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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59화 (263/379)

259화. 극한의 훈련 (4)

혈사전주는 목욕을 마친 후, 간단한 차림으로 집무실로 들어왔다.

풀썩.

“후우…….”

약간의 나른함. 피로가 빚어내는 뭉근한 즐거움을 만끽한 후, 그는 곧 서탁으로 향했다.

사박. 사박.

새로 올라온 보고서. 그 내용을 검토하던 혈사전주는 작게 혀를 찼다.

<복합훈련 종료>

사상자 : 33명.

-실신하여 대열에서 이탈한 자 열다섯. 팔이나 다리가 잘려 전력 손실이 발생한 이가 열둘. 유명을 달리한 이가 총 여섯.

-훈련 상황에서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비전투 손실이 극심합니다. 별도의 지령을 바랍니다.

“이거, 이거……. 성질 한번 고약하군.”

불쾌감이 컸다. 혈강대 대원들은 그가 하나하나 가르쳐서 초절정까지 끌어 올린 이들이었다.

아무리 예견했다고는 하나, 초절정에 달하는 고수들의 죽음을 보고받는 건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사박.

그는 다음 장을 열었다.

<진행 과정>

사망에 이른 혈강대원들 대부분은 둘째 제자의 수하, 귀기란 인물에게 피습당했습니다. 그는 살초를 행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자신만의 독문무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무공 수위는 추정컨대 초마, 혹은 초마의 극에 오른 것으로 판단됩니다.

참고) 호리동 출신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심이 투쟁심을 넘어 광기에 빠져드는 것이, 전형적인 그쪽 출신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그럴 만하지. 독종 중에 독종일 테니.”

호리동(狐狸同).

마교의 잔학한 행위 중 하나로, 강호에서 거지, 고아, 때로는 근골이 괜찮아 보이는 무문의 자제를 납치. 수백 명을 출구 없는 동굴에 집어넣고 서로서로 죽이게 만드는 것.

그 근원은 고독(蠱毒)을 만드는 주술적인 방향에서 출발한다.

생존자는 오직 하나.

가장 강하고 독한 심성을 지닌 이만 뽑아, 죽음에도 죽임에도 망설이지 않는 최강의 인간 병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였으나, 몇 년을 운영해 본 끝에 부적절 판정을 받고 폐쇄되었다.

“사람이 어디 미물과 같을 수가 있나. 쯧…….”

호리동에서 살심과 독심을 검증받은 이들은, 이후의 교육 과정에서 수시로 폭주를 일으켰다.

가벼운 접촉이나 별것 아닌 말 몇 마디에도, 같은 대원이나 조원과 생사결을 벌이기가 일쑤.

심지어 중요한 임무의 실패를 초래하기도 했으니, 아무리 사람 목숨을 우습게 보는 마교의 지휘부도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었다.

칼에는 손잡이가 있어야 한다. 지극히 날카로운 칼이라도 그게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사용자의 손까지 베어버린다면 그건 실패작이다.

달리 말하면, 호리동 출신은 마교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 미치광이라는 것.

“……호리동이 폐쇄된 건 분명 10년도 전의 일인데.”

혈사전주는 잠깐 셈을 해 본 다음 고개를 내저었다.

귀기란 자는 아마도 호리동의 마지막 기수이거나, 마후 휘하의 기기아대에서 몰래 다시 부활시켜서 만든 살육자일 가능성이 컸다.

“마후께서 자신 있게 나온 이유를 알겠군.”

호리동 출신은 단체생활에 부적합하다.

무력도 무력이지만 그들의 본능은 오로지 생존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살아남아 졸업시키기에는 이만한 인선도 잘 없을 터.

사박.

혈사전주는 나름 생각을 정리하며 보고서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합격자>

1. 혈기수

2. 요수광

3. 주서린

4. 설휘

24. 귀기

“음?”

마지막 란에서 귀기의 이름을 확인한 혈사전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기며 슬쩍 보고 있을 때.

“전주님. 자리에 계십니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들어오시지요.”

턱.

혈사전주는 보고서를 덮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백발의 노인 한 명이 들어와 짧게 목례했다.

총교두 소천괴였다.

