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90화 (294/379)

290화. 벽사항마 (1)

쩌정! 쿠와앙! 콰콰콰쾅!

거의 열 곳이 넘는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싸움이 일어났다.

실혼마인들은 일제히 날뛰었고, 마후와 그의 수하들은 혼란을 막아내기 위해 애썼다.

캬악! 쿠와아악!

처음에는 속절없이 밀렸다.

숫자도 적지 않고, 철장을 엿가락처럼 구부리고 뜯어내며 달려드는 실혼마인. 그들의 거칠게 항거하는 기세는 보기만 해도 두려울 정도였다.

심장을 터뜨려도,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즉사가 아닌 이상 죽음의 두려움 없이 덤벼드는 기세는, 상대하는 무사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덕분에 놈들 가까이에 서 있던 무사 몇몇은, 버벅거리다가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고 진즉에 죽어버렸다.

“머리를 부숴라! 그러면 놈들도 죽는다!”

그런 와중에 부대를 통솔하며 달려든 노인이 있었다.

혈승. 아령에게 홀려 마교까지 왔던 전 현경각주.

이제껏 그녀를 보좌하던 이가, 지금은 최선봉에서 수하들을 이끌고 마후를 돕고 있었다.

쿠아아아앙!

한편, 지하광장의 중심에서는 절대고수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패는 실혼마인으로 변한 아령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대체 이건 무슨 신법인가.’

흐물흐물하게 늘어지는 환영.

이건 전투 경험이 풍부한 유패에게도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극단적으로 빠른 움직임이라거나, 환술처럼 눈속임을 통해 구현되는 현상이었다면 자신이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휘르르륵.

허나, 아령이 펼친 저 신법은 그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분명히 실체였던 것이, 갑자기 흐물흐물하게 변하며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현상.

그러면서 환영이 늘어나니, 이대로는 도무지 본체와 환상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때문에 조금 지켜보자고 판단을 늦추었던 결과.

슈욱.

‘억!’

아령이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왔다.

희미하게 웃는 얼굴에서 스쳐가는 불길한 기운.

급히 몸을 뒤로 뺀 다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온몸이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유패!”

불길한 기운을 덮어쓴 유패를 보며, 옆쪽에 있던 마후 역시 경악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크화아아아아악!

어둠의 불꽃이 십(十)자로 튀어나오며, 유패의 온몸을 관통해버린 것이다.

***

‘항마십삼장.’

한편, 설휘는 송화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장법에 관한한 중원제일이라 불리는 소림사의 무공. 다만, 나한십팔장과 대력금강장처럼 널리 알려진 다른 장법에 반해, 그다지 유명하지는 못했다.

그 까닭은 파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장법이기 때문이다.

소림을 창시한 달마는, 마(魔)라는 용어를 스스로 정의했다.

몸과 마음을 요란케 하여 선법을 방해하는 일체의 존재.

하지만 그건 사람의 바깥에서 오는 게 아닌, 스스로의 내면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주제에 대해, 달마 사후의 제자들도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魔)를 하나의 대상으로 가정하고, 타파하기 위해서 적절하게 골라 벼린 힘.

이 힘은 후에 항마력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항마력을 최대로 쏟아내기 위한 무공이 탄생했으니, 그것이 소림의 항마십삼장이다.

오로지 마(魔)를 타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법.

송화가 언급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확실히 마를 상대로 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선택이지만.

‘하지만 항마십삼장을 알지 못하는 내가, 그걸 어찌 펼치겠는가…….’

설휘는 그 무공을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구현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 굳이 정확한 항마십삼장을 구현해낼 필요는 없잖아?’

기존의 항마십삼장은, 항마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한 무공이었다.

달리 말해, 항마의 기운을 펼칠 수 있는 다른 무공이 있다면, 그걸 써도 된다.

그리고 벽사항마는, 마를 이겨내기 위해 고독히 면벽 수행하는 고승들의 깊은 심덕과 관계가 있었다.

‘내가 아는 소림의 무공은 어떤 것이 있었지?’

설휘는 곧장 소림과 관련된 무공들을 모조리 떠올려봤다.

