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63화 (267/379)

263화. 빈틈을 파고드는 법 (4)

요수광은 괴이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드드드득.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광경.

태풍이었다. 수천 개의 돌이 치솟으며, 그 이상의 나뭇가지들과 함께 주위로 비산하는 장면.

일격에 만격이 깃들어 있는 그 공격을 보며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괴물…….’

쿠우우우우!

태풍의 중심에서 회오리치고 있는 것은, 어이없게도 방금 자신이 펼쳤던 핏빛 기류였다.

혈해검혼칠식. 그 일부가 여력이 남은 채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핏빛 기류의 중심에는.

그극. 극. 극.

세상 모든 만물의 기운을 아우르는 태극의 기운이 검은 눈처럼 깃들어 이 태풍을 움직이고 있었다.

‘무신(武神)…….’

요수광은 마치 세상의 종말을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여서 부숴버리는 돌개바람. 이걸 사람이 구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의 주군인 살마도 이런 무시무시한 무위는 보이지 못했다. 만약 그게 가능한 존재라면.

‘천마. 아니. 교주…….’

떠오르는 인물은 단 하나.

파아아앗.

그러니 이건 환상일 것이다. 환각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고, 요수광은 쏘아지는 기운을 실감하는 자신의 감각을 부정했다.

그래서 온몸을 찢어발기는 핏빛 기류들에 대항하지 않았다. 당연히 두 팔이 날아갔고, 고통을 느낄 틈조차 없이 즉사해버렸다.

파과과과과!

그렇게 천참만륙. 온몸을 수천 개의 칼날이 베고 지나가, 뼈에 살만 덜렁덜렁 붙은 시체로 화했다.

“후우우…….”

한참 후, 설휘는 기운을 갈무리했다.

이번에 펼친 무공의 조합은 어마어마한 파괴력만큼 무리한 감이 있었다.

설휘 자신의 내공만이 아니라, 상대의 기운을 집어넣은 후에, 자연의 기운을 조율하여 통제하는 시도.

처음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동시에 세 가지 기운을 아우르는 것은 그에게도 아직 버거웠다.

“교관을 죽였으니, 변명거리는 있는 건가.”

그래서 요수광에게 쏘아낸 마지막 힘 조절이 아쉬웠다.

단전이나 심장만 파괴할 요량이었는데…… 기운이 통제되지 않았다. 덕분에 요수광은 끔찍하게 난자당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육편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요수광 본인이 휘두른 핏빛 기류에 의해.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어디야?”

설휘는 주변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싸움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원래 이동하려던 거리를 아득히 지나버렸다. 본래 함께해야 할 조원들의 위치가 어딘지 헷갈린다.

무리도 아닌 것이, 좀 전에 그가 일으킨 태풍은 이 주변 일대 오 장 범위 안을 죄다 찢어 발겨버린 것이다.

파파팟.

결국 설휘는 파괴 범위 바깥의 나무 하나를 타고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한참을 살핀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군.’

대략 삼십 장. 다들 놀라서 약속했던 거리 바깥으로 피한 모양이다.

타닥!

설휘는 나무에서 내려와 조원들에게 내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후. 다음에는 조심해야지.”

이번에야 운이 좋아서 망정이지, 이런 모습을 교관이 보았다면 큰일이었을 것이다. 탈락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조원들이 보았다면…… 그때의 경우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설휘에게도, 그리고 그의 조원들에게도.

***

까악. 까악.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까마귀들.

저녁이 지나 날이 밝아오던 아침. 주검으로 변한 허 교관을 내려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분명 살인을 허용치 않는다 일렀을 텐데…….”

으드득!

주귀선은 이번 전술 교육을 시행하는 교두들 중의 수석 교두였다.

비록 죽은 허 교관이 자신과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의 휘하에 있는 이가 살해당했다는 것은 상당히 화가 나는 일이었다.

“아마도 그놈들 중 하나겠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는 총교두 소천괴였다.

허 교관이 중간보고를 해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주귀선이 급히 움직였고, 뭔가 좋지 않은 예감에 따라나선 그 역시 사태를 파악하는 중이었다.

“어떠냐.”

“하아…….”

부스슥.

