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79화 (283/379)

279화. 은영단의 위기 (3)

휘익! 퍽!

홍탑극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가 날린 일격은 상대의 가슴을 관통했다.

비척거리며 놈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행동을 보였지만, 그는 수많은 전투를 경험해 본 노장.

보통 이럴 경우 심장이 터지거나 머리가 박살이 났는데도 그 몸이 한 번, 혹은 두 번의 움직임을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산송장처럼 변하지.’

주술사들은 혼의 움직임이라느니, 원념이 남아 있는 증거라느니 했지만, 홍탑극이 보기에는 딱히 신비한 것도 아니었다.

새 대가리만 해도 그 정도 생명력이 있는데, 인간이 죽어가는 중에 동작 한 번 더 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래서…… 놔둔 거다.

저 손은 자신의 머리를 향하고 있지만, 곧 다음 동작을 하다 말고 추욱 늘어질 테니까.

지이이잉!

헌데, 뜻밖에도 놈의 팔은 힘을 잃지 않았다. 심지어 공력을 뿜어내기까지 했다.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진기 발현을.

“크아아악!”

어떻게? 분명히 심장을 관통했는데? 까지가 홍탑극이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기의 폭풍에 휩싸였다.

쿠우우우아아앙!

특수 기술 풍신의 효과.

본래 풍신은 장로 홍탑극을 일격에 격살할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허나,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접근을 완벽히 허용했고, 초근접 상태에서 아무 방어를 하지 않은 것이 패착이었다.

투욱.

치명적인 일격을 받은 홍탑극은 무릎을 꿇었다. 그 상태에서 뭐라 중얼거리더니 이내 천천히 쓰러졌다.

“……!”

“……!”

갑작스런 이변에 주위에 있던 장로들이 당황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놀란 건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저……!”

주변에 있던 은영단원들조차 설휘를 보고서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제길…… 이 정도밖에 체력이 회복되질 않다니.”

설휘는 투덜거렸다. 풍신을 사용한 뒤 홍탑극의 백도(白刀)를 집어 드니 몸이 잠시 휘청거렸다.

도화산으로 체력을 올리긴 했으나, 그의 몸은 치명상을 입은 상태.

약의 기운은 상처가 다 먹어 버렸고, 그러다 보니 회복이라 해도 겨우 서 있을 정도에 그친 것이다.

“후욱!”

잠시 황금 벨트에 있는 남은 것을 떠올렸으나 설휘는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장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적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 급하다고 다 써버렸다간 뒤가 고달플 터.

“모두! 선두와 후미로 가거라.”

설휘는 빠르게 지시했다. 허겁지겁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단원들을 향해 팍! 소리 나도록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단주…….”

“걱정 마라! 나 혼자 움직이면 몸을 빼는 게 더 편하다. 어서 가!”

설휘가 거듭 외쳤다. 그리고 몸을 돌려세웠다.

투욱. 투우욱.

단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날 때쯤.

“허.”

이를 지켜보던 장로, 극명귀의 얼굴은 당황에서 황당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분명히 심장을 관통했는데…….”

그는 마침, 홍탑극의 일격이 설휘의 심장을 관통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래서 똑같이 생각했다.

산송장이라고. 허우적거린 다음 늘어질 거라고.

그래서 홍탑극에게 반격을 가한 설휘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허허!”

그리고 그것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극명귀는 물론이고, 홍탑극의 죽음을 멀리서 지켜보던 자들도 가까이 합류하게 만들었다.

“이게 뭔가? 홍가 놈이 죽은 게야?”

“분명히 심장이……. 무슨 사술인가?”

“강시나 실혼인은 아닌 거 같은데…….”

어둠 속에서 한두 명씩 나타난 인물들.

모두 마교의 장로들이었다.

하나같이 두세 명의 호법을 거느린 그들은, 눈에서 흘리는 기광으로 보아 이미 초절정을 능가한 수준이었다.

‘장로는 총 넷. 그를 위시한 호법은 열 명이 넘고…….’

설휘의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적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운 좋게 하나를 처리했지만, 그게 오히려 적의 경각심을 일깨우게 만든 듯했다.

‘아니, 어려워진 것처럼 보이는 것뿐. 이 싸움은 결국 나에게 달려 있어.’

꾸욱.

설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 단원들은 명령대로 자리를 떠났다. 이제부터 불필요한 걱정이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집중할 뿐.

“흐읍!”

파파팟!

몇 초 남짓 회복했던 체력과 내공을 모두 발에 쏘아 보내며, 설휘는 뒤돌아 달려갔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모습이라, 장로들의 선두에 서 있던 극명귀가 허탈한 듯 혀를 찼다.

“이거 참…….”

어찌 된 게, 도망치는 그의 경신법이 너무나 수준이 낮아 보였다.

