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인형설삼 (4)
구구궁. 쿠쿠쿵. 쿵. 쿵.
창고 안으로 들어온 취곤은 입을 헤 벌렸다.
문을 열자마자 사방에서 소음을 내며 작동하는 기관진식들.
“으어……?”
척 봐도 이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허공에서 병기들이 날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천장에는 손톱만 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게 딱 봐도 쇠창살 같은 게 뻗어 내릴 것 같았다.
앞으로 뻗은 통로의 길이는 이십 장.
그그그긍! 그그그긍!
좌우에서 군데군데 돌아가는 칼날 기둥은 어떤가.
그냥 들어가자마자, 온몸이 걸레짝이 될 것만 같은 끔찍한 예감이 들게 만들고 있었다.
‘어, 음. 모양만 섬뜩한 거 아닐까?’
그래서 취곤은 갸웃했다.
그는 업이 업인지라, 꽤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딱 하나만 있어도 치명적일, 섬뜩한 기관진식이 우르르 몰려있는 것을 보자 오히려 의심이 들었다.
“음…….”
그는 바닥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을 하나 들어, 통로에 던졌다.
탁. 탁. 데구루루루.
그그긍!
그러자 지면이 떨리고, 바로 기관진식이 발동했다.
콰콰콰콱! 콰과과곽! 파바바박!
“으헉……!”
돌멩이가 구르며 건드려진 기관. 그 반응속도는 엄청났다.
지면이 들어가자마자 천장에서 화살처럼 쇠창살이 뻗어 나왔고, 그대로 지면 아래까지 박혀 들어갔다.
휘리리릭. 바우우웅!
그뿐만 아니었다. 굴러간 돌에 바로 반응한 것인지, 칼날 기둥이 바람을 가르며 사람 목이 있을 위치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호오.”
“으어…….”
노인과 취곤은 동시에 신음했다. 정확히는 한쪽은 감탄, 그리고 다른 한쪽은 경악이었다.
“이건 뭐…….”
보안을 위한 장치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건 저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이든, 손 뻗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드는 미친 수준의 기관들이 아닌가.
절레절레.
취곤은 이제 볼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설휘라고 자신을 밝힌 눈앞의 노인. 그는 이제까지 항상 상식 이상의 행동을 보여 왔지만, 그것도 피륙으로 된 사람인 이상 여기까지다.
이렇게 미친 듯한, 완벽을 넘어서 기괴한 느낌까지 주는 기관 장치를 뚫고 창고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으리라.
분명 그의 상식으로는 그랬다.
“기관을 참 부실하게 지었군. 그렇지 않나?”
“예?”
취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먼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귀를 의심했고, 다음에는 상대의 정신머리를 의심했다.
부실하다니. 이 미친 듯한 기관진식이?
대체 이건 어떤 정신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란 말인가.
“잘 보게. 우선 기본 설계부터 잘못되었네. 귀중품을 보호하는 기관 장치라면, 그 기본이 ‘없는 듯 있게’. 그리고 ‘무심코 당하게’를 주제로 만들어야 해. 하지만 이건 완전히 대놓고 함정을 깔았군.”
끌끌끌.
혀를 차며 노인이 앞을 가리켰다.
“자네, 여기 앞부터 저곳까지 지면의 바닥이 보이는가?”
“예. 보입니다.”
취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딱 봐도 밟으면 기관들이 작동되게 생겨 먹었어. 너무 눈에 띄잖아?”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잘 생각해 보게. 저걸 밟지 않고 허공으로 걸어가면 기관이 무슨 수로 작동되겠는가? 보기엔 거창하지만, 말도 안 되게 부실한 배치일세.”
“아, 그렇구나.”
취곤은 이제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 사람이 지면을 밟지 않고 허공으로 걸어갈 수 있나요?”
“물론이지. 경지에 오른 이라면 허공 정도는 쉽게 밟을 수 있네.”
“……그런가요?”
허공 정도는 밟는다는 말에 취곤의 입이 다물렸다.
그게 어디 ‘쉽게’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인가. 강호의 전설에나 전해 내려오는 허공답보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건데.
하지만 여기서 더 물었다간 왠지 바보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혹시 아는가, 이 정신머리 나간 노인네가 훌훌 허공을 걸어서 돌파할지도.
‘……허공?’
그리고 거기서, 취곤은 허공을 향하다 말고 보았다. 통로의 공중에 미세하게, 가느다란 실선들이 거미줄처럼 걸려 있는 것을.
“……어르신. 저기, 허공에 실선들이 은은하게 보이는 것 같은데요?”
“응?”
노인은 취곤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 그러고는 허, 하고 다시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뭔가 걸려 있구만.”