그리고.

‘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두 가지 무공.

이는 배운 것이 아닌, 과거 왕모력과의 싸움 때 AI가 떠올렸던 무공이었다.

[소림오권을 익혔습니다.]

[달마십팔수를 익혔습니다.]

시스템의 능력 중 하나.

한번 배워두면 머릿속에 박혀 있다가, 기억을 떠올리면 바로 구현되는 것.

그게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달마…….’

소림사의 수많은 무공을 창안한 개파조사.

그는 내면의 마(魔)와 싸우기 위해, 그리고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수련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설휘는 이내 달마십팔수를 좀 더 살피기 시작했다.

그것이 답이었다. 무공 자체에 마(魔)를 극복하기 위한 이치와 깨달음, 그리고 수련법 등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혹여나 아령이 지금 펼쳐 보이는 것이 마를 뛰어넘은 탈마(脫魔)의 기운이라면, 이 정도의 항마력으로는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다.

허나, 설휘가 보기에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령은 당장 자신의 마를 극복(克魔)조차 못한 여인이다. 그러니 그저 실혼마인의 주술을 받았다고 해서 대번에 탈마에 오를 가능성은 전무할 터.

그렇다면 결국 저 기운은 마공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이질적 기운일 뿐.

그렇다면 벽사항마(辟邪降魔)의 기운을 가진 달마십팔수의 위력으로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다.

쿠와아아앙!

설휘의 생각이 정리될 때쯤, 마후의 오른팔인 유패와 실혼마인 아령이 격돌했다.

검은 기류가 뻗어나감과 함께 다시금 폭발했고.

츠으으으윽.

대치의 끝에는, 무릎을 꿇고 한 팔을 축 늘어뜨린 유패가 있었다.

“크으으으.”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옷은 불에 타 그을렸고, 피부는 죄다 긁히거나 붉게 물들어 있었다.

더욱이 그의 몸을 덮쳤던 괴이한 기운은 여전히 남아 있어, 드문드문 검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유패가 당했다.’

극마에 오른 실력자.

그런 그가 아령의 기운을 제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마를 다루고 그 힘을 극복해낸 정신력으로도, 저 사이한 기운을 다루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동급의 힘이라면, 더욱 변질된 아령의 힘이 더 강한 것처럼.

“흐. 극마라더니, 별거 없네?”

아령이 한껏 비웃어 보였다.

“……이년이.”

그에 울컥하고 일어나는 유패.

“크흑!”

허나, 검은 기운이 온몸에 달라붙어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한번 스며든 다음에는, 공력으로 밀어내지도 못하는 어둠의 기운.

그 성질은 마공보다 더 이질적이고 괴이하여, 천하의 유패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스윽.

천천히 눈을 돌리는 아령.

“헉……!”

겁을 집어먹은 마후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외려 별것 없어 보이는 한 노인에 시선이 쏠렸다.

“이놈은 왠지 꺼림칙하군.”

기려사대의 동령.

실혼마인을 만들고, 또 그들을 부릴 수 있는 주술을 알고 있는 자.

아무래도 지금 자신의 변이가 그와 관계되었으니, 살려두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이런.’

그리고 설휘는 아령이 동령 쪽으로 향하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위기에 처한 동령의 눈이, 잠시였지만 자신과 마주쳤고.

때마침 이게 떴다.

<아래 지문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 실혼마인으로 변한 아령을 제압한다.

▷ 동령을 아령으로부터 구해낸다.

▷ 송화를 먼저 구한다.

‘드디어 나왔구나.’

설휘는 지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여기로 오게 된 목적, 그건 바로 아령을 제거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제야 관련된 지문이 뜬 것이었다.

다만.

‘송화는 왜?’

지문은 별도로 나눠진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아령을 제압하면 동령과 송화 둘 다 구할 수 있다.

아니, 나중에 마후의 공격을 받게 되더라도 그전까지는 대비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선택지가 이렇게 구분되어 있는 걸까.

마치 한 명은 포기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지문이 아닌가.

