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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337화 (316/379)

337화. 부탁 (5)

“이거. 뭐야?”

가짜 교주 천월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천미려를 보니 탈마에 오른 이가 한 명 더 있었다는 걸 떠올린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본인의 AI인 신야자에게 큰 피해도 입지 않은 상황.

그러다 보니 졸지에, 설휘가 아닌 이 여인부터 제압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뭐긴 뭐야. 당신을 상대할 사람이지.”

“허어.”

천미려의 대답에 천월성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충 이쯤 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

이전에도 그랬고, 그녀 혼자서 자신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런 자신감이라니.

“너만으로 되겠냐?”

“응. 가능하지.”

“괜히 설치지 말고 힘을 합쳐. 아, 거의 다 죽어가서 그건 힘드나?”

천월성가 입꼬리를 올리며 건네는 비아냥.

천미려는 담담히 대답했다.

“대충은 알겠으니까. AI란 녀석을 통해 이전보다 더 경지가 높아진 신체 능력.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시뮬레이션.”

“……!”

“그게 바로 그쪽과 본녀의 차이점이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뭔가에 의지하게 되면, 결국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가 늦어질 것이고. 난 그런 지점을.”

천미려는 스윽 시선을 내리다, 한순간 자리를 박차며 말을 이었다.

“물어뜯을 테니까.”

“……!”

첫 공격은 이기어검을 이용한 빙월일해.

쩌어어어억!

빙공으로 일으킨 수십 자루의 얼음검이, 해일에 가까운 얼음 장벽과 맞물려 날아갔다.

꽈드드득!

일단 적의 시야를 가린 뒤, 바로 치명타를 날리기 위한 공격이었다.

“웃!”

팟.

거친 눈보라가 시야를 가리는, 예상 못 한 수 때문일까. 천월성은 빠르게 뒤로 물러서서 뭔가를 읊조렸고, 즉각 자신의 검을 내던졌다.

우우웅!

안갯속을 파고들며 날아가는 환영입인검.

그의 검은 얼음의 장벽과 빙공의 검을 간단히 지나.

사아아앗-

다시 천월성 본인으로 투영되며, 도무지 항거할 수 없을 것 같던 빙벽과 얼음의 검을 뚫고 들어왔다.

“핫!”

천미려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그가 뚫고 올 것이 당연하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번엔 그녀가 선택한 무공은 구음마공이다.

천월성도 같은 무공을 썼지만, 그녀의 구음마공은 시간 정지 같은 특이 능력을 발현하지 않았다.

대신에 기본에 충실한, 순수한 극음의 기운에 몰려 있었다.

촤아아아---

음한의 기공이 퍼져 나갔다.

주변의 물기는 물론이고, 공기 속의 미세한 수분까지 일제히 얼려버리는 극한의 냉기. 그것도 자그마치 아홉 방향에서 펼쳐지는 진귀한 장면.

그녀가 쓰는 이 빙공의 힘은 제3의 힘이다. 닿는 즉시 그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흉악한 기운이 천월성에게 쏟아졌다.

“어딜.”

화르르륵.

사방에서 쏟아지는 빙공의 기류 속에서, 천월성은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지옥불을 생성해냈다.

치지직. 콰르르륵!

초열지옥에서 소환한 지옥불과, 초한지옥에서 불러낸 극음의 냉기가 서로 맞부딪혀 상쇄한다. 고민 끝에 쓴 회심의 수를 간단하게 막아내는 모습.

“하!”

그럼에도 천미려는 포기하지 않았다.

쭈우욱!

남김없이 막힌 아홉 갈래 중 한쪽에서 빼낸 거대한 얼음의 창. 그것을 천월성을 향해 쏘아낸 것이다.

쏴악.

“흠……?!”

천월성은 그 얼음창을 베어내기 위해 검을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멈칫했다.

패리리릭!

그리고 오히려 갑자기 호심공을 발휘하며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마자.

쩌어엉!

천미려가 투척한 얼음 창이 깨지며, 수많은 파편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빠박! 빠바박!

대부분은 피해냈지만, 일부에는 결국 적중당했다. 그에 천월성이 인상을 구기며 으르렁거렸다.

“이 도둑년이…… 되지도 않는 흉내를 내려고 드네?”

피해는 크지 않다. 하지만 기분이 더럽게 나빠졌다.

왜냐하면 천미려가 방금 펼친 방식은, 조금 전 신야자가 자신의 검으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파검기. 검을 날린 후 수천 조각으로 부숴서 파편으로 쓸어버리는 광역 공격.

딱히 대단한 기예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보고 바로 자기 것처럼 쓴다는 부분이 불쾌하다.

“시뮬레이션…… 그 무공의 결과인가?”

천미려는 무표정하게 물었다.