“혹시 저거 공중을 밟는 사람들을 위해서 장치를 마련해둔 게 아닐까요?”
“에잉. 설계한 녀석에겐 그 정도 머리가 없다니까? 이런 무식한 배치를 한 놈이 무슨……. 아니지. 그래도 한번 볼까?”
스릉.
노인은 자신의 검을 꺼내 던졌다.
휘리릭. 휘리리릭.
날아간 검은 희미하게 그어진 허공의 실선 몇 개를 건드렸고.
그 순간.
콰콰콰콰콰곽!
어마어마한 칼날의 춤사위를 보였다.
“……워메.”
“허…….”
사방에서 떨어지는 칼날들. 암기는 단필(短筆), 비표, 비자(飛刺) 같은 것들이었고, 단극(短戟)같이 길이가 짧은 창 모양의 무기도 있었다.
쐐애애액! 쐐새새색!
두 번째는 화살이었다.
좌, 우, 위의 세 방향에서 쏟아졌고, 그중에는 강노(强弩)로 추정되는 시간차를 이용한 강력한 화살도 쏘아져 나왔다.
펄렁. 촤아악!
그렇게 사방을 암기로 정신없게 만든 다음 이어진 건 놀랍게도 그물망. 천장 한 면을 덮을 정도로 거대하게 만들어진 쇠 그물이 푹하고 떨어졌다.
드드드등! 콱! 콱! 콱! 콱!
마지막으로 쇠 그물의 무게로 지면이 눌렸고, 움푹 들어간 바닥에선 짐승이 송곳니를 드러내듯 쇠창살이 일 장 넘게 솟구쳤다.
“…….”
“…….”
잠깐의 침묵. 그리고 그 침묵 끝에는 찰칵찰칵 쇳소리를 내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병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요란하게 쏟아졌던 암기조차도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 음.”
이윽고 잠깐 서로를 바라보던 설휘와 취곤.
서로서로 허탈한 미소를 확인했고, 설휘가 먼저 말을 이었다.
“이 집, 돈이 좀 많이 남나 보군?”
“하하. 그렇지요? 상종도 해선 안 되는 곳 같습니다. 그럼 어서 빨리 나가서…….”
콱.
취곤이 자연스럽게 뒤돌아섰지만, 노인에게 붙들렸다.
“너. 거기 있어.”
“예? 뭐 하려고 그러십니까.”
“들어가려고. 왠지 재밌을 것 같아서 말이야.”
“하하. 무슨 농담을 그렇게 심하게…….”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취곤의 웃음은 길지 않았다.
팟. 팟. 팟.
노인이 도약하고, 황당한 눈길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고는 암기가 사방팔방에서 쏟아지자, 취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워이씨!”
슈슈슈슉! 파파팟! 코카콰콰콰콱!
몸이 덜덜 떨렸다. 직접 보지 않고 소리만 듣는데도 소름이 오싹 끼쳐왔다.
드드등. 드드등. 드드드등.
그리고 앞서보다 훨씬 더 양이 많았다. 하기야 허공에 던진 검이 실선 몇 개만 건드렸다면, 날아서 지나쳐간 노인은 수십 개를 건드릴 테니.
콰콰콰콰! 콰콰콰콰! 콰콰콰콰!
‘죽었다. 이건 분명 죽었다! 대라신선이라도 못 살아남는다!’
취곤은 확신했다. 정신 나간 노인은 분명히 산산조각으로 육편이 되어 찢겨 나갔으리라고. 그는 폭우처럼 쏟아지는 암기의 소리가 잦아질 때까지,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어이구. 참 많이도 달아놨군.”
“……아?”
그래서 멀쩡한 목소리. 그에 잘못 들었나 하고 조심조심 눈을 뜨고 앞을 본 취곤의 눈에는.
담담히 서 있는 노인의 모습이 비쳤다.
“……???”
이게 왜 이렇게 된 건가 싶었다. 통로에 온통 즐비하게 쏟아진 어마어마한 암기와 병기들. 그는 조금 전 지적했던 희미한 선이 쳐져 있는 중앙보다 훨씬 더 멀리 있었다.
“저기…… 살아계십니까.”
“여어. 아직은.”
노인은 손을 들어 보이는 여유까지 있어 보였다. 그제야 취곤은 다시금 인지했다. 저 노인 아무래도.
‘인간이 아니시구만.’
신선이나 뭐나 그런 거 아닐까.
이전에 무림맹의 고수들을 때려눕힌 것이, 뭔 술수가 아니라 진짜 실력이라면.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취곤은 황망하게 주변을 둘러보다 물었다.
“그런데 왜 거기 계시는 겁니까? 더 들어가시지 않고.”
