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340화 (319/379)

340화. 절대자 (3)

기(氣).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명의 근원이며, 천지만물을 구성함과 동시에 이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힘의 원천이다.

즉, 자연을 이루는 근원이 이것이다.

무림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운기조식으로 이 자연의 기운을 체내에 축적하거나, 여러 방면으로 다루는 기예를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 형태가 없었던 기를 검기, 검강 같은 형태를 가진 파괴적인 힘으로 발현하게 한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이들이 있는데, 바로 자연의 기운을 몸에 체화(體化)하는 것이다.

그저 기를 축적이나 응축하는 단계를 넘어서, 자연의 기를 원하는 대로 발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기를 유형이 아니라 무형 그대로 발산할 수 있다. 가짜 교주 천월성, 아니, 그의 AI인 신야자가 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럼 그다음은?

자연계의 기를 극한까지 통달한 자. 그의 위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설휘는 그 능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절대자의 간섭> 5초 안에 시스템 영역 안에 있는 특성 대상자의 능력 99%가 줄어듭니다.]

‘이런 미친!’

상식을 파괴하는 절대적인 힘.

그런 것들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 세상을 기획하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

딱히 눈에 보이는 특별한 능력보다, 아예 세상을 이루는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이다.

“아…….”

곤마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초.

그런 5초였지만, 설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렸다.

바바바바밧.

의자에 앉아 수많은 호심공의 방어막으로 둘러싸인 절대자. 곤마가 그를 향해 공격을 퍼붓는 순간, 눈을 의심할 장면이 만들어진 것이다.

쾅!

첫 번째로 내려친 주먹에서 생성된 빙벽은,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며 절대자를 뒤덮었고.

쾅!

또 한 번 주먹을 내려쳤을 때는 빙벽괴산(氷壁壞山)으로 보이는 두 산이 튀어 오름과 동시에, 그대로 무너지며 얼음의 산사태를 일으켰다.

쩌억.

그로 인해 절대자 주변의 거대한 호심공 일부에 균열이 생성됐다.

쾅!

세 번째 주먹은 더 가관이었다.

분명 허공을 때렸는데도 불구하고, 지면 일부가 저절로 무너졌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땅 위로 용암 줄기가 튀어 올랐다.

그 용암은 절대자의 호심공에 일어난 균열에, 그대로 몸을 부딪쳐 기어코 호심공 일부를 박살 냈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마지막 네 번의 공격.

허공을 때린 곤마의 주먹은 지면의 대부분을 뒤흔들었다.

어떤 공간은 완전히 가라앉았고, 그 안에 있던 거대한 용암의 불구덩이 십여 개가 분출되었다.

“세상에…….”

설휘는 그 모습에 그저 기함했다.

위에는 빙벽의 해일과 산사태.

그리고 아래에서는 용암의 폭발적인 분출.

자연의 힘에서 끌어다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죄다 끌어다 쓰고 있다.

솨아아아아아-!

‘아!’

그리고 마지막. 곤마의 최후의 일격은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넘실거리는 묵빛 기운이 삼 장을 넘게 치솟는데, 설휘는 그걸 보고 바로 직감했다.

‘이건 자연의 기운이 아니다.’

신야자가 끌어낸 지옥불처럼, 천미려가 뿜어낸 영원빙벽처럼.

본래라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기운.

그리고 앞서의 둘이 그런 기운을 담고 있었다면, 지금 곤마가 쏟아내는 것은 그 기운 자체의 파동이었다.

그 파동은 주변에 있는 어둠과 빛을 일제히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거기서.

[특정 대상자는 곤마입니다.]

설휘의 눈앞에 이런 활자가 뜨는 순간 곤마의 표정이 급변했다.

퍽.

그리고 그의 손에 있던 묵빛의 힘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당황한 듯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곤마.

그는 천천히 설휘를 돌아보며 말했다.

“설휘……. 크악.”

뻐엉!

폭음과 함께,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지면을 뒹구는 곤마. 뭐에 격타당한 건지 땅을 그대로 구르며 쭈욱 밀린 그는, 꿈틀꿈틀할 뿐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곤마 님!”

설휘는 급히 달려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치이이이익…….

온몸에서 불길한 증기가 일어나는 곤마.

대체 무슨 힘을 어디까지 써낸 건가. 분명 마지막은 자연의 기운조차 아니었는데…….

“놈이…… 내 힘을 제어해서 빼앗아 갔다.”

곤마가 신음하며 뒤척였다.

확실히 천살성은 기감도 보통이 아닌 모양이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자신의 상태를 곧바로 파악하는 것을 보면.

“그리 보였습니다.”

“크……. 미안하다, 설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했었는데.”

