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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80화 (284/379)

280화. 은영단의 위기 (4)

눈앞에 뜬 창(窓)은 혼천마공을 익혔다는 문구에서 그치지 않았다.

[특수 기술을 익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능력 하나가 툭 하고 튀어나왔고.

그것은 조금 전, 극명귀가 사용했던 초식과 같았다.

◆ 혼천마공 특성 기술표 ◆

[천지대원공(天地大原孔)] : ↓↓↓ A or B

‘횡재다.’

설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저 무공을 익힌 것에서 그치지 않고, 특수 기술까지 얻었다.

‘시스템이 설계해 놓은…… 탈출 방식인가?’

본디 이전에 있었던 바로는, 상대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선 몇 가지 제한 조건이 있었다.

일단 상대의 모든 초식을 눈으로 직접 보거나,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단 세 개의 초식.

직접 겪은 것은 그뿐이었다. 하지만 초식들 안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여 여러 방식으로 풀이해놓으니 자연스럽게 오의(奧義)를 익히게 되었다.

무엇보다 혼천마공의 근원은 혼원신공과 궤를 같이한다는 유추가 들어맞았고, 호흡법 역시 일반적인 마공을 따르는 것과 방식이 다르지 않았다.

사실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도전해 본 건데, 정말로 이게 가능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엔 내 차례군.”

설휘가 내뱉은 말에 극명귀는 잠깐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홍탑극 때와 마찬가지였다.

분명 머리를 쪼개어 죽였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멀쩡하게 살아서 다시 말을 걸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하지만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설휘는 천지대원공을 발동시켰다.

쏴아아악!

초식을 펼치는 속도는 좀 더 빨랐다.

그건 극명귀의 과하게 기를 끌어모으던 동작을 줄이고, 초식의 마지막 동작도 바꾸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한 번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치는 방식을, 그저 일직선의 찌르기로 바꾸어 쏘아낸 것이다.

“크아아악!”

극명귀는 반응하지 못했다.

설휘의 발동이 빠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상대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안 되는 현실로의 적응이 그의 뇌리를 조금 마비시켰다.

툭. 데구르르르.

그리고 그 대가는 목이 날아가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의 마공인 혼천마공에 의해서.

촤아아악. 털썩.

머리를 잃은 몸이 피분수를 쏟아내며 땅으로 쓰러졌다.

뒤이어 하나씩, 이 자리에 모인 마교의 장로들과 호법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처음에는 불신이 더 컸지만, 설휘가 펼친 것이 극명귀 본인의 혼천마공임을 더는 부인할 수 없었다.

장로 냉악비(冷岳飛)가 입술을 깨물었다.

“만만히 봐선 안 될 것 같네.”

주변의 장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간계가 매우 악랄하다.

허허실실 작전같이 실력이 없는 것처럼 속이고, 마지막에 목숨을 취하는 전법을 펼친다.

그 때문에 은영단주란 놈에게 장로가 두 명째 죽어나갔다.

물론,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방식을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대주.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저희들이 해결하겠습니다.”

약간의 눈빛 교환이 있고 난 뒤, 호법들이 자진해서 나섰다.

전력상 저자가 장로들보다 우위에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뭔지 모를 술수를 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나서야 했다.

애초에 호법이라는 자리가 그럴 때를 대비한 자리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적의 패를 모두 노출시키면 그것으로도 이득이다.

야바위꾼에게서 야바위 행동을 차단하면 나머지는 장로들이 다 처리해 줄 터.

사사사삭.

곧 장로들을 위시한 호법 모두가 설휘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모두 열두 명이었다.

“이젠 물량 공세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설휘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네놈의 사이한 술수가 뭐든! 더는 숨기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꿇어 엎드려 자비를 구해라!”

저마다 한두 마디씩 하며 으름장을 놓는 호법들.

허나, 설휘에겐 그 모습이 가소로워 보였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기로서니…….”

녀석들의 눈빛. 움직임. 모든 게 또렷하게 보인다.

너무 예측이 쉬워서 오히려 의심될 지경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원래였을 터였다.

시스템의 조정 때문에 단숨에 초절정으로 경지가 추락해버리긴 했지만, 설휘는 극마. 그중에서도 끝에 다다랐던 경험과 깨달음.

겉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호법들과 비슷해 보여도 내용물은 완전히 달랐다.

“너희들에게까지 당하겠냐.”

대답과 함께 사방에서 검이 날아들었다.

허나, 공격이 설휘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쇄애액! 솨악! 쇄쇄쇅!

수많은 예기가 그어지는 과정에서 설휘는 칼날을 전부 피해내고 있었다.

동선이 차단된 검은 막아내고.

공간이 생기면 나아가 공격하고.

때로는 반격하거나, 공세를 흘리는 등. 온갖 방식으로 적들의 시도를 무효화했다.

콱!

그리고 기어코 뒤로 물러서는 듯 움직이다, 갑자기 뛰쳐나와 한 명의 목을 베기까지 했다.

