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빈틈을 파고드는 법 (2)
타닥! 타다닥!
집체교육의 교육생들이 숲으로 들어갔다.
계곡 옆에 울창한 삼림이 펼쳐져 있는 곳. 교관이 말했던 은폐와 엄폐에 걸맞은, 전술 훈련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설휘는 그중 마지막 5조였다.
대원들은 모두 다섯.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아닌, 본래 혈강대원이었던 인원만 4명이다.
그중 가장 선두로 앞서 나간 사내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크게 폈다가 꽉 쥐었다.
-잠시 대기.
누구나 알 수 있는 수신호. 대원들이 사위를 살피는 사이, 그는 곧장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파파팟.
체력과 내력이 모두 바닥났을 터인데도 가벼운 몸.
아마 평소에 나무 타기에 능숙한 이인 듯했다.
사박. 사박.
한동안 고요한 가운데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소리만 울렸다. 그러기를 한참.
“이상 없어. 안전해.”
사박.
나지막하게 말하며 그는 소리 없이 내려왔다. 분명 사람의 체중이 실렸을 터인데, 바닥에 닿는 소리조차 작다.
“통성명 좀 해보지. 친구들. 난 강(强)이라고 부르면 돼.”
그러고는 딱딱하게 긴장하는 대원들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 강이라면 그 2조 조장?”
“일단은.”
“허어. 비표(飛豹)라더니 소문대로네요. 산타기에서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하시던데.”
“과찬이야. 그리고 말은 놓자고. 집체 교육 중에는 다 같은 교육생이니까.”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혈강대 부대장조차 같은 교육생 신분으로 움직이는 터다. 나중에야 어쨌건, 지금은 서로 평대를 해도 좋았다.
“그래서. 그쪽은?”
“11조 조장 진권(陳券). 동체시력과 기감만큼은 자신 있다.”
“오. 반갑구만.”
같은 조장급 인물이다.
뒤이어 무웅(務熊), 막화(幕花)등의 자기소개가 이어진 후, 자연스럽게 마지막인 설휘에게 시선이 모였다.
“설휘라고 한다. 사제자 곤마께서 보냈다.”
“……!”
“……!”
“……!”
약간의 긴장. 그리고 당황스런 시선이 쏘아졌다.
사실, 이곳에 있는 대원들은 누가 누구인지 대충은 파악하고 있었다. 아무리 혈강대가 암습과 기습 전문 부대라 해도, 서로 부대낀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처음 보는 설휘가, 외부 위탁 교육생. 천마의 제자들의 수하임은 어렴풋이 예상은 했다. 물론, 예상했다고 해도 직접 들으니 놀라웠지만.
“워…… 좋은 징조네. 비밀에 싸여 있던 곤마 님의 수하시라니.”
분위기가 약간 어색해지려 할 때, 강이란 자가 재빠르게 말을 붙였다.
“조별 교육에서 강한 동료는 든든한 존재지. 이번 시험은 무엇보다 협동심이 가장 중요해. 같은 조가 되어서 반갑다. 설휘.”
“그리 말해줘서 고맙군.”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이라는 자는 한 조의 조장을 맡을 만한 사람이었다.
다 같이 자맥질로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손수 나무를 타서 사전 정찰로 약간의 시간을 얻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안면을 트고 친근감을 형성한다.
그게 대단히 자연스러워서,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무웅이라고 불러줘. 반갑다.”
“막화다. 잘 부탁한다.”
“나도, 이번 수업은 뒤통수 맞을 염려가 없어서 다행이군.”
무웅이 슬쩍 비아냥댔지만, 그 정도 가시는 강이 만들어 낸 분위기 덕에 다들 웃으며 부드럽게 넘어갔다.
한 명 한 명씩, 다들 잠깐의 자기소개와 장기를 밝히고 나자, 다시 강이 말했다.
“자. 그럼, 일단 교관이 오기 전에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동의해. 이곳 지리는…….”
부스럭.
무웅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지도였다. 재질은 양피지. 황지에 그린 지도는 물이나 땀에 젖으면 망가지기 쉽다. 거기까지 미리 대비한 모양이었다.
“……대략 십 리 정도. 대형은 마름모 꼴. 우측에는 대나무가 무성하고, 좌측에는 소나무 밭이야. 아무래도 대숲보다는 소나무가 숨기 편할 것 같은데.”
스윽. 스윽.
무웅이 지역을 땅에 그려 보이며 말했다.
“우선 가장 높은 나무를 찾는 게 좋아 보인다. 높은 곳에 있으니 주변 지형이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올 테니까.”
“음.”
그 말에 막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권도 동의했고, 강은 약간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설휘는 대놓고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스르륵.
시선이 자신에게 모여들자, 그는 무웅이 그린 흙 위의 그림에 나뭇가지로 그어서 둥근 원을 만들었다.
“높은 지물이 있는 곳은 남을 관찰하기 좋지만, 거꾸로 이쪽도 발각당할 수 있다.”
“누굴 바보로 봐? 그거야 은신으로…….”