사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흔적을 찾던 복면인. 조사관 민옥기(閔玉基)가 피 묻은 돌과 나뭇가지들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뭐야. 문제가 있나?”

주귀선 교두의 물음에, 그는 좀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대략은 파악했습니다. 더 정확한 것을 요구하시면 부검을 거쳐야겠지만……”

“부검까지? 왜?”

이번엔 총교두가 물었다.

혈강대는 기본적으로 기습. 암습에 특화된 부대다. 그 말은 추적, 흔적 살피기에도 능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전문 조사관이 아니라 해도, 당장 그들도 이 일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대강 파악이 가능했다.

정확히는, 파악을 못 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십장 내외로 온갖 파괴의 흔적과 피 자국이 널려 있었으니까.

“소관이 살펴보기로…… 허 교관을 급습한 무공은 혈해검혼칠식으로 보입니다.”

“혈해검혼칠식이면.”

“일제자 살마의 독문 무공이지.”

주귀선과 소천괴가 말을 주고받았다.

광기와 혈기를 근원으로 하는 마공.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폭력성이 강한 마공이다. 당연히 그 흔적은 숨기려야 숨기기 힘들 정도.

“그럼 이 녀석이 요수광인가.”

“그게…….”

소천괴의 물음에, 조사관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품속에 있는 용포파기 한 장을 꺼내, 시신과 비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습니다. 아주 갈갈 갈려있긴 한데, 이자가 요수광. 일제자 살마 님께서 보낸 요원입니다.”

“……그건 좀 괴상하군.”

주귀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총교두 소천괴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 눈이 이상한 건지…… 내가 보기에는 이자가 당한 수법도 혈해검혼칠식 같은데?”

“내가 보기에도.”

“그게 문제입니다.”

소천괴가 동의하고, 그리고 조사관이 고개를 내저었다.

“요수광을 난자한 수법 또한 혈해검혼칠식이었습니다.

“뭐?!”

“……?!”

두 교두가 당황했다.

앞서서 말했듯, 혈해검혼칠식은 일제자 살마의 독문무공이다. 그러니 당장은 화가 날지언정 앞으로의 대응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요수광이 독수를 써서 허 교관을 살해했다는 걸 확인시키고, 일제자 살마에게 따지면 되는 일이니까.

헌데, 그 요수광이 살해당했다? 그것도 자신의 검식에? 이건 무슨 희귀한 일이란 말인가.

“심지어 같은 초식인데 위력이 천지차이입니다. 아마 면밀히 조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두 교관은 조사관이 왜 고민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같은 초식인데…….”

“……이렇게 위력 차이가 난다라. 허.”

총교두 소천괴는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일이 대단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요수광이 허 교관을 살해한 것은 분명한데, 그것과 똑같은 수법으로 요수광 자신도 살해당했다.

심지어 더 강맹한 위력으로.

“이거 참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대단히 파장이 크게 번질 수 있는 일이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요수광을 살해한 자는, 요수광 본인보다 더 잘.

혈해검혼칠식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천마의 일제자 살마가 직접 가르친 요수광보다 더.

“분명히 독문무공이라고 들었는데…… 어디서 유출된 거지?”

“모르겠군. 교주 직속 휘하의 다른 자가 있나?”

차라리 살마가 변변치 못하게 무공을 흘리고 다녔다면 모르겠는데, 후자라면 이야기가 대단히 복잡해진다.

교주가 갑자기 이제 와서 무슨 생각으로 후계자 쟁투에 끼어든 것인지 헤아리기 어렵고, 그런 이를 몇이나, 어디에 얼마나 배치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제자 살마에게, 당신이 보낸 부하가 당신이 쓰는 무공에 죽었다고,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따져 묻기도 곤란하고.

“……이런 건 생각하지 말자.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

“예?”

소천괴의 말에 주귀선의 시선이 돌아왔다.

“교주의 수하든, 누구의 수하든, 문제는 요수광을 죽인 자가 여기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럼 찾아내면 되는 것이지.”

“……어떻게 말입니까?”

“아침에 끝나는 전술 교육을 연장하세.”

