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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330화 (309/379)

330화. 절세무공 (2)

두웅.

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주변 사물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리던 땅도, 허공에서 아스라하게 튀던 불티와 작은 파편도.

숨 쉬고 호흡하던 자연의 흐름이 정지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천마만이 움직였다.

그르륵.

물속에서 유영하듯 느릿하게 움직이는 그의 신체.

천월성을 중심으로 반경 삼 장의 공간이 일렁거렸다.

사실 이건 일시적인 상황을 구현해 놓은 것에 가까웠다. 자연만물을 완벽하게 정지시키는 건, 신이라 해도 불가능하니까.

그만큼 절대적인 통제의 힘이 발휘되었다.

사물의 변화가 아닌, 내적 변화.

제한된 공간 내의 시간 통제. 그것이 천마가 발휘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이었다.

사아아아---

천월성이 움직이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

그는 느릿하게, 하지만 확실히 천미려의 지척까지 다가갔고, 그녀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캉!

천미려가 반응했다.

분명히 모든 시간이 정지 상태로 빠져든 상황에서도, 그녀만은 홀로 움직여 검을 쳐낸 것이다.

“과연.”

천월성은 감탄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 탈마에 오른 이답게 이 방법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시간 통제를 벗어났다는 건, 상대 역시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었다는 것.

스윽.

그에 그치지 않고 천미려는 심지어 반격까지 해 왔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검의 형상을 한 빙공 수십 개가 튀어나갔다.

차아아악.

빙공의 이기어검.

초월적인 힘이 한데 더해진 엄청난 공격이, 천월성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

파바바밧.

천마의 주변에서 순식간에 그림자 십수 개가 나타났다.

실체이며 환영인 보법은 천미려의 이기어검을 모두 흘려버렸다.

핏. 피싯. 픽.

대부분의 환영은 빙공의 검날에 맞아 사라졌다.

하지만 그 가운데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있었다.

파앗.

마치 자신의 몸으로 요격이라도 하듯, 때마침 날아드는 빙공의 검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실체였다가 환영으로 변하는 신법……?’

천마군림보다. 그걸 깨달은 천미려는 빠르게 다음 수를 펼쳤다.

촤아아아.

폭설이 쏟아지듯 나타나는 얼음덩이. 주변에 빙정의 기운이 안개처럼 가득 깔리며 시야를 방해했다.

소신수마공의 극의. 빙월천야(氷月天野)가 펼쳐진 것이다.

‘큽.’

때마침 그녀와 거리를 좁히던 천마는 두 손에 두 종류의 기운을 가득 채웠다.

천마인(天魔引)과 파천수라장(破天修羅掌).

하나는 상대를 끌어들임과 동시에 내공을 흡수하고, 또 하나는 반탄되는 진력을 되돌리는 초상급 기예를 동시에 펼치려 든 것이다.

하지만 빙정의 기류 때문에 쉽게 가시거리까지 좁히지 못했다.

결국 그는 다시 기운을 되돌렸고, 이번엔 다른 유형의 무공으로 변환했다.

화르르.

화공이었다.

극양의 정점인 정염의 기운. 그것은 다시 백염으로, 마지막엔 짙은 자주색을 띤 백염으로 변이했다.

백화공(白火功).

곤마가 부교주를 불태울 때 썼던 바로 그 화염이다. 극마의 경지에서는 아무리 힘을 써도 감히 대응조차 할 수 없었던 힘.

그 정체는 멸화.

자연계에선 존재할 수 없는, 극양에 치우친 힘.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고 마는 화염이었다.

치---지지짓!

그런 백화를, 천마는 한 단계 더 강한 힘을 부어 넣어 자줏빛의 불꽃으로 응집시켰다.

멸과. 그에 한없이 완전에 가까운 모습.

단순히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그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주변 상황 속에서, 이 자줏빛 불꽃은 괴기스러운 음영을 만들며 두려움에 떨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전력을 드러낸 건가.’

천미려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그녀도 주의를 집중했다.

쓰윽.

그녀가 손을 펼치자, 주변의 얼음덩이들이 몰려들어왔다.

그리고 긴 선으로 이어지는 빙공.

이제껏 그녀가 써온 여타 빙공들과 달랐다.

디리링.

빛을 반사하는 면경처럼, 아주 단단하면서 사물을 그대로 투영하는 기운이 모인 것이다.

현경빙공(玄鏡氷功).

스쳐 지나가는 동선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극음기공류로, 탈마에 오르면 공기조차 거울처럼 얼려 버린다.

이것이 천마의 극양에 대응하는 그녀의 방식이었다.

파팟.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달려나갔고, 공중의 한 지점에서 서로 기운을 뿌렸다.

“…….”

“……!”

