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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332화 (311/379)

332화. 절세무공 (4)

드드드등.

한랭(寒冷)의 기운을 담은 빙공의 검이, 천미려의 손동작을 따라 튀어 나갔다.

빙정의 이기어검.

길이 오 척에 이르는 투명한 얼음의 장검이 수십 개씩 쏘아지는 광경. 가히 장관이라고 할 만한 맹공이었다.

촤아아악.

“흠!”

빙정과 빙공이 몰아치는 가운데, 천월성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집중했다.

드드득!

그러자 자신을 덮치는 한랭의 기운들이 일차적으로 크게 방향을 틀었다.

건곤대나이.

그 기원은 사량발천근. 고작 넉 냥의 힘으로 천근의 힘을 떨쳐낸다는 기예다.

본래는 이기어검 같은 절세무공을, 단순한 손동작으로 흘려보내기엔 불가능했다.

“흐읍! 하!”

하지만 천마의 몸을 입은 플레이어는 의도적으로 파동을 생성해냈고, 그 덕에 완전히 공격을 상대에게 되돌려버리는 고절한 기예를 사용할 수 있었다.

화아아아악.

수백에 달하는 얼음의 칼날들.

천미려는 자신이 쏘아냈던 공격이, 상대의 반격으로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자칫하면 산 채로 창꽂이가 될 수도 있는 상황.

“하아!”

하지만 그녀는 방어 대신 공세를 택했다.

파바바밧!

그녀 또한 시간을 얼어붙게 만드는 힘을 쓸 수 있었다. 분노한 천미려의 움직임은 한 걸음 한 걸음을 나갈수록 계속 빨라지고 있었고, 종국에는 환영 자체도 지워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였다.

콰드등!

그렇게 천월성이 튕겨낸 파동의 일부를 맞으면서도, 그녀는 기어코 그를 향해 전력을 쏘아냈다.

즈으응.

무색투명한, 빛을 반사하는 눈부신 결정이 천마의 가슴에 꽂혔고. 그대로 관통했다.

“크으!”

천월성이 휘청거렸다. 비강(悲罡).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무공인 한경비록(寒境備錄)의 극의.

천마의 멸화공이 그러하듯, 천미려 역시 자연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극한의 한랭의 기운을 사용한다.

북극의 극한의 한파. 영혼까지 얼려버린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고절한 한빙의 기공은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었다.

뚜두둑!

다만, 천미려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그녀의 힘에 정통으로 맞은 천마. 일격에 복부가 뚫리고 상처가 얼어 쪼개지는 현상까지 생겼음에도, 천월성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

“……?!!!”

그건 단순한 금강불괴의 호신공이 아니었다. 이미 천마의 육신 자체가 인간의 경계를 넘어, 불사의 존재나 다름없었다는 점이다.

촤아아악. 그드드득!

복부가 갈기갈기 깨져나가는 와중에서, 다시금 몸을 돌보지 않고 발동시킨 천월성의 마공.

“천마오검(天魔五劍)!”

구와악! 과아아악!

허공이 온통 갈라지고 찢기며 검은 칼날이 천미려를 노렸다. 급하게 숨을 들이켜며 궤도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천미려를.

“파천검!”

기이이잉!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또 한 겹의 검은 검강이 집요하게 쫓았다.

파천검. 구현화하는 그 자체로 무한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천마오검의 마지막 초식.

세상에 흐르고 있는 기류를 모두 강제로 잡아끌어, 무형의 강기로 펼치는 사기적인 마공의 검술이었다.

쏴아아아---

범위가 자그마치 백 장.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전부 휩쓸어 버리는 강기.

그 거센 흐름은 아무리 탈마의 천미려라 해도 휩쓸어 버렸다. 검게 보이는 강기는 속성 또한 무형이라, 궤도에 걸리는 것은 모조리 갈라버렸다.

“이잇!”

천미려는 빠르게 전신의 기를 운용하여, 견고한 보호막을 생성해 냈다.

애초에 한빙 속성은 북방의 영구동토를 심상으로 그려내는 무공이다. 특히나 방어력이 우수한 계열이라, 이 정도면 여파에서 벗어나는 것은 성공했다 믿었다.

스륵.

하나 어느새, 그녀의 앞에 놓인 낡은 검 한 자루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절초가 쏟아지는 가운데 떨어져 내린 작은 일격.

그녀를 노리지 않고 빗나간 듯한 검 한 자루가 바로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이번엔 내 차롄가?”

사아아-

애초에 여기까지 계산했던 것일까. 천월성은 찰나의 주저함도, 노리는 시간도 없이, 그대로 검을 쑤셔 박아 넣었다. 천미려의 심장을 향해.

키잉-! 탕!

“……!”

하지만 분명히 천미려의 가슴에 박혀 들어가던 검이, 갑자기 덜컥 강렬한 물리력에 걸려버렸다.