“음. 여기서부턴 뭔가 좀 거슬리는 게 있어서 말이지.”
“거슬린다고요?”
“그래.”
설휘는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있었다.
흐릿한, 아지랑이같이 흔들리는 기류.
‘설계자가 영 바보는 아닌 모양이군.’
이런 건 기관진식 따위가 아닌, 진법을 썼을 때 나타는 흐름이다.
찬찬히 기류를 살핀 설휘.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을 따라, 허공에서 천장 모서리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투욱.
그리고 슬쩍 내공을 흘려, 기류를 한번 건드리자.
끼리리릭. 끼릭.
기관이 반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취곤도 놀라게 만들었다.
드드드드득! 그그그그긍!
“워……!”
눈앞에 벽으로 보이던 공간 전체가 옆으로 뒤집어졌고, 바닥에서 올라온 새로운 공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끼리릭.
그렇게 새로 생성된 공간은 기존의 공간보다 훨씬 더 깊고 넓게 뻗어 있었다.
설휘는 거기서 또다시 한쪽 기류를 흔들어보았다.
투웅. 드드드득.
그랬더니 수레바퀴가 도는 것처럼 공간이 옆으로 뒤집어지고, 밑에 있던 바닥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금박으로 쌓인 자그마한 단환. 그것이 천으로 매듭지어져 단단히 고정된 모습을.
“음……? 뭐가 잘못되었는데.”
“예? 뭐가요?”
“인형설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건 그냥 환단 같은데?”
“……어르신. 누가 삼을 그냥 그대로 먹습니까? 그냥 뒈지려고.”
최곤은 혀를 찼다.
이 노인네, 무공은 아득히 고강한 데 반해, 세상 돌아가는 건 영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는 당연한 상식인데.
“인형설삼 같은 영물을 생으로 먹으면, 보통 사람은 열에 아홉이 죽어요! 절정의 무인이 아닌 이상은, 법제(法製)해서 이로운 것만 취하고 부드럽게 몸에 스며들게 만듭니다.”
“아…….”
설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영약을 섭취할 때 초반에는 단환이나 그런 것들로 먹었다. 강력한 효과를 지닌 영약은, 강력한 부작용도 가지는 법.
인형설삼 같은 귀물은 양기가 너무 강하니 조화롭게 음양의 균형을 맞춰서 이렇게 단약으로 가공하는 게 보통인 것이다.
“그래서, 이게 그 인형설삼이고?”
“그 자리에 있을 게 달리 뭐겠습니까?”
“음. 그렇군.”
취곤의 검증해 주자, 설휘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짓 하나만으로 영약을 움직이는 데 충분했고.
쩌어엉!
공중을 걸으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진짜 신선일 수도…….’
취곤은 입을 쩌억 벌린 채 그저 감탄만 계속했다.
허공섭물과 공중부양.
강호의 매화자들이 허풍으로나 떠드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기도 안 찼다. 노인은 그렇게 인형설삼‘이었던 것’을 챙겨, 취곤에게 고갯짓을 했다.
“가자. 구했으니.”
“아, 예…….”
어쨌든, 다 끝났구나. 이제 살았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 취곤. 하지만 그는 곧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르르릉.
문 앞을 나오고 난 뒤 목도한 존재들.
이 귀물의 원래 주인일 자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으니까.
“뭐냐. 너희들은!”
“이것들이 겁도 없이! 여기가 어디라고!”
제일 먼저 보이는 자들은 가볍게 차려입은 군인들이었다.
촤악.
그리고 그 뒤로 얼추 백여 명에 달하는 군사들이 주변을 완전히 포위한 상태로 험악하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심지어.
처처처처척.
담벼락 위로 올라선 자들.
까드드득!
딱 봐도 정예인 듯한 궁수들이, 노인과 자신을 향해 활시위를 겨누고 있었다.
“아…… 죽었다.”
취곤은 절망했다. 뒤늦게 여기가 엄연히 왕부라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여유로운 노인네, 설휘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아마도 기관진식이 발동되며 사방의 경비병들이 죄다 몰린 모양.
이건 해명이고 뭐고 없었다. 귀물을 훔쳐 나오다가 딱 현장에서 걸렸으니.
“초대한 적 없는 손님이시로군. 어디서 오셨는가?”
좌르르륵.
파도가 갈라지듯, 겹겹이 에워싼 병사들을 가르고 먼발치에서 한 중년인이 가볍게 걸어왔다.
‘삼왕, 주태직…….’
취곤은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바로 이곳 왕부의 주인.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비단옷을 입은 자는 아마도…….
최소 금의위 위관급의 고수라는 것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