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70화 (274/379)

270화. 드러나는 존재감 (2)

싯! 시시싯!

“……!”

강기 서너 개가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설휘는 급히 거리를 벌리며 방어를 굳혔다. 생각과 동시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즉사할 만큼 허를 찌르는 공격이었다.

‘어떻게?’

살마의 동작은 단 한 번.

그저 평범한 내려베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내려베기를 하는 중에, 강기 서너 개가 차례로 쏘아졌다.

설휘는 몸을 뒤집으며 그걸 피해냈지만, 기묘하게도 사납게 날아들던 강기는, 어느 순간 허공에서 훅. 하고 사라져 버렸다.

“흐흐흐. 뭐냐? 허실의 구분도 못 하는 거냐?”

“…….”

살마의 진득한 비웃음에 설휘는 눈살을 찌푸렸다.

‘환영……? 그런 거였나?’

극상의 쾌와 환의 요결을 사용하면, 번득이는 검광으로 검기나 검강을 뿌려내는 것처럼 속일 수 있다.

방금 피해낸 것이, 강기가 아니라 그런 검광의 변화라면, 설휘는 괜히 지레 겁먹고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속임수가 아니라면?’

문제는, 천마의 제일 제자 살마가, 무슨 패를 숨기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

조금 전의 강기가, 눈속임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했다간 목이, 아니면 팔 하나가 날아가고 말았을 터.

‘무슨 원리지?’

베기가 마무리되기 전에 쏘아져서 날아드는 강기.

이치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먼저 어기충검을 거쳐, 검기상흔을 지나고, 그다음이 검기성강의 수순이다.

하지만 살마의 일격은 그런 궤를 뛰어넘었다.

검에 기가 가득 차기도 전에 먼저 쏘아져 나왔으니까.

그그그극.

기감을 사방으로 펼쳐서 살마의 다음 수를 감지하려는 설휘.

극마의 마지막 단계인 그로서는, 상대의 몸에 서리는 진기를 감지하는 것으로 다음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원래라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으음…….”

지이잉. 지이이잉.

살마가 뻗어내는 무형진기가 주변을 농밀하게 뒤덮고 있었는데, 그게 마치 안개나 연기처럼 기감으로 얻을 시야를 방해했다.

거기서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가만…… 설마 투기 때문인가?’

투기는 내력이나 내기와 다르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다.

불리한 싸움에서도, 강한 적을 상대로 할 때에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일종의 마음가짐.

그리고 살마는 유독 투기와 살기를 운용하는 것이 익숙했다.

“…….”

그저 마음가짐. 싸우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이런 기예가 가능한 것인가?

알 수 없다.

어차피 극마의 단계는 심기체를 모두 극한까지 갈고닦은 것.

살마 특유의 투기를 주의해서 살피며, 설휘는 빠르게 대응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쉬이이익!

때마침 펼쳐지는 살마의 공격.

시시시싯!

내력이 가득 찬 살마의 검이, 울부짖는 짐승처럼 느껴졌다.

“……!”

설휘는 검이 높이 치솟아 있을 때 날아온 강기를 피하고, 중단 즈음에서 생성된 또 다른 강기도 피했다. 그리고 마지막 거의 지척에서 생성된 강기는 빠르게 흘려버렸다.

사사사삭. 팩!

그리고 공기 속으로 녹아들어가 사라지는 강기.

“……으음.”

기감을 끝까지 뻗치자, 설휘는 주변을 감싼 괴이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확신했다.

대체 어떤 무공으로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투기로 환상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자신의 경지를 예상하고 날린 공격일 터.

설휘는 극마의 벽을 두 단계 넘고 난 뒤, 내공이 필요할 때 자연의 힘을 끌어다 쓰곤 했다.

그러다 보니, 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녀석의 투기도 함께 흘러 들어온 것이다.

“갈!”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살마의 공격은 또다시 이어졌다.

사. 사사. 사사삭.

‘보인다. 이제야……’

검을 세차게 휘두르는 동작 안에 미세하게 떨리는 검격.

뒤로 물러서던 설휘는, 그걸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쩌어어엉.