“이익……!”

목이 떨어진 호법을 보고 자극된 걸까.

이제껏 신중하다 못해 소극적이던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이제부터다.’

설휘의 눈이 커졌다.

우격다짐으로 들어오는 근접전이 아니라, 녀석들이 거리를 재면서 계획적으로 공격해 들어온다.

심지어 사방에서 찔러대는 검끼리 서로 엉키는 현상조차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연수합격. 이런 때에는 다수의 흐름을 읽기가 쉽지 않게 된다.

피익. 픽.

한순간 얼굴을 스쳐 가는 날카로운 비수.

설휘가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비수를 쥔 어느 호법이 서 있었다.

‘암기까지…….’

설휘는 다시 몸을 돌려 도약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싸움으로는 상대해서 이득 볼 것이 적었으니까.

당연히, 적들은 그를 그대로 벗어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슈슈슈슉. 파파파팟. 휘리릭! 피익!

설휘가 나아가는 동선으로 쏟아지는 암기. 그리고 검기 다발.

연거푸 방향을 바꿨지만, 녀석들의 공격은 집요하게 계속 따라붙었다. 결국 멀리 가지 못한 설휘가 몸을 바닥에 구르면서 멈췄고.

쇄액! 사아악!

눈앞까지 다가온 검을 막으며 다시금 반전했다.

“큭!”

시싯! 시시싯! 캐앵!

수많은 칼질도 위험했지만, 멀리서 쏘아내는 암기는 아무리 설휘라도 지금은 답이 없었다.

칙! 칙!

그와 연계된 검기도 점점 거슬렸다. 옷을 찢고 피부를 긁어 생채기가 늘어났고, 얼마 후에는 허벅지와 어깨에 커다란 자상도 생겼다.

퍽! 쉬이익!

계속 이대로 가야 할까.

출혈과 체력의 소모는 가랑비에 옷 적시듯 계속해서 설휘를 갉아먹었다.

검을 들어 올리지도 못할 상황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직은 아냐.’

그럼에도 설휘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겐 황금 벨트에 남은 영약이 있었다. 하지만 보고서도 사용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까지 그가 사용했던 것들은, 엄밀히 말해 최고급 금창약의 역할을 했다.

순간적으로 죽음에서 구해준다는 점은 대단했지만, 바닥을 긁고 있는 체력과 내공을 올려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태청단, 이건 실로 훌륭한 영약이었다.

무당의 보물인 이놈은 지금 설휘가 겪고 있는 모든 금제를 풀 가능성도, 금제의 한계까지 능력 향상을 가져다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설휘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좀 더 최적의 시기를 기다리자는 것. 지금은 아껴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이이익.

또다시 암기 하나가 날아들고, 어깨에 부딪혔다. 그리고 곧장 눈앞에 흔들리는 문구.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특성 : 만독불침이 작용하여 체내에 침입한 독을 중화합니다.]

“다행히 만독불침은 여전히 적용되는 것 같네…….”

여유 있게 말을 한다고 했지만, 실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솨솨솩. 후두두둑.

적들의 공세는 소나기처럼 더욱 거세지고 있는 데 반해, 설휘는 언제든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처럼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한숨을 돌릴 수도 없는 여유에서 겨우겨우 고개를 돌려 숫자를 확인하자.

822…… 821……

화딱지 나게도,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안 되겠다. 방식을 바꿔야겠어.’

설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와 함께 그의 몸이 형편없이 흔들렸다.

이제까지 표표하고 섬세하게 움직이던 신형이, 갑자기 조잡하고 단순하게 변한 것이다. 그에 호법 하나가 크게 허공을 헛쳤다.

“엇!”

부웅!

사람의 눈은 급격한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생각에 혼선이 걸린다.

빠르게 움직이던 설휘의 몸이 갑자기 뚝 멈춰선 듯 역으로 파고들어왔고, 그가 들어 올린 검은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투욱!

호법 한 명의 목이 잘려나갔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죽음. 하지만 남은 검기의 연환이 바로 날아들었다.

“큭!”

서걱!

수많은 검날에 등을 베이며, 설휘는 나려타곤으로 바닥을 굴렀다.

전신이 진흙탕과 핏물로 뒤덮였지만, 그는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신법을 바꾸며 검의 교차점을 향해 툭툭 검을 내밀었다.

“대체 뭐냐!”

“뭣들 하는 게야!”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던 장로들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분명히 상대는 한 놈이며, 움직임으로 보아 체력도 완전히 바닥이 나 있었다. 이미 다 잡은 고기였다.

그런데 잡힐 듯 안 잡힐 듯하면서, 퍼덕거리는 그 움직임마다 호법들이 하나씩 목숨을 잃어갔다.

졸지에 여섯이 남은 것이다.

“뭐, 너무 그러지 말게. 이젠 끝난 것 같으니…….”

쿠욱.

