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341화 (320/379)

341화. 신의 개입 (1)

‘시스템 바깥에서는 놈의 눈을 피할 수 있다고?’

곤마는 거기에 한 줄기 희망을 품었다.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한 건 아니지만, 설휘와 절대자의 대화를 통해 대략적인 것들은 이해했다.

설휘 또한 싸우고 있음을.

그의 삶 그 자체가 저자와 대립하는 형국에서 흘러나온 귀한 정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게 단 한두 호흡에 불과할지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곤마는, 이제까지 아껴온 최후의 패를 꺼내 들었다.

천살성. 제4의 개방.

지속시간은 단 두 호흡. 쓰는 순간 거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지만, 그건 이미 상관없었다.

사아아아.

그렇게 최후의 힘을 끌어낸 곤마는 순식간에 온몸에서 생기가 말라가는 것을, 죽음이 임박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무한에 가까운 기력이 폭발하듯 증가하는 것도.

피싯. 파직.

신체를 속박하던 힘이 제거된다.

시스템이라고 했나? 그런 이름으로 불린 절대자의 힘도 더는 자신을 묶어놓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의 힘은 거의 무한대일 터.

무한에 무한을 곱해봐야 같은 무한이다.

거꾸로 대부분의 힘에 제약을 가해봤자 역시 같은 무한이다.

단 일 푼의 힘이라 할지라도 제4의 힘을 개방한다면, 자신은 더 이상 묶어둘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을 대가로 쓰는 것이기에.

그로 인해 제3의 힘, 아니 제4의 힘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개방하자, 곤마는 단 8초의 시간을 얻었다.

또한 제4의 세계의 힘을 쓸 수 있었다.

그의 전신을 감도는 묵빛 화살이 바로 그것이었다.

쩌엉!

화살이 쪼개지며 묵빛 기운이 주변을 밀어내자, 곤마는 제일 먼저 설휘부터 찾았다.

“가라.”

가짜 교주 천월성이 남긴 보검을, 허공섭물로 설휘에게 쥐여주었다.

그러고는 그 절세병기를 전력을 다해, 자신이 인지할 수 있는 세상 밖, 가장 먼 곳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쫘아아악!

온몸의 생명력이 말라비틀어지고, 그러면서 더더욱 강력한 힘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며 곤마는 흐흐 웃었다.

“기분이 어때?”

“이……”

어느새 온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된 곤마는, 분노하는 절대자에게 묵빛 강기를 쏘아내며 달려들었다.

피----잇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상상도 못 할 기의 폭풍이 예감되자 절대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 이놈이!”

이제껏 항상 얼굴 한쪽에 있던 여유가 사라졌다.

절대자는 자신이 가진 전력을 끌어올려 곤마의 공격에 맞대응했다.

끄르르르르……. 화아악!

불지옥의 화염이 그를 수백 겹으로 감싸고, 그 바깥은 회오리치는 나선으로 자연의 기운이 권풍을 이루었다.

그야말로 대재앙급 자연재해. 그런 힘을 둘이나 쓰고 난 뒤에 겨우 해소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피해도 받지 않았지만.

“크흐으…….”

삽시간에 세수 구십의 노인처럼 변한 곤마.

풀썩.

그가 숨을 다해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본 절대자는.

“하. 뭐, 이 정도지. 결국 너희들은…….”

울컥.

대답과 달리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체감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피지직.

왼쪽 얼굴의, 광대뼈가 지나가는 곳에 미약하지만 둔중한 통증이 있었다.

용권풍과 불지옥의 힘을 동원하고도 결국 호심공을 투과한, 곤마의 최후의 일격.

방심이었다.

처음엔 좀 놀랍고 생경하기도 했다. 자신이 창조한 곤마란 자가 이 정도로까지 힘을 개방한 적은 단연코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싸움에 관해서는 가히 신의 범주에 오른 자신이 힘을 전력으로 끌어내야 했다니. 그 정도로 곤마가 성장하다니.

“그래, 아직 처리해야 할 놈이 남았지. 음…….”

결국, 놈이 변수다. 곤마를 이토록 강하게 만든 것도, 이 세상의 흐름을 다 흔들어 놓은 것도.

스---윽.

쫘라라락.

하늘과 땅에 수많은 기혈의 선들이 그어졌다.

도망친다고 해 봤자,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안. 시스템이 환경을 인식하고 있는 이상, 그에게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잡았다. 이놈!”