일격.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낸 설휘는, 순식간에 살마 옆으로 따라붙어 검을 휘둘렀다.

“……읍!”

지이익!

노리고 제대로 먹인 기습이다. 정확하게 목을 노려서 벨 수 있었다.

그그극. 치익!

“……?!”

허나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목과 어깻죽지로 설휘의 검을 받은 살마. 그는 마치 두 손으로 검을 빼앗는 공수탈백인 같은 수법으로, 목덜미에 날아든 검을 붙잡은 것이다.

“대체 무슨 몸이…….”

어지간한 수라장을 다 거쳐온 설휘조차도 당황했다. 일격에 목을 베어 날릴 정도의 내력이 실린 검을, 맨살로 받아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호신공인가.

“너, 걸려들었어.”

“……?”

그리고 일격을 받은 녀석은 도리어 웃고 있었다.

영문 모를 말을 내뱉더니.

“하아아압!”

콰아아앙!

화끈한 열기와 함께 강력한 충격파가 덮쳐왔다.

살마가 일으킨 불꽃은 그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십 장 내에 있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

“미친!”

“인간이 아냐!”

급하게 떨어진 혈강대는 경악을 토해냈다.

불운하게도, 근처에 있던 대원들 중 두 명이 화마에 휩쓸리는 걸 보았다.

파스스슥.

사람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 정도의 위력. 하물며 전조도 없이 급작스럽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불.

감히 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이었다.

부글부글.

한바탕 폭발을 쏟아냈음에도, 남은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용암이 쏟아진 듯, 이글대는 열기가 주변의 접근을 불허하고 있었다.

“이, 이런 일이…….”

이 정도면, 이런 괴사를 일으킨 살마의 안위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사방을 뒤덮은 재 가루가 밀려나가고, 조금씩 밝아지는 열기의 중심에 서 있던 살마.

그는 주변을 살피고는 믿기 힘들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휘가 서 있었던 것이다.

“허……?”

살마는 조금 전의 일격에 진심으로 죽이려고 했었다.

사대극마공 중 가장 강력하다는 화공. 그것도 범위 안에 든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절대비기를 쏘아낸 것이다.

헌데, 녀석은 맞고도 살아 있었다.

“상당히…… 위험했네.”

놀랍게도 피하지 않고, 열기를 받아내기까지 하면서.

쿨럭쿨럭!

설휘가 말하는 도중 열기가 뿜어 나왔다.

그 역시 피해가 없진 않았다. 상대가 펼친 극강의 화공은 과거 자신이 썼던 대멸천분공과 흡사했다.

그래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과거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면, 자신은 폭발에 그대로 쓸려나가겠지만. 뛰어넘었다면.

그그그그극.

지금처럼 열기를 받아내고도 제어할 수 있을 거라고.

물론, 직접 맞아보니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이젠 내가 보여줄 차례다.”

“이, 이! 건방진……!”

살마는 이를 갈았지만, 그 얼굴은 창백했다.

조금 전의 일격에, 그는 가진바 모든 내력을 다 퍼부었다. 당연히 이대로 공격을 막기란 불가능했다.

애초에 상대가 살아있을 거란 전제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런 무공을…….

“큽.”

파밧!

그렇게 막 마무리를 하려던 설휘가 한 발 뛰어 물러났다. 그의 가늘어진 눈매가 슬쩍 한곳을 바라보자.

“이젠 그만하셔도 될 듯합니다.”

투욱.

혈사전주. 이곳의 주인인 그가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일제자께서는 충분히 실력을 보셨을 테지요. 곤마 님의 수하분이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면, 나름 납득할 만한 일 아니십니까?”

“…….”

“일제자님?”

“흥!”

그의 추궁에 살마는 시선을 거두었다.

생각해 보면, 여기에 온 것은 혈사전주의 영입 때문이었다. 그게 불가능하게 되어버리니 자신들의 수하.

그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반전을 꾀하려 했던 것이고.

허나, 눈앞에서 절대고수를 봤으니, 더는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군. 고작 이런 집체교육에…… 극마고수를 보내다니.”

극마고수.

그렇게 단정한 살마가 설휘를 노려보았다.

“너…… 이름이 뭐냐.”

