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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75화 (279/379)

275화. 빈틈을 만들 인물 (2)

은영단은 휘하에 여러 부대를 거느리고 있다.

예전에 설휘가 있었던 사령대. 그리고 몇 번 툭탁거렸던 사적대. 마지막으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사황대다.

현재 설휘는 그들을 통솔하는 은영단주다.

이제 곧 삼제자 세력과 전투에 임하게 되면 은영단주로서 이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아직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저기, 잠깐 다녀와도……?”

머쓱하게 묻던 설휘가 멈칫했다.

자세히 보니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동작이 멈춰있었다.

마치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약속된 시간 안에 빨리 다녀오란 얘긴가?’

설휘는 이런 광경을 몇 번 봤기에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고 방을 빠져나갔다.

‘……거슬리는군.’

하지만 예하부대의 대장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는 까닭 모를 불쾌감을 느꼈다.

강제 진행.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시간마저 멋대로 정지시키고 등을 떠미는 시스템.

분명 많이 바뀌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주도권을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경우를 겪으면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마치 커다란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밖으로 나오니 한 중년인이 시립해 있었다. 그런데 왠지 그 얼굴이 눈에 익었다.

“어…… 당신은?”

그는 과거 설휘가 은영단에 들어갈 때 시험을 주관했던 인물, 흑구였던 것이다.

“흑구라고 합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가 곧장 걷자 설휘는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다 다시 따라갔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은영단 정문의 이 층 전각.

은영단주가 일을 보는 은영보(隱影堡) 건물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부대장들과 교육관주를 불러오겠습니다.”

“잠깐만.”

그렇게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나가려는 흑구를, 설휘는 손을 들어 멈춰 세웠다.

“예. 말씀하십시오.”

“내가 은영단주면…… 너는 직책이 뭐지?”

“딱히 없습니다. 단주님께서 정해 주시면 됩니다.”

“……내가 정해?”

“예. 사제자께서 가신으로서 단주님을 보필하라고 소인에게 명하셨습니다.”

“그래? 음……. 알겠다.”

“그럼, 저는 다녀오겠습니다.”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하게 물러 나가는 흑구.

“……허어.”

가신이라.

설휘는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과거에 만났을 때 흑구는 감히 항거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평범한 무사 정도. 잘 쳐봐야 호위로 둘 수 있는 수하일 뿐이었다.

“문제는 흑구만큼이나 강한 은영단원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지…….”

현 은영단을 대표하는 자는 다섯이다.

은영단주였던 흑구와 교육관주인 적파.

사황대장 화순, 사적대장 비군, 그리고 사령대장 소령까지.

그들 대부분의 실력은 자신이 기억하기로 초절정.

비군의 전투력도 500만을 넘긴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소령은…… 확인해 봐야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초마의 벽을 뚫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

‘당장은 이대로 가야 하나. 단시간에 실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방법이 없으니.’

생각해 보니 조금 안타까웠다.

삼제자와의 전투가 지척이라, 실력이 모자라 죽는다 해도 지금은 어찌 도움을 줄 방법이 없었다.

새 마공을 전수한다 해도, 익히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여유가 조금만 있었어도 여러 목숨을 살릴 수 있을 텐데…….

‘아니. 가만.’

그렇게 착잡해하던 설휘는 곧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실력은 몰라도 전력은 올릴 수 있잖아?”

단시간에 무인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면?

간단하다. 좋은 무기를 쥐여주면 된다.

설휘에게는 도구함이, 한동안 거의 안 썼던 개인 창고가 있었다.

근래에는 쓸 일이 없었던, 다른 사람에게는 유용할 신병이기가 들어있는!

<도구함을 여시겠습니까?>

설휘는 눈에 불을 켜고, 곧장 안을 살펴봤다.