“곤마 님은 이미 제게 도움이 되셨습니다. 조금 전에 얼마나 대단한 힘을 펼쳤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설휘는 씨익 웃었다.

“사실 그보다도,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이 터져 죽는 끔찍한 모습을 어떻게 볼까 걱정했습니다만.”

“……크큭. 컥. 커컥.”

곤마는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웃음을 보였다.

그것이 고마웠다.

이제껏 숨겨왔던 곤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 힘을 어떻게 약화시킬 수 있는지, 마지막 순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저걸…… 이길 수 있을까?”

곤마가 탄식하듯 물었다.

직접 겪어 본 만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대는 싸움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자라는 걸.

“곤마 님. 제가 여기까지 오며 수없이 다짐한 게 뭔 줄 아십니까?”

“……?”

“적이 아무리 강대해도 지레 포기하고 겁먹지 않겠다고. 계란으로 바위가 부서지지 않는다는 걸 모를 때보다, 오히려 깨달았을 때 움직이는 게……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그래. 그게 우리의 낭만이었지.”

그 말에 설휘는 왠지 모르게 뭉클해졌고, 곤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드득.

그러고는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급하게 끌어들인 내공 때문에 부작용이 일어났다.

보통은 폭주하는 힘에 의해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아야 하거늘, 상대가 자신의 힘을 근원에서부터 막아버리니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삼백. 아니, 이백 정도인가…….’

대략 계산한 맥박 수.

심히 불규칙적이고 지금은 더 빨리 뛰고 있었지만, 평소 자신의 상태를 생각하고 계산한 값이다.

아마 앞으로 숨만 쉬고 있어도, 반의 반각 내에 생명이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전에.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저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을 기회가 올지 모른다…….’

곤마는 다짐했다.

기회가 오면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설령 오지 않는다 해도 지레 포기하는 것 없이,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가는 호흡으로 버티며 기다리겠다고.

***

펄썩. 파드득.

“역시. 내가 창조했지만, 다시 봐도 놀라울 정도의 힘이로구나.”

절대자는 천천히 공중에서 내려왔다.

그는 잠깐 널브러진 곤마에게 시선을 주고는, 다시 설휘를 바라보았다.

“그래. 지금 상황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겠지?”

“……그렇다.”

“힘의 차이가 어떤지, 이제 좀 느껴지느냐.”

“글쎄. 명색이 절대자라 불리는 분이, 시스템에 의존하면서 힘의 차이라 하긴 좀 민망하지 않나?”

“하.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도 결국 나의 능력이지. 그런데 어째…… 넌 이 상황을 보고도 포기할 생각이 없나 보군?”

“…….”

설휘는 말 대신 담담하게 상대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자 사내, 절대자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크흐흐. 하하하하.”

유치하다는 듯, 혹은 멍청하다는 듯.

명백히 조소가 담긴 웃음이었음에도 설휘는 기다렸다. 그의 반응을 살피면서.

“크크큭. 흐하하하. 크크크큭!”

그의 웃음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후, 설휘는 조용해진 절대자에게 물었다.

“다 웃었나?”

“…….”

“그냥 묻는 거야.”

“허.”

설휘를 보던 절대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힘의 격차는 여실히 보여주었을 텐데, 상대는 여전히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느껴지는 기세를 보면, 당장 필사의 돌격을 감행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한 가지만 묻자.”

“호오. 아직 궁금한 게 남았더냐?”

절대자 사내는 삐죽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설휘는 그 얼굴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네가 주는 보상, 그거 받으면 어떻게 되나?”

“보상? 안 받겠다더니?”

“나에게 피해가 안 간다는 전제라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오호라. 이 영롱한 놈 보게.”

절대자는 미묘한 시선으로 설휘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받으면 당연히…….”

“당연히?”

“죽지, 뭐가 더 있겠느냐? 이후에 도전할 때 들고 싸우라고 넉넉히 주는 것이다. 물론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의 상승은 해야겠지만.”

“하, 하하하. 크하하하하.”

설휘가 웃었다. 노골적인 비아냥을 담아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 뚝 그치고는 눈을 부릅떴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왔으니 네 그 보상을 받고 다시 도전하라고? 탈마에 오르는 길을 죄다 틀어막아놓고? 진짜 이 새끼,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뭐……?”

“네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지만, 부끄러운 줄은 알아라. 시스템 밖에 나가 싸울 용기도 없는 녀석이 무슨 최강이라고!”

“호오.”

도발이 조금 통했던 것일까.

절대자의 눈이 조금 매서워지며, 설휘의 말꼬리를 잡았다.

“설휘. 네가 말하는 것을 보니, 시스템 밖으로 나가면 본인을 이길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당연히 이길 수 있지.”

