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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76화 (280/379)

276화. 빈틈을 만들 인물 (3)

사황대장 화순.

그는 처음 금전자파를 건네받았을 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존에 쓰던 창보다 무게가 있고, 끝에는 수많은 갈고리 모양의 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으니까.

이걸로는 기존의 단순한 찌르기, 혹은 창대를 몸에 휘두르며 돌리는 행위는 꿈도 못 꾼다. 적보다 사용자에게 더 위협적인 무기라니.

하지만 딱 한 번.

본신의 기를 주입해 보자마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그그긍!

‘……!’

자신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맹한 공력.

일어나는 기파를 보니, 이건 기존에 자신이 알던 상식선의 병기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말 그대로 신병.

솨아아아-

화순이 휘두른 금전자파.

거기서 뻗어 나온 검기 다발이 사방으로 터지자,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걸 휘두르는 화순 역시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병기가……?’

그도 분명 무기에서 기를 쏘아낼 정도의 역량은 된다. 하지만, 금전자파에서 쏘아진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갈 정도로 광범위한 기를 다루지 못한다.

지이이이이.

병기에 실은 내기는 점점 더 증폭되어, 검기가 아니라 강기 수준으로 부풀어 올랐다.

혹여 통제까지 되나 싶어 다발의 기를 틀어 움직였는데, 따라왔다.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콰아아아앙!

신병이기가 쏘아낸 공력의 일부는 건물의 한 면을 뭉텅이로 찢어발겼다.

금전자파가 스스로 만들어낸 흉악한 그 검탄고리 때문이다.

심지어 단순히 기운이 쏘아져 나간 게 아니라 도중에 벽력탄처럼 폭발하기까지 했다.

신병이기라는 말이 왜 있는 건지를 새삼 깨닫게 할 정도의 위력을 보인 것이다.

스스스슥.

“와…….”

“막은 건가?”

“아니. 피했어.”

사령대장과 사적대장이 감탄하는 사이, 은영단주였던 흑구가 말했다.

다발로 쏟아지는 강맹한 공력을, 설휘는 놀라울 정도로 쉽게 피해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이, 연속적으로 들어간 검기 다발. 그게 도중에 폭발까지 한 걸 무슨 수로 피한 것인가.

“이쯤 하면 화순, 너는 된 것 같고…….”

“……?!”

화순은 그제야 눈을 껌뻑이며 현실을 인지했다.

자신이 은영단주를 상대로 엄청난 공격을 한 것을, 그리고 도무지 엄두가 안 나는 그 공격을 상대는 여유 있게 피해냈다는 것도.

“다들 뭐해? 계속 서 있을 거야? 어서 달려들어!”

설휘의 호통에 다들 움찔했다.

화순은 일다경이 되기도 전에,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럼 제가 갑니다!”

이번엔 적파가 움직였다.

그의 손에 붙들린 은빛 쟁반 모양의 건곤권이 천장을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휘이잉!

그는 건곤권을 수십 번 휘둘러보았지만 통제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동선과 움직임의 강약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아, 이번엔 아예 원반을 강하게 쥐고 그대로 던졌다.

타닥!

‘어?’

그리고 허공을 보던 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휘리리릭!

설마설마했지만, 정말로 허공에서 급격하게 방향 전환을 보이는 건곤권.

그의 병기는, 설휘라는 대상을 향해 정확히 사선 방향으로 내리꽂으며 날아든 것이다.

타앗.

또한, 이번엔 단순한 한 번의 공격이 아니었다.

건곤권에 발맞춰 움직인 비군이 재빠르게 도약하며 몸을 날렸다.

팟! 팟! 팟!

그리고 이어지는 허공답보.

나름 노린 바가 있었는지, 그는 공중에서 방향을 꺾는 초상승 경공술을 펼치며, 설휘의 지척까지 다가가 검기를 쏘아냈다.

그와 동시에.

파파파파팟.

그를 스치며 나타난 건곤권.

하나가 아닌, 무려 대여섯 개로 늘어나는 환영을 보이며 설휘를 압박했다.

무려 두 방향에서의 공격이 이루어진 것이다.

“어, 아무래도 이건……?”

지켜보던 흑구가 당황한 표정을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건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보였다. 단순한 비무가 자칫 상관 살해라는 어이없는 일로 번지려고 했으니까.

파앗.

거기서 설휘가 보인 것은, 한마디로 상식 밖의 움직임이었다.

사사사사사삭.

사방에서 검기와 건곤권이 파고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설휘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세상에.”

신법을 펼쳤다면 환영과 같은 조화가 일어야 하고, 예측했다면 한 지점으로 완벽히 이동해야 했다. 헌데 그들의 눈엔 정말 단순히 피하는 동작으로 보였다.