“교관도 네 생각과 같을 거다.”
“아…….”
발칵하던 무웅이 입을 다물었다.
반면, 듣고 있던 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관이 누가 오든, 주변에 높은 지물이 있으면 반드시 한 번 들러 볼 터였다.
교육장을 전체적으로 살피기 좋으니까.
“마주치지 않는 게 제일이지.”
아무리 기막힌 은신을 한다 해도, 대놓고 의심하며 흔적을 찾는 눈을 피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여기 모인 이들이 은신에 도가 텄다 한들, 상대는 교관이다. 까마득히 높은 실력자다.
“……그래서. 네 생각은 뭔데?”
의견을 내자마자 반박당한 무웅이, 다소 부루퉁하게 물어왔다.
설휘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사냥을 하느냐. 아니면 사냥감이 되느냐인데.”
“……?”
“……?”
의아해하는 시선에 설휘는 한마디 더 첨언했다.
“다들, 교관에게 들키지 않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데, 이건 전술 교육이다. 교관이 중심이 아니란 말이지.”
“……그럼 우리란 얘기야?”
“그래. 그러니 굳이 숨어있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우리가 발각되기 전에, 다른 조가 먼저 걸리면 되는 싸움이야.”
“……!”
“……!”
“……!”
잠시 다들 입을 벌렸다.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접근 방법이었으니까.
“사냥을 하느냐. 사냥감이 되느냐란 말이 그런 뜻이었군.”
강이 피식 웃었다. 그제야 설휘의 의도를 이해한 것이다.
꼭꼭 숨어서 제한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다른 조를 교관이 찾아내기 쉽게 다른 조들의 흔적을 남겨버린다는 것.
“사냥감보다는 사냥이 더 재밌긴 하지.”
“당연해.”
“동의한다.”
설휘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강이 피식 웃으며 모두에게 재차 물었다.
“다들, 기본적인 추적술은 알고 있지?”
그들의 은신술로 교관을 농락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교관이 아니라 같은 대원.
다른 조의 기척을 찾아내는 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스윽. 스윽.
제일 먼저 칼날에 손을 봤다. 진흙을 바르고 나뭇잎을 부스러기 내어 덮었다.
다음으로 의복에는 잔풀과 가느다란 나무줄기를 꽂고 묶었다.
사박. 사박.
위장은 부족해도 문제, 너무 과해도 문제다. 온몸을 풀로 덕지덕지 발라봐야, 주변에 풀이 없는 지역을 지나간다면…… 말할 것도 없이 들통이다.
“나 어때?”
“괜찮네. 나는?”
“과해. 좀 덜어.”
“젠장.”
조원들은 다들 몸에 진흙을 바르고, 서로서로의 위장을 점검했다. 풀을 너무 과하게 묻힌 동료는 다른 사람이 털어냈다.
그렇게 점점 위장이 더해지고, 다들 숲에 누워 있으면 못 보고 지나갈 만큼 자연스러워졌을 때쯤.
‘이놈 봐라?’
강은 설휘, 사제자 곤마가 보냈다는 녀석을 보고 눈을 좁혔다.
부스럭. 부스럭.
설휘 역시 그들과 같이 몸에 진흙과 잔풀을 묻혔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 더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새똥. 혹은 짐승이 영역 표시를 해 둔 분비물 들을 긁어서 몸 곳곳에 문지르는 것이다.
‘체취(體臭).’
은신술에서 은근히 중요한 부분. 후각.
사람은 주변을 파악할 때, 시각에 크게 의존한다. 당장 위장도 풀이나 흙을 발라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땀 냄새. 칼이 풍기는 철 냄새 등은, 후각이 예민한 자에게 바로 발각된다.
이 때문에 위장 좀 해 봤다는 이들은, 겉모습만이 아니라 냄새에도 신경을 쓴다.
“제법이야.”
“그러게.”
물론, 암습과 추적이 전문인 혈강대원들에게 그런 건 당연했다.
다들 알아서 짓이긴 풀이나 텁텁한 진흙을 전신에 발라두었다.
하지만 혈강대가 아닌 외부 인원이, 딱히 지적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동물의 분변을 펴 바르는 모습은 대단히 의외였다.
거기다 설휘는 놀랍게도 병기를 땅에 묻어버리기까지 했다.
막화도, 진권도, 심지어 설휘에게 부루퉁하던 무웅마저도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인정했다.
“녀석. 좀 하는데?”
‘이 녀석. 출신이 어디지?’
강은 설휘의 출신이 어딘지가 궁금했다. 하는 행동을 보면, 자신들 혈강대 대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위장이 능숙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사제자 곤마의 조직 중에 그런 곳이 있었나? 고민을 해보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곤마 님 휘하라면 은영단인데 부대가 뭐가 있더라?’
이는 마교 특유의 명명법 탓도 있었다. 다들 뭐 하면 수라니 혈마니 사망이니 하는 강한 단어들만 쓰다 보니, 딱히 두각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 조직이 그 조직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사냥은 어느 쪽으로 할 생각인가?”
