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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97화 (301/379)

297화. 완전히 다른 진행 (3)

애초에 마후의 대법은, 보안을 위해 깊은 지하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거듭된 폭발과 충격에 의해, 두터운 석조 천장이 무너지고 말았다.

구구구궁.

어른 몸통만 한 암반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 충격은 보통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피할 틈 따윈 없었다. 사방으로 다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는 암석의 비는, 아래에 있던 모두를 짓이겨버렸다.

그 속에서 마후, 그리고 유패도 벗어나지 못했다.

드드득. 드드드득.

암반은 끝없이 쏟아졌다.

애초에 사람의 눈을 피해 지하에서 회동을 하면서, 지상에 건물이 없을 리가 없다.

지저가 무너지니, 당연히 지상의 건물도 폭삭 주저앉았다.

쏟아지는 서까래, 바닥석, 건물의 잔해들은 무게가 최소 수십 근에서 많게는 수백 근에 달했다.

무공의 고수라도 이런 재난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하물며 이미 부상이 극심한 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쿠와아아앙! 우드드득!

사람들의 절규와 비명, 마지막 숨을 거두는 소리는 건물이 무너지는 굉음에 덮여버렸다.

작은 산사태에 버금가는 토사와 암반이 쏟아진 후, 살아남은 이는 오직 한 명.

설휘만 무사했다.

스윽.

설휘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참상에서 홀로 걸어 나왔다. 그는 송화를 안은 채 한참을 걸어갔다.

그리고 적당한 산에 이르자, 천천히 그를 뉘었다.

“언제고, 다시 보는 날이 있을 것이다.”

작은 봉분 하나를 만든 설휘는, 그를 그곳에 안치한 뒤 자연스럽게 묻어주었다.

그렇게 천천히 돌아서던 설휘를 향해 누군가 말을 걸었다.

- 어때? 탈마에 오른 기분이.

누군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탈마에 오른 직후부터 시선이 느껴졌다. 녀석이 마치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AI, 본인을 사유강이라고 소개했던 녀석이다.

“뭐…… 나쁘진 않군.”

-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야. 넌 정말 선택받았다고 할 만하다. 무려 수천만의 도전자 중에서 고작 세 명만 도달했던 탈마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되는 임무를 완전히 비틀다니. 이건 정말, 나도 아주 오래 걸려서 알아냈던 방식인데…….

“칭찬할 마음이라면, 앞으로 내가 겪을 위기에 대해서나 말해줘. 그래야 이번 같은 일을 피할 수 있을 테니.”

- 거…… 재미없는 녀석이군.

AI는 흥이 깨진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치 과거의 자신이 지켜보는 위치에서 존재했던 것처럼.

- 당장은 나도 장담 못 하겠다. 앞 일이 너무 꼬여버렸어. 네가 선택한 길은 정공법도 아니고, 매우 희귀한 쪽이니까. 그래서 탈마에 오를 수 있을 수 있었지만……. 어쨌든 위기는 계속해서 널 찾아올 거다.

AI의 설명에는 고민한 흔적이 드문드문 엿보였다.

아마도 지금의 방식으로 탈마에 오르는 건, 그 역시도 예상 못 한 듯했다.

하긴, 주술사의 힘을 이용해서 이계의 진기를 몸에 들여 탈마에 오르는 게 상식적인 일은 아닐 터.

설휘는 그런 AI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해가 안 돼.”

- 뭐가?

“이 힘. 지금 나는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어. 이거라면 어떠한 외부의 공격에도 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지금 이 수준으로도…… 아직 위기라고 생각해야 하나?”

꾸욱.

설휘는 가볍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고작 그 정도의 동작으로도, 힘 가늠을 잘못하면 사방을 박살 내버릴 것만 같았다.

온몸에 넘쳐나는 힘은, 그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과장을 조금 보태 산을 뽑아 던지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 하긴. 나도 탈마에 올랐을 때, 그런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지. 세상을 가진 것 같고,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거라 믿었지.

그런 설휘에게 AI가 초를 쳤다.

그는 피식피식 웃으며 자신을 보는 설휘에게 말했다.

