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벽사항마 (3)
꿀렁꿀렁.
보랏빛까지는 가지 못한 것일까. 짙푸른 남색의 기류가 몸을 휘감았다. 대경한 아령은 전력을 다해 그에 저항했다.
“크아아아아!”
하지만 아무리 소리치고,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 봐도 소용없었다. 마후의 기운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아령에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크크크, 어딜 벗어나려 드느냐.”
마후의 얼굴에는 흉측하게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흡성대법의 성취가 높지 않아서인가, 그 역시 전력을 다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익!”
뿌리치고 뿌리쳐도 계속해서 기운이 파고들어오자, 아령은 방향을 바꾸어 돌연 마후에게 손을 뻗었다.
콱!
“죽어!”
마후의 눈이 커졌다. 예상치 못한 반격.
갑작스런 그녀의 수공(手功)에, 창졸간 그의 가슴이 그대로 관통당해버렸다.
“끄……!”
그렇게 상황이 역전되나 싶었다. 하지만 곧 희색만면하던 아령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졌다.
“크흐흐흐……. 이미 늦었어, 사매.”
“……?”
쓰러져야 할 마후는 여전히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인 그는 낄낄대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의 다 흡수했거든.”
“……!”
아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급히 자신을 돌아본 그녀의 표정이 흉악하게 변했다.
이미 육신의 반이 검은 연기처럼 타들어 가 있었고, 남아 있는 반만 겨우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불신에 가득 찬 그녀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져갔다. 그리고 놀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지?”
설휘도 눈을 부릅떴다.
모름지기 흡성대법이라는 심법은, 상대의 내공만 잡아먹는 것이 아니었나?
“마후는 이미 기운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어요.”
송화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기운의 통제력이라면…….”
“이계의 기운, 변형된 마기 말이에요. 마후는 저희에게 자신이 그 기운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 했어요.”
송화가 힘겹게 입술을 떼었다.
그건 설휘가 알 수 없는, 며칠 전 마후가 그들 기려사대에게 밀명을 내리며 한 이야기들이었다.
- 실혼인이 가진 기운은 우리가 가진 기운과 다른 종류입니까?
- 같은 기운이라면 더 통제가 강한 쪽이 얻을 수 있는 거라고요?
- 혹 대법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겁니까?
당시 사부인 동령은, 비슷한 기운을 가지면 더 강한 쪽이 통제할 수 있다고 대충 얼버무렸지만, 마후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듣지 않았다.
- 조치를 취하세요. 대법이 없다면 만들면 되는 겁니다.
그는 집요할 정도로, 실혼마인들이 가진 파멸적인 기운을 자신의 몸에 흘려 넣을 수 있게 하라고 요구했다.
동령 쪽도 어떻게든 거절하려고 했다. 자칫 목숨을 잃거나 정신이 붕괴되는 부작용을 수반할 거라고.
하지만 마후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이 다그쳤고, 자신의 몸에 위험한 사법을 시술하여 기어코 실혼마인들의 기운을 몸에 심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그가 아령의 기운, 그 이질적인 기운을 빨아들일 수 있었던 비밀이었다.
사아아아아.
“아…… 아…… 아…….”
어느새 몸의 삼분지 이가 날아간 아령.
그녀는 지금 이 현실이 믿기 힘든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마후를 바라보았다.
저항해도, 뿌리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미 변해버린 몸 내부에서,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쭉쭉 흘러가는 걸 느끼며 가늘게 눈물만 흘렸다.
“잘 사용할게. 사매.”
마후의 얼굴엔 흡족한 웃음이 가득했다.
“…….”
아령은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그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는 허우적거리다 얼마 후, 허깨비처럼 흐릿하게 되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후우…….”
그리고 마후는 그렇게 강제로 자신의 몸에 빨아들인 기운을 천천히 갈무리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껏 몸에 들어온 적 없는, 미지의 기운을 느끼려 하는 것이다.
지글지글.
“크으…….”
신음하는 마후. 마치 혈맥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극마의 단계에 오른 실혼마인 아령의 기운은, 가히 용광로에서 녹아내린 쇳물처럼 느껴졌다.
치이이이…….
그건 그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마후의 신체는 실제로 강한 열기를 피워내고 있었으며, 융화가 덜 된 기운의 일부는 한데 모여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드디어 손에 넣었다. 실혼마인이나 가질 수 있는 이 영적인 힘을.”
마후는 가늘게 신음하며 환희에 휩싸였다.
근래 들어 마후는, 전에 없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대사형이자 자타공인 마교 이인자라 할 수 있는 일제자 살마.
그리고 여차하면 그 살마도 격살할 수 있는 사제자 곤마.