둘 다 적의 공격에서 몸을 피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쓰고 있는 절세무공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의 실력을 믿은 것이다.

그리하여 백화공과 현경빙공이 서로 격돌하고, 다시금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섰다.

취이이이-

두 사람 다 피해를 입었다.

천미려는 몸에 붙은 불길을 꺼트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으며, 천마도 마찬가지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 정도의 힘을 사용할 줄이야. 정말 놀랍군.”

천마가 새삼 감탄했다.

확실히 깨달음의 경지도 남다르다. 탈마에 오르며 단순히 내공과 그 활용도가 강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자연. 그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그 힘을 발휘할 줄 안다. 나아가 자연의 힘 이상의 기운을 끌어들이는 무공까지.

이 정도면 기본 실력은 자신과 엇비슷했다.

‘실력 차이는 거의 없어.’

그리고 그건 천미려 역시 느끼고 있었다.

두 명의 실력은 백중세.

천마가 수많은 싸움을 통해 경험을 쌓아 왔다면, 천미려는 기나긴 세월을 자기 자신을 반추하는 것에 써 왔다.

서로 추구한 방향은 다르지만, 그 끝에 도달한 무공의 경지는 같았다.

그러니 그가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무공을 꺼내들어도, 충분히 파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무리 초월적인 무공이라 해도 자연계에서 구현화되는 순간 그 위력이 줄 것이고, 그리되면 파훼하는 방법 역시 많으니.

“확실하게 보여주마. 어차피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상황이니.”

한편 천월성은 속으로 헤아렸다.

멀리서 극마를 넘어서는 힘이 부딪쳤다. 그러고도 얼마간이 지났다.

설휘가 이쪽으로 올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승부를 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번엔 어떤 무공인가요?”

상대가 검날을 보이며 자신만만해하자 천미려가 물었다.

상대의 온몸을 뒤덮던 한랭의 기운도, 자신 쪽의 극양의 기운 역시도 사라져 있었다. 이 또한 서로의 능력이 백중세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으니.

“들어도 모를 것이다. 오로지 선택받은 자만 사용할 수 있으니.”

“……?”

하나, 갑작스레 천마는 자신만만하게, 충분히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천미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래도 알려주마. 어떤 무공에 죽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

천월성은 씨익 웃었다.

“삼 단계 시뮬레이션이다.”

***

투웅. 콰광!

합공을 주고받는 모습은 조금 전과 비슷했다.

멸화의 힘을 끌어올린 천월성을 상대로, 천미려는 현경비공으로 대응했으니까.

허나, 서로 다시 공방을 주고받는 순간.

화륵!

“……!”

천미려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자신은 그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는데, 상대의 멸화는 고스란히 자신의 공세를 파하고 그래도 달라붙어 왔으니까.

기잉,

그때부터였다. 변화무쌍한 천월성의 무공이 시작되었다.

화륵.

오른손에는 멸화의 힘이 담기고, 왼손에는 빙백의 소수마공의 힘이 서려 있었다.

바로 천마무격신장(天魔武擊神掌).

천마의 절세무공 중 하나로, 음양의 모든 기운을 동시에 다룬다는 상식을 벗어나는 힘이다.

‘이번엔.’

천미려는 충분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월성이 펼친 음양의 투로가 눈에 또렷이 보였으니까.

그런데 정작 싸움에 돌입하자, 예상치 못한 변화를 봐야 했다.

‘이건…… 무슨?’

그 처음은 음양의 부조화였다.

조화롭게 움직이던 멸화와 소수마공의 힘이 그녀의 눈앞에서 충돌하며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콰드드득!

그로 인해 상대의 무격신장의 움직임을 읽지 못했고, 일부 공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크으읍.”

천미려는 지면을 밟으며 비틀거렸다. 온몸에 붙은 극양과 극음이 남긴 잔열과 잔빙의 힘도 바로 진정시키지 못했다.

울컥!

한 모금의 피를 쏟아낸 후 그녀는 겨우 숨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방금 전 그건…….’

그리고 이어진 조금 전 상황을 복기.

분명 돌입하기 직전까지, 천미려는 적의 내력이 움직이는 방향과 그 기류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을 더 내딛는 순간, 그 감지는 엉망진창으로 흩어져 뒤섞였다.

‘일부러 유도했던 것일까?’

입은 피해도 피해지만, 천미려는 조금 전의 공격 방식이, 도무지 예상하기 힘들다는 점이 암울했다.

허용한 것은 단 한 수.

하지만 이런 방식의 연격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녀는 구석에 몰린 쥐처럼 차츰차츰 체력과 내공을 갉아 먹힐 것이다.

패배와 죽음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

“대체 어떻게……?”

몸으로 겪은 것을 머리로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경지는 똑같이 탈마이며, 힘의 운용도 방식도 너무나 비슷했으니.