- 탈마에 올랐다고 해도 수준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날 거다. 현 교주는 탈마의 2단계, 플레이어는 4단계. 그리고 지금 네 수준은 1단계다. 기습이건 암습이건, 치밀하게 계획을 짜야 겨우 교주와 동수를 이룰 정도.

초입, 기신, 초신, 마신.

일전에 알려주기도 했던 경지인데, AI는 부르기 편하게 이 경지를 숫자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도래할 위기가 어떤 건지 정도는 알고 있겠군.”

- 당분간은 뭐. 훗날 네가 좀 노력한다면, 현 교주와 정면에서 겨루어 동수를 이루는 것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지금 진행 방식으로는 플레이어를 상대로…….

“아니, 훗날은 없어. 이번에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이다.”

설휘는 AI의 말을 반박하듯 말을 이었다.

“나는 이번에, 이번 삶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다. 그러니 도와줘. 네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왜? 굳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예전과 다르게 자신에게 명령하는 설휘가 거슬려서 일까.

AI가 갑자기 빈정거리며 대꾸했다.

그 모습에 설휘는 예상이나 했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난 너처럼 오래 반복할 생각이 없으니까.”

- 뭐?

설휘는 AI를 응시하며 말했다.

“계속해서 죽고, 다시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잃어 가는 건 더는 못 해먹겠다. 난 너처럼 정신이 갈갈이 갈려나가는 걸 감내하며 목표를 이룰 생각이 없어.”

- 허, 그럼 너 남은 생은 어떻게 쓰려고…….

“그거야 스스로 마감을 하든, 어떻게든 되겠지. 다만, 나는 이번 생에 모든 걸 걸 거다. 남은 목숨? 또 다른 시작? 이젠 질렸어.”

그게 설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매번 죽어서 다시 시작하는 삶.

이젠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더 강해지고 싶은 마음도, 어떻게든 복수하겠다던 다짐도, 이제는 반복되는 상실에 갉아 먹혀 버렸다.

역설적으로 설휘는 AI가 사뭇 대단해 보였다.

그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삶의 굴레를 겪은 것일까.

그가 지금 같은 성격인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사람이 미쳐버리는 건 당연한 것이고.

살인에 대한 죄의식 없이, 그저 매번 겪는 삶에 변화를 주는 쾌감이 고작일 터.

- 이거, 재밌는 놈이 생겼나 싶었는데……. 형편없는 놈이었네.

AI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어쩌면 자신이 겨우 얻은 새 희망을 포기하는 모습. 그 때문에 더욱 화를 내는 것으로 보였다.

- 내 단언하지. 네가 아무리 타고난 재주를 받고 운이 좋다고 해도, 현 교주를 죽이는 것에 그칠 것이다. 이 세계에선 반드시 죽음과 삶을 반복해야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 절대로 구할 수 없는 장비들이 있다. 이제껏 너는 그것들을 지나쳐 왔고. 그런데도 이번만 도전한다고?

AI의 힐난에 설휘가 답했다.

“그럼 내가 묻지. 네 말대로 모든 걸 갖추고 싸운다면, 그 플레이어란 자를 죽일 수 있나?”

- ……질문의 의도가 무어냐.

노여움이 깔린 목소리.

그는 대답 대신 설휘의 의도를 물었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난 정말로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할 뿐이야. 네가 제시하는 방법으로, 그 플레이어라는 자와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나? 자신해?”

- 그거야…….

AI는 대답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역시 자신이 없었다.

물론 아직 해보지 못한 몇 가지 방식이 있긴 한데, 그걸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건 그의 성미상 자신을 속이는 것이었다.

플레이어조차 뛰어넘는, 상식을 벗어나는 힘?

이제껏 그걸 얻기 위해 숱하게 시도해 보았고, 또한 싸워보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 무력감을 맛보았다.

- 그러나 적어도 네 방법보다는…….

그럼에도 AI가 인정하기 싫은 건, 바로 설휘가 나아가는 방향이었다.

지금 그가 보기엔, 설휘는 절대로 탈마의 초입.

이 경지를 쉽게 뛰어넘을 수 없다. 천재일우의 행운이 겹쳐 뛰어넘어도, 결코 플레이어에게는 닿을 수 없다.

이 세계는 이렇게 되어 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니까.

“사유강.”

- ……?

