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빈틈을 파고드는 법 (3)
파팟!
요수광은 결단을 내리고 바로 움직였다.
‘단 일 검에 승부를 본다.’
그는 머릿속으로 이런 상황에 가장 적합한 무공을 하나 떠올렸다.
혈해검혼칠식(穴海劍魂七式).
기원은 쾌검류에 속하긴 하나, 위력만 놓고 분류하면 능히 신공 소리를 듣는다.
단숨에 모든 진기를 한 손으로 응집시켜, 검의 속도만 아니라 위력까지 늘리는 검초기 때문이다.
씨잇!
공력을 일으키는 순간 일어나는 광채 또한 한몫했다. 뭔가 번쩍이는 순간, 이미 서너 번의 찌르기가 구현되고 있을 테니까.
다만, 이번의 경우 요수광은 ‘살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고자 손속을 기존과는 조금 다르게 했다.
방향을 우측으로 조금 틀고, 깊게 찌르는 행위를 없앤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놈에게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적당한 부상을 안겨주기에 좋을 테니.
솨아아아아.
반면 설휘는, 요수광의 검이 움직이는 순간,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직감으로 느낀 것이다. 공격을 한곳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
그리고 예상은 들어맞았다.
처음에 천천히 움직이던 검 끝에서 갑자기 광채가 어른거리더니, 곧 지근거리에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으로 변해갔다.
생경한 경험이었다. 이제껏 많은 무공을 보아온 설휘에게도, 예비 동작 없이 바로 펼치는 쾌검은 너무나도 기이했기 때문이다.
쩌저적.
설휘가 딛고 있던 땅이 갈라졌다.
상상 이상으로 빨라지는 요수광의 쾌검을 피하기 위해 급히 뒤로 이동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싯.
그럼에도 요수광의 검은 설휘의 복부를 관통할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쩌저저적.
한 치(3cm)를 남겨놓고 더는 좁혀지지 않았지만.
휙. 휘휙.
땅의 흔들림과 함께 기이한 진기들이 설휘의 몸을 감쌌고, 그 이후로 움직임도 극한으로 빨라졌다.
이형환위가 시전된 것이다.
“이, 젠장!”
츠으으윽.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피해내자 요수광이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공격했다면 충분히 제압했을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이었다.
“피해? 어디 다시 피해봐라!”
그 분노에는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자신의 장기인 혈해검혼.
그걸 기습적으로 썼을 때에 피해낸 이는 누구도 없었다. 몇 안 되는 자신의 상관들 빼고는.
헌데 이놈이 피해냈다?
그럼 자신의 상관들과 같은 수준이란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츠츠츠츠츠!
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이번에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두 조각으로 갈라 죽일 작정을 한 요수광은.
“……!”
검을 뿌리기 직전 멈칫했다.
다다다닥.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교관이다. 어느새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어딜 보냐.”
“……!”
파악.
순간, 설휘가 요수광을 덮쳤다.
강한 발차기 한 번에 요수광이 물러서게 만들었고, 그 기세를 따라 공중에서 두세 번의 발차기가 이어졌다.
“이 자식!”
검은 뽑지도 않고 고작 발차기나 해대는 녀석을 본 요수광은 분노했다.
그는 다시 달려드는 지점을 포착, 검기를 쏘아내며 횡으로 휘둘렀다.
휘잉!
“……!”
허나, 그건 허초였다.
설휘는 급히 자세를 낮춘 뒤, 재차 달려들어 요수광의 머리를 밟고 곧장 도약한 것이다.
퍽.
“……이 새끼가!”
농락당했다.
머리를 밟혔다. 그것도 열이 받지만, 그 발에 조금만 힘을 주었으면 그대로 목숨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었다는 것에 더욱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다.
타닥.
“……!”
허나, 그때는 이미 교관이 지척까지 다다라 있었다.
으득!
요수광은 이를 악물고 이성을 되찾으며, 나무 뒤로 급히 모습을 감추었고.
“여기로군.”
드디어 도착한 교관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파파팟.
나뭇가지를 밟고 거의 날듯이 달려가는 요수광. 그 뒷모습을 본 허(墟) 교관은 피식 웃었다.
“이 거리에서 놓친다면.”
그는 대충 상대가 이동하는 속도, 그리고 저 앞에 남은 숲의 너비를 헤아려 보고는 공중으로 도약했다.