조금 전의 구음마공에는 나름 전력을 다했다. 어지간한 상대라면 회심의 일격으로 그대로 먹혔을 터.

하지만 천월성은 마치 약속 대련이라도 하는 듯, 정확하게 딱 적절한 힘으로 방어를 해 냈다.

“그래. 그렇기에 넌 날 절대 이길 수 없다.”

“…….”

그녀가 어디를 얼마큼 노리는지, 사전에 알 수 있는 것. 그건 아마도 저 시뮬레이션이란 기이한 공능 때문일 터.

천미려는 잠시 눈을 감았고, 다시 뜨며 말을 이었다.

“글세……. 상공이 그러던데. 그 시뮬레이션, 만능하지만 전능하지 않다고.”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 절대적이긴 해도, 무조건은 아니라는 거야.”

츠으으으.

말과 함께 다시 한번 한랭의 기운을 모으는 천미려.

‘뭐지?’

그녀를 보던 천월성의 미간이 좁혀졌다.

뭔가 이전과는 또 다른, 독특하지만 꺼림칙한 행동을 하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락. 사락. 사락.

눈이 내린다.

천미려의 전신에 얼음의 얇은 조각들이 하나둘씩 쌓였다. 마치 물건을 적재하는 것처럼.

북해현음공(北海玄陰功).

북해빙궁의 절대무공이라 알려진 무공으로, 얼음 기류를 얇은 천처럼 만든 다음, 원하는 만큼 운용하는 방식이다.

천미려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과 방어.

이 모든 게 가능한 까닭은, 바로 기류를 응축하여 중첩(重疊)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이란 무공이 어떻게 파훼되는지, 지금 내가 직접 보여줄게.”

“지랄하고 있네.”

파앗.

이번엔 천월성이 먼저 덤벼들었다.

천마군림보를 펼친 열두 개의 환영.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지옥불을 검신에 두르고 있었다.

‘실체가 어디지……?’

천마군림보는 환영이자 실체. 실체이며 환영이다.

이 때문에 탈마에 오른 천미려의 눈에도 어느 것이 진짜 실체인지 좀처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한설빙공(寒雪氷功) 냉비(冷庇).”

먼저 북해현음공으로 온몸을 보호하며, 천미려는 또다시 무공을 발동시켰다.

솨아아아.

하늘에서 내리는 무수한 얼음의 단검.

그것들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천월성의 환영을 송두리째 지워나가는 효용을 보여줬다. 동시에 환영을 지운 냉기들이 다시 돌아와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남은 인영들이, 재빠르게 그 움직임을 따라 천미려의 지척까지 당도했고.

“……!”

콱! 콱! 콱!

시야에서 놓친 세 환영이 그녀의 오른쪽, 왼쪽, 등 뒤에서 나타나 검을 쑤셔 박았다.

“크읍.”

온몸에 피가 튀기며, 눈을 부릅뜬 천미려.

그 모습을 본 천월성이 이를 드러냈다.

“병신. 그러게 마지막에 기운을 왜 거둬들인 거야?”

스륵.

때마침 두 명의 환영이 사라지고 승리를 확신한 본체가 조롱하며 웃음을 베어물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뭔가 기운이 싸했다.

분명히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천미려는, 뜻밖에도 너무 밝은 얼굴이었으니까.

“네 시뮬레이션……. 역시 만능이지만 전능은 아니야…….”

“……뭐?”

“아마 최대한 합리적인, 보통의 경우를 주로 상정하겠지. 하지만 적이…… 자신을 해하면서까지 사용하는 극단적인 경우의 수는, 잡지 못하는 모양이고.”

스윽.

천미려가 쥐고 있던 왼손을 펼쳤다. 그러자 이제껏 응축되어 있던 북해현음공이 퍼져 나왔다.

솨아아악!

졸지에 주변 공간에 수많은 빙벽들이 덮어지기 시작했다. 그 범위는 천월성만이 아니라, 천미려 본인마저 죽이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익!”

천월성은 급히 내력을 발산했지만, 끔찍하게 많은 빙벽을 뚫어내지 못했다. 서둘러 일으킨 강기 따위는 너무도 쉽게 씹어 먹고 있었다.

“이따위가!”

천월성은 제3의 힘, 지옥의 불을 불러들여 주변을 다 파훼하려고 했다. 무시무시한 강도를 단 일격에 뚫기 위해, 지옥불을 누런빛으로 응축시켰다.

“끝이다!”

천월성의 호통. 그걸 천미려는 비릿하게 웃으며 받아쳤다.

“과연 그럴까?”

“이년이!”

투웅!

천월성이 발사한 지옥불에, 빙벽이 일부 터졌다. 하지만, 전부는 뚫지 못했고.

콰드드등! 우르릉! 콰콰콰쾅!

