붙고 있었다.

“이익. 반격을……!”

궁지에 몰린 사내 하나가 결국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덤비는 단신의 사내에게 살초를 휘둘렀다.

촤아아악.

허나, 그건 너무도 무력했다. 단신의 사내가 스쳐 지나가자 그의 두 팔이 잘려나가 버렸다.

상대의 살초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당하고 만 것이다.

“이익!”

그리고 앞서 달려나던 녀석도 무사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신법을 쓴 건지. 한 명을 처리하자마자 갑자기 몇 배는 빨라지더니, 멀리 있던 남자의 목까지 날아가 버린 것이다.

“크악!”

결국 두 명의 사내는, 단신의 사내에게 저항조차 제대로 못 하고 당해버렸다.

‘동족이다.’

요수광은 느꼈다.

체구는 왜소한 단신. 머리카락으로 가려져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직감으로 알았다.

피를 갈구하는 사냥꾼.

적이라 상정하는 순간 반드시 죽이고야 마는 살의(殺意).

틀림없는 동족이다.

다만 그의 몸에 잠식한 냄새는 조금 달랐다.

요수광 자신은 오로지 목표를 상정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저 녀석은 좀 더 야생에 가까웠다.

그저 피 냄새를 갈구하는 놈.

이런 자는 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 굳이 쓰려면 사면이 막힌 우리에 두어야 하는.

적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피에 미친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다.

‘굳이 저런 살초를 펼치는 것도 그런 거겠지.’

스윽.

한편, 귀기란 자도 느끼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

그에게서 매우 거칠고, 지독한 살향이 느껴진 것이다.

‘특정한 곳에서 고도의 교육을 받은 자.’

자신과 동족. 하지만 좀 더 계산되고 인간과 친화적으로 변한 존재였다.

그와의 싸움을 생각해 본 후.

투욱.

귀기는 먼저 돌아섰다.

굳이 이 시기에 동족과 피를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흐음.’

요수광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아직 초반이다. 그리고 수업 목표는 목적지에 가장 빠르게 당도하는 게 중요하다.

이미 죽이지 않고 제압한 수가 상당하니, 많은 가산점을 받았을 터.

더는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파파팟.

그는 곧 나무에서 내려와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갔다.

“…….”

몸을 돌린 귀기의 시선은 숲속을 향해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벌써 열이 넘는 녀석들을 처리했다.

죽인 놈은 소수지만, 거의 다 팔이나 다리를 잘라놓았다.

‘어차피 다 죽여야 할 놈들.’

귀기는 요수광과는 노선이 달랐다.

주서린의 돌발 행동으로 살인에 대한 제약이 없는 걸 확인한 후.

그는 이번 수업에 들면서 계획했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을 ‘모두’ 죽이는 것으로.

‘꼭 지금 사냥을 할 필요는 없어…….’

다만 순번은 정해야 했다.

바로 죽여야 할 ‘형편없는 놈’들과 앞으로 천천히 죽일 ‘거슬리는 놈’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죽일 ‘까다로운 놈’들까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귀기의 눈에 또 하나의 대원이 포착되었다.

‘마지막인가?’

대충 상황을 파악하건대, 더는 후발주자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자가 마지막 대원.

생각보다 빠른 보법을 밟고 있지만, 그래봤자 대열에서 이탈한 패배자였다.

‘단번에 끝내자.’

귀기는 조금 전, 요수광이 있던 나무 위로 재빨리 올라갔다.

그리고 몸을 엄폐한 뒤. 달려오는 자를 숨죽여 기다렸다.

‘조금 더.’

조금은 불규칙한 속도.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자신 쪽으로 다가서면 설수록 점차 속도가 더 느려졌다.

오히려 귀기에겐 그런 점이 좋았다.

그는 살수를 뻗을 지점을 가상으로 그리며 천천히 숨을 멈췄다.

맹수가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사내가 영향권에 들자, 귀기는 숨소리뿐만 아니라 심장박동까지 조절했다.

그리고 원하던 지점으로 들어오자.

‘지금.’

천근추를 사용해, 완벽한 지점으로 귀기의 몸이 떨어졌다.

동시에 그는 품속에 쥐어져 있던 단검을 달려오던 상대의 정수리에 정확히 내리찍었다.

호흡, 속도, 위치, 방향 모든 것이 완벽한 한 수였다.

