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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353화 (332/379)

353화. 인형설삼 (1)

장물아비 취곤(臭坤).

그는 장안 일대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어떤 복잡한 이력이 있는 물건도, 깨끗하게 유통되는 현금으로 만들어준다. 수수료만 잘 챙겨주면.

그 솜씨가 어찌나 훌륭한지, 적어도 장안에 한정해서는 감당 못 할 물건이 없다고 할 정도다.

그의 그런 능력은 바로 인맥이었다.

관직과 정계, 그리고 무림맹과 구대문파 등, 세간에 이름이 알려진 백여 개의 거대한 단체와의 연줄이다.

흔히 관시라 불리는 친분 쌓기.

이미 안면을 튼 인물은 물론이고, 한 다리 건너서야 알 수 있는 사이에도.

생일, 관혼상제 등의 중요한 날은 빼먹지 않고 주기적으로 선물을 빙자한 뇌물을 살포했다.

그런 철저한 관리를 통해 그는 은밀한 유통망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 유통망으로 세간에 알려진 상승 무공의 비급과 병기를, 값비싼 금은 장식품으로, 또는 은자나 전장의 전표로 환금해 주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진다고 했는가.

영원히 비상할 것만 같았던 그의 앞날은 천철백병검(天撤白兵劍)이란 보검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살인자로 몰리다니…….”

취곤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천철백병검이라는 보검이 자신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값비싼 보검이 왜 문제가 되냐고? 바로 그 보검이 무림맹 맹주의 아들을 죽인 검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게다가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거처에 천철백병검을 세워놓았고, 시비 중 하나가 그것을 알아보고 곧장 맹과 관아에 신고를 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도망쳐야만 했다.

이동 중에 생각해 보았지만, 이건 아무리 보아도 누군가가 계획한 음모임이 분명했다. 작정하고 설계한.

그러니 누가 자신에게 죄를 덮어씌웠는지 그 대상을 찾지 못하면, 결국 자신은 죽게 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보름쯤 도망쳤을 때.

취곤은 이제 방법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무림맹에서 공식적으로 자신을 무림공적으로 선포해버린 것이다.

그에 억울함을 표하는 것보다, 우선 몸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다.

일단은 살아야 이 억울함도 풀 수 있을 테니.

쪼르르륵.

“후우우…….”

최곤은 탁자에 앉아 찻잔에 물이 채워지는 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자의 삶은 피폐하다. 이제껏 부족함 없이 부유하게 생활해 온 이에게, 고단한 삶은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도주 생활.

사전에 제대로 계획을 세운 도망이 아니다 보니, 은자를 얼마 챙기지 못했다.

가진 것이라곤 금붙이 같은 장신구인데, 이런 건 팔아넘기는 순간 오히려 추적이 붙는다.

객잔에서 잠을 청할 수가 없으니, 산에서 야영을 주로 했고, 그러기를 거의 한 달.

심신이 극도로 지쳤다. 해서 도저히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근방에 있는 객잔을 찾았다.

“음.”

다행히 자신을 알아보는 이는 없는 듯했다.

애초에 근처에 대단한 것이 없는, 워낙에 한미한 지역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인피면구를 써서 얼굴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린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선에서 제일 기름진 음식을 주문했다.

여기서 최대한 많이 배에 때려 넣고, 그렇게 비축한 체력으로 다시금 도망칠 행선지를 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체 누구지?’

그는 시킨 음식이 나오기 전 머리를 굴렸다.

누가 자신에게 이런 누명을 씌웠을까? 요 며칠 아무리 기억을 짚어 봐도 생각나는 인물이 없었다.

확실한 건, 돈이 목적이라면 이런 짓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

취곤의 재화는 그 가진 명성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워낙에 관시를 많이 주다 보니 금고에 돈이 많이 쌓이지 않는 편이었다.

돈이 필요하다면 자신 같은 장물아비가 아닌 더 부유한 집을 노렸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토호 세력들의 저택 말이다.

‘나를 살인자로 몰아 무엇을 얻을 생각일까?’

그렇다면 목적이 따로 있을 터인데…… 그게 무엇일지는 아무리 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짐작 가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였다.

장물아비로 물건을 팔아넘긴 20년 넘는 세월.