위도 아래도 강력한 그 틈바구니에 갇혔는데, 마후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이 무공으로 그들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를 극복하는 것은, 선택받은 자가 아니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그는 세력을 형성했다.
고수들을 영입하고, 사형과 사제가 함부로 자신을 노리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견제와 이간질을 계속해 왔다. 음모와 암계, 잔혹한 손속은 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리고 이제껏 그의 방식은 잘 통하는 듯했는데…….
최근에 와서 기어코 균형이 무너졌다. 결국에는 본신의 힘이 약해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수장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아랫사람이 따른다.’
마후는 강해져야 했다. 하지만 보통의 방법으로는 벽을 넘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실혼마인에서 그 해법을 찾으려 했다.
고대의 어느 문헌에서, 초마에 오른 고수에게 실혼마혼의 주술을 씌우면 극마, 아니 그 이상의 힘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다만 거기에는 엄청난 후유증과 훗날 정신이 붕괴되고 마는 확정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후는 그 길을 선택했지만, 그냥 망하는 길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할 수 있다면, 그 힘만 빼내고 대가는 치르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준비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는 대법을.
주술로 실혼마인의 힘, 이종의 진기를 먼저 소량이나마 받아들였고, 차츰차츰 그 양을 늘려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반복하여, 기어이 극마에 오른 아령의 힘도 흡성대법으로 빨아들인 것이다.
“좋구나. 좋아! 크하하하.”
마후의 미친 듯한 웃음이 쩌렁쩌렁하게 퍼졌다.
한때는 도박이라 할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결국 그는 성공했다.
극마에 오르지 않고도, 극마 그 이상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모든 계획은 이로써 완성된 듯 보였다.
“하아, 그래. 강대한 힘을 얻었으니, 이걸 직접 운용해 봐야겠어. 헌데 시험할 만한 인물이…….”
마후의 시선이 주변을 훑다 이내 한곳에 고정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선 인물.
그리고 정파의 무공까지 펼친, 익숙한 사내가.
“마침 눈앞에 있군.”
“……!”
설휘의 얼굴이 굳어졌다.
상상을 뛰어넘었던 강력한 실혼마인 아령. 그런 그녀를 잡아먹고 더 강해진 마후다.
그런 그가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이건 뭐, 한 터울 넘으니 첩첩산중이었다.
“그나저나 놀랍군.”
마후가 눈을 빛내며 말을 걸어왔다.
“설휘라고 했나. 전에 한번 대단한 무위를 보이긴 했어도, 설마 단신으로 우리 본진까지 침입할 줄은 몰랐는데.”
“…….”
설휘는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역용술이 풀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전력으로 벽사항마의 힘을 쓰다 보니, 역용술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적이 뭘 하는지를 살펴야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법이니까요.”
“…….”
설휘의 말에 마후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었고.
“그 자신감 하나는 마음에 드네…….”
말이 끝나자마자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츠츠츠측.
기운의 성질은 아령과 비슷했다.
시꺼먼 기류가 흡사 나뭇가지 모양을 그리며 불규칙적으로 뻗어 나오고 있었다.
언제 달려들지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에, 설휘는 극도로 긴장했다.
그런데.
“주군. 잠시 제가 저자와 말을 나누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막 손을 쓰려던 마후를 막아선 자가 있었다.
“……유패? 자네가 웬일인가?”
마후는 눈을 크게 떴다.
유패. 무예가 고강하지만, 성격이 담백하여 앞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는 조용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마침 손을 쓰려는 데 나서는 일은 처음이라, 마후로서도 꽤 놀라운 일이었다.
“뭔가 마음에 드는 녀석입니다.”
“허, 그래?”
마후는 놀란 표정으로 설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유패를 보고 웃었다.
“재미있는 일이군. 자네가 관심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니. 저자가 확실히 보통은 아닌가 보네.”
스르륵.
마후는 이내 몸속 기운을 눌렀고, 이계의 기운이 빠르게 사라지자 한발 물러서 주었다.
“나쁘지 않지. 할 말이 있다면 어디 나눠보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에 유패가 예를 표한 뒤, 이어 설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유패…….’
설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패는 과거에도 이상하리만치 자신에게 호의적인 인물이었다. 지금 역시 그랬다.
당장 마후를 막아주지 않았으면, 갈피도 잡지 못하고 바로 싸움부터 벌어졌을 텐데.
“제법이군. 혈강대 집체교육 때도 1위를 했다는 얘길 들었네만…….”
“…….”
설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어 그의 눈을 바라볼 뿐.