멀리, 그사이에 멀리도 날아간 설휘의 흔적을 잡아내고, 절대자는 바로 추적에 들어갔다.

후우웅!

한순간에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절대자.

그에게 아까와 같은 여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가볍게 식은땀이 흐른 얼굴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

“허억…… 후우…….”

탓. 타다닷!

한편, 설휘는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절대자에게서 벗어난 땅. 하지만 언제 추격해 올지 모르니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것이다.

그런 그의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시스템의 권역.

그 바깥으로의 이탈.

절대자라 불린 그 녀석을 따돌리기 위해선, 방법은 하나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 정도의 무인을 물리적인 거리를 벌린다고 해서 떼어놓는 것이 가능할까.

‘가만, 탈마에 오른 게 바로 시스템 밖으로 나간 게 아니었던가.’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근원적이면서 기초적인 의문.

세속의 탈을 벗고 극에 오른 자신은, 이미 시스템 밖에 있는 것이 맞지 않은가.

그런데도 지금 상황에선 왜 시스템 밖에 있다고 얘기할 수 없는 걸까?

‘시스템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지에 오른 것만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있어.’

천미려는 탈마에 오른 후, 시스템의 권역을 벗어났다고 했다.

그럼 자신도 마찬가지일 터.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그 계기는 무엇인가.

‘그러고 보니, 내가 탈마에 처음 올랐을 땐 어땠지?’

머릿속을 바삐 움직이며, 동시에 발도 바쁘게 움직였다.

탁. 타닥. 타다닥!

송화의 도움을 얻었다.

두 가지 기운이 서로 충돌하며 정반합을 이루었고, 그 순간 공간을 지배했다.

그때 처음으로 설휘는 자연의 기운을 통제하는 영역에 올라섰다.

‘그나저나 사유강은 어떻게 싸우려고 했을까.’

AI는 곤마를 이용해서 절대자라는 존재를 공격하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단지 그뿐일까?

그가, 사유강이 보복을 온전히 남의 손에만 맡길 사람일까?

그렇다면 분명 자신의 몸을 통해 무언가, 어떻게든 그 역시 손을 썼을 터.

그걸 알아야 했다.

사유강은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저 고래 같은 놈을 곤란에 빠트리려 한 것일까.

지금의 설휘에겐, 사유강보다 조금 못 미치는 힘이 있다.

그럼에도 당시 사유강은 자신의 몸 상태로도 뭔가를 시도하려고 했다.

최후의 일격 정도는 생각해놓았을 것이다.

피이이이---

갑작스러운 귀울음. 설휘가 본능적으로 눈을 한번 깜빡인 순간.

“흠. 여기까지인가?”

절대자란 존재가 어느새 눈앞에 와 있었다.

설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여기까지일지는…… 아무도 모르지.”

“하. 아직도 자신을 가지는 건가? 저 천살성을 내가 어떻게 꺼트리는지 보았…….”

“보았으니까. 그래서 그처럼 되고 싶은 거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처럼.”

우르르릉.

설휘는 몸에 있는 기류로, 자연의 기를 모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한 대 먹여주겠다. 그게 후회 없는 마지막이라는 걸 아니까.”

사아아아-

강인한 의지를 통해 사방에 흘러나가는 기류.

절대자는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 통제? 기도 안 차는군. 감히 본좌를 상대로 통제력의 승부를 걸어오겠다고?”

“기가 찰 일인지 아닌지.”

아아아아-

“일단은 해봐야 알 거 아냐!”

말과 함께 설휘는 구음마경을 통한 시간 통제에 들어갔다.

지금 자신의 수준에서 펼칠 수 있는, 오로지 주변에서 침범당하지 않는 유일한 수였다.

팟.

그리고 세상이 느리게 흘렀다.

둥실. 토독.

물방울이, 분진이, 빛을 산란하며 천천히 허공에 고정된다.

구음마경의 힘으로, 반경 십 장 내에 있는 모든 사물의 시간을 제약할 수 있게 된 설휘.

하지만 그런 시간의 통제에, 아무래도 절대자는 휘말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 바보 같은 놈. 」

음성은 전해지지 않았다. 소리가 아니라 입 모양만 읽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나.

절대자는 자신의 시간 통제로 묻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스스스슥.

물기와 분진으로 산란된 빛.