‘음과 양. 내부의 자연을 충돌시켜, 천칭을 맞춘 균형을 부작위로 불균형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똑같이 할 수 있는가 하면, 그건 불가능했다.

균형을 이미 맞춘 음양의 조화를, 강제로 흩트러뜨려 불균형하게 만든다라.

작심하고 하면 천미려도 못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대체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그런 짓을 하면 시전자는 백에 백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것이다.

이는 비유하자면 좌우에 무거운 물통을 이고 줄 한 가닥 위를 걷는 것.

양쪽에 공평히 주어진 무게를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게 만들고, 그걸 한 바퀴 휘두르며 공격으로 내던진 격이다.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그 다음은?

“흐흐흐흣.”

천마가 웃었다. 표정으로 보나 몸의 태세로 보나,

그는 조금 전의 공격을 명백히, 자신의 의도 아래서 성공시킨 것으로 보였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기를 충돌시키고, 예측 불가능한 폭발을 일으키는 중에 자신만은 그 모든 불가해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천미려는 그가 그럴 수 있었을 단 하나의 단서를 중얼거렸다.

“시뮬레이션이라고……?”

그 뜻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미 탈마에 도달한 그녀조차도, 차마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예상. 자신의 예측을 뛰어넘는 뭔가.

천마는 그걸 사전에 알 수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방어가 불가능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는 것.

‘온다.’

그리고 곧, 천월성의 또 다른 무공이 펼쳐졌다.

핏빛의 검영(劍影)이 수백, 수천 개가 되어 허공을 뒤덮었다.

이기어검의 절세무공에다 잔살혈영공(殘殺血影功)의 특유의 핏빛 기운이 더해진 효과였다.

거기에 핏빛 검영 끝에 불꽃이 하나 더 붙었다.

수라폭(修羅爆).

무려 절세무공을 3가지나 더한 궁극의 무공을 동시에 발휘한 것이다.

촤아아아.

“큭!”

천미려도 물론 가만있지 않았다.

삼 척 크기의 실선에 현경비공의 힘이 더해졌고. 그것이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나며 이기어검의 무력까지 더해졌다.

거기에 그녀 또한 또 한 가지를 더 생성해냈다.

빙공의 결정들이 검 끝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영음빙천하.

천마와 같이, 세 개의 절세무공을 동시에 펼쳐낸 것이다.

“크아아아!”

사아아-

놀랍게도 거기에 또 하나를 더 했다.

천미려는 천월성이 뿜어내는 기운. 그리고 그의 시선을 투과하여 상대의 감정까지 훑었다.

사부에게 배운 태극과 정기위물(精氣爲物). 마음이 가면 기가 움직이고 기에 따라 몸이 움직인다는 도리.

또한 마음은 물질에 적용되고, 정기는 천지만물과 사람을 이루는 정미한 근원 물질이다.

그 시작은 움직임으로 상대의 의지를 파악하는 단순한 이치.

하나 그를 극의까지 체득하면 상대의 속마음을 대략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천마의 마음을 읽던 천미려의 얼굴이 당혹감이 일었다.

‘어?’

보통은 언제 공격할지,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의 감정이 읽히는 데 반해 지금은 달랐다.

읽히지 않는다? 아니, 반대다. 이상하게도 수백, 수천 번. 자신과 교전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마치 그중에서 최선의 공격을 찾는 듯한 몸부림이 그에게서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가라!”

“하앗!”

그리고 그렇게 쏟아진 상대의 공격과 부딪치는 순간, 천미려는 알았다.

이번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차아아악.

기운들이 서로 맞물리며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수백 개의 생성된 검영들이 친미려의 빙공에 맞아, 상쇄되며 폭발하기를 반복했다.

그중 일부는 빙공의 결정들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단순히 기공을 쏘아낸 것으로 전력이었던 천미려와 달리, 천마는 천마군림보를 시전하며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

천미려는 그 궤적을 눈으로 좇고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에도 수많은 혈영검에 의해 당장 난도질당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채채챙! 콰가가각!

어떻게든 힘을 쥐어짰지만 결국 모든 공세를 일소한 후, 천미려는 그녀의 목전에 달려드는 천마의 검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아니, 최악의 위기였다.

그런데.

“젠장할!”

지척에서 욕설을 내뱉은 천월성.

그는 검을 끝까지 뻗지 못했다.

최후의 일격을 눈앞에 두고, 거짓말처럼 물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곧 눈앞에 드러났다.

쿠아아아앙!

가공할 만한 기운이 몰아쳤고. 천월성이 있던 그 주변에 있는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치솟았다.

누군가의 개입이 일어난 것이다.

“늦은 건 아니지요?”

바로 설휘.

천월성의 예상보다 빨리 그가 이곳에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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