“사제자께서 얼마나 자네를 총애하셨는지는 모르나, 이제자님 또한 인재를 중히 쓰고 아끼시는 분일세. 충의도 좋지만 지금 같은 불리한 상황에서 굳이 아까운 목숨을 내던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고자 하시는 말이 뭡니까?”
“알지 않나. 세상일은 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무인의 삶일세. 자네의 재주가 아까워서 기회를 주고자 하는 걸세.”
그리고 설마 했는데, 정말로 설휘의 눈앞에 새로운 글귀가 떴다.
<유패가 ‘이제자가 제시하는 한 가지의 삶’에 대한 제안을 해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설휘는 조금 황당하기까지 했다.
자신은 본진에 쳐들어온 적이다. 이런 명백한 적대적인 상황에서 회유를 종용하다니.
과연 유패. 혹자들이 마교의 군자라 부른다는 인물다웠다.
‘헌데, 이전에는 두 가지의 삶이었는데.’
잠깐 글귀를 보던 설휘는 과거와 바뀐 내용에 시선이 갔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지금처럼 일촉즉발의 상황은 아니었다. 자신은 곤마에게 총애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고, 또 대단한 힘이 없었다.
그래서 두 가지의 삶처럼, 경우의 수가 더 있었던 것인가 싶었다.
아마도 지금 마후가 제안하는 한 가지의 삶은, 자신을 따르라는 것. 아니면 죽이겠다는 것일 터.
‘길게 끌 거 없지.’
설휘는 선택했고, 곧 이것이 떴다.
<거절하였습니다.>
“크……. 안타깝구만.”
빈말이 아닌 듯 보였다. 유패가 드러내는 표정에는 꽤나 진심이 섞여있는 듯했으니까.
그는 진하게 아쉬움을 토로한 뒤 잠깐 마후를 돌아보았고, 곧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두 번을 물어도 똑같겠지. 그래, 이해하네. 그런 의미에서 내 사정도 이해해 주길 바라네…….”
“……?”
“자네만 한 인재를 아군에 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해도, 다른 곳에 가는 것까지는 허용할 수 없겠어.”
“……대체 무슨 말이십니까?”
“내가, 자네의 목숨을 직접 거둬가겠다는 말일세.”
츠츠츠측.
유패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 싸움, 피할 수가 없겠군.’
설휘는 그의 행동에서 느꼈다.
유패와 마후, 이 둘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쉽지 않구나. 정말이지 이번 건…….’
노골적으로 전의를 드러내는 유패.
언제든 달려들 것만 같은 마후.
한 명은 명백히 극마의 고수. 또 한 명은 이종의 힘을 사용하는, 벽사항마의 기운 외에는 상대가 불가능한 마후.
솔직한 말로, 살아날 방법이 없어 보였다.
특수 기술을 사용하여 무한하게 내공을 끌어올린다 해도, 이 둘이 동시에 덤벼드는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화경과 극마가 합쳐지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그러던 그때.
- 귀인. 일각만 버텨주시겠습니까?
소곤거리듯 자신에게 건네진 전음.
말을 건넨 건 동령이었다.
- 송화라는 아이가 재간이 있어, 순간 이동이란 주술을 쓸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지시했으니 앞으로 일각. 그 정도만 버틴다면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
설휘는 천천히, 표나지 않게 옆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송화는 이미 주술을 쓸 준비에 들어간 듯 뭔가를 입속으로 외고 있었다.
-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 그쪽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오?
설휘가 전음으로 물었다.
자신이 조금 도와주려고 하긴 했지만, 그들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동령에게서 나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부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편안한 죽음?’
설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무슨 소린가. 마치 송화가 반드시 죽기라도 한다는 말 같지 않은가.
헌데 그건 설휘의 착각이 아니었다. 동령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 송화는…… 이미 너무 많은 주술력을 썼습니다. 무인으로 보면 단전이 깨어져 진원지기가 폭주하게 되어버린 상황……. 저 어린 것이 부디 고통스런 죽음이라도 면하게 하는 것이 이 늙은이의 소망입니다.
“……아.”
설휘는 개탄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송화를 구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는 영기가 고갈되어 죽음만 남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애초에 구할 방법이 없었던 건가. 전 회차의 생에서도 송화가 유독 죽음에 자주 임박했던 것이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받아들이지요.”
설휘는 대답했다. 동령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유패를 향해 있었다.
이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맞설 뿐.
“강자존.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 본교의 율법. 과연 제 마음도 가져가실 수 있는지, 여기서 한번 보겠습니다.”
“호오.”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을 하며 설휘는 유패를 향해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어쩌면, 이렇게 애매하게 말해둔다면.
일각 정도는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