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354화 (333/379)

354화. 인형설삼 (2)

“그러니까…… 어르신 말을 정리를 해보면요.”

객잔에 앉은 취곤은 앞서 나온 대화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평생 전국에서 이름난 영약을 다 모았다. 그중에는 공청석유와 만년자령초(萬年紫靈草) 같은, 심산유곡이나 천리고산에 있을 법한 절세영약도 있었다 그 말입니까?”

“뭐 그런 게지.”

웅성웅성. 와글와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객잔은 번잡하다. 덕분에 시끄럽긴 했지만, 대신 훨씬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여기에 인형설삼만 모으면 천하제일 4대 영약의 3개를 가진다고. 다만, 그간 너무 나이를 먹다 보니 소림의 대환단은 훔치기 무리라 판단. 다음 생에 불가로 귀의해서 훔치겠다는 말이고요?”

“그렇네.”

“어르신의 올해 나이는 세수 백이십. 천기를 보니 한두 달 뒤면 귀천하실 것 같으니, 어떻게든 이번 달에 반드시 인형설삼을 찾아야 하고요.”

“이야기를 잘 들었구만.”

“……하하하, 하하. 정말로 신박한 얘기군요.”

후루루룩.

소면을 들이켜던 취곤은 결국 본심을 드러냈다. 곧장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눈앞의 복면인. 아니 도중에 복면을 풀어 헤친 노인은, 딱히 그런 반응을 마음에 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해하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에 무리가 있다는 걸. 하지만 어쩌나. 그게 사실인걸.”

“하……. 예, 알겠습니다.”

취곤은 어색하게 웃었다.

마음속으로 ‘미친놈’ 정도로 정의를 했던 그로서는 다시 노인의 평가를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정신이 조금 아픈 사람’이나 ‘헛것이 보이는 사람’ 정도로.

아 물론, 싸움은 그야말로 겁나게 잘하는 놈이란 것도 붙여야 할 터.

“쩝쩝. 그런데 어르신……?”

취곤은 자연스럽게 만두 하나에 손을 올리며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잽싸게 입에 집어넣으며 그간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왜 그렇게 영약을 많이 모으시는 겁니까? 대저 영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음.”

당연한 의문이었다.

보통 세상에서 영약이라 불리는 것들은, 죄다 과다한 양기나 음기가 맺혀 있다.

특히나 공청석유 같은 건, 오랜 세월 동안 쌓인 기운이 켜켜이 농축된 영약이다.

단번에 내기로 만들기도 불가능하며, 자칫 잘못하다간 주화입마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이니.

“아, 그걸 말 안 했구나.”

노인, 설휘는 그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마신이라는 녀석이 있다. 그놈을 이기려면 우선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데…… 단시간 내 오르기 위해선 아무래도 영약이 필수 조건이야. 물론 그에 따른 심법과 깨달음도 필요하겠지만, 그거야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거고.”

“……아, 그렇습니까. 그럼 단기간에 엄청난 경지에 올라가기 위해서 그런 많은 영약이 필요한 것이었군요. 목적은 신(神)과 싸우기 위해서?”

“아니, 신보다는 약해. 그래서 마신이야.”

“아. 예……. 그래서 마신이군요.”

상대의 말에 맞장구쳐주며, 취곤은 속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이분, 내일모레쯤 가겠구나.’

정신도 아픈 데다 헛것이 보이고, 그걸 굳게 믿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 노인 덕분에 무림맹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

아마도 당시 덤볐던 맹주팔호장. 그들을 살려 보낸 게 주효했던 모양이다.

취곤 자신은 어디까지나 인질이며, 맹주의 아들을 살해한 흉수는 자신이 아닌 복면인이라고.

개봉으로 오는 도중에, 벽에 붙은 표문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근데 싸움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한단 말이지. 미친놈이 힘이 세다는 게 이런 건가?’

그는 갸웃하며 상대를 다시 보았다.

그간 대체 어떤 수련을 쌓았는지, 눈앞의 노인은 연로한 몸에도 불구하고 눈빛만큼은 형형한 기광이 서려 있었다.

아마 자신이 무림인이었다면 사부와 도문 정도는 한번 물어볼 법도 했지만, 취곤은 어디까지나 장물아비.

이 정도 관심 이상의 흥미는 없었다. 왠지 더 물었다간 엮여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것 같기도 했고.

“식사를 다 했으면 일어나자고.”

“아. 잠시만요.”

후르르륵!

노인의 재촉에 취곤은 소면의 국물을 쭈욱 들이켰다. 그간 고팠던 배를 채운 뒤, 그는 노인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됩니까?”

“현장.”

“예? 현장이요?”

“표물을 탈취당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습격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무슨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면 현장에 가서 단서를 찾아야지.”

“아니, 그게…….”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취곤.

말만 놓고 보면 설휘라는 노인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기존 수사에서도 얻지 못한 단서를, 이 사람이 찾아낼 수 있을까?

인형설삼을 운송했던 곳은 칠성표국. 중원 전역에서 한 손에 꼽히는 표사와 보표들이 즐비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화를 당하고도 전말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인데.

“걱정할 것 없네. 그들이 어떤 자이든, 어차피 나에겐 애송이들일 터.”

설휘가 일어나서 나가자, 취곤은 어색한 자세로 눈치를 보았다.

‘그냥 도망칠까?’

순간 그런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차피 무위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노인의 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차라리 나중에 기회를 봐서 도망치는 것이 더 안전할 거란 생각으로 그는 힘없이 뒤를 따라갔다.

***

인형설삼.