“설마, 시간 통제……?”

그의 검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설휘였던 것이다.

“너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나?”

짐짓 대단한 척 말했지만, 설휘 역시 뒷머리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구음마경을 활용한 시간 통제. 허나 보통의 방법이라면 천월성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천미려가 닿지 않은 공간에서 미리 움직였으니까.

때문에 녀석의 계산을 벗어날 정도로 최대한 거리를 둔 곳에서, 그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접근해야 했다.

덕분에 뇌가 타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AI의 지원 덕에 아슬아슬한 시기에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고.

그드득. 우우웅!

설휘는 녀석의 검을 붙잡은 이참에, 다른 손으로 절대극마공을 일으켜 또다시 날려버렸다.

쿠와아아앙!

“크어!”

숨통이 막히는 순간의 비명. 천마조차도 이번에는 피할 공간 없이 그대로 쓸려 나가버렸다.

텅. 텅. 데구르르.

“천 소저. 괜찮습니까?”

천마가 나뒹구는 것은 눈에 두지도 않고, 설휘는 우선 천미려의 안위부터 살폈다.

“……죄송해요. 잠깐 감정에 휩쓸렸어요.”

가쁜 숨을 내쉬며, 입가에 가느다란 핏줄기를 흘린 천미려.

실제로 방금은 정말 위험천만했다.

일순간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려 강기의 막으로 방어를 해냈는데, 설마하니 천마가 그 범위 안으로 들어서서 공격해 올 줄이야.

“이해합니다. 저 역시 크게 격동했으니. 하지만 그게 놈의 노림수였습니다.”

설휘는 천미려를 책하지 않았다.

이미 탈마들의 싸움. 절대영역의 고수들 간의 싸움은 한 끗의 판단 실수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녀도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눈앞에서 친인이 목숨을 잃는 참상을 보고 아무런 격동이 없을 수 없다.

그냥 상대가 더 잔혹하고 교활했고, 이쪽이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말려들 수밖에 없는 수였다.

“분노해도 슬퍼해도 괜찮습니다. 대신 하나만 생각하세요. 과하게 빠져드는 건 저놈이 원하는 바라는 걸.”

“……네.”

“준비하십시오. 다시 한번 더 끔찍한 짓거리를 걸어올 모양이니.”

설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쪽을 가리켰다.

드드드득.

거기엔 이미 온 육신이 걸레짝처럼 변한 천마 천월성이 서 있었다.

우드득. 빠직!

그런데 상처 입고 온통 부서진 그의 등 뒤에서, 마치 나비가 고치를 벗고 태어나듯, 멀쩡하게 몸이 회복된 천마가 튀어나왔다.

“과연. 설휘, 탈마에 오를 만한 인물이구나.”

“…….”

“성공 확률 98.2%를 부수고 들어오다니. 정말 오랜만에 적수를 만난 느낌이군.”

피식.

호승심인지, 흥미인지 모를 미소를 짓는 천마.

“성공 확률이라…….”

아까 예상했던 대로, 놈은 방금의 공격을 이미 시뮬레이션으로 돌렸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확률이 98.2퍼센트?

순간적인 설휘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천미려는 고스란히 죽음을 맞이했을 거라는 의미였다.

그으으으. 그오오오

세 탈마 고수의 눈이 마주쳤다. 다시금 전운이 감도는 와중에 천월성 주변으로 두 인영이 걸어왔다.

척. 척. 스륵.

얼굴이 반쯤 깎여나간. 그렇지만, 형형한 눈빛과 용모는 설휘의 집단에서 모를 수가 없는 인물들.

바로 초아란과 악비였다.

“아…….”

천미려가 휘청했다. 조금 전 설휘가 말한 ‘더 끔찍한 짓거리’라는 것이 바로 이것임을 안 것이다.

‘두 사람을 실혼인으로 만들었구나.’

초아란과 악비.

저 둘은 천월성에게 분명히 목이 달아났다.

그럼에도 지금 저들은, 자신들을 살해한 천월성을 오히려 보호하듯, 좌우 전방에 자리를 잡고 언제든 손을 쓸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죽은 자의 안식까지 농락하다니……. 네놈은 결코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천벌을 받을 놈!”

“크흐. 마교인이 천벌 운운하다니 우습군.”

천미려가 격분하자 천월성은 피식 웃기만 했다.

“뭐라고 떠들든, 성질을 내든, 마음대로 해라. 결국 너희들은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내게 시뮬레이션이 있는 한.”

츠츠츠측.

천마가 손짓을 하자, 두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변화했다.

얼굴은 새하얗게 백랍처럼 변했고, 눈은 흑안. 동공이 아니라 흰자위까지 새카맣게 변해 흡사 악령을 현실화한 것처럼 바뀌었다.

- 이거 안 좋은데……. 초아란과 악비, 저 둘은 그냥 일반적인 실혼인이 아니야.