“말도 안 돼…….”

소령은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설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맴돈 것이다.

“눈으로 만든 환상(幻像)에 이치(理致)를 담으면 투로를 미리 예상할 수 있어요. 투시력(透視力), 투청력(透聽力), 독심술(讀心術), 예지력(豫知力) 등의 능력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리되면 신법이나 보법은 그저 보조적인 수단이 된답니다.”

“……?”

소령은 흠칫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언제 다가왔는지 갑자기 말을 건네는 여인.

낯익은 사람이었다.

쾅!

다시 돌아보자, 비군은 일격을 맞고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고. 건곤권은 설휘의 손에 들려있었다.

피한 것을 넘어, 시전자의 손으로 돌아가는 건곤권을 잡아내기까지 하다니.

“저건 대체…….”

적파는 은은하게 신음을 흘렸다.

무슨 신법을 썼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으니.

“적파, 건곤권은 더 수련이 필요해 보인다. 비군의 움직임은 좋았다. 그 신발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꿔주는 데 탁월한 모양이군.”

설휘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지금껏 움직이지 않았던 한 여인을 바라봤다.

“사령대장. 이번엔 네 차례다.”

주변의 묘한 시선이 그녀 쪽으로 옮겨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 옆에 있는 절세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곧 소령은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침조어뢰와 패왕어갑.

그중 패왕어갑은 신체를 보호하는 것이니, 침조어뢰의 능력을 시범 보일 때였다.

다들 연습하는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병기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끼릭끼릭.

두꺼운 철로 된 손바닥만 한 함. 침조어뢰라 음각된 이것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 이게…….”

“피를 떨어트려 보세요.”

“……?”

천미려의 말에 소령이 흠칫했다.

“신병이기라고 불리는 기물 중에는, 사용하기 전 따로 주인 의식을 요하는 것이 있어요. 잘 살펴보면 주인의 피를 먹일 수 있는 기관 같은 게 있을걸요.”

“아, 네.”

소령이 다시 병기를 살폈다.

듣고 보니 정말로, 손톱보다 작은 둥근 홈이 음각된 글자 위에 있는 게 보였다.

톡톡.

소령은 손끝을 살짝 베어 거기에 피를 흘려 보았다.

끼리릭. 끼리릭. 투욱.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조금 뒤에 오목한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은빛의 광택을 내며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네 개의 침(針).

‘개수가 있는 걸 보면, 쓰임이 다른 건가. 신병이기라 불리는 걸 보면…….’

잠깐 침을 바라보던 그녀는 의미를 한 번 되짚더니, 그중 가장 왼쪽에 있는 하나를 꺼냈다.

“한번, 피해 보시죠.”

그리고 설휘를 향해 한마디를 하고는, 한번 힘차게 던져보았다.

피이이이익.

비침은 처음엔 평범하게 날아가는 듯했다.

설휘 또한 수월하게 피해내는 듯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갈 것 같던 비침이 급작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

설휘의 눈빛이 변했다. 거의 지척에서 변화하는 비침의 움직임. 창졸간에 그는 다시 앞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콰앙!

강한 열기와 함께 설휘 주위에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아……!”

“이 무슨!”

“폭발이…….”

“암기가 아니었어?”

지켜보던 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특히 소령이 가장 놀랐다.

암기라 생각해 던졌는데, 갑자기 폭발이라니.

스스스스.

설휘도 당황했는지 조금 난처한 모습이었다.

열기에 옷이 조금 찢겨나간 그는, 바닥에서 아직도 불을 뿜고 있는 가느다란 침을 집어 들며 말했다.

“어뢰(魚雷)……가 이런 뜻이었군.”

폭발이라니.

일반적인 침이라 암기용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대규모 살상용이다. 아마 내력을 더욱 실었다면 더 강력한 위력이 뿜어져 나왔을 터였다.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은 설휘가 소령을 향해 걸어왔다. 그렇게 눈앞까지 다가와서는.

투욱.

들고 있던 침조어뢰를 잡아챘다.

“아무래도 이건 너와 맞지 않을 것 같군.”

“네……?”

설휘는 더 말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 소령이 막아섰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이걸 사용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래. 위험하니까.”

“그게 무슨, 전쟁에서 위험을 안고 싸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적어도 너는 사용하면 안 돼.”

“단주. 제가 그 정도로 수준이 안 된다는 겁니까?”

계속 강하게 반박하는 소령.

설휘는 그런 그녀를 담담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뭐라 말하려 입을 열자.

“예리한 신검일수록 적의 이목을 끌기 쉽죠. 그리고 누가 봐도 위험한 물건은 특히 더 그렇고요.”

옆에 있던 천미려가 끼어들었다.