소문으로는 일제자 살마와 동수를 이루었다더니, 죄다 과장인가?

저 실력으로 홍탑극을 어떻게 죽였는지, 눈으로 보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구가 손을 쓰겠소. 다들 체면 좀 지키고 있으시오.”

분노한 장로들이 우르르 움직이려 하자, 극명귀가 손을 내저었다.

저놈이 숨겨둔 사술 하나 정도는 갖춘 모양인데, 장로급이 떼거리로 몰려서 제압하기에는 모양새가 너무 빠졌다.

손 섞을 가치도 없어 보이니, 시간 끌 거 없이 빠르게 처리하고 술이나 한잔 마실 생각이었다.

휘리릭.

“멍청한 놈. 방심 따위를 해서는…….”

극명귀는 장로들 체면을 구긴 홍탑극을 욕하며 설휘가 사라진 숲속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

“헉…… 헉…….”

숨이 차오른다. 호흡이 턱까지 닿는 느낌이고, 체력이 떨어졌는지 발이 시큰거린다.

거기다 시야가 한 번씩 흔들릴 정도로 정신력도 떨어졌다.

그럼에도.

“후욱!”

설휘는 정신을 다잡으며 더 멀리 달아나려고 애썼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나름 도망친다고 달리긴 하지만, 단번에 장로들에게 따라잡힐 거라고.

아무리 극마에 오른 무위라 해도, 지금 이 몸 상태로는 놈들을 절대 따돌릴 수 없었다.

‘어?’

때마침 살기, 그리고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짐작되는 기력(氣力)이 등 뒤에서 느껴지자, 그는 급히 몸을 웅크리며 바닥을 굴렀다.

콰아아아아앙!

등 뒤에서 강대한 기류가 치솟으며 폭발이 일었다.

광범위하게 퍼진 기운은, 그의 진행 방향에 있었던 숲의 일부를 깡그리 날려버렸다.

“도망질은 고작 그 정도냐?”

투욱.

허허벌판 위로 백발의 노인이 내려앉았다. 아마도 그가 숲을 날려버린 인물일 터.

“도망이라……. 뭐, 그리 보일 수 있겠군.”

설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변을 한 번 스윽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 대체 뭔 놈의 배짱이냐? 고작 그 정도의 알량한 재주를 가지고. 당랑거철(螳螂拒轍)도 정도가 있지. 끌끌끌…….”

“오랜만이라서 그래.”

혀를 차는 노인에게, 설휘가 픽하고 웃어 보였다.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제약이 가해지는 현실. 발버둥치면 칠수록 죽음이 더 가까워지고 숨통이 조여드는 것.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말이야.”

“허, 정신이 나갔나 보군.”

극명귀가 혀를 찼다. 그는 설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헛소리나 하는 놈을 더 상대해 줄 필요는 없지.”

그냥 여기서 처리할 생각으로 소매를 걷고 다가서자, 설휘가 크큭. 하고 웃더니.

“그래, 와라.”

갑자기 다시 등을 보이며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이놈의 새끼가! 날 농락하려 드느냐!”

극명귀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분노한 그의 대도에 암흑의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바로 그의 장기인 혼천마공으로 끝을 내려는 것이었다.

‘도박이다.’

설휘는 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상대가 혼천마공을 쓴다는 것을.

그래서 일부러 등을 보이고 달렸다. 놈의 공격을 유도하며, 역습을 할 생각이었다.

‘보면 늦는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온 이 순간, 미지의 감각이 일러주고 있었다. 지금 몸 상태로 상대의 동작을 보고 반응하면 무조건 죽는다는 걸.

미리 예상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다. 거기서도 한 박자, 아니 반 박자라도 잘못 움직이면 바로 죽을 터.

솨아아아악.

적당히 앞을 막아선 나무들 앞에서, 설휘는 갑자기 몸을 숙여 바닥을 굴렀다.

그러자 뒤를 이어 혼천마공의 기운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들었다.

쿠쿠쿠쿵!

광범위한 폭발이 일어나 숲의 일부를 날려버렸다.

검탄보다 더 정밀하고 파괴적인 기운.

도기에 저런 기운이 담기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독할 정도의 빠름. 이것이 바로 혼천마공의 무서움이었다.

“이놈 봐라……?”

극명귀는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설휘를 보고 기막혀 하며 다시 한번 출수했고.

쾅! 콰아아아앙!

“……?”

어찌 된 게 또 빗나갔다. 열심히 도망가던 설휘가 딱 맞춰서 몸을 던진 것이다.

데굴데굴.

비탈길 아래로 사정없이 굴러내려간 설휘. 그가 고개를 들자.

“여기까지다. 쥐새끼.”

극명귀가 이미 와 있었다. 설휘가 두 번이나 자신의 공격을 피해내자 짜증이 나서 신법을 펼친 것이다.

“그래. 여기까지지.”

