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88화 (292/379)

288화. 비틀린 운명 (4)

“멈추시오.”

동령과 설휘가 지하로 향할 때쯤, 경계를 서고 있던 무사들이 나와 막아섰다.

모두 셋.

눈에서 형형한 기운을 풍기는 것이 보통의 무사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문신인지 무엇인지, 목 아래에 그려진 괴이한 문양이 뭔가 섬뜩한 기분을 자아내게 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오?”

제관복을 머리까지 둘러쓴 동령이 조심히 물었다.

“침입자 때문에 난리가 났소. 확인되지 않은 자들은 지하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지침이오.”

생각보다 빠르게 본대에서 지침이 하달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경계가 더욱 강화된 듯 보였다.

“이보시오. 나는 기려사대주요. 여길 드나들면서 몇 번씩이나 보지 않았소?”

“당신은 그랬지. 문제는 당신 뒤에 있는 자요.”

동령이 묻자 무사들의 시선은 그 뒤에 있는 설휘를 향했다.

입은 옷은 기려사대의 제관복이었지만, 낯선 얼굴에 체격도 조금 있는 것이 의심스러워 보였다.

“너, 얼굴을 보여봐라.”

“안 보는 게 좋을 거요. 이자는…….”

“시끄러.”

앞을 막았던 사내는 동령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몇 걸음 걸어 나갔다. 그리고 제관복을 집어서 젖힌 그는.

“허윽!”

자지러지듯 놀라며 물러섰다.

“왜 그래?”

“저, 저…….”

반응이 이상하자, 동료가 다시 한번 제관복을 펼쳤고.

“이힉?”

이번엔 그 역시도 당황해서 물러섰다.

뒤에 있던 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살가죽이 반이 없는, 괴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그러게 안 보는 게 좋을 것이라 하지 않았소?”

“이, 이게 대체 뭐야?”

동령이 긴 한숨을 뿜어냈다.

“반쯤 실패한 실혼인이오. 사람들과 마주치기 거북한 얼굴이라 안 보는 게 좋을 거라 말을 한 것이고.”

얼굴을 본 무인은 인상을 썼고, 다시 보기 거북한 듯 서로 기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최초에 막아선 사내가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들어가시오.”

그들의 말에 동령과 사내는 자연스레 지하로 향할 수 있었다.

***

무사들의 경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와중에.

“어떻게 얼굴까지 바꿀 수 있는 겁니까?”

동령이 감탄하며 말을 걸어왔다. 제관복이야 여벌이 있으니 구해다 입히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비교적 얼굴이 문제라 할 수 있었는데, 설휘는 간단한 기지로 너무도 쉽게 그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

“인연이 닿아 배운 능력 때문이오.”

“정말 다행입니다. 굳이 불필요한 주술을 쓸 필요가 없어서.”

본래 동령은 설휘의 얼굴에 주술을 써서 이런 위기를 넘기려 했다.

하지만 설휘의 역용술이 대단히 높은 수준이라, 주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근심을 풀고 계단을 꽤 걷자, 이번엔 폭이 좁고 거대한 벽이 보이는 길이 나왔다.

거기다 당장 눈앞에 세 갈래로 길이 나뉘어 있었고, 길도 이리저리 꼬여 있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동령은 능숙하게 한쪽 길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조금 더 이동했을까.

“크아아악.”

“크허헝!”

석동을 울리는 절규에 설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냥 단순한 비명이 아님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좀 더 아래로 내려갔을 때였다.

“오셨습니까.”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사내들. 그런데 이들은 앞서 경계하던 이들과 달랐다. 예의를 갖추며 직접 문을 열어주는 세심함도 보였다.

끼이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고, 설휘의 걸음이 느려졌다.

이제야 실로 거대한 지하공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아아아악.

거대한 지면 아래에서 처음 느껴지는 것은 열기였다.

벽에 내걸린 황촉 불 때문인지, 뜨거운 열기가 이 주변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이.