“당신 실력으로 이걸 사용하면…… 다른 이들에 비해 이목을 과하게 끌 겁니다. 그러니 은영단주 말씀처럼, 이건 당신과 맞지 않아요.”

소령은 여전히 불쾌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천미려의 말에 반박하지는 못했다.

강력한 무기를 맛만 보고 도로 반납하게 된 그녀의 우울한 시선만이 주변을 머물렀다.

“흑구.”

“옙.”

“이건 네가 사용해라.”

투욱.

설휘는 침조어뢰를 그에게 던져주었다. 그러고는 자리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이만. 훈련은 끝났다. 모두 나가거라.”

“알겠습니다.”

“예.”

“그럼.”

모두 예를 차리고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병이기를 받은 것 때문인지, 표정은 다들 상기되어 있었다.

다만, 한 여인.

소령이 머뭇거렸고.

“왜? 안 나가나?”

설휘의 차가운 물음에 그녀는 예를 차리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투욱.

문이 닫힌 걸 확인한 천미려는 설휘를 보며 말을 걸었다.

“신병이기를 사용하는 이들은 모두 적의 이목을 끌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소령이란 여인에게만 그리 친절을 베푸나요?”

“그게 친절로 보이셨습니까?”

“아닌가요?”

“…….”

틀린 말이 아니었다. 침조어뢰만 눈길을 끄는 게 아니라 건곤권과 금전자파, 천잠단화 이 모든 게 적들에게 이목을 끌 것이다.

설휘는 말했다.

“어차피 신병이기의 쓰임도 제대로 활용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럴 경우 그저 호신공을 위한 방어구만…….”

“다른 이유는 없나요?”

“……?”

설휘가 고개를 올려 쳐다보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풋 하고 웃어 보였다.

“아니. 농이에요.”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설휘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창가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에게 설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 혹시…….”

“네?”

밝은 미소로 돌아보는 천미려.

그 모습을 본 설휘는 약간 당황했다.

천미려는 미모도 미모지만,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뭔가 신비로움이 있었다.

매번 볼 때마다 놀랄 정도로.

“무엇이 묻고 싶으신 건가요?”

“혹시 사부께서는…… 뭐 하시는 분이었습니까?”

“……?”

갑작스런 질문에 천미려가 의아해했지만, 설휘는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신의 사부는…… 아니, 당신은 스스로 아니라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이미 탈마에 올라도 충분할 정도의 경지로 보였습니다.”

“…….”

“그런데도 극마에 머물며 본인을 감추는 이유. 그게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사부께서 뭐라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 하고.”

“제가 의심스러우신 건가요?”

천미려의 직설적인 말에, 설휘는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런 게 아닙니다.”

“……?”

“사실 저는 지금도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탈마에 오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그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이 저를 붙잡더군요. 탈마에 오르게 되면, 그게 더 위험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

천미려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설휘는 그녀에게 이제껏 차마 밝히지 못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걱정을 털어놓았다.

“일단 탈마에 오르면…… 저는 천마의 눈에 띌 것입니다. 그리되면 그와 적이 되어 맞서 싸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천마 제자 외의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설휘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에게 내린 저주가, 저라는 존재에 대해서 의문 같은 걸 표하기 시작한 거군요. 그러니 이렇게 저에게 말한 거겠지요.”

“……!?”

설휘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래요. 저의 사부께서 말씀하셨어요. 언젠가 세상을 혼란에 빠트릴 인물이 나타날 거라고. 교주이신 천마라 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 강자라고.”

“…….”

“그리고 그 말대로 되었다고. 어떤 정통성도 없이 그저 피로 가득한 길을 열어, 그자는 당시의 교주였던 천마마저 쓰러뜨렸다고.”

천미려는 잠시 먼 곳을 보는 눈이 되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를 막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단 하나.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존재를 찾는 것. 그리고 그를 돕기 위해서는 너도 숨어 있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무공의 경지를 더 올리지 말고 숨죽인 채 있어라. 그것이 사부의 말씀이었지요.”

“당신은…….”

추측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시스템이 말한 ‘미상의 존재’의 정체.

놀랍게도 시스템이 들여다보는 존재 중에는, 자신들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자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천미려의 사부 같은 자가 있을 수가 없으리라.

“확실히 지금은 아니에요. 최대한 미뤄야 해요. 그래야 탈마에 올랐을 때, 세상을 지배하는 괴인을 상대로 싸울 수 있어요.”

“…….”

“제가 그들의 걸림돌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을 끌겠어요. 그게 사부께 받은 저의 임무니까요.”

천미려.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그녀의 존재에 대해 설휘는 이상하게 겁부터 들었다.

아마도 새로운 삶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터.

그녀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만약 이 삶에서 죽는다면.

다음 생에선 그녀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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