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화. 도문 수행의 첫 문파 (1)
이름하여 최단 시간 절대고수 되기.
언제고 절대자라는 마신과의 대결을 위해, 설휘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다.
먼저 몸만들기와 내공 생성을 위해 구할 수 있는 모든 영약을 확보했다. 다음으로 그가 생각한 행보는 바로 도가문파에 입문하는 것이었다.
‘정반합을 통한 극한의 경지 상승.’
단순히 내공을 더 높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마교 무공의 정수라 할 것을 다 가진 설휘.
지금의 그가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에는 정종무문의 뿌리, 이념과 사상에 대한 깨달음이 필수였다.
또한 정파 특유의 기질이 있기에, 근원적 오의를 얻게 되면 항마벽사의 공능까지 노릴 수 있다.
물론 정파의 무공도 여러 가지.
설휘는 오랜 강호행으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구대문파의 모든 방향을 검토했다.
오대세가 또한 점검했지만, 기본적으로 혈연으로 이어지는 이들이라 보류.
설휘는 구대문파를 모두 숙고한 뒤에 결정했다.
“청성으로 간다.”
사일신검으로 유명한 청성파로.
어찌 보면 의외로 느껴질 결정이었다.
청성은 분명히 구파일방에도 들 만한 도가의 명문검파이다.
하지만 그 구파일방에서도 청성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대문파가 무려 두 곳.
화산파, 그리고 무당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공의 숙련 과정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설휘는 이미 태극혜검으로 무당파와의 기틀을, 자하신공으로 화산파의 극의를 몸에 담고 있었다. 그러니 이 두 문파 중 어느 곳에 입문하든, 반드시 큰 두각을 드러내며, 문파 전체의 지원을 받을 터.
그럼에도 굳이, 다른 어떤 명문 정파보다 청성을 고를 만한 이유라면.
“다르지만 비슷해. 가장 독하고 날카롭다.”
바로 청성의 검술이 놀랄 만큼 예리하기 때문이다.
설휘의 근본 무공인 마공에 비해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이는 청성이라는 문파의 기본 이념과도 상관이 있었다.
대개의 도가문파는 나름, 상징이랄까 평생 추구하는 방향이 있었다. 예컨대 무당이라면 태극을 통한 조화로움과 부드러움, 화산이라면 고고한 매화의 기상을 통한 군자도를 추구한다.
이처럼 문파에서 추구하는 극의는, 최종적으로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그 극의를 따르는 무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때문에 강호에서 볼 수 있는 무당파의 도사들은 허허롭고 여유로우며, 화산파의 매화검수들은 다소 독선적이지만 그만큼 꺾이지 않는 불굴의 투지가 있었다.
반면에 청성은? 아예 대놓고 검이었다.
-비인비검. 검이 없으면 사람도 없다.
무당이 태극의 조화로움을 지향하고, 화산이 매화의 고고함을 이상으로 삼는다면.
청성은 아예 새파랗게 날 선 검. 검날이 가지는 날카로움으로, 천하에 해로운 것을 다 척살하겠다는 과격함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런 과격함으로 하여 사천에 있는 무문으로 아미, 당문, 청성을 하나로 묶어 ‘사천삼독’이라 따로 부르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미파는 여인의 한이 얼마나 음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곳이고, 사천당문은 독을 품은 고슴도치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청성의 문인은 ‘비검부인’이라 하여, 적에게 칼을 빼앗기면 이를 극도의 수치로 여겨 그 자리에서 자진하는 청성파 특유의 독기를 보일 정도.
또한 과거 천일관에서 보았던 수많은 책 중에서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으로 가면 갈수록 묘하게 느껴진 정파의 무공이 있었다.
‘청풍검, 그리고 환환미종보.’
청성의 대표 검술과 보법이다.
기이하게도 설휘의 안목으로 검수한 수많은 마공서들, 거기에 AI로 인해 익히게 된 도가와 불가의 최상승 무공.
그에 비하면 분명 손색이 있었다.
그러나 무공의 마음가짐이랄까?
청성의 독랄함은, 다른 구파의 정종내공보다 오히려 마교의 마공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청풍검은, 초반 입문과 달리 무학의 깨침에 따라 경지가 오르면 오를수록, 오로지 날카로움과 강맹함이 극도로 증폭되는 강 일변도의 성질을 가졌다.
더욱이 청성의 환환미종보의 보법.
천마군림보처럼 수 개에서 수십 개의 환영을 생성하며, 그 극의에 이르면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아예 진채로 변한다는 것까지 여러모로 매우 흡사하였다.