<장비>

황금 벨트, 진초혜, 건곤조구권, 금전자파, 패왕어갑, 천잠단화, 침조어뢰

<약재>

금창약 2, 천영음실 30, 군자산 1, 학령초 1, 황단 1, 백반 1, 도화산(桃花散) 1, 칠리산(七厘散) 1

<영약>

태청단 1

<잡화>

무관도 각종 서류, 비밀교서 지도(3/4), 비밀교서 열쇠

‘오!’

설휘의 눈이 확 뜨였다.

역시 있었다. 과거 사파의 도효이굉, 그들을 처리하고 얻은 신병이기들.

당시에 자그마치 5개의 장비를 도구함에 주워 담았다. 이거라면 단시간에 전력 상승이 가능했다.

“쓰임에 맞게…….”

제각각인 신병이기를 보며 설휘는 잠깐 생각했다.

먼저 건곤조구권.

분명 훌륭한 병기이긴 하지만 사용이 까다롭다. 이건 건곤권에 대한 이해가 높거나 훈련을 해본 자만 쓸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금전자파.

긴 철봉에 수십 개의 칼날과 원형 고리가 달린 병기. 이건 긴 낭아봉(狼牙棒)처럼 생각하면 됐다.

‘장병기를 잘 휘두르는 비군이나 화순, 아니면 흑구나 적파에게 주면 좋겠어.’

다음으로 패왕어갑은 방어구. 누구에게 줘도 좋고.

천잠단화는 이동속도를 올려주는 신발이니, 몸놀림이 빠른 이에게 주면 더욱 효과를 낼 것이다.

‘침조어뢰. 이건 비수와 같은 형상이니까…….’

“단주님. 말씀드렸던 이들을 불러왔습니다.”

“음.”

설휘는 꺼내놓은 병기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저리 분배할 생각을 하는 중에, 흑구가 들어오며 예를 차렸기 때문이다.

“들어오라 하게.”

턱. 턱. 턱.

설휘는 병기들을 벽 한쪽에 세워두고 진중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곧 세 명의 사내와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육관주 적파, 인사 올립니다.”

“사황대장 화순, 인사드립니다.”

“사적대장 비군, 인사드립니다.”

“사령대장 소령, 인사드립…….”

마지막으로 부복하던 소령이 흠칫했다. 정확히는 설휘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이었다.

“반갑다. 내 이름은 설휘, 이번에 은영단주로 발령을 받은 사람이다.”

설휘는 그녀를 모른 척하며, 다른 이들의 인사부터 받아들였다.

지금은 공적인 자리. 초면부터 괜히 복잡한 것에 심사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모두를 한번 둘러보며 물었다.

“좀 갑작스러운데, 혹시 이 중에서 건곤권을 써 본 사람이 있나?”

“…….”

설휘의 말대로 너무 갑작스러웠던 것일까.

잠깐의 침묵이 있었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제가 예전에 몇 번 써본 적이 있습니다.”

곧 한 명이 손을 들어 답했다.

교육관주 적파였다.

“호오.”

설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 적파가, 자신에게 병기술에 대해 알려준 적도 있었다.

여러 병기에 능통한 그라면, 특이한 기병(奇兵)에도 지식이 있을 터.

물론 건곤조구권은 일반적인 건곤권보다 훨씬 더 예리하고 다루기 어려운 무기다. 그래도 병기 자체가 워낙 강력하니까, 적파라면 어찌어찌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육관주. 이걸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어쩌다 인연이 닿아서 예리한 기병을 손에 넣었거든. 혹시 써볼 생각이 있나?”

“이건……?”

터억.

적파는 설휘가 건넨 건곤조구권을 보고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병기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안다. 이것은 일반적인 건곤권과는 궤가 다르다는 것을.

온통 은빛에다, 원형으로 나있는 날이 웬만한 대장장이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예기를 품고 있었다.

“조금 쓰기 까다롭긴 해도, 그냥 두기엔 아까운 병기일세. 잘 익혀서 써보게나. 다음은…….”

설휘는 한마디 하고는 옆에 있는 화순을 이어보며 말했다.

“사황대장. 창을 좀 쓰나?”

