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모두의 위기 (1)
팟. 파팟. 파파팟.
제비처럼 빠르게 몸을 날리고 있는 인영이 있었다.
복면과 피풍의로 얼굴과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바짝 붙은 은신복은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타닥. 타닥. 휘청!
빠르게 이리저리 숲을 헤치며 빠져나가던 인영이 비틀거렸다. 장시간의 경신 때문에 호흡이 불규칙적이고, 지나치게 보폭이 길었다.
‘아직…… 따돌리지 못했어.’
소령이었다.
조금 전, 과로한 업무에 피로해서 오수를 청하던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낯선 이가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곧장 벗어났다.
건물 사이를 이동하며, 지붕으로 달려나갔을 때는 전력으로 경공술을 펼쳤다.
그런데도 불안한 느낌. 어디선가 이어지는 시선은 계속 자신을 따라왔다.
‘고수. 그것도…….’
감히 짐작이 가지 않는 수준.
그녀로서는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분명히 완벽하게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천천히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여오는 듯한 기분.
킁킁.
혹여나 해서 확인해 보았다. 어쩌면 몸에 천리향이 묻은 것이 아닌가 해서.
하지만 아무런 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추종술(追從術)이기에, 이런 기분을 느끼게 만든단 말인가.
‘이번엔!’
파앗.
급격하게 방향 이동을 한 그녀는, 한 모퉁이에 놓인 짚더미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이젠 확실히 벗어난 기분이었다.
미세하게 자신을 쫓던 기분 나쁜 느낌도 완전히 사라졌다.
“후우.”
그렇게 반 각 정도 짚더미 속에 있던 소령은 조심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복면을 벗으며 이마를 훔쳤다.
“벗어났나?”
이후, 숨을 가다듬으며 다시 한 걸음 걸으려는데.
그녀의 발길을 잡는 이들이 있었다.
저벅.
“쟤가 맞아?”
“그렇다니까. 저번 중원 잠행 때 설휘 밑에 있었어. 총 책임자라니까.”
“총 책임자? 그런데 왜 저리 허술한 거야?”
“그걸 난들 알겠나.”
“…….”
노인들이었다. 아니, 노인들처럼 보였다.
한 명은 등이 굽은 꼽추였고. 또 한 명은 단구의 몸으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아.”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소령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두 노인. 그중 단구의 노인은 몰라도 꼽추는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탐재귀(貪財鬼) 묘흉(昴洶).
본교에서 가장 빠른 경공술을 구사한다는 십이지(十二地) 중 하나인 인물이라는 것.
사 년 전 은퇴를 선언하고 칩거한 그가, 오늘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을 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체 왜 이런 이들이…….’
소령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와 두 노인과는 일면식이 없었다. 과거 적으로 마주치거나 어떤 은원 관계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쫓았고 이렇게 죽이려 들었다.
“어이.”
소령을 향해 손짓하던 꼽추 노인은 그녀가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포기해. 서로 힘을 빼지 말자고.”
“……훗.”
소령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저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이빨이 모두 빠진 호호백발의 노인이었지만, 저들의 과거의 이력을 알면 쉽게 웃지 못한다.
천리추종(千里追從)의 장인.
그 이름은 반곡(斑梏)으로, 추적 대상을 정하면 천리미향을 따로 묻히지 않아도, 냄새와 소리만으로 최대 삼천 리까지 구분해낸다고 소문이 자자한 자였다.
그렇다고 추종술만 뛰어나냐?
그렇지 않다. 추적자의 모습을 숨기는 잠형술(潛形術), 자연이나 주변을 이용해 몸을 감추는 은신술.
3대 술법의 장인인 데다, 무공 경지도 오래전에 초마에 오른 수준이었다.
그렇게 한순간 정적이 일던 사이.
파—앗!
소령은 잽싸게 몸을 날렸고, 노인들을 피해 전력으로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 장을 움직였을까.
“……!”
뭔가 께름칙한 기분을 느낀 소령은 자리를 박참과 동시에 몸을 비틀었다.
그 순간.
두두두두둑!
수많은 검기 다발 그녀를 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
막으려 했거나 보고 피했다면 바로 즉사했을 기공의 난사였다.
“오! 이걸 피해?”
투둑. 투둑.
공격을 피하느라 속도가 늦춰지자, 그녀의 동선 앞에 바로 모습을 드러내는 꼽추 노인.
선득.
은연중에 드러난 두 개의 단검. 그중 하나는 은은한 비취색을 띠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손을 썼던 모양이었다.