그간 경쟁자도 숱하게 많이 만들었고, 때로는 누군가의 소중한 유품을, 주인이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돈 많은 이에게 넘기기도 했다.

‘차라리 원하는 게 있으면 모를까, 그저 복수가 목적이라면 도통 알 길이 없구나. 내가 고난을 겪을수록 그걸 더 원하고 있을 테니. 허면……..’

한참을 그렇게 끙끙대며 머리를 굴리던 중.

덜컥.

갑자기 맞은편에 누가 허락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흠칫!

일순 놀란 취곤은 조심히 고개를 들었다.

혹시 무림맹과 연관된 사람이 아닐까 하고.

‘그쪽은 아냐.’

직감이 일러주었다. 이제껏 아슬아슬한 인생에서 매번 그를 살려주었던 생존 본능.

그게 눈앞의 남자는, 무림맹 같은 큰 조직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더 위험하다.’

다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럼에도 뭔가 훨씬 꺼림칙했다.

허락도 없이 자기 앞에 앉은 건 둘째 치고, 천으로 얼굴을 완벽하게 감싼. 뭔가 기분 나쁨 행색이었다.

이자가 왜 이러나, 그렇게 그를 빤히 쳐다보던 중.

“취곤. 장안 내 최고라는 장물아비.”

“…….”

“맞소?”

취곤은 기분이 나빴던 이유를 곧 확인할 수 있었다. 상대는 무림맹은 아니지만, 매우 불편한 상대다.

“그러는 귀하는 누구요?”

복장은 진즉에 갈아입었고, 인피면구로 얼굴도 바꿨다. 그럼에도 바로 자신을 알아본다는 건.

보통이 아니라는 뜻.

“그게 중요하오?”

“내게는 중요하오.”

취곤의 말에 복면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다시금 끄덕였다.

“뭐…… 말을 해도 당신은 모를 테고, 나는 이름을 말할 수는 없는 처지이니……. 대충 구원자라고 해 두시구려.”

“구원자?”

“그렇소.”

“허.”

취곤은 이제 웃음이 나왔다.

기분 나쁜 행색과 태도를 보이는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구원자라니. 누가 봐도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취곤의 비웃음은 길지 않았다. 황당하다는 자신의 반응에도 낯선 이의 반응은 진지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보시오. 내가 아무리 상황이 힘들다고 해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농담할 정도로 보이오? 어디서 장물을 하나 얻었나 본데 지금 내 상황이…….”

“흉수 때문에 곤경에 처해있지.”

“……!”

취곤은 눈을 부릅떴다. 상대가 한 말은 농담 삼아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누구인지…… 혹시 아오?”

취곤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자의 목적이 뭐였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흉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게 알려지기만 해도 목숨은 구할 수 있으니까.

“마침 잘 아오. 그래서 당신을 보러 온 거고.”

“…….”

꿀꺽.

취곤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

“누구요? 그자를 알려 주기만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들어주겠소. 그동안 얼마나 억울한 삶을 살았는지는 진짜로 당해보지 않은 자는 모르오.”

“…….”

속내를 털어놓은 그의 말에 복면인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엔 취곤이 조심히 물었다.

“왜? 문제가 있소?”

“아니오. 당신의 말대로 충분히 얘기해 줄 수 있소. 그가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흉수인 증거 역시 가지고 있소.”

“아!”

취곤의 얼굴을 밝아졌다.

이 복면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드디어 지옥 같은 도망자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다만, 그전에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뭐든 말하시오.”

취곤은 진지하게 바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지 전해줄 요량으로.

“혹…… 삼 개월 전쯤. 당신의 고향에서 수도 개봉으로 수송되던 영약을 기억하시오?”

“……영약?”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삼 개월 전. 고향에서 수도로 가는 물품……. 영약.

잠깐 고민하던 그가 눈을 부릅떴다.

“인형설삼! 당신은…… 설마 그걸 원하는 것이오?”

실패로 돌아가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다.

산삼이 영기가 극도로 차올라서, 마치 사람의 형상처럼 변한다는 영물.

딴에는 대형 표국에 비싼 돈을 지불하고 운송을 맡겼는데, 그 표국이 습격을 받아 전멸하고 물품은 빼앗긴 흉사 중의 흉사였다.