‘허나 중심은 분명 마공이 아니라 정심한 무공.’
이것이 설휘의 흥미를 이끌었다. 전혀 다른 기법을 시작하지만, 궁극에는 같아지는 두 무공.
대체 어떤 원류와 어떤 과정이 있었기에, 이 둘은 비슷한 형태의 극의에 수렴하는 것일까?
탈마를, 그리고 현경을 통한 그 이상의 경지를 노리는 설휘.
청성이 그가 남은 479개의 목숨으로 시작한 첫 행보였다.
***
“계십니까?”
“…….”“
석순 어르신, 계십니까?”
수려한 초록이 내려다보이는, 독립된 별채.
한 도사가 바삐 움직이더니, 건물로 다가가 방 안에 있는 자를 불렀다.
“으음.”
곧 안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얼마 후에 느릿하게 장지문을 열며 노인이 물었다.
“무슨 일이더냐?”
“예. 석휘 도장께서 오셨습니다. 속히 나가보십시오.”
“석휘……? 그가 벌써 왔단 말이냐?”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는 얼굴. 하지만 천천히 만면에 웃음을 짓는 노인. 그는 바로 석휘의 사부인 청성의 청허(淸虛) 진인이었다.
절뚝. 절뚝.
지팡이를 짚고 문밖을 나와 걸음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보다 못해 옆에 있던 도사가 부축하자 청허 진인은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우, 청성의 동량들에게 짐이 되어서 미안하구나.”
“어휴. 그런 말 마십시오. 어릴 적부터 청허 사백께서 가르쳐주진 배움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허허, 말만으로도 고맙구나.”
청허의 너털웃음에 사질은 웃음기를 쫙 빼고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찌 말뿐이겠습니까. 장문인께서도 늘 입에 달고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청허 사백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는 제자가 다섯만 되었어도, 청성은 구파일방이 아니라 천하오문에 올랐을 것이라고.”
청년의 말은 사실 과한 것이 아니었다.
젊은 날의 청허 진인.
어릴 적부터 청성의 직계제자로 들어와 평생을 매진한 끝에, 그는 중년에 이른 나이에 그간 실전된 청성의 비전을 다시 복원했다.
심지어 전대에는 이론으로만 정립했던 새로운 무리를, 당대에 실전기예로 창안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 덕분에 그간 중원 전체에서 보면 한미한 편이었던 청성. 그 이름을 크게 드높이고, 외적인 확장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이가 다름 아닌 그다.
당장은 철괴리처럼, 절룩거리는 불편한 몸을 하고 있지만, 당장 이번에 본산으로 돌아온 석휘 도장, 그를 발탁한 것도 다름 아닌 그였다.
절룩. 절룩.
그렇게 사질의 부축을 받아 조금 걸었을까. 상청궁에 도착했을 때는 제자들로 주변이 북적였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그리 많지 않았던 청성의 사람들이 인근에서 죄다 몰려온 듯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흐음…….”
뭐,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청성파의 한해 최고의 농사라고 알려진 축제, 청성검수 시험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허 진인이 이곳까지 들른 건, 그보다 제자인 석휘도사. 강호에서 ‘대청성검수’라는 이름을 얻은 그가 오랜 강호행을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청허 사백, 이쪽입니다.”
낯익지만 오래되어 떠오르지 않는 목소리.
“오…… 누구인고? 노도가 말년에 눈이 어두워서…….”
“저 석운입니다. 2년 만인데 기억이 나시는지요?”
“아, 석운 도장이신가. 반갑네, 그려.”
청성검수 석운.
이번 강호행에 석휘 도사와 함께 수행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니 제자와 같은 항렬인데도 청허의 대접은 깍듯했다.
“도장이라니 아직 과합니다. 그보다 사백. 그간 잘 계셨습니까?”
“허허. 이 늙은이야 지붕 있고 바닥 따듯한 곳에서 밥만 축내며 편안히 지냈지. 그러는 자네는 풍문으로 듣기에 엄청난 명성을 쌓았다면서?”
탁하게 흐린 눈은 앞을 거의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천형을 얻고도 청허 진인의 미소는 해맑기만 했다.
“어휴……. 저야 그저 석휘 사형을 보필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강호 십대고수의 후광을 공으로 누린 것이지요.”
“녀석, 겸손은.”
청허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 그간 소문으로만 들으며 혹시나 했던 것이 놀랍게도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강호십대고수.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무인 열 명을 일컫는 이름이다.