<‘실혼마인으로 변한 아령을 제압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잠시간 지켜봅니다.>

그렇게 첫 번째 지문을 선택한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본래는 선택을 하자마자 아령과 싸움이 일어날 줄 알았다. 허나, 실제로는 설휘의 예상을 벗어났다.

자신은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간 지켜봅니다.’란 문구가 뜸으로써,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큽!”

동령이 자신의 목을 감싸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령이 손을 뻗음과 함께 날아온 검은 기운으로 인해.

곧 그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스윽.

이어지는 아령의 시선.

이번에 그녀가 본 것은 쓰러져 있는 송화였다.

“너도 이제 필요 없어졌고.”

처억.

아령의 손이 송화를 겨냥했고, 다시금 시커멓고 이질적인 기운이 발현되었다.

<시작합니다.>

‘제길.’

설휘는 문구를 보자마자 즉각 반응하여 송화를 감쌌다.

위이이익!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검은 기운. 설휘는 온몸을 보호하며 손바닥에서 강렬한 한기를 쏘아냈다.

‘소신수마공!’

강대강으로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닌, 소멸이나 느려짐을 유도한 것이다.

쩌어어엉!

선택이 유효했던 걸까. 검은 기운은 극한의 한기에 갇혀 잠깐 맴돌았고, 더는 뻗어가지 못했다.

“오호.”

아령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제껏 반쯤 박살 난 실혼마인이라 여겼던 설휘를, 그제야 제대로 알아차린 것이다.

‘더는 마공으로 부딪치면 안 된다.’

아령의 단순한 일격을 멈추게 만드는 데만 해도 상당한 공력이 소모되었다.

꿈틀. 꿈틀.

설상가상으로 설휘는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송화를 보았다.

마공과 마공의 충돌. 그 여파만으로도 송화는 죽을 듯 말 듯했다. 가진 무예도 없는, 아직 어린 소년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천양금황단을 송화에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설휘는 즉각 물품을 사용했다.

작전에 투입되기 전, 황금 벨트에 챙겨 넣었던 영약.

사용 설명에 심신에 부정적인 기운을 날려준다는 글귀가 있었으니, 이것이 쓰러진 송화에게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적중했다.

[송화에게 사용합니다.]

[송화가 정신을 차립니다.]

“정신이 드느냐?”

설휘의 물음에 송화가 윽,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허. 저를 깨우신 겁니까?”

“그렇다.”

“역시…… 귀인이시군요.”

“그런데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하구나.”

그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아령과 눈을 마주쳤다.

당연히도 그녀는 자신들을 보며 상당히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 같잖은…….”

아령은 화가 나 있었다.

별것도 아닌 사내 놈 하나가 자신의 기운을 막아낸 것이 불만이었다.

스스스.

그녀의 검신에서 피어난 기운은 그 길이가 삼 척에 달했다.

유패급이 아니라면 감히 항거할 수 없는 힘.

그런 와중에도 설휘와 송화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항마십삼장은 얻으신 겁니까?”

송화가 물었고, 설휘가 답했다.

“아니. 하지만 비슷한 걸 얻었지. 항마의 기운을 펼치는 방법은 알고 있다.”

“아……?”

송화는 이번엔 정말 당황했다.

항마멸사의 기운을 펼치려면 정파의 무공을 익혀야 했다.

필요한 무공을 말했을 뿐, 정말 상대가 항마의 힘을 사용할지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뭐, 써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통할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설휘는 애써 담담히 말하며 싸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화경 [ON]

경지를 설정하고, 무공을 고른다.

달마십팔수.

소림의 오호권이 몸이 쇠약한 승려들을 단련시키기 위한 외공이라면.

달마십팔수는 과도한 명상 중에 길을 잘못 들어 내면에 심마가 깃드는 것을 방비하는 심공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저 기운에 적용될지는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지금 상황에는 뒤가 없었다.

“꺼져라!”

아령의 검에서 이계의 기운이 설휘를 향해 쏟아졌고, 설휘는 달마십팔수의 기수식.

천답지(天踏地)의 자세를 취했다.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기류가, 설휘의 손을 따라 서서히 생성되기 시작했다.

벽사항마의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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