그 모습에 때마침 말을 걸어오는 AI.

“일반적인 실혼인이 아니다……? 대체 또 뭔 개짓거릴 한 거야?”

설휘는 욕설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여기서 더 나빠질 게 있다는 것인지.

-안력을 끌어올려서 잘 봐. 저 녀석, 죽은 두 사람과 무공을 공유하고 있다. 이미 공령지체(空靈之體)나 다름없어.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바닥 아래에 지하가 있다고. 설휘는 사유강이 권한대로 눈에 내공을 끌어올려 살폈다.

그러자 희미하게 투명한 아지랑이 같은 것이, 초아란과 악비 두 사람의 정수리에서 천마 천월성의 머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공을 공유한다.’라는 말이 이런 것일까? 문득, 소름이 끼치는 가정이 설휘의 머리에 떠올랐다.

“아니, 잠깐…….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설마하니 저 둘의 실력까지 탈마 수준에 올랐다는 거야?”

- 아마도.

“이런 미친…….”

탈마의 수준에 달하는 적이, 하나에서 셋으로 늘어났다. 그야말로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선고였다.

-진짜 능력은 다소 아래일지 모르지만, 순간적인 힘은 공유가 돼. 하지만…… 그것보다 더 골치 아픈 건 따로 있어.

“여기서 더 심할 수가 있는 거야?”

-유감스럽게도. 저들은 생명의 띠를 함께 공유한다. 저게 있는 이상, 마교 교주의 목을 따도 저 녀석들의 숨 쉬고 있으면 다시 살아나는 꼴을 볼 거다.

“……골고루 미친 짓거리를 하는군.”

절망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었지만, 설휘는 이제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탈마의 경지는 녹록한 것이 아니다. 죽은 자의 몸에 영기를 부여하여, 자신의 꼭두각시처럼 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거기까지는 짐작이 되었다. 다만.

“왜 저런 저질스러운 행동을 하는 거지?”

품격이랄까. 천하의 마교 교주가, 제 손으로 죽인 시신으로 저런 난잡한 짓거리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 흠. 뭐. 너희들을 격동시키는 것도 목적이고, 시뮬레이션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지. 변수를 창출하는 존재가 있다면…… 훨씬 더 유리해지거든.

“이래저래, 같은 하늘을 두고 못 살 놈이군.”

설휘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딱 예상했던 답변 그대로였기에.

-그런 말이 있더군. 싸움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열받게 하기 위해 한다고……. 온다.

그르르르.

천마의 앞에서 혈마수가 피어났다.

초아란. 한때 냉혈마녀라 불리었던 여인.

얼굴이 반쯤 쪼개진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손에서는 붉은 혈향이 피어나고 있었다. 본래 그녀가 쓰는 혈마수.

츠즈즈즉!

그런데 다른 한 손에서는 괴이한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분명히 붉은빛을 띠는 혈마수가, 창백한 흰빛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 음양혈마수로군. 극마의 극에 이르면 펼칠 수 있는 마공이다. 시시각각 온도차가 극심하기에, 한번 맞으면 탈마에 오른 신체도 부수고 들어와.

“……미친.”

공령지체. 천월성의 무공을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 이런 의미일까. 초아란의 혈마수는 이전의 혈마수보다 위력이 최소 한 단계는 더 높았다.

“그으으으…….”

그리고 빙월신마 악비.

그 역시 얼굴이 반으로 갈라진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두 손에는 한랭의 기운이 모이고 있었다.

휘이이잉.

빙월신공은 애초에 익히기만 하면 금강불괴로 도약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몸을 희끄무레한 안개가 뒤덮고 있었다.

- 천양빙월무(天陽氷月舞). 아마도 그 위력은 음양혈마수와 비슷할 터. 모두 절세무공이다.

“…….”

천월성은 죽은 두 사람의 시신을 일으켜, 마치 자신의 호위처럼 부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소저.”

설휘는 착잡한 마음으로 천미려를 보았고.

“괜찮아요, 이젠.”

이미 마음을 정리한 듯, 천미려는 얼굴에 결연한 빛을 다지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천월성을 맡을 테니, 소저가 두 노인들에게 편안한 죽음을 선사해 주십시오.”

“그럴게요.”

대화를 끝내고. 설휘는 다시금 생각했다.

‘시뮬레이션의 눈을 속이는 방법이 필요해.’

단순한 공격.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쉽게 읽힐 것이다. 설휘는 같은 플레이어이기에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만능하지만 전능하지 않다. 과거에 설휘 자신 역시, 시뮬레이션의 권능에서도 벗어난 적이 있었다.

그러니 그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을.

‘짜내야 한다.’

파앗.

먼저 공격한 건 저들이었다.

설휘는 달려드는 초아란과 악비를 무시하고, 곧장 다른 천월성에게 달려들었다.

“하아!”

“합!”

첫 수는 상대도 자신도 익숙한 천마군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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