“그건지는 확실치 않소. 시뮬레이션인가 하는 놈이 레벨이 낮아서 딱 그것만 가르쳐 주더이다. 이때 당신을 만나서 물으라고.”

“예?”

시뮬? 레벨?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취곤에게 복면인, 설휘는 물었다.

“일이 어그러진 위치가 어디요? 일단 같이 가시구려. 현장을 봐야 뭐라도 잡을 수 있을 테니.”

“그야 그렇소만……. 진범은 어디에 있소. 당장이라도 그를 잡아 나에게 엮인 오해를 풀어야 하지 않겠소.”

“음. 그게 좀, 지금 말하기가…….”

끼이이익.

그때 마침 객잔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취곤은 기껏 기다린 음식을 먹을 틈도 없었다.

“망할!”

힐끗 눈을 돌리자 바로 자신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는 장한들. 그들의 매서운 눈빛. 거기다 복장을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어깨에 달린 맹호장(盟虎長)의 표식을 본 것이다.

맹주팔호장(盟主八虎長).

맹주의 직접 명령받는, 무림맹을 대표하는 여덟 명의 초고수.

이들은 무림체포단. 무림맹의 대표적인 수사와 감찰을 하는 조직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 어지간한 일은 상부의 지시 없이 독립적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당연히 그 자리에 필요한 무력 또한 빼어난, 합법적인 권한과 힘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망했소. 이를 어찌…….”

취곤은 절망했다.

자신을 쫓던 이가 다른 아닌 맹주의 명을 받는 최정예 고수들이었다는 것.

어지간한 대문파의 장문인도 피한다는 이들이 직접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이다.

“뭐하고 있소? 준비하지 않고.”

체념에 무너져내린 취곤을 향해 복면인, 설휘가 재촉했다. 그러다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낯선 이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그리고 곧장 검을 꺼내, 취곤의 목에 칼날을 들이댔다.

“자, 잠깐만.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어서 말하시오.”

“뭐, 뭐, 뭐를 말이오……?”

“진범이 여기 있다고. 여기서 나를 죽이려 한다고.”

“……?”

멍한 표정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취곤. 설휘는 그에게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러면 진범이 나라는 걸로 오인할 게 아니오. 당신에겐 내가 구원자가 되는 셈이고. 안 그렇소?”

그제야 취곤은 전후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구원자란 말이 거짓이 아님을.

그는 천천히 다가오는 그들을 향해.

“이, 이자요! 이자가 진범이오!”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

“내가 아니오! 이자가! 이자가 맹주의 아들을 죽이고, 그 죄를 나에게 뒤집어씌웠소!”

쫘르르륵.

그의 외침에, 맹주팔호장의 시선이 복면인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설휘는 쩌렁쩌렁 소리치며.

“제길, 들켜버렸군!”

그들이 충분히 들을 수 있게 말해주며 검을 내렸다.

“저놈이다.”

“사로잡아라.”

일순, 저들의 외침과 함께 설휘를 향해 움직이는 동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취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도망치지 않으시오?”

물었다.

“……왜?”

“그야…….”

당연히 저들이 공격을 하니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내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나간 것이다.

그리고 취곤은 생애 처음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

번쩍!

복면인이 놈들과 부딪치는 한순간, 뭔가가 번뜩하더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날카로운 검선만 춤추고 있었다.

좌, 우, 직선. 그리고 아주 긴 사선 방향.

스윽.

그렇게 검선이 멈췄을 때는. 거짓말처럼 앞에 있던 초절정. 아니 무림맹을 대표하는 고수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더욱 놀라운 건. 그렇게 많은 이를 쓰러뜨리며, 피 한 방울 흐르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급소를 제압한 사람처럼.

“뭐해?”

“……?”

설휘는 취곤에게 거만하게 턱짓을 했다.

그는 주변을 바라보다 음식을 들고 와그락 무너져 주저앉은 주인장과 눈이 마주치자.

“따라와라. 인질!”

휘익!

한마디와 함께 은원보 하나를 던져주고 나갔다. 그에 취곤도 슬쩍 눈치를 보다.

“살려주십쇼오오…….”

한마디를 남기고 객잔을 나가버렸다.

가히.

직접 보았다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절정의 발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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