취곤은 그날을 자세히 기억했다. 저잣거리 이야기꾼 또는 서적에서나 등장하는 최고급 영약. 그는 처음 그걸 보자마자 직감했다.

이건 버겁다고. 이런 귀물과 엮일 시에는, 필시 큰 위험이 따를 것이라고.

크기는 갓난아기 정도. 그리고 이름처럼 사람이 다리를 꼰 형태로 뿌리를 뻗은 커다란 산삼.

“따로 전문가를 불러 감별은 하겠지만…… 진품입니까?”

그는 죽립을 쓰고 나타난 낯선 사내에게 물었다.

“그렇소.”

사실 이게 진품이든 가품이든 감별의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

진품이라면 당연하게도 이만한 물건을 소지하고 있는 곳은 거대한 세력일 것이고, 가품이라면 이런 장난을 칠 정도로, 불운을 몰고 올 세력이라는 거.

어찌 됐든, 개인이 감히 소지하고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님에는 확실했다.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취곤은 그래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일을 맡은 이상은 모든 것이 기록에 남는다.

입 한번 잘못 놀리면, 이 물건이 자기 손을 떠났어도 위험에 처해질 것이라는 걸, 그는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이걸 따로 보낼 곳이 있소. 자금성은 아닌 곳으로. 취곤. 장물아비로 오래 묵은 귀하라면, 작은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

취곤은 그때 눈을 질끈 감았다.

대저 인형설삼 같은 귀한 약재는, 천하의 주인인 천자에게 진상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죽립의 사내는 자금성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마도 따로 본인이 은혜를 진 사람이거나, 혹은 모시는 분에게 보낼 생각일 터.

어느 쪽이든, 반역……까지는 아니라도 괘씸죄로 옥에 갇힐 만하다.

그렇기에 취곤은 이 일에 절대 끼고 싶지 않았다.

“소인이 생각할 수 있는 해법이라면, 두 가지가 있겠습니다.”

“호오. 두 가지나?”

이채를 띠는 죽립인을 일부러 눈에 담지 않으며, 취곤은 말을 이었다.

“예. 하나는 보표 한두 명에게 맡겨 운송하는 방법입니다. 일신의 무위가 높고, 신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골라서요. 소리 소문 없이 은밀하게, 또 적은 인원이니 빠르게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겠군.”

“……예. 문제는 이 귀물이 너무 가치가 크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용이 높고 평생 정직하게 일을 해온 보표라도, 자기가 옮기는 것이 인형설삼 같은 지극히 귀한 약재라면…….”

본인이 그냥 먹어 치우고, 죽은 척하며 숨어 지낼 수도 있다. 그런 심사를 어찌 사전에 막을 수 있겠는가.

20년, 30년을 은거하여, 자신을 아는 이가 다 죽은 다음에 강호로 돌아온다면?

“그렇군. 두 번째는 뭐요?”

“표국을 통해서 운송하는 방법입니다. 흔히 암표라고 부르는 방식이지요.”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 던지는 것이 가장 좋다.

비단이나 향료 같은 값비싼 물품을 여럿 구해서 큰 표국이 운송하게 한다면, 그리고 개중에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몇 개 더 둔다면. 표국은 모르는 상태로 귀한 물품을 배달할 수 있다.

“단점은 운송비용이 대단히 높아지고, 시간 또한 오래 걸릴 거라는 점입니다. 연기를 많이 피워야 하니까요.”

“단점이 그렇다면 장점은?”

“좀 더 안심할 수 있고, 여차할 경우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인 보표와, 조직인 표국은 그 신뢰도가 크게 차이가 나지요.”

보표는 혼자다.

욕심에 회까닥해서, 여차하면 본인이 표물을 들고 나를 수도 있다. 하지만 표국은?

“가족, 친지, 일가, 그리고 가업……. 그걸 모두 버리기란 쉽지 않지요. 역사가 오래된 표국은 이문보다 신용을 더욱 크게 칩니다. 그런 이들에게 암표로 맡게 하시면, 안심하고 운송하실 수 있을 겁니다.”

“흠.”

취곤의 말에 사내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암표로 물건을 보내는 것은, 대놓고 여기 수상한 운송이 있다고 드러내는 격이다.

비용 또한 갑절로 붙는다. 여차하면 큰 표행에 욕심을 품은, 엉뚱한 도적에게 탈취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표를 통해 보내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

“혹시 권할 만한 표국이 있으신가?”

“마침 인근에 칠성표국의 지점이 있습니다. 역사가 자그마치 2백 년이나 된 곳이니, 이만한 곳을 더 찾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사내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취곤은 이미 대답을 준비해 놓았다.

“좋군. 그리하리다.”

“그럼 배상 문제는 조금 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칠성표국과의 사전 조율이 있어야 하니까요.”

“……일은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털렸죠. 아무래도 어디선가 정보가 새어나간 모양입니다.”

“흠.”

취곤에게 그간의 과정을 들은 설휘은 머지않아, 현장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사박. 사박.

숲은 그리 깊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길게 솟은 소나무 때문에 좌우 시야가 상당히 가렸다.

확실히 암습하기에는 나름 좋은 장소로 보였다.

“부서진 마차가 여섯 대…….”

사방에는 나뭇가지나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길목에는 핏자국과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시일이 꽤나 지나, 부패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으, 냄새…….”

취곤이 코를 막고, 수레 위를 슬쩍 보였다.

표국이 운송하던 물품은, 수레에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인형설삼이 아니라, 표국의 물품을 노린 도적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사고가 난 뒤로, 누구도 이 길을 이용하지 않은 듯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칠성표국이 맞습니다.”

수레 아래에 시선을 내린 그는, 부서진 창대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하고 말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여기가 현장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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