“보고는 받으셨습니까?‘”

“예. 방금 읽는 중이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전주님의 청정을 깨트려…….”

“아니, 괜찮습니다. 거기 앉으시지요.”

혈사전주가 한쪽으로 안내했고, 이내 둘은 서로 마주본 채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결정하셨습니까.”

총교두인 소천괴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이번 교육에서…… 의도적으로 살육을 행한 녀석이 있습니다. 아무리 살해가 금지사항이 아니라 해도, 손속이 지나칠 정도로 지독하니 감점이 아니라 일벌백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천괴의 눈이 이글거렸다.

사상자가 무려 서른이 넘고, 불구 된 이가 열셋. 죽은 이가 여섯이다.

엄연히 교육의 장으로 시작한 집체교육에서, 피 맛에 미친 미꾸라지가 나왔다. 당연히 총교두의 입장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음…….”

혈사전주가 짧게 침음했고, 그 모습에 소천괴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번에 죽고 다친 대원 하나하나가 혈사대의 전력이다. 그러니 당연히 즉각 시행하라는 명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살초를 의도적으로 썼으니, 징계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시지요?”

혈사전주는 잠시 내리깔았던 시선을 올리며 되물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허나, 그 또한 전술이지 않겠습니까?”

“예……?”

“생각해 보십시오. 살인이 용인되는 상황에 본인이 감점을 맞을 걸 알면서도 그리했다? 이건 단순히 경쟁자를 줄이는 수단이 아닙니다. 자신과 충돌할 거면 언제든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경고의 의미겠지요.”

혈사전주는 귀기의 일탈을 다르게 해석했다.

부딪히면 죽는다. 그런 식으로 다른 혈강대원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는 의도.

감점은 엄청 받겠지만, 앞으로 귀기 이 녀석은 피에 미친 살인마로 보일 것이다. 엮이는 상황이 오면, 다른 이들은 소극적으로 굴게 될 터.

전술로서는 훌륭하다 할 수 있었다.

“허나, 전주님. 저희가 이토록 애써서 길러낸 혈강대원들이 이리 값어치 없게 죽었다는 건…….”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생 중에 혈사비가 투입된 걸 알아낸 자가 있습니다.”

“……!”

총교두의 눈이 커졌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혈사비는 혈강대 중에서 최정예. 같은 혈강대 출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아닌가.

“누가 알아낸 겁니까?”

소천괴가 조심히 물었다. 그러자 혈사전주가 슬쩍 보고서 쪽으로 고갯짓을 했고.

그는 재빨리 보고서를 펼쳤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고 읊조렸다.

“설휘라면……?”

“예. 사제자 곤마의 수하입니다.”

“허.”

총교두 소천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번 혈강대 집체교육은 단단히 준비하고 치러지는 행사였다.

혈사전주를 영입하기 위해, 천마 제자들이 엄선해서 보낸 인물들.

당연히 보통내기가 아닐 테니, 기존 혈강대원들만으로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고. 전주에게 이번에 한해 혈사비를 투입시키자고 제안했다.

숫자는 고작 열.

정예 중의 정예만 엄선한 인원이다. 헌데 그들의 존재를 시작부터 알아챈 자가 있다니.

“다행히 설휘란 자가 스스로 이 일을 함구하겠다고 하더군요.”

“믿어도 되는 인물입니까?”

“모르지요. 허나, 거래를 할 줄 안다는 건, 상황에 따라 우리 뜻대로 움직여 줄 수도 있다는 것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무리하여 일을…….”

“아니외다. 오히려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니까. 통제 못 할 불덩어리에 손잡이가 생겼지 않소.”

“예……?”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소천괴가 시선을 들자.

혈사전주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귀기. 초반부터 미친 듯이 피를 뿌린 문제아. 헌데 요란할 정도로 살행을 저질러놓고, 정작 제일 늦게 들어온 이유가 뭐라 생각합니까?”

“……글쎄요.”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이 설휘란 놈 때문일 겁니다.”

또로록.

혈사전주는 다기에 찻물을 따랐다. 그리고 여유롭게 한 잔 마신 뒤 말을 이었다.