“혈강대 교관 자격이 없지.”
파앗.
그는 나뭇가지 몇 개를 밟은 뒤, 자연스럽게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영(飛影).
쉬익!
회전과 반탄력을 이용하는 신법으로, 깃털처럼 가벼운 초상비 계열 경공술이 응용된 보법.
그 움직임은 지상을 날렵하게 내달리는 표범처럼, 아니 하나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탕. 파앙. 사악!
곳곳에 뻗친 나뭇가지. 그 불안정한 발판을 내닫는 걸음은, 오히려 지면을 밟는 것보다 더 빨랐다.
그도 그럴 것이.
투웅. 파앗!
허공답보와 함께, 또 다른 최상승의 경공술.
궁신탄영을 통해 더욱 속도를 가속시키는 것이다.
투웅! 퉁! 파밧!
‘쉽지 않다.’
요수광은 진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뒤를 쫓아오는 이. 솔직히 교관이라고 무시했다.
이제껏 지켜본 혈강대 대원들은 겨우 초절정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투웅. 투웅. 투웅.
그런데 쫓아오는 속도와 움직임을 봐서는, 최소한 신법에 한해서는 자신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자신의 뒤를 쫓는 자는, 누가 보더라도 일개 교관의 수준이 아니었다.
‘괜찮아. 어차피 내 정체만 들키지 않으면 돼.’
예상 이상으로 빠른 추적에 가슴이 답답해오자, 요수광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순수한 경공술로는 교관과 큰 차이가 없다.
허나, 직접 싸우면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자신을 들키지 않으며 싸워야 한다는 제약이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파파팟.
남은 거리는 3장. 거의 뒤통수까지 따라오는 교관을 느낀 요수광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스으으.
그는 칼을 얼굴과 손에 대고 긋기 시작했다.
후드득. 투둑.
상당한 출혈이 있음에도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극혈수라검(極血修羅劍).
혈광을 뿌려대는 최상승 무공으로, 과도하게 내기를 운용했을 때 자아를 잃는 부작용이 있는 마공.
허나, 요수광은 거리낌이 없었다.
어차피 최악의 경우. 발각되어 퇴출당하는 것보다는 교관을 죽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자식. 그 녀석 때문에…….’
요수광은 누군지 모를 그 녀석을 떠올렸다.
기껏 은신해 있는 지역에 일부러 흔적을 만든 그놈만 아니었으면,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만난다면, 그때는 절대 놓치지 않고 요절을 내줄 생각이었다.
타닥!
‘다 왔다.’
요수광의 짐작대로, 주변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까지. 어차피 독안에 든 쥐다. 교육생은 순순히 얼굴을 보이고 실격 처리를 받아라.”
허 교관의 외침에도 상대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허교관은 대충 그가 있을 위치로 시선을 옮기고 이내 신법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파파팟.
그렇게 나뭇가지를 밟으며, 그곳까지 이동하던 그때.
“억!”
나무 윗동을 가르며 기공이 날아오는 걸 느꼈다. 시뻘겋게 빛나는 붉은 기운을 본 그는 기함했고.
촤아아악!
서너 개의 혈광이 주변을 감싸자마자 그는 온몸을 감싸며 호심공을 끌어올렸다.
쾅!
“컥!”
허나, 완전하지 못했다.
설마하니 교육생이 이런 식으로 교관인 자신에게 살초를 펼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일격을 받고 곧바로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허 교관.
“이놈이…… 아!”
팔이 주욱 늘어진 그가 고개를 올렸을 때였다.
시잇. 시잇. 시잇.
사방에서 몰아치는 혈광이 보였다. 이는 그저 살초 정도가 아니었다. 검극탄보다 더 높은 상위 기술.
이미 일개 대원이 펼쳐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피할 수…….’
그는 순간적으로 펼쳐낼 신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애초에 그가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촤아아아악.
수많은 혈기류에 먼저 두 팔이 잘려나가고.
다음으로 온몸이 난자당했다.
그는 그렇게 바닥에 쓰러졌다.
“뭐, 본 사람도 없으니.”
요수광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숨을 돌렸을 때.
“교관을 죽이다니. 너, 배포 하나는 엄청나구만.”
자신을 수렁에 몰았던 녀석이, 저편에 서 있었다.
“……!”
요수광은 일순 모골이 송연해졌다.
사건 현장을 지켜본 이.
더욱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자.
