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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98화 (302/379)

298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준비 (1)

“돌아오셨군요.”

설휘가 처소에 들어서자 천미려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헤아려보면 임무에 투입된 후 고작 이틀 정도가 지났지만, 왠지 그녀를 보니 꽤 오랜 여정을 지나온 것만 같았다.

“네, 다녀왔습니다.”

설휘의 미소에 고개를 끄덕이던 천미려.

그녀는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물었다.

“깨, 깨달으신 건가요?”

“어떻게 안 것입니까?”

초절정에 들어선 무인은 기를 갈무리할 수 있어, 외견상 무예를 익히지 않은 일반인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를 반박귀진의 경지라 하며, 극마에 도달하면 기운이 넘치거나, 혹은 초로의 노인처럼 기운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자들이 많다.

그래서 설휘는 궁금했다. 지금 탈마에 오른 자신을 그녀는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하고.

“음. 설휘 님의 눈이…… 어린아이의 그것 같아요. 맑고 생명력이 충만한 그런 눈이요.”

“눈이라.”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지만 설휘는 곧 납득했다.

예로부터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녀의 비범한 무위 또한 동반된 결과이리라.

대주천을 완성하고 난 것이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고 설휘가 잠깐 창가를 쳐다볼 때.

천미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사부님 말씀이 맞았어. 언제고 불사의 존재는 탈마가 될 것이고, 이계의 고수와의 싸움을 준비하게 된다더니…….”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설휘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이계의 고수.

그건 즉 플레이어다. 설휘가 언제고 그와의 싸움을 준비한다는 걸, 그녀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이제 때가 된 것 같군요, 설휘 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알려드릴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천미려는 한숨을 쉬며 비치된 의자로 걸어갔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지, 그녀는 설휘에게도 맞은편 의자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처억.

서로 자리에 앉자, 천미려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우선, 제 사부님이 누구신지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본교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분이셨지만, 가진 능력이 하늘을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고서팔(高西八).

천미려, 그녀의 사부의 이름이었다.

평범한 농민의 아들 출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돌아다니던 행상이었는데 우연히 마교에 닿아 그 길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선사께서는 책 읽기를 즐기셨고, 이곳에서 많은 책을 읽으시다, 스스로 물후(物候)와 천상(天象)을 자각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음.”

설휘는 무슨 뜻인지 곧장 이해했다.

천일관에서 읽었던 글들이 도움이 되었다.

물후라는 것은 기후에 따라 변화하는 만물의 상태를 말하며, 천상이란 하늘 위에 있는 천체와 천문의 현상을 의미한다.

그런 걸 그저 책으로 독학해서 깨닫다니, 정말 놀랄 일이다.

“사부께서는 그냥 농부 출신이라서 그렇다고 하셨지요. 노농지천(老農識天)이라, 늙은 농부는 하늘을 안다고. 계절과 기후의 변화는 그들에게 생계가 걸린 문제이니, 자연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냥 타고난 천재셨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따로 스승도 없었다고 하니. 아마 뒤늦게 재능이 발현되었지만,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맞아요. 확실히 그런 성품이셨어요.”

천미려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그리운 눈으로 회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선사께선 취미로 천문을 살피시다 어느 날부터 이상한 걸 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봄가을의 태양은, 동에서 떠서 정오쯤에는 남쪽에 있는 것이 이치다.

헌데 어느 날 보니, 마치 계절이 뒤바뀐 듯 북쪽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이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림자가 지나가는 자리를 평소에 표시해두었는데, 처음에 그렸던 선의 위치와 나중에 그렸던 점의 위치가 바뀐다든지.

또는 목련꽃이 필 때, 피기 전에 꽃봉오리가 휘어지는 방향이 바뀐다든지 하는 기현상.

평소에 세심하고 꼼꼼하게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있었는가? 하고 모르고 넘어갈 일이었다.

“어찌 보면 사소하고 대단치 않은 일들이지요. 하지만 천체의 움직임은 예로부터 천기, 미래와 운명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고. 선사께선 그때부터 더욱 주의 깊게 살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발견했다.

시간이 느려졌다가 빨라지는 것을.

달(月)이 모여 시(時)가 되고, 시(時)가 모여 해(歲)가 되는 결합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춘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초저녁에 조성이 하늘 정 남쪽에 나타나는 때에, 갑자기 보여야 할 별이 사라졌다.

“심지어 한밤의 북극성. 우리가 아는 그 별이 어느 때는 여섯 개, 심지어 여덟 개로 늘어나는 것을 목도하기도 하셨답니다.”

“북극성이 늘어나다니? 그게 대체 무슨 괴변입니까?”

“선사께서는, 시간이 뒤틀리는 과정에서 일어난 흔적일 거라고 추정하셨습니다. 본래 시간과 공간, 그 둘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 관계지요. 그래서 줄여 시공이라고도 부릅니다.”

천미려가 해설했다.

시간은 공간과 함께 흐른다. 때문에 공간이 여럿 겹쳐지는 것을 보면, 그게 시간이 비틀린 흔적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물후는 시간이 제멋대로 흐르는 것을, 뒤에 말한 천상은 세상이 하나가 아니라 몇 개나 동시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그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설휘는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뭔가 이상한 일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뜻하는 바를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천재와 범인의 차이일까?

별이 여럿으로 늘어났다면, 그리고 자신이 그걸 보았다면.