“크으응.”

“끄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옆에는 각기 검은 옷을 입은 제관들이 한 명씩 손을 뻗어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제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영혼을 토해내듯 울부짖는 소리가 나 눈살을 자연스럽게 찌푸리게 했다.

“상급의 실혼인들입니다.”

“……?”

때마침 동령이 입을 열자, 설휘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보통 강시는 주술을 걸면 한 번에 받아들입니다. 가끔 혼이 육신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에 머무르긴 하나, 이는 특수한 경우입니다. 헌데 실혼인의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

“주술을 걸어서 바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품질은 좋지 않습니다. 대부분 ‘하’ 등급을 받으니까요.”

“허면 저들은…….”

“예. 자기 능력을 한계까지 몇 번이나 몰아붙인 이들입니다. 자의식이든, 혹은 마성이든 능력이 매우 강한 자들이지요. 제관의 통제 하에 정신이 안정된다면…… 최소 절정고수를 능가하는 힘을 가질 겁니다.”

“이 많은 인원이……?”

실혼인들의 수는 척 봐도 이백여 명은 넘어 보였다. 공터 동서남북에 만들어진 철장에 갇혀있는 놈들도 있었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

설휘는 이번 싸움에 마후가 모든 전력을 쏟아붓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제자 곤마가 차지한 병력.

그리고 기존에 차지하고 있는 일제자 살마의 병력.

그러다 보니 원하는 만큼 만들 수도, 총단의 병력을 끌어다 쓸 수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삼제자의 병력도, 지휘관의 이탈과 수장들의 죽음으로 뿔뿔이 흩어져 제대로 흡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발생한 좋지 않은 상황을, 그는 주술을 통해 실혼마인으로 극복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화는?”

실혼인들이 바글바글한 공간까지 내려온 설휘가 물었다.

쉿.

노인은 슬쩍 시선을 돌리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철창 너머 벽에 몸을 기댄 아이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 있었구나.’

“으으…….”

원래의 운명일까. 과거에서와 달리 그는 고통받고 있었다.

송화가 이전에 언급했던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 가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닐 겁니다. 대화를 몇 마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말을…….”

“잠깐.”

노인이 설휘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리고 묘한 빛을 띠더니 한쪽을 가리켰다.

“잠시 저리로 몸을 피하십시오.”

“……?”

“이유는 묻지 말고! 어서!”

그의 외침에 설휘는 급히 서쪽의 철장 옆으로 향했다. 한 제관의 눈길이 느껴졌으나, 이내 거둬들여졌다.

“모두 행동을 멈춰라!”

“뭐 하느냐. 이제자님께서 직접 행차하셨다.”

아까 봤던 기기아대 여인과 중년인이 소리를 치며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설휘에게 익숙한 이가 있었다.

바로 마후였다. 그리고 그 뒤에 유패도 함께 걸어 들어온 것이다.

짝짝짝짝짝짝.

그는 고요 속에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큰 박수는 간단한 인사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은 마후에게로 향했고, 마후는 노인, 동령 앞에 멈춰 섰다.

“정말로…… 극마 수준의 실혼마인이 가능합니까?”

기기아대의 궐장에게 막 들은 모양이었다.

딱 봐도 얼굴이 상기된 것이, 보물을 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동령은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호오.”

마후는 함박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다시 말했다.

“그 실혼인의 수준을 극마로 만드는 데, 송화가 필요한 거고요.”

“맞소.”

“만약 송화가 아닌 이들의 심력이라면 어떻습니까? 물론 송화가 옆에서 보좌하면…….”

“송화가 아니면 애초에 이런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오. 마를 극복한다는 극마는 애초에 아무나 되는 게 아니오.”

노인, 동령이 짜증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에 대해 항변하는 이는 없었다.

마후 역시 진지하게 그의 말을 새겨들으며 한쪽으로 턱짓을 하며 말했다

“데려와라.”