걷잡을 수 없는 반발력과 함께, 오히려 더 격렬한 얼음조각이 자신을 향해 쏟아졌다.

눈사태처럼.

“……!”

일순, 천월성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음양은 적절한 정도에서는 합일이 일어난다. 달아오른 쇠에 차가운 물을 부으면, 물은 사라지고 쇠의 열기는 식는 식이다.

그런데 자신의 기운이나 천미려의 기운은, 자연계에 없는 극양과 극음의 기운들이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름 가마에 큼지막한 얼음을 던져 넣는다면, 무슨 사태가 벌어질까.

“아. 아, 안 돼……!”

더욱이 천미려가 펼친 건 융합이 아니라 적층의 기류다. 수백 겹으로 가둬버렸으니,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는 데만 해도 엄청난 기의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콰르릉! 콰쾅! 쿠와아악!

“잘 가요.”

빙벽의 안에서 천미려는 그에게 웃음 지었다. 동귀어진을 위한 설계가 끝이 난 것이다.

“끄윽!”

타닥. 툭!

굳었던 몸이 튀었다. 한참이나 몸을 묶고 있는 점혈과 씨름한 설휘는, 겨우 구속을 풀어냈다.

“소저! 소저어어!”

탈마에 이른 천미려의 내공. 그게 혈도에 박힌 상태로는 꼼짝달싹도 못했다.

결국 전력으로 해혈을 하기 위해, 그는 강제로 운기조식을 해야 했고, 그 끝에 겨우 풀어냈다.

눈을 뜬 설휘는 급히 천미려를 찾았고, 눈앞에 선 거대한 빙산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았다.

“이제 그만하십시오. 그만하라고!”

크게 소리쳐 봤지만, 그녀가 펼친 빙벽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설휘는 직감했다. 저 얼음벽은 천미려의 생명력 그 자체. 저걸 유지하는 동안, 그녀의 생명은 실시간으로 꺼져 갈 것이다.

그럼에도 버티는 건 천월성을 자신의 몸으로 가둬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타당! 쾅! 쾅! 쾅!

빙벽 안에서 일어나는 어마어마한 폭발.

하지만 빙벽은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는다. 죽음에 임하는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어떻게든 천월성을 처리하려는 천미려의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소저! 이제 그만…….”

목소리가 쉴 정도로 외쳤을 때쯤. 빙백의 벽 일부가 부서졌다.

우드득.

그리고 그 안에서 두 명의 인영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 아…….”

터억!

그녀를 받아든 설휘의 눈이 흔들렸다.

다행스럽게도 칼에 베인 곳은 없었다. 오히려 혈색도 좋고 막 잠이 든 것 같은 모습이다.

허나.

“소저…….”

스르르륵.

천천히. 아름답던 그녀의 얼굴에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명과 시간의 흐름까지 얼려버렸던 극한의 한기가 녹아 흐른다.

“소저, 소저…… 소저…….”

그리고 흘러내렸다. 손안에 쥔 물처럼.

생명이 시시각각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에 천미려는.

“듣고 있어요.”

대답했다.

그녀의 반응에 설휘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온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러 감정이 심장을 때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울지 마세요. 상공.”

톡.

그녀가 손을 들었다. 백지창처럼 하얗고 차가운 손이 설휘의 볼에 얹혔다.

“제가 도움이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소저. 제가…… 한심스럽게도…….”

“그렇지 않아요. 상공은 정말 최선을 다해줬어요.”

“큭…….”

설휘는 입을 깨물었다.

허망했다.

대체 어디까지.

어디까지 아끼는 사람들을 잃어야 하는가.

스스로에 대한 분노. 죄책감. 지키지 못하는 자괴감이 복잡하게 가슴을 내리쳤다.

“걱정 마요. 우린 이게 마지막이 아닐 거예요.”

“…….”

“상공이 이 세계를 비틀고, 사람들의 운명을 조작하는 그와 싸워 이길 테니까요. 그 녀석을 죽이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소저는 다음에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이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천미려는 느리지만, 천천히 미소를 보여주었다.

“저도 이제 시스템 안에 들어왔으니까요.”

“……!”

생각해 보면 그랬다.

과거와 달리 그녀도 이제, 시스템 안에 들어왔다.

적어도 그 녀석들은 천미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될 터.

“그때 꼭 만나요. 다시 우리 만나서…….”

스륵.

힘을 잃은 그녀의 손이, 그렇게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아아!”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설휘는 울부짖었다.

잊고 있었다.

한동안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슬픔이 없었다는 게.

그것이 단단해지지 못한 가슴에 꽂혀 설휘를 미치도록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고통이 어떻게 익숙하게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무슨 일인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흐느끼던 설휘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설휘는 마음을 진정시킨 뒤 고개를 돌렸다.

바로…… 곤마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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