신기하게는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얼마 후 잊었으리라. 보통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넘어가는 법이다.

극히 소수의 현자들, 천미려의 사부 같은 사람들만이 그 별의 움직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생명, 그것이 끝나고 다시 시작될 때 벌어지는 현상이라 하셨지요. 우리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시간이 되돌려졌다고.”

“……!!!”

설휘는 크게 놀랐다.

죽음. 그 이후의 회귀.

이건 설휘 본인이 겪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일이다.

어차피 시간이 되돌려지면, 모두 없었던 일로 바뀌니까.

헌데 천미려의 사부는, 그런 시간의 비틀림을 그저 하늘의 별을 보고 알 수 있었단 말인가?

“예로부터 별이 떨어지는 걸 큰 인물의 죽음으로 표현하지 않던가요. 사람이 별의 기운을 타고나는 경우는 의외로 종종 보인답니다. 당장 곤마께서도 그러시지요.”

“천살성…….”

천미려의 말에 설휘는 신음하며 끄덕였다.

확실히 곤마의 무력, 단 한 번으로 생을 마감하는 제약이 걸려 있기는 하지만, 그 힘은 가히 별이나 일으킬 수 있는 천재지변급 무력이었다.

“별, 시간……. 그 말은…….”

단서가 좀 더 주어지자, 설휘도 생각이 닿았다.

누군가가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현상. 자신이 겪고 있는 굴레.

어쩌면 천미려의 사부라는 이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현상의 흔적을 스스로 찾아낸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 뒤엔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이…….”

천미려는 잠깐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별에 엮인 인과율을, 누군가가 짊어지게 되었다고. 그가 이 세계에 강제로 접목이 되었으니, 너는 그 존재를 찾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

설휘는 뭔가 가슴속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짐작이 맞았다. 저 시스템을, 아무 관련 없는 누군가가 발견하고, 그에 대비해 천미려를 보낸 것이다.

이제야 하나의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왜 그녀가 시스템이란 것을 경계했는지도.

“허면…….”

다만, 궁금한 점도 있었다.

시스템은 그녀를 ‘미상의 존재’라고 인식했다. 그것 역시 사부란 자의 작품일 터.

그럼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저 시스템이.

“천 소저는 어떻게 그 절대적인 존재, 또는 현상의 눈을 피해 있을 수 있었던 겁니까?”

궁금했다. 시간을 거스르고 세상을 뒤바꾸는 현상이, 어찌 그녀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가?

“아…….”

천미려는 잠깐 침음했고, 이내 입을 열었다.

“그건 아마도…… 선사께서 안배해둔 것 때문일 겁니다.”

“안배? 어떤?”

“언제고 탈마를 향하는 때가 오면,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추운 심연 속에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극한의 동토, 시간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 안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의 눈을 속일 수가 있다고.”

“아.”

문득, 시간을 얼어붙게 만드는 무공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시스템이 그녀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설휘처럼 연결점이 되는 경우가 아니면, 수백 번을 영구빙벽 속에 숨어있으니. 계속 반복해서 세상을 구현하는 중에 사라져버린 것으로 인식했을 터.

거기다 사람의 목숨 또한 한정적이니, 수백 년이나 살아있을 거라 판단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익힌 극음의 무공은 오랜 생명을 유지하게 시켜주는 것과 더불어, 녀석의 눈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준 셈이다.

“그럼 천 소저는 저라는 존재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설휘의 궁금증은 계속 일어났다.

그렇게 평생을 숨어 살았던 그녀가, 어떻게 하필 자신을 따라나섰는가 하는 것이었다.

“선사께서는 불사의 존재, 시간의 비틀림에 휘말린 이가 소녀를 찾으러 올 거라 하셨어요. 그때의 말씀은 이러하셨습니다.”

천미려가 문득 안색을 굳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들은 분명 여러 번, 수천 번을 찾아올 거지만 네 기억으로는 한 번일 것이다. 수많은 불사의 존재 중, 가장 강력한 인물이 너와 이어질 테니까.”

‘아.’

설휘는 머릿속이 번쩍했다.

그랬다.

천미려는 목숨이 여러 개가 없다. 허나 플레이어는 수백, 수천만 번의 시도가 가능하다. 그중 적은 숫자라 해도 최소 수천은 조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는 오로지 한 번밖에 없을 것이다.

덧씌워진 시간, 사부는 그것을 말했던 것일 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

“혹 선사의 경지를 알고 있습니까? 이를테면 극마나 탈마, 아니면…….”

설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제게 무공을 가르쳐 주시긴 했으나, 무위가 그리 높지는 않으셨어요. 아니면 당시의 소녀가 경지가 너무 낮아 그분의 실력을 몰랐을 수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전해 들었다.

그녀의 존재, 그리고 오늘날 일을 예견한 그녀가 아는 사부까지도.

“네. 그럼, 여기까지 할게요. 생각이 많으실 테니 잠시 쉬세요. 나중에 궁금한 것이 생기면 천천히 물어보세요.”

천미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설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멍하니 정신이 빠져 한참을 앉아 있던 설휘.

그는 그녀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이번 삶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이유가 늘었구나.”

설휘는 거기서 멈추고 더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 뒷말은 꺼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생이기도 하니까.’

설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냥 이대로 지내기엔, 남아 있는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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