호법 하나를 더 쓰러뜨리고, 설휘의 자세가 철퍽! 무너졌다. 그는 진흙탕에 옆으로 쑤셔 박힌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이젠 한계다. 도저히 더는 싸울 힘이 없었다.

‘태청단을…….’

결국 마지막 방법, 영약을 먹는 수밖에 없는 건가를 생각하던 그때. 아마 그쯤이었을 거다.

피피핏!

“억!”

“악!”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암기. 그에 호법 둘이 뒷덜미를 맞고 죽어나갔다. 장로들과 호법들이 당황하며 한걸음 물러섰고.

“단주님!”

“괜찮으십니까!”

멀리서 새로운 무리들이 등장했다.

누군지 모를 혼전에 설휘도 살짝 몸을 웅크렸지만, 그들의 복장과 얼굴을 확인하곤 입을 벌렸다.

“……너는, 소령?”

“단주! 괜찮으십니까?!”

사령대.

본래부터 이곳에서 합류할 예정이었던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아 만난 건가.

어쨌든 그들이었다. 한때는 누구보다 설휘를 든든하게 따라주었던 이들.

‘용진, 적송…….’

조장급이라 해도, 녀석들의 실력은 다른 은영단원들과 비교해 뛰어났다.

딴에는 초절정에 오른 호법들 둘을 정확히 일격필살해 버렸으니.

놀라운 건, 지금 저들의 움직임이 과거와 그리 차이 나지 않는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어디서 기연을 얻은 것처럼.

“하, 새로운 떨거지인가?”

“물러서라. 형편없는 것들.”

“기어코 우리까지 손을 쓰게 하는군.”

살아남은 호법들이 물러서고, 참지 못한 장로들이 다시 등장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왜들 몰려 있어? 아직 안 끝난 거야?”

척. 척. 척.

적들의 수가 늘어났다.

좀 전까지 설휘를 추적하던 이들만이 아니라, 다른 장로들도 나타났다.

그것도 자그마치 다섯. 하나같이 장로급이다.

‘……어떻게 된 거지? 이 숫자가 아니었을 텐데?’

설휘는 바짝 긴장했다.

분명 초반에 본 추적대 중에서, 장로들의 숫자는 다섯 정도였다. 거기서 둘을 죽이고, 셋을 남긴 상황에서 다섯이 더 늘어나다니?

<천미려가 합류함으로 인해 천마 제자들의 전투력이 상승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천미려가 존재함으로 기존의 미래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랬지…….’

뒤늦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기억들.

생각해 보니 지금은 천미려의 합류로 인해 미래가 달라진 상태다.

본래 아령이 보유했던 장로 숫자보다 많아진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끌끌끌……. 아니, 아직인 게요? 대체 피라미 하나로 시간을 얼마를 끄는 게야?”

그리고 나타난 이 중 하나는 설휘의 눈을 파르르 떨리게 만드는, 그가 익히 알고 있던 이였다.

‘……왕모력?’

과거 AI가 처리했던 극마고수.

그가 여기까지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상황이 한순간에 절망적으로 흘러간 것이다.

“이런. 뭔가 상황이 꼬인 것 같은데…….”

그때였다.

[제약 시간이 종료됩니다.]

[신체를 구속하고 있던 모든 부정적 효과가 사라집니다.]

“뭐?!”

설휘는 눈을 의심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시간이 많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제약 시간이 종료됐다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싶었는데…… 순간, 하나의 가정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호법 때문에?’

이 난장판 속에서 쓰러뜨린 자들.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 싸움은 일정 시간 금제라는 상황이 주어진 후에, 추가로 호법들을 더 죽이면서 보상을 받는 형태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제한 시간을 앞당기는 것으로.

“대장……. 이거 어쩌죠? 단주님은 물론이고 우리까지…….”

“음…….”

요림의 긴장된 물음에 소령의 얼굴도 굳어졌다.

적들의 수도 그렇고, 인물들 하나하나가 대적하기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머리가 없는 자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셋째 제자 측으로 알려진 극마고수, 왕모력이라는 걸.

터억.

그때, 그런 그녀의 어깨를 누군가가 짚고 나왔다.

“됐어. 이제 내가 처리하지.”

“단주? 지금 몸 상태가…….”

“아, 이제 좋아졌어.”

물어보는 소령의 말에 설휘는 웃었다.

[태청단을 사용합니다.]

[체력과 내공이 대폭 상승합니다. 모든 감각이 본래대로 돌아옵니다.]

시야가 넓어졌다.

내력이 충만해지니 눈앞이 또렷해지고 전신에 기력이 거짓말처럼 솟았다.

물론 극마에 도달했던 수준의 내공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어?’

그런 가운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눈앞에 있는 창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택지 하나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태청의 기운으로 인해, 내기의 성질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내기의 성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어떤 경지로 나아가시겠습니까?]

▶ 화경

▷ 극마

화경이라는 선택지가 생겨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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