“난 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너처럼 강인한 정신력도, 의지도 없다. 너도 알다시피 이번에 탈마에 오른 것도, 순전히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설휘는 진심을 토로했다.

언제고 자신이 마주하게 될 적은, 단순히 강해진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그런 범주를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앞으로 몇 번을 시도해 봐도, 지금의 이 단계보다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설 것 같지도 않았다.

탈마이자 현경인 경지.

수천만의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단 세 명만 넘어서고, 나머지는 미끄러진 이유?

그건 그냥 운이다.

적어도 자신은 그랬다. 설휘 자신이 특별히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지금의 힘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그렇다면 뭐.

실망한 목소리의 AI.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왔다.

- 그래. 네 삶은 결국 너의 선택이지. 순전히 결과도 네가 책임지는 거고. 좋아, 알겠다.

AI는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뭐,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게 있지. 굳이 내가 나서서 막아줄 필요는 없으니까. 좋다. 그 신념. 다음에 날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뭐? 지금 그게 무슨 소리……. 이봐!”

설휘가 놀라 그를 불렀지만, 이미 AI는 자신의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 두 가지만 기억해라. 시스템의 ‘조정’, 그리고 교주의 죽음.

- 여기서 조정이라 함은 네가 너무 강한 힘을 얻을 경우, 시스템이 개입하여 상황을 일부러 어렵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힘을 최소한으로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 둘째는 교주의 죽음, 최대한 늦출 수 있을 때 까지 늦춰라. 그렇지 않으면 곧장 플레이어를 만나게 될 테니까.

“이봐. 마치 떠나려는 사람처럼…….”

- 떠나는 게 아니다. 네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난, 네가 필요로 하면 언제든 너의 옆에 서서 널 지켜볼 것이다. 기억해라. 너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임을.

“……!”

사아아아-

그것이 끝이었다.

환영은 사라졌다. 그리고 몇 번을 불러도 AI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건가.”

잠깐 당황했던 설휘는 이내 AI의 의도를 이해했다.

적어도 이번 생에 그가 개입하면, 설휘는 본인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 죽음으로 인한 경지 상승을 설휘 자신이 원하는 것도 아니고.

설휘 역시 승부를 걸려는 와중에 그가 개입하는 것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AI는 스스로 물러나 멀리서 바라보는 걸 택했을 것이다.

“그동안 고마웠다.”

설휘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이 천천히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임무가 달성된 뒤의 강제 진행. 시간의 흐름이었다.

***

“대체 어떻게 살아나왔느냐?”

“소식은 전해 들었다. 비밀리에 지은 지하뇌옥이 붕괴되었다더구나.”

전쟁을 대비해 만든 임시 막사.

설휘가 돌아오자 소식을 전해 들은 초아란과 악비가 마중 나와 한마디씩 했다.

“삼제자가 마후의 손에 죽었다고? 그게 정말이냐?”

“그 마후가 정말 네 손에 당한 것이냐.”

자초지종을 설명한 설휘에게 두 노인은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허어, 이리 되면 완전히 승리의 추가 기운 거라 봐도 될 것이다.”

“좋아. 이 기세를 몰아 첫째 제자를 치는 것이 어떻겠느냐.”

옆에 있던 장로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리고.

“서두를 것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게, 남은 세력들을 우리 쪽으로 흡수하는 것이 승세를 굳히는 길입니다.”

“결국 싸움은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고수는 많지만, 아래에서 받쳐줄 전력이 부족합니다.”

흑마전주와 혈사전주는 상황에 맞게 현실을 냉정히 짚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가운데서 곤마가 다가와 말했다.

“대단하단 말……로도 부족하구나. 정말 수고했다. 힘들 테니 여독부터 풀거라.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 다들 회포를 푸는 게 어떻겠습니까?”

곤마의 말에 다들 밝은 표정으로 동의했다.

또한, 이 어려운 일을 끝낸 설휘는 그야말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잠시 제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설휘는 이들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몇몇 노인들이 같이하자고 제의했지만, 곤마는 그런 제의를 냉정하게 거절했다.

“고된 일정을 마친 이입니다. 앞으로 시간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곤마의 배려로 자연스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임시 막사를 나온 설휘가 향한 곳은.

자신의 처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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