“설휘다.”

“설휘……. 설휘라. 그래.”

살마는 잊지 않겠다는 듯, 두세 번 읊조렸다. 그러고는.

“다음에 봤을 때 제대로 결판을 내도록 하지. 물론 그럴 기회가 있을까 싶지만.”

휘릭.

장포를 휘날리며 걸어갔다. 멋대로 난입하고는 멋대로 빠져나가는, 여전히 안하무인인 자세였다.

“사제. 정말 대단한 수하를 두었군.”

짝. 짝. 짝.

지켜보던 마후가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곤마를 향해 약간 놀란 듯한, 그리고 조금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이거, 으뜸패를 너무 일찍 꺼낸 거 아닌가 모르겠어.”

“참,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극마 고수를 꺼내다니.”

아령이 마후의 말을 받았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사제 축하해. 좋은 부하를 가진 것에. 그리고 앞으로…… 사형들의 관심을 많이 받겠어?”

한마디를 더 곤마에게 건네고 사라졌다.

“후우…….”

그렇게 제자들 중 홀로 남은 곤마가 한숨을 쉬었다.

‘엄청난 성장을 했구나.’

설휘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휘하의 비밀무사로 영입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허나, 이 정도로 성취를 이뤘는지는 생각도 못 했다.

현직에서 활동하는 극마고수는 본교에서도 그리 많지 않은데. 그중 하나로 떳떳하게 등장한 것이다.

거기다 혈사전주까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그의 눈시울을 자극하고 있었다.

“넷째 제자분. 잘 계셨는가?”

그때 그에게 들려오는 한 목소리.

수염을 목젖 아래까지 늘어뜨린 노인이었는데, 장로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노인이었다.

곤마는 그를 보자 곧장 고개를 숙였다.

“태상 장로님.”

“그래. 요즘 표정이 밝으니 참 좋아.”

그는 슬쩍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저 아이가 자네 수하라지?”

“그렇습니다.”

“대단하구만. 실력으로 보건대 결코 누구의 아래에서 지낼 사람이 아닌데…….”

“어. 그것이…….”

“농이네. 자네 실력이면 누구든 수하로 삼을 수 있지.”

노인은 곤마가 난처해하자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가 절대적인 힘을 가졌단 걸 본교 내에서 모를 사람이 있는가?”

언뜻 치켜세워주는 말 같았지만, 실은 뭔가 의미심장한 얘기이기도 했다.

노인은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요즘 잘 듣고 있네. 일제자의 세력 구도에서 자네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지? 그 유명한 은거고수들도 합류했고 말이네. 이번에 한번 잘 해보게. 자넬 지켜보는 장로들이 많네.”

“감사합니다.”

“그래.”

노인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주변을 슬쩍 보더니 이내 곤마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을 이었다.

“다만 이럴 때일수록 발톱은 감춰야 하네. 사형들을 너무 자극해선 이로울 게 없어. 아니, 이미 너무 자극해버렸어.”

“균형의 추가 한곳으로 다시 움직이면, 그들 나름대로 방법을 찾을 거란 말일세. 적어도 일제자는 말이야.”

“…….”

그는 그렇게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주변을 또다시 한번 돌아보고는 미소와 함께 지나갔다.

‘힘의 균형…….’

잠깐 망각하고 있었다.

일제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그리고 둘째 사형 마후 역시 오늘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뭔가 수를 쓸 거란 말이었다.

그렇게 곤마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조용히 서 있던 한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설휘.”

“예. 주군.”

설휘의 목례에, 밝은 얼굴의 곤마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 대단하구나. 난 네가 대사형과 동수를 이룰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과찬이십니다. 아직 체력이나 정신에서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설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살마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강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경지가 더 높았지만, 그는 그 차이를 극복해냈다.

물론 설휘 역시 전력을 다 발휘한 건 아니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더는 지체할 필요가 없겠구나. 이제부터 내 너를 귀히 여기고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다.”

설휘의 눈이 커졌다.

드디어 그 어려운, 그간의 경험이 없었다면 통과하지 못했을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눈앞에 곧 활자가 나타났다.

<[비밀무사 추가 임무]에 성공하셨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