설휘의 소속을 파악하려던 강은 포기하고 슬쩍 다가가서 물었다.
“한 일행이 눈에 들어오는군.”
설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숲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디에 있는데? 보여?”
“아니, 냄새로. 꽤 떨어져 있지만, 그리 멀지 않아.”
설휘의 말에, 강이 다들 준비를 마친 조원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좋아. 그럼 사냥을 해보자고.”
***
한편, 4조에 속한 요수광은.
콱!
“컥! 끄극…….”
조원 한 명의 멱살을 잡고 돌벽에 처박고 있었다.
“닥치고 따라. 죽여 버리기 전에.”
“끄으.…….”
“…….”
“…….”
주변은 침묵했다. 다들 다른 곳에서는 큰소리 좀 칠 만한 혈강대 대원들이었지만, 눈앞의 요수광에게는 감히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들도 딴에는 초절정에 오른 고수이지만, 요수광은 자그마치 초마의 극에 오른 강자.
‘저 새끼 저거…….’
마침 그들 조에는 요수광보다 더 강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혈사비였다.
‘젠장. 나설 수도 없고…….’
다른 혈강대 대원인 척해야 하니, 여기서 제지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호흡법을 달리해라. 여긴 물속과 다르다. 높은 나뭇가지를 밟고 서 있으려면 무엇보다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요수광이 선택한 은신은 나무 위였다.
흙에 몸을 묻거나, 그늘진 바위틈에 숨는 건, 스스로를 숨기기엔 좋지만, 누가 접근하면 숨죽인 채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중에서, 적극적으로 시야를 먼저 확보하는 것을 우선했다.
치솟은 나무 중 하나를 골라 올라갔고, 복장도 충분히 위장을 더했다. 척 봐도 완벽히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상황.
“혹여나 발각되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너희들은 모두 남쪽으로 이동해. 난 쫓아오는 교관을 유인해 북쪽으로 이동하겠다.”
요수광의 이런 판단은 자신의 무위에서 나왔다.
은엄폐는 충분히 했고, 혹여 걸리더라도 상관없다. 여차하면 교관에게 한 방 먹인 후, 자신이 붙잡히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가산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알았어. 우린 너만 믿겠다.”
“뭐. 그 실력이면 잘할 것 같네.”
요수광의 말에 조원들은 별다른 반박이 없었다.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너무 압도적인 실력 차가 이견을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교관에게 선제공격을 갈긴다.’는 발상 자체가 대단했다.
그리고 워낙에 큰소리를 쳤기에, 진짜로 뭔가 한 수가 있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응?”
그러다 4조의 한 명이 슬쩍 고개를 내렸다.
잠깐, 뭔가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잘못 들었나?’
숲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소란스러운 곳이다. 새소리. 벌레소리. 말라서 떨어지는 낙엽이나 잔가지 등이 일으키는 소음이 은근히 많다.
그래서 새였나……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그때.
뿌직.
누군가가 나뭇가지를 꺾고 있었다.
“너, 누구냐?”
“음……?”
그 소리에 요수광이 반응했다.
바직. 바직. 쿡.
돌아보니 가관이었다.
온몸에 잔뜩 위장을 더한 인물. 아마도 다른 조로 보이는 인물 하나가 자신들이 몸을 숨긴 나무 밑에서 나뭇가지를 꺾거나 바닥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 죽고 싶냐?”
요수광의 살기 어린 말에도 그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멀찍이 다른 녀석들도 곳곳에 여봐란듯이 흔적을 내고 있었다.
“건방진!”
요수광은 빠르게 반응했다.
패액!
천근추를 펼쳐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온 그는, 상대의 정수리를 내려찍어 일격에 실신시키려 했다.
휙!
“……?!”
헌데 상대는 너무도 쉽게 피했다. 그리고 요수광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뭐 하는 거냐.”
요수광의 목소리에 분노가 서렸다.
복면과 두건. 거기에 잔풀과 잔 나뭇가지로 위장한 상대.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뭐 하긴. 사냥 중이지.”
“……뭐?”
“출구부터 여기까지 표시해놨거든. 지금쯤…… 교관이 들어서면 그 흔적을 따라 여기로 달려올 거다.”
“뭐 이런 미친…….”
“그리 여유가 있진 않을 텐데? 교관더러 여기라고 소리치는 건가?”
“……!”
요수광은 눈에 살기가 일었지만,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상대는 자신들이 발각되게 의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하면.
“오히려 잘됐군. 지금 네놈을 쓰러트리면, 네가 발각될 게 아닌가?”
요수광의 말에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방법도 있었군.”
“죽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말이지.”
상대방을 본 요수광은 확신했다. 병기도 없어서 단번에 쓰러트릴 수 있음을.
그렇게 파고드는 그때.
타타타탁.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발걸음을 한 것이다.
“근데 이거 어쩌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설휘가 말했다.
“교관이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말이야.”
둘이, 아니 두 조가 탈락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설휘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