소천괴가 잠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둔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산중에 중요한 물건 하나를 놓게. 보물이든 뭐든. 교관들이 그것을 가져갈 수 없게 경계를 서고, 그럼에도 가져갈 수 있는 조만 합격시키게.”

“총교두님……?”

뭔가 이제 알 것 같은 표정을 짓던 주귀선.

그를 보면 소천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죽이는 싸움을 허용해야겠지. 표적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숨겼던 모든 무공을 다 쓰게 만드는 거야. 그러다 보면 나오겠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실격. 그렇게 말입니까.”

주 교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죽음의 인과를 찾아야 해. 그렇지 않고선…… 제자들이 결코 납득하지 않을 거야.”

죽은 자가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연관성을 확실히 하지 못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죽은 자를 보낸 일제자 살마라면. 그의 성미라면.

“들이는 게 아니라 찢어발기려고 들 수도 있어.”

회유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 혈강대다. 하지만.

살마의 전력을 다한 공격에 무사할 수는 없었다. 총교두 소천괴는 이 부분을 우려하여, 계획을 다시 변경한 것이다.

***

“이게 뭐지?”

아침이 막 밝아오던 시간. 사방에서 흩날리는 종이 하나를 잡은 혈강대원 하나가 의아함을 표했다.

“그게 뭔데?”

그러자 옆에 있는 한 사내가 다가와 물었다.

내용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술 교육] 마지막.

- 입구부터 북서쪽으로 십 리 정도에 회암전(檜巖殿)이 있다. 그곳 일층 중심에는 소화검(素火劍)이 놓여 있다. 주변을 경계하는 교관들의 눈을 속이고 이걸 가져가는 조가 있다면 이 교육은 끝난다.

* 교관의 살인은 허용되지 않으나, 다른 조원들끼리의 살생은 허용한다.

“어. 갑자기 무슨 일이지?”

일반 혈강대원들은 전술 교육의 성격이 달라진 걸 의아하게 생각했다.

다른 조원끼리의 살생을 허용한다니. 물론 그런 교육 내용도 있다고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이 시간이 아니었다.

특히, 시작할 때 살인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해 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방침을 바꾸다니. 이건 어지간해선 없는 일이다.

“갑자기 왜…….”

“뭔가 문제가 생겼나 보지.”

부스럭.

“……!”

의아해하던 혈강대원은 갑자기 극도로 경계하며 한 발 물러섰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말을 받은 것은 주서린.

교육 시작부터 사람 목을 날리며 들어온 외부인이었으니까.

“아까 저쪽에서 파공성이 울렸어. 거기서 꽤 큰 격돌이 있었던 걸로 보이고. 그 덕분에 우린 득을 봤지. 교관들이 찾지 않았으니까.”

“음…….”

“흠. 그런가.”

다만, 같은 조라서 위안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의 조리 있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혈강대원 하나가 물었다.

“그럼 바로 움직이지? 우리가 제일 먼저 표적을 확보하면 우승하는 거 아닌가?”

“그건 그렇지.”

그렇게 다들 동의하는 것 같았지만,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어이. 교관들의 눈을 속여서 검을 빼내오는 거……가능하겠어?”

“…….”

“…….”

대답은 없었다.

갑자기 방침을 바꿔서 교관이 직접 표적을 지킨다면, 그 경계는 당연하게도 철두철미할 터.

교육생들의 수준으로, 진심이 된 교관의 눈을 속이고 들어가기란 불가능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 우린 다른 조를 노리면 되는데?”

“아?”

주서린의 웃는 말에 다시 대원들의 시선이 모였다.

“교관의 감시하에 표적을 빼낸다? 그런 번거로운 일을 우리가 할 필요가 있나.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는 시도할 테고, 우린 그들이 들고 있는 걸 빼내면 되지.”

“오!”

“오오.”

그 말에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교관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야, 당연히 같은 교육생을 상대하는 게 쉽다. 하지만 그렇게 밝아진 그들의 얼굴은.

“물론 하나는 알고 있어야 해. 상대가 교관을 힘으로 누르고 빼낸 경우, 그런 상대에게 달려든 우리는…….”

주서린의 한마디로 박살 나 버렸다.

“그 자리에서 뒈지는 거야. 안 그래?”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