“어떻게? 고작 탈마에서 기신밖에 오르지 않은 네가?”

“고작 기신이라 해도 가능할 것 같은데. 시스템만 쓰지 못한다면 너 정도 따위야.”

“…….”

꿈틀.

재밌다는 듯 턱을 쓸어내리는 절대자. 하지만 이번만큼은, 만들어낸 미소에 약간의 금이 갔다.

“속셈이 너무 뻔하군. 내가 그 정도에 흔들릴 것 같나? 시스템을 쓰지 않아도 너와 나의 힘의 차이는 확연해. 그런데도 굳이 밖으로 데려갈 필요가…….”

“멍청한 놈.”

거기서 설휘의 눈이 빛을 발했다.

“……?”

절대자는 이건 또 도발인가,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네놈이 겁쟁이인 줄은 진작 알았지. 근데 말이야. 넌 이미 큰 실수를 하나 했어. 본인 입으로 말했지. 시스템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그게 어쨌는데? 어차피 넌 나가지 못해.”

“알지. 근데 말이야. 네 말대로라면 시스템 밖엔 네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 아냐? 천미려도 그래서 몰랐던 거고.”

“…….”

절대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런 그를 보며 설휘는 마음을 다잡았다.

“방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제부터 네가 만든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 조금이라도 뭔가 도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어 고맙다. 멍청이 녀석.”

“하…….”

천천히.

절대자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계속된 도발 때문인가, 아니면 어딘지 모를 역린을 건드린 것인가.

“생각해 보니 좀 시끄러운 놈이군.”

반응도 뭔가 까칠해졌다. 이제껏 항상 여유를 잃지 않고 있던 그가, 처음으로 먼저 움직였다.

핏. 핏. 핏.

발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공간을 이동하며 순식간에 설휘 앞에 선 그는.

“넌 말이 너무 많아.”

한마디와 함께 검을 세웠다. 그리고 휘둘렀다.

피-----

설휘는 묘한 귀울림 속에서 느꼈다.

이것도 일종의 시간 통제임을. 자신은 움직일 수 없었고, 오로지 상대만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보자고, 설휘.”

불편한 감정을 애써 다시 다스리는 절대자.

그는 느릿하게 검을 사선으로 세웠다. 그리고 가볍게 베어 내리는 듯 움직였다.

하지만 그 일격은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다.

피이이잇-

언제부터인지, 묵빛의 화살이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 존재를 눈치챈 절대자의 시선이 돌아갔고, 이내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게 무슨…….”

믿을 수 없었다.

시간을 통제하고 있던 절대자의 흐름을 깨트리고, 날아드는 묵빛 화살.

뿐만 아니라, 그것은 호심공 몇 겹을 손쉽게 꿰뚫었다.

그리고 마지막 절대자의 신체에 닿는 순간.

“크아아압!”

마지막에 꺾였다. 아슬아슬한 찰나에 절대자의 검이 화살대를 잘라낸 것이다.

쿠와아아아앙!!

그렇게 부러진 묵빛 화살이 바닥에 꽂히자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

“윽……!”

그 충격의 여파로 설휘는 주르륵 밀려나갔다. 그가 차마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이거 받아라. 설휘.”

터억.

갑자기 손에 무언가가 쥐어졌다. 허공섭물. 아니, 그 단계를 넘어선 염력 같은 움직임으로.

‘이건…….’

[환영입인검을 얻었습니다.]

“즐거웠다. 설휘.”

“…….”

보이는 것은 등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설휘는 알 수 있었다.

콰우우우우!

천살성 최후의 4단계. 그 힘의 개방이라는 걸. 하얗게 센 곤마의 머리는 급속도로 윤기를 잃어갔다.

전신에 묵빛 화살 수천 개를 휘감은 곤마가 스윽 저 멀리, 산을 몇 개나 넘은 먼 곳을 가리킨 순간.

푸아아악-!

설휘의 환영입인검이 갑자기 날아갔다.

그 속도는 가히 벼락.

쏘아낸 화살의 백 배를 넘어갈 아득한 정도.

순식간에 시야 저편으로 날아간 검은 보이지도 않게 되었고.

“빠져라. 설휘. 저 검의 능력으로…….”

쿠르르르릉!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얼핏, 절대자의 분노한 얼굴이 설휘의 시야에 들어온 순간.

“어서!”

“읍…….”

바로 그는 환영입인검의 능력을 발휘했다.

검이 있는 공간으로 본신이 옮겨지는 능력을.

사아아아-

마지막으로 눈에 담긴 것은, 제3의 힘. 묵빛 강기를 온몸에 몇백 겹으로 두른 곤마가, 절대자에게 검은 창처럼 쇄도하는 장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