그의 말과 함께 위쪽에서 하나의 문이 열리며 흑풍의를 둘러쓴 장한 네 명이 걸어 내려왔다.

그들은 거대한 나무판을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저건.’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설휘는 눈치챘다.

저 사람이 바로 제물, 극마에 오를 수 있는 실혼마인이 될 사람.

그럼 과거에는 초마에 올랐던 고수일 터.

그렇게 장한들이 밑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을 때.

“헉!”

“이분은…….”

도중에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는 비단 수하들뿐이 아니었다. 노인 동령도 당황한 얼굴로 마후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나무판에 누워있는 자는.

놀랍게도, 셋째 제자 아령이었기 때문이다.

“쥐새끼처럼 기회가 되면 여기저기 붙어 다니는 년이라서. 이참에 확실하게 우리 쪽으로 만들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생각 참신하지 않습니까?”

참신한 걸까, 아님 비정한 걸까. 그것도 아님 혐오스러운 걸까.

그럼에도 이 안에 있는 자들 중 마후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본래 초마 정도의 실력자면, 이미 단체를 이끄는 수장급이며, 마후 휘하의 팔장군 정도인데.

그중 하나를 희생시키면 사기가 떨어질 공산이 컸다. 어찌 보면 이게 가장 답일 수 있었다.

“저, 제자님. 침입자가 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주변에 담당자로 불리는 한 무인이 말을 걸자, 마후는 씨익 웃어 보였다.

“예. 있었지요. 이 말고도 꾸준히 있었습니다.”

“……?”

“삼제자를 따르는 가신들을 죽이긴 했지만, 숫자가 제법 많아서요. 걱정 마십시오. 이제 다 정리가 됐을 겁니다.”

“아…….”

마후의 말에 설휘는 한숨 돌렸다.

운이 좋게도 자신이 이곳을 들어올 때, 다른 침입자들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침입자가 있다는 지침이 너무 빨리 내려졌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러한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마후의 일행은 자리를 조금 옮겼다. 그리고 홀로 앉아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송화냐, 네가?”

송화는 일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동령이 빠르게 다가가 부축하며 백회혈을 문질렀다.

“예. 접니다.”

덕택에 정신이 돌아왔지만, 혼탁한 눈빛은 여전했다.

물론 마후는 개의치 않았다.

“실혼마인 중에서도 마를 초월한 무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사실이냐?”

“마를 초월한…… 극마 말씀이십니까?”

끄덕.

마후의 모습에 송화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신을 부축한 노인, 동령을 보았다.

“말씀드렸다. 이론상 가능한 부분이라고만.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네…….”

의미 모를 표정.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한 목소리.

하지만 이내 송화는 정신을 차렸다.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해본 적은 없지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고 저도 한번 해보고 싶었기도 하고요.”

“허허허, 좋다. 그런 도전 정신이.”

마후는 고갯짓을 슬쩍하며 말을 이었다.

“제물로 사용될 고수다. 초마에 오른 이이기도 하고.”

“…….”

삼제자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송화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시간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육체적인 게 아닌, 정신적 주술이라…….”

“그래. 기다리겠다.”

그 말과 함께 마후는 뒤돌아섰다.

바닥에 널브러진 아령과 송화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일행들이 물러섰다.

1050, 1049……

설휘는 시간을 확인했다.

확실히 지금은 자신이 나설 수 없는 상황. 송화를 구할 수도 없고, 뭔가를 드러내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왠지 이 시간은, 제약처럼 느껴졌다.

“사르하. 사르하.”

송화가 힘없이 여인의 머리 위에 주술을 외울 때도 그리 느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마, 이 시간은……?’

그렇게 줄어드는 시간 속에서 설휘는 문득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거의 다 줄어가는 시간.

이것이 바로 실혼마인이 완성되는 순간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20, 19……

시간이 거의 다 흘렀을 무렵. 삼제자 아령이 눈을 떴고.

“그으으으…….”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변화를 보인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