“보면 알겠지요. 세 번째 교육을 하다 보면.”

***

기릭기릭.

숙소 뒤편에는 우물이 있었다. 온몸에 피가 낭자한 사내는 두레박을 끌어 올려, 거침없이 우물물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촤아아아악.

핏기가 물에 쓸려 바닥에 흘러내렸다. 물에 섞인 피는 원래보다 더 많아 보였다.

그 핏물을 보는 귀기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놈이었다.’

주르륵. 투둑.

말라붙은 피 찌꺼기. 그리고 묽어진 핏물이 바닥에 흘러 퍼졌다.

귀기는 그 핏물 위로 그 녀석의 얼굴을 떠올렸다.

‘설휘.’

귀기는 상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위도 대단했지만, 그 눈동자에는 희노애락이 보이지 않았다.

그건 생경한 일이었다. 고통과 사선을 끝도 없이 넘은, 귀기 자신이 달려드는 순간. 상대는 백이면 백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공포. 혹은 긴장을.

헌데 이번에는 달랐다. 한순간에 제압당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패배했다.

가장 열 받는 건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찮은 존재라서?’

귀기의 인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작은 미물이라도 무시하면 나중에 꼭 보복을 당한다. 헌데 저를 죽이려 이를 드러낸 자신을 살려둔다? 얼마나 오만하면 그럴 수 있는가.

촤악! 쏴아악!

“그렇게 너무 나대는 건 좋지 않아.”

“…….”

언제 온 것일까. 도끼에 잘려나간 나무 중턱. 거기에 앉은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들짐승처럼 달려들기만 하다가는 오히려 네가 죽어. 특히 지금 살아 있는 놈들, 너보다 그리 약하지 않지.”

“…….”

귀기의 고개가 말없이 돌아갔다.

주서린.

이름은 들은 적이 있었다.

셋째 제자 아영의 오른팔이며, 지재를 갖춘 인물.

“계집애가 날뛰는 건 괜찮고?”

“에이, 그건 아니지. 난 날뛴 적 없어. 규정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

주서린은 피식 웃었다.

“내 계획은 최고점을 받아서 아령 님께 혈사전주를 데리고 오는 거야. 너도 그렇지?”

“…….”

귀기는 주서린의 뜻 모를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은 교육 전의 잠깐의 휴식시간이다. 곧 이어질 교육은, 아마도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들고 강도가 강할 터였다.

조금이라도 더 기력을 회복하고, 살기를 가다듬어서 준비를 해야…….

“설휘라는 녀석. 죽이고 싶지?”

“……!”

귀기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돌려 집결 지점으로 걸어갔다.

“한 가지 약점 알려줄까?”

투욱.

귀기의 발이 멈췄다.

그 자체로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그래서 주서린을 바로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 녀석. 사제자 곤마가 보낸 놈이야. 보아하니 아직 정식 무사는 안 된 것처럼 보이고.”

“…….”

“제대로 정신이 박힌 녀석이면 사제자의 수하가 될 리가 없어. 그런데도 그와 함께 하는 이유. 그게 뭐일 것 같아?”

“……본론만 말해.”

귀기의 고개가 돌아갔다.

머리카락에 가려졌지만, 그는 처음으로 주서린을 정확하게 바라보았다.

“정일 거야. 아마도.”

주서린이 배시시 웃으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사제자 밑에 있는 이유. 그게 아니고선 그만한 고수가 옆을 지킬 리가 없어.”

“……정(情)?”

“그래. 동료애, 혹은 누군가를 사모하는 마음. 적어도 그런 인간적인 감정이 이유일 터.”

주서린은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난 내 수하들을 이용해 대상을 찾고 있어. 태황각. 그가 움직인 발자취를. 그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발자취를.”

“결국 아직 모른다는 말이군.”

“…….”

스윽. 철벅철벅.

귀기는 그렇게 그녀를 지나쳤다. 주서린이 뭐라고 하든 아무 관심이 없다는 투로.

하지만 그렇게 멀어지는 그를 보며.

“찾으면 제일 먼저 알려줄게. 그래야…….”

주서린이 씨익 웃었다.

“둘 다 공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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