“어이. 늙어서 손이 떨린 거 아니던가?”
투욱.
그리고 소령의 맞은편. 퇴로가 될 수 있는 길목에 반곡이 서며 말했다.
“오, 가까이서 보니 훨씬 괜찮은데? 죽이지 말고 내 첩으로 삼을까?”
“자네도 그 생각 했어?”
저편에서 묘흉이 말을 받으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이 채 가시기 전에.
“지랄하네. 비틀어지고 찌그러진 영감탱이 둘이서.”
“……!”
“……!”
소령은 곧장 욕설을 내뱉고는 내공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손끝에 감각을 예리하게 가다듬었다.
사악.
이미 자신의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노인들.
그들에게 먹일 수 있는 일초필살은 기공이 아닌, 암기였다.
“이 계집이! 산 채로 껍데기를 벗겨놔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내가 먼저 육신을 분질러 놓겠다!”
먼저 움직인 건 반곡이었다.
후욱!
그는 세상에 자랑하는 경공술로 단숨에 소령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번득이는 손바닥.
“억?”
퓨웃!
장법으로 점혈을 해버리려 하던 그는 일순 당황했다. 소령의 품속에서 독사처럼 튀어나온 암기를 뒤늦게 확인했던 것이다.
“죽어!”
소령의 손이 치켜 올라가며 비도 하나가 노인의 머리에 정확히 파고들었다.
퓩!
분명 적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비도를 맞은 노인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고 느낄 때쯤.
파아-앗
거짓말처럼 눈앞의 노인이 사라졌다.
‘잠형술?!’
소령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위로 올라갔다.
역시나 그 위에 노인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암기를 이미 손에 집어 들었음에도 그에게 쏘지 못했다.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다른 노인 때문이었다.
“캬앗!”
너무나 빠른 경공술도 그렇지만, 한순간 달려드는 움직임은 비호보다 더 빠른 듯했다.
캉! 카캉!
겨우 막아냈다. 비도를 쥐어든 그녀는 직감적으로 좌우 어깻죽지의 공격을 동시에 쳐냈다.
그 모습에 노인의 눈이 커졌다.
“얼레. 이년이?”
노인도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 소령이 펼친 것은 바로 일원소마공. 이렇게 접근전에서 무초식 같은 난타 공격에 특화된 무공이었기에.
치칙! 캉! 타다닥!
노인을 정신없이 밀어붙였지만, 소령의 공세는 얼마 가지 못했다.
휘----익. 쿵!
하늘 위로 잠시 도약했던 반곡이 천근추를 사용해 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는 돌파하지 못했고 계속 이어졌다.
“하아, 하아…….”
소령은 숨을 몰아쉬었다.
두 명의 노인.
두 곳의 방향.
더는 여력이 없었다. 여기까지가 소령이 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피이이이--
한데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바바박. 바박.
“쳇!”
“큭!”
지척까지 다다랐던 노인이 황급히 뒤로 몸을 물렀고, 공중에 떠있던 노인은 무려 세 번을 도약하며 뒤로 물러섰다.
‘어?’
뒤이어 그들이 있던 곳에 두 줄기 기공이 자리를 메웠다.
창기(槍氣)와 도기(刀氣)였다.
“괜찮으십니까?”
“몸은?”
“늦지 않았죠?”
와르르륵.
비척대는 소령을 감싸며 세 명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바로 사령조장인 요림, 적송, 용진이었다.
“다들…… 이게 뭐 하는 거야! 도망치지 않고!”
소령은 기쁨보다는 걱정이 더 밀려왔다.
눈앞의 두 노인은 모두 자신이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을 상회하고 있었다. 조장들이 함께 싸워도 하나가 아닌, 둘을 제압하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도망쳐봐야 뭐 하겠습니까, 대장.”
“어차피…… 여기서는 오래 살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런 그녀의 귓가로 건네는 일행의 목소리.
“하아…….”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사령대장인 자신이 당했다면, 은영단 도처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터였다.
이미 사황대장이나 사적대장은 죽었을지 몰랐다.
“어이구 놀래라.”
갑자기 날아온 기습 때문인지 반곡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만, 묘흉은 그보다는 좀 더 여유가 있는지 지금 등장한 사내들의 인상착의를 살펴보며 말했다.
“저놈들은 누구지? 그분께서 전혀 언급이 없었는데…….”
“글쎄…… 꽤나 예리하던데? 솔직히 좀 놀랐어. 사령대 수준이 분명 은영단에서 최하라 했는데……. 아무래도 정보 갱신이 늦은 모양이군.”