“예. 근거리에서는 검을, 중거리에서는 창을 혼용해서 씁니다.”

“잘됐군. 받게.”

설휘는 이번엔 그에게 금전자파를 내밀었다.

“헉, 이건…….”

화순은 입을 쩌억 벌렸다.

이제껏 그가 써온 단순한 창과 달리, 끝부분에 달린 수많은 갈퀴 고리들.

척 봐도 흉험하게 생긴 장대를 받아들며, 그는 자신의 병기에 자신이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은…….”

비군.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설휘는 녀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자네는 여기, 움직임을 빠르게 해 주는 기물이네.”

“이건……?”

천잠단화를 받아든 비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은 실감하지 못하지만, 이건 그의 강점을 강화해 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휘는 소령을 바라보았다.

이전에 봤던 그녀. 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령대장은 침조어뢰와 패왕어갑을 쓰게. 패왕어갑은 호신공을 대신할 수 있을 테고, 침조어뢰는 암기를 잘 사용하는 사람에게 적합할 테니.”

“……제가 암기를 주로 쓰는 걸 어찌 아셨습니까?”

“…….”

순간적으로 설휘는 멈칫했다.

과거의 생각으로 무심코 말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런 의문이 당연히 들 만했다.

“그게…… 사…… 제자께 물어봤지.”

“…….”

“수하들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는 기본 아니겠는가?”

설휘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붙인 뒤, 급히 일어서서 등을 돌렸다.

진정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까이에 있게 되니 감정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눈빛 때문에.

물론 지금의 그녀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을 하고 있었지만, 설휘는 알고 있었다.

그 이면에 숨겨진 따스한 감정을.

투욱. 처억. 처억. 스윽.

설휘가 뒤돌아 감정을 정리하던 사이, 다른 이들은 신발, 무기, 보호구 등 각각의 신병이기를 착용하거나 만져보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잡는 순간 손에 착하고 감기는 것이,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느낀 것이었다.

“시간이 없다. 그대들은 이제 곧 큰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이내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설휘는 그들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바로 급박하게 전장으로 나가야 할 거다. 이 신병이기를 익숙하게 다룰 시간 여유도 없이.”

“…….”

대장들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설휘는 두 손을 펼쳐보았다.

“하지만 반 시진. 그대들을 위해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낼 수 있다. 그러니…….”

설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지금 가진 신병이기를 나를 이용해 다룰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부족하거나 어설픈 동작은 그때그때 내가 지적할 테니.”

“그게 무슨…….”

“예?”

“……?”

당황하는 이도 있었고, 의아해하는 이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을 이용하란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설휘는 그들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전부 덤벼보란 말이다. 자신이 사용할 신병이기가 익숙해질 때까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왠지 모르게 과거가 생각났다.

사령대에 처음 들어갔던, 그때가.

***

천미려는 곤마의 영역 안에서 건물들 위를 걷고 있었다.

설휘가 돌아오지 않자, 주변을 걸으며 혹여나 적이 오지 않는지 경계를 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은영단 내부 쪽으로 향했고.

휘익!

그녀의 이목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

미약하지만, 은은한 기의 공명이 느껴진다.

천미려는 물 흐르듯이 움직여, 지붕 위에서 후원 쪽으로 향했다.

“음.”

설휘가 있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처음 보는 이들이 있었다. 아니, 한 명은 아는 얼굴이었다.

‘습격……?’

여럿이서 설휘를 둘러싸고 기세를 올리는 걸 보고, 천미려는 처음에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곧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다.

‘아니. 비무구나.’

습격이라고 하기엔 둘러싼 이들의 움직임이 어설펐다. 손에 익지 않은 병기를 들고 습격을 하는 멍청이는 없으리라.

그렇게 빤히 보던 그녀는 왠지 재밌을 듯하여, 이제는 턱을 괴고 대결에 집중했다.

설휘의 경지가 어디까지 올랐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리고…….

‘소령.’

저 여인과 무슨 사이인지 또한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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