열 명 중 하나라고 하면 조금 애매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열 명의 다른 아홉은 언어 그대로 부동의 전통적인 절대인들.
소림사 방장, 무당파 장문인, 화산의 검선, 개방의 용봉타주 등. 하나하나가 이름만 들어도 ‘아 그 사람은 당연히 들어가지.’ 하고 고개를 끄덕일 이들이다.
구파일방의 최고수들만 이미 열 명이고, 여기에 오대세가, 당문, 남궁, 모용 등을 합하게 되면 스물은 우습게 넘어간다.
때문에 그런 용쟁호투 중에서 천하제일검. 실질적으로 제일을 노릴 수 있는 가장 강한 고수가 자기 문파에서 등장했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애초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만으로도 공식적인 증거가 아닌가.
“그나저나 석휘는 어디 있는가?”
“이곳 뒤뜰 연무장에 있습니다. 장로들께서 그새를 못 참고 시연을 보여달라고 하도 간청하시니……. 결국 뿌리치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본파의 무공에 대한 열망만큼은 다들 한가락 하는 자들 아니냐.”
좋게 말해 열망이지, 나쁘게 말하면 성질 급하기로는 천하제일. 한때 혈기왕성하던 사형사제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청허는 허허 웃었다.
“그래. 알았다. 나는 연무장으로 갈 터이니, 너도 갈 테냐?”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못 만난 일대, 이대제자들과 회포를 풀고, 늦게 오신 장로나 원로분들의 안내를 맡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거라.”
청허 진인은 석운과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다른 도사의 부축을 받으며 상청문 내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다시 외부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솨아아아---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으음…….”
연무장이 가까워졌다. 노환으로 앞이 보지 않아도 저 안의 열기는 제법 뜨겁게 느껴졌다.
‘사형……은 오셨고. 사제들도…….’
본문에 있는 대부분의 장로들이, 이미 자리에 합석해 있어 보였다. 무에 저 엉덩이 무거운 이들이 여기까지 달려왔을꼬? 그리 생각하자 다시 웃음이 지어졌다.
“오셨습니까. 청허 진인.”
연무장 내부를 통솔하는 도사가 청허 진인을 보고 인사를 했다. 청허 진인 역시 그를 아는지 장로들을 한번 쓰윽 둘러본 후 물었다.
“장문인께서도 오신 것 같구나.”
“그렇습니다.”
“그래,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하게나.”
청허는 손을 내저으며 구석진 곳으로 자리했다.
장문인들과는 조금 떨어진, 외진 자리지만 그는 만족했다. 어차피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제자 석휘. 이놈이 불세출 천재라…….’
그는 조용히 기운을 가다듬고 있던 석휘 도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십 년쯤 되었나.
한 젊은 청년이 청성파의 제자가 되겠다고 왔을 때, 그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연고, 연줄도 없이. 그저 순수 무학의 열정만으로 찾아온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서 무공을 익혀 왔는지 기본기는 제법이었고, 그게 사람들의 눈에 들었나 보았다.
그래서 장로들 사이에 그를 받아들일지, 논의를 했던 적이 있었다.
‘어찌 보면 가르치기를 두려워했는지도.’
총회를 거친 의견의 결과는 반대였다.
그 이유는 참으로 재밌게도 실력보다는 출신과 연고가 없다는 것이 컸다.
청성 또한 구파일방의 한 기둥으로서,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청사동을 관리하는 자신이 나서 그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청허는 그때 왠지 자신의 어릴 적 그를 보는 것 같았다. 재능보다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열정에서.
본인이 가르치고 다시 검증할 수준이 되면, 그때 동문들의 허락을 구하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청허는 어려움을 겪었다.
무위는 청성을 대표하는 고수였음에도 갑자기 얻은 지병으로 인해 걸음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앞도 잘 보이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나서니, 굳이 반대하는 자들은 없었다.
‘청성의 모든 무공을 익히게 되었지…….’
하지만 일단 뽑고 가르치다 보니 그의 재능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뛰어났다.
그러고는 오늘날.
그 제자는 청성검수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강호의 십대검수로 알려지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청성의 모든 장로, 그리고 장문인을 앞에 두고 설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토록 바라왔던 순간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많은 사부의 가르침으로 배운 청성의 정수. 그 무공들을 모두 앞에 시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번 생의 대장정.
청성파 제자로 청성파에 우뚝 선 지 정확히 22년 되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