“그러게 아까처럼 괜히 시간 끌지 말고, 단번에 죽이는 게 맞아.”
두 노인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분명히 기혈의 운용으로 보아서는 초마 수준에 오르지 못한 이들. 그래도 나름 예리한 한 수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까처럼 즐기면서 싸울 수는 없어 보였다. 쥐도 자칫하면 고양이 콧잔등을 물어뜯는 법이니까.
“자, 그럼.”
슥.
묘흉이 신호를 주고 반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밧!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리며, 한데 모여 있는 사령대를 향해 동시에 도약했다.
“내가 선두에 선다!”
“나도!”
날아드는 적을 향해 용진과 적송이 같이 달려나갔다.
이런 경우 방어적 입장이 좀 더 용이하다. 상대가 공중에 날아들었기에 체공시간을 계산하며 낙하지점을 먼저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진과 적송은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었다.
이들은 경공술과 추종술의 대가라는 걸.
휘리리릭. 팟.
용진과 적송. 둘이 예상한 교착 지점보다 두 노인의 체공시간은 훨씬 더 길었다. 그리고 빨랐다.
휘잉! 쉭!
“엇……?”
거기다 기괴한 변화가 있었다. 허공에서 두 노인네가 몇 발을 허우적거리자, 마치 공중을 나는 이처럼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당황하지 마! 끝까지 쫓아!”
목표점을 놓친 용진과 적송이지만, 그대로 당하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몸을 회전시켜, 그들을 향해 검기와 도기를 뿌려댄 것이다.
휘릭. 사사삭!
“……!”
한데 여기서도 반전이 있었다.
반곡이 몸을 틀어, 쏘아지는 두 기공을 자신의 기운과 공멸시켜버린 것이다.
“흘흘흘……. 이제 어디…….”
여유로워진 묘흉이 소령 근처까지 접근했고.
하앗.
옆에서 재빠르게 창을 휘둘러댔지만, 순간적인 움직임은 묘흉이 월등했다.
“크악!”
더욱이 경공술의 달인이라, 창을 피한 동시에 요림에게 접근해 장법을 후려갈겼고. 자연스럽게 한 여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쩌엉.
소령 역시 그대로 당할 생각은 없었다.
이전보다 더욱 빠르게 뭔가를 집어던졌고, 그것은 뿌연 안개를 피워내며 묘흉을 덮쳤다.
“……큭!”
그 순간 묘흉은 판단을 잘못 내렸다.
경공술에 자신 있던 탓에, 완벽히 피해내야 하는 것을 막거나 흘려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후드득.
그러다 보니 몇 개의 모래알이 얼굴이 튀었고, 곧 얼굴에서 격통이 느껴진 모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단혼사(斷魂沙)의 일종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 냄새 나는 계집애가!”
별것도 아닌 상대에게 독에 중독되자, 그의 분노는 극도로 커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 수가 실패로 돌아간 소령을 향해 단검도 내던진 채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얼굴을 잡아 꺾어버리는 의도였다.
턱.
“아!”
그런데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정확히 다섯 촌의 거리에서 급히 뒤로 물러선 것이다.
콰아아앙!
이전과는 다른 강력한 기의 폭풍이 소령 앞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기에는 머리를 두 갈래로 나뉜 한 인물이 있었다.
소령은 그를 보고 나직이 말했다.
“당신은……?”
핵심무사.
전력의 핵심이라 불리는 칠사자 중 한 명이 이곳에 등장 했던 것이다.
“흑창마혼 마태룡! 이젠 살았다…….”
특히 얼굴이 밝아진 용진. 그는 웃으면서 단구와 꼽추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퍼뜩, 얼굴이 웃는 그대로 굳어졌다.
분명히 의표를 찔려 당황했어야 할.
“낄낄낄.”
“성공이군.”
노인들이 웃고 있었다.
특히 단구의 노인은 이도 없는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스스슥.
저편에서 무려 십여 명의 노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쫓아오던 두 노인과 달리, 그들의 기도는 매우 절제되어 있었다.
“장로……?”
그중 총단의 장로들이 입는 흑갈색의 피풍의를 보고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랬다.
검은 바탕에 흰 불꽃이 새겨진 장로들 특유의 복색.
“수고했다. 묘흉, 반곡.”
그리고 그들 앞에 서 있던 노인은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알았다.
마교 서열 17위, 총단을 대표하는 극마고수.
독왕당주(毒王堂主) 적수양(赤崇陽)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