분명히 시간 통제는 작동하고 있었다. 세상은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한 통제 속에서도, 느리지만 천천히, 절대자의 손은 자신에게 뻗어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딱딱히 굳어 있는 것이, 녀석도 나름 사력을 다해서 상대하려 드는 것이 위안이랄까.

제기랄.

몸의 움직임이 늦다.

가진 전력을 시간 통제에 밀어 넣은 설휘.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주 미세하게 손가락을 까닥이는 것이 다였다.

그랬는데.

치이이-----.

……음?

절대자의 표정이 일순 변했다.

자신의 움직임보다 조금 더 빠른 것이 그의 손을 감쌌기 때문이다.

뇌전류.

시간 통제 내에서 발현한, 설휘의 절대극마공이었다.

비록 절대자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단계의 무공이라 하나, 엄연히 마교에서는 최강의 절기.

설마하니 그것을 지금 이 상황에 실현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이 손을 타고, 절대자라 불리는 사내의 얼굴까지 한순간에 덮쳐들었다.

쩌저저적!

확실히 그는 방심했다. 방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호심공조차 끌어올리지 않았던 절대자는, 그 일격을 고스란히 맞아버렸다.

“크아아아아아!”

코털을 뽑혔다. 아니 코를 통째로 뽑히는 충격을 받았다.

절대자가 비명을 토해내며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

깜박.

설휘는 눈이 조금 커지는 정도의 동작뿐이었다.

여전히 시간 통제에 따른 움직임은 설휘에게도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였어.’

느릿하게 움직이는 몸.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맑게, 빠르게 회전하는 사고.

짧은 순간에 설휘는 깨달았다.

예전에 사유강이 별도의 시간을 내며 굳이 가르쳐 주려고 했던 것.

그가 싸우려 했던 방식은, 바로 이런 시간 통제의 상황을 전제로 싸우려 했던 것이다.

시스템의 간섭은 물리적이다.

그리고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경우다.

알아도 피하지 못하는 경우.

천미려의 말처럼 상식적인 경우를 넘어서는 현상에 대해서는, 아무리 시스템이라 한들, 모든 것에 대한 파훼는 하지 못한다.

‘만능일 수 있으나, 전능일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절대자,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빈틈이었다.

크아아아---

고통에 절규하는 절대자를 보며, 설휘의 씁쓸한 표정이 아주 느리게 지어졌다.

과연 마신. 상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그걸로 죽지는 않았다.

지근거리에서 맞은 절대극마공을 온몸으로 버텨낸 것이다.

으아아악!

절대자의 사내가 괴성과 함께 신병이기를 집어 들었다. 그걸 뻔히 보면서도, 설휘가 할 수 있는 건.

깜박.

미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것.

그리고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며 고이는 눈물을 억지로 밀어내는 정도였다.

‘보고 있나. 곤마. 그리고 사유강.’

이길 수 없다. 상대는 애초에 그런 존재였다. 달리 ‘절대’라는 말이 붙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어코 목적한 바를 달성했다. 저 잘난 척하는 놈의 면상에, 제대로 한 방을 먹이는 것에 성공했으니까.

이제껏 누구도 달성해 내지 못했을 위업.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구절을 기어코 현실로 거둬냈다.

사아아아.

그렇기에 절대자의 검이 사선으로 그어질 때, 설휘는 받아들였다.

더는 여한이 없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길었던 삶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다라고 여겼다.

분명 그랬는데.

‘……어?’

꿈벅.

순간 눈을 의심케 하는 무언가가 보였다.

사람의 형상…….

등이 굽은 초로의 노인이 절대자의 검을 막아냈다.

스륵. 툭.

필설로 형용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거력을, 너무도 가볍게.

‘……?!’

깜-박. 깜-박.

정확히 보니 막아낸 게 아니다. 그냥 인근의 모든 사물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설휘의 몸도 움직이지 못했다. 애초에 전력으로 시간 통제에 힘을 기울였던 그다. 하지만.

스르륵.

갑자기 나타난 노인.

등이 새우처럼 굽은 그는, 설휘의 통제력보다 수백 배는 더한 시간으로 모든 것을 굳혀 버리고는.

자신을 보고 흘흘, 하고 웃었다.

“아해(兒孩)여. 정말로 노부를 놀라게 하는구나.”

후르르륵.

그와 함께 노인의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건곤감리의 선과 점의 표식들.

……!

설휘는 왠지 모르게, 눈앞의 노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