그런데.

“……!”

상대의 정수리에 꽂혀야 할 자신의 단검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려치는 자신의 단검이 상대의 손에 잡혀버린 것이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반응속도.

거기에 상대의 힘으로 인해 그는 몇 장이나 날아가 버렸다.

쿠당당당.

귀기는 바닥을 뒹굴었고. 재빨리 일어섰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내가.

“너였냐.”

“…….”

“네가 귀기란 녀석인가?”

태연하게 서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너…… 넌…….”

귀기는 바짝 긴장했다.

지금 그의 눈앞의 있는 존재. 그에게서는 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는 두 가지였다.

살면서 피를 보지 않은 평범한 양민들.

또 하나는, 스스로 기운을 갈무리할 줄 아는, 일정 경지를 초월한 절대자들.

덜덜덜.

귀기는 몸을 떨었다.

상대가 가진 편안함, 여유로움이 오히려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여유로움은, 이제껏 자신을 조종하던 까마득한 괴물들. 자신을 가르치던 교관 교두들에게서나 볼 법한 것들이었다.

“킥.”

“……!”

그래서 귀기는 대답보다 전력으로 달려드는 걸 택했다.

겁에 질렸기에.

역설적으로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놈?’

상대의 과민 대응에 오히려 설휘는 난처해졌다.

가볍게 손봐주고 말려고 했는데, 상대가 이토록 죽자 사자 달려들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

심지어 반격할 시기를 잡기 쉽지 않았다.

보통은 신법이든 보법이든, 땅을 박차며 달려드는 데, 이놈은 땅을 밟으면서도 곧장 달려들지 않았다.

그러다 한순간, 마치 발이 역으로 꺾이기라도 한 듯, 기이한 자세에서 비정상적인 속도를 보였다.

마치 감각을 교란한 것처럼.

사아악.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던 귀기의 단검은, 설휘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허……!”

“……!”

설휘는 물론이고, 귀기의 표정도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음혼유령검(陰魂幽靈劍).

이제껏 귀기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쾌검술이다. 특히 이런 접근 전에서는 무조건 목을 끊어놓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그게 오늘로써 처음으로 파훼된 것이다.

“대체 너란 놈은…….”

설휘의 표정 역시 굳어 있었다.

잠깐 방심을 했다고 했지만, 적의 칼이 이 정도로 다가올 줄 몰랐다.

극마에 오르지 않았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좋다. 수준에 맞게 상대해 주지.”

우드득.

설휘가 내력을 모으자 단전에 기력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수리에 기류가 열리면서 주변에 강력한 기압이 발생했다.

“어, 어?”

이상 현상에 당황하는 귀기.

허나, 설휘는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일단 너는 좀 많이 맞아야겠다.”

대답과 함께 설휘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퍼퍼퍼퍽!

“크악! 악!”

설휘의 공격은 빨랐다.

아니, 빠른 정도로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

귀기가 가늠할 수 있는 범주의 움직임을 넘어섰다.

퍼퍼퍽.

수없이 이어지는 난타. 귀기는 처맞으면서도 마지막 한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가장 적당한 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실신…… 어?”

적당히 팼다 싶은 설휘가 물러서며 신음을 흘렸다.

갑자기 귀기의 안색이 샛노랗게 되더니 풀썩. 하고 바닥에 몸을 떨궜다.

“뭐야, 이거?”

미동도 없고, 숨도 쉬지 않는다. 설휘는 의아하게 여기며 그의 목에 손을 올렸다.

“……?”

맥이 뛰지 않았다.

정말로 죽은 것이다.

“뭐 이 정도로 죽……!”

그때였다.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한 놈의 손이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설휘의 복부로 파고들었다.

단검을 부여잡은 채로.

“…….”

“…….”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빠각.

귀기가 들고 있던 단검이 쪼개져 버린 것이다. 어떤 타격에도 맞지 않았는데.

“혈마수라고 들어봤나?”

“…….”

“닿기만 하면 쇠붙이든 뭐든 극독을 이기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버리지.”

“하!”

“넌, 여기까지다.”

쩌어억.

설휘에게 정수리를 처맞자 귀기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놈의 상태를 살핀 설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

“여기서부터 지름길이 나온댔지?”

타닥.

앞서 요원이 알려준 방향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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