잠깐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협상하지.”
“…….”
“지금 이건 못 본 거다. 그렇게 하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그 말에 설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내가 왜 좋은데?”
“나를 적으로 돌리지 않아도 되니까.”
“난 상관없는데.”
설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이 일을 대대적으로 알릴 생각이다. 그럼 어찌 처분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지. 바로 탈락시킬지, 아님 계속해서 기회를 줄지.”
“너…….”
빠직.
요수광은 이마에 실핏줄이 그어졌다. 그와 함께 검 끝에서는 흉흉한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죽고 싶으냐.”
“죽어? 내가?”
쾅!
요수광이 검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설휘 옆으로 지나간 혈광이.
촤촤촤촤촤.
나뭇가지를 수없이 산산조각으로 잘라버렸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마. 너의 선택이…….”
“웃기는 소리 하네.”
투욱.
설휘는 방금 혈광에 잘려나간 나뭇가지, 그중 석 자 정도 되는 것을 발끝으로 걷어차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그걸 들어 요수광을 가리켰다.
“어디서 겁박질이냐. 기운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남발하는 녀석 따위가.”
“…….”
두 사내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이내 요수광은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여기서 하나는 죽어야겠구나.”
“……그게 내가 될까. 아님 네가 될까?”
“흐흐흣.”
츠츠츠츠측.
요수광이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검 끝에 피가 모이기 시작했다.
극혈수라검은 자신의 피를 이용하여 내공을 더욱 증폭시키는 무공.
그는 지금 거기서도 거의 극에 달한 기운을 사용하려고 하고 있었다.
휘이익. 휘이익.
그 반면.
설휘는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있었다.
분명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적인데.
지금 자신 앞에선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태풍은 그저, 한순간에 지나지 않지.’
아마도 그 여유로움은 태극검에서 얻은 심득으로 발현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상대가 공격이 거칠고 강할수록. 그 힘의 중심은 한없이 약한다던가.
그러니 자신이 잡은, 금방 부러질 듯한 나뭇가지가.
녀석의 저 무시무시한 혈광도. 가볍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오는군.’
파앗.
요수광이 나뭇가지를 박차며 공중으로 뛰었다.
그 움직임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어떤 신법을 쓴 건지 몸이 회전하며, 공중에서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설휘는 나뭇가지를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놈의 살초를 뻗어내는 그 지점을 포착하기 위해 눈을 번뜩였다.
하지만, 요수광 역시 단순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서기 선에 이미 극혈수라검의 정수인 혈광 다발을 쏘아냈다.
촤아아악.
사방을 조여 오며 쏘아지는 핏빛 섬광의 그물.
앞서 허 교관이 맥없이 당한 그 기술을 펼쳐낸 것이다.
‘걸렸어!’
역시나 설휘 역시 꼼짝하지 않고 그 행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사방을 휘감는 혈광.
대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는 핏빛으로 검기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강기에 준하는 기운.
강기를 받아치는 건, 오로지 강기만 가능했다.
스으으윽.
‘무슨 짓거리를…….’
헌데 요수광의 시야에 잡힌 상대의 움직임은 기가 막혔다.
쏘아지는 기공류. 그것도 강기에 가까운 절대적 기공을 나뭇가지로 맞상대하려고 하고 있었다.
자살행위도 정도껏이지, 당연하게도 그는 저 기운에 상대가 난자당할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
쉬이이이이.
첫 혈광이 설휘의 몸에 닿기 전에 나뭇가지에 걸렸다. 당연히 나뭇가지가 잘려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기운의 방향이 비틀리고 끌려가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였다.
바위도 잘라버리는 혈광의 기운이, 나뭇가지에 걸리기 시작하더니 빙글빙글 회전하며 하나둘씩 사라지거나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 무슨…….”
그리고 모든 핏빛 기류가 사라졌을 때쯤.
“더 높은 세상을 보여줄까.”
후두두둑.
설휘의 말과 함께 바닥에서 돌멩이들이 치솟기 시작했다.
“허공섭물……?”
사방에 휘날리는 돌멩이. 그리고 부러지는 나뭇가지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다시 다가오는 혈빛의 기류.
콰아아아아앙!
요수광은 정신을 차릴 새 없이, 쏘아져오는 공격 속에서 그저 넋을 잃고 보았다.
사량발천근과 허공섭물, 그리고 태극검이 조화된 총공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