하지만, 이번엔 설휘도 가만있지 않았다.

[풍신검을 사용합니다.]

콰르르륵!

갈퀴처럼 생성된 바람이 설휘의 검을 따라 소용돌이처럼 치솟아 올랐다.

“흥!”

극명귀는 코웃음을 쳤다.

나름의 반격이 올 거라 예상한 그는, 도신에 가득 차 있던 암흑의 기운을 뽑아내 단번에 소용돌이를 잠재워버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풍신검을 사용합니다.]

“……!”

연속해서 풍신검이 생성되었다. 극명귀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보통 내기를 끌어올린 뒤, 연속해서 펼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연계 동작의 무공이라 보기엔, 발출된 기공의 힘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콰아앙!

그럼에도 그는 설휘의 일격을 파훼시켰다. 이번엔 혼천마공의 힘을 쓰지 않고, 단순히 순수한 내공의 힘으로 눌러버린 것이다.

그 순간.

“이것도 받아봐라.”

씨잇!

설휘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이한 기운이 있었다. 명백한 이질감. 상대보다 더욱 빠르게 병기를 휘두를 수 있음에도 극명귀는 멈칫했고.

쩌어어어엉!

곧이어 사이한 기운이 그의 앞에서 터져 나왔다.

솨아아아--

“쿨럭. 쿨럭.”

설휘는 바닥에 주저앉아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모든 진력을 끌어다 쓴 까닭에, 얼굴도 초췌해져 있었다.

“…….”

반면 극명귀는 쓰러지지 않았다. 외견상으론 큰 피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악귀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한 거냐…….”

“…….”

“어떻게 한 거냐고오오!”

비통하게 토해낸 사자후는 멀리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스윽. 투욱. 툭.

“무슨 일이오?”

“다치신 거요?”

놀라서 몰려온 장로들과 호법들. 그들은 극명귀를 보며 안위를 물었다.

하지만 정작 극명귀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 이 도적 놈이……! 찢어 죽일 놈이……!”

“뭘 그리 화를 내시나. 제대로 구현하지도 못했는데…….”

쿨럭쿨럭.

설휘는 능청스럽게 말을 받으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는 듯 중얼거렸고.

“호흡법이 조금 잘못된 것 같은데……. 혼탁한 기운이 스며든 걸 보면…….”

“뭐라?”

“혼천마공이라면 심법이야 어차피 마공의 기초를 따를 거고……. 혼(混)이라는 것도 합치거나 섞이는 기운이 아닌, 혼원신공(混元神功)처럼 조화를 나타내는 무공일 테니. 구심점은 틀린 게 아닐 거고.”

계속해서 혼잣말을 내뱉고 있는 설휘.

얼핏 보면 그냥 미친놈 같은데, 극명귀는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혼천마공을 훔친 것이냐?”

설휘가 전승자 외에는 결코 알 수 없는 혼천마공의 요결을 주절주절 읊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공, 다시 한번 펼쳐봐라. 한 번 더 보면…… 대충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손가락 까닥할 힘도 없는 주제에 펼치는 도발. 설휘의 중얼거림에 극명귀의 미간이 팍! 좁혀졌다.

“오냐. 저승길 노잣돈이다. 내 친절히 최고의 무공을 선사해 주지.”

츠츠츠츠측.

극명귀의 도에 날카로운 암흑의 기운이 몰려들었다.

일생을 무학에 몸담은 장로들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극마에 올라 펼칠 수 있는 도강이 아닐진대, 혼천마공의 힘은 그에 준하는, 어쩌면 그와 비슷한 기운처럼 느껴졌다.

“혼천마공의 최고의 초식.”

일대의 검은 기운이 극명귀의 발끝부터 시작해 그의 도신으로 모이자.

극명귀는 외쳤다.

최강의 초식을.

“천지대원공(天地大原孔).”

쏴아악!

하늘 끝까지 올라가던 암흑의 기운의 방향이 순간 바뀌었다.

벼락처럼, 거의 눈 깜짝할 사이 설휘의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 순간.

[백반을 사용합니다.]

쪼개지던 머리는 거짓말처럼 붙어버렸고, 설휘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또다시 얼굴에 지어진 미소.

‘찾았다.’

계속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혼천마공이라는 무공. 호흡법과 심법, 거기에 초식까지 더해지자 모든 궤가 하나로 통일되고 있었다.

‘왜 이렇게 꼬아놨나 했더니, 보상이 제법이군.’

마주친 상대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특전.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었다.

모든 초식을 확인해야 했던 예전과 달리 전투 경험, 그리고 극마에 오른 높은 깨달음이 단지 세 개의 초식만 보았던.

상대의 무공을 그대로 흡수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설휘의 착각이 아니었다. 그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글로써.

[혼천마공을 익혔습니다.]

시스템이 보장해 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