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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361화 (340/379)

361화. 도문 수행의 첫 문파 (2)

휘이익. 파륵.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연무장에 홀로 선 석휘 도장.

시연식을 하기 전에, 그는 검의 무게 중심을 가늠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휘저어 보며 검파를 고쳐 잡는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처억.

그러기를 잠시. 오른손으로 날카로운 검날을 앞으로 뻗어내며, 왼손으로는 이내 부드럽게 검결지를 맺어 좌중을 향해 인사하듯 들어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청풍검법이다!”

누군가 그 자세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성파를 대표하는 무공인 청성검법.

그 기수식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검을 쥔 무인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행동.

석휘 도장은 검은 앞으로 내밀었지만, 검결지를 짚어 보임으로 해서 상대에게 예를 취하는 동작을 취해 보인 것이다.

그걸 알아본 자가 청풍검법이라고 말했던 것이고.

스윽.

검이 움직였다.

휙. 휙! 피익!

찌르고, 베어 낸 끝에 내려친다. 점차 검무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청성의 용맹한 기상.

비검불인의 강직한 정신에 더불어, 매섭게 몰아치는 검로가 누가 봐도 청성의 강맹함.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정신이 담겨 있는 초식이었다.

그 안에는 청성산에 뼈를 묻고 평생을 수련했던 많은 선사의 삶이 묻어 있었다.

사실 모든 청성 무공이 그렇다.

비급에 나와 있는 동작 하나하나가, 크고 작음은 있으나 선인들의 노력과 깨달음이 담겨 있음이 분명했다.

솨아아아---

몇 번째 초식이었을까.

순간적으로 붙든 힘을 놓자마자, 거대한 기류가 흩어져 연무장을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우르르르릉!

그로 인해 뇌성, 모두의 귀청이 울릴 정도로 장 내외에 엄청난 기운을 뿜어낸 것이다.

“우오오오!”

“과연 청성의 힘이다.”

“저것이…….”

석휘가 쏘아낸 기류를 느끼고, 장로들이 그 놀라운 위력에 저마다 한마디씩을 했다.

“이건……?”

그런데, 한쪽에 떨어져 있던 석휘 도장의 사부인 청허 진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후 석휘가 보이는 초식을 보면서 그 안색은 점점 굳어졌다.

휘이익! 파라라락!

설휘가 힘을 당기며 기류를 가두듯이 빨아들이자, 그를 지켜보는 좌중의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었다.

우웅…… 우우웅…….

검이 휘둘러짐에 따라 자연스레 움직이는 기류. 그걸 검끝에 모은다는 것은 쌀 한 톨만큼의 힘도 놓치지 않고 모두 통제하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마치 격공섭물(隔空攝物)처럼, 신체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도 의지로 원하는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아……!’

그런 고절한 모습을 보고도 청허 진인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어두웠다. 어느새 잔뜩 찌푸려진 그의 미간이 불편한 마음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었다.

씨잇! 팩! 피이잉!

그렇게 몇 번의 초식이 이어질 때쯤.

벌떡.

청허가 더 못 보겠다는 듯 몸을 일으켰고, 그에 옆에 붙어 있던 젊은 도사가 부축했다.

“어르신? 갑자기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볼 건 다 봤다. 그러니 있을 곳으로 가야지.”

“그……렇습니까? 이제 곧 보법도 나올 텐데……. 좀 더 제자의 성장을 보시는 게 모양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자의 성장이라…….”

피식.

그에 청허가 비뚤어진 웃음을 지었다.

“뭔가 잘못되었습니까?”

“아니다. 나는 이제 괜찮다. 그러니 너는 계속 이 시연회를 보도록 하거라.”

“어…….”

휘적휘적.

청허는 부축하겠다는 이를 만류하고 힘들게 밖으로 나왔다.

“청허 진인?”

“청허 진인!”

“…….”

도중에 동문의 사질들이 도우려는 것도 만류하고, 그는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자신만의 힘으로 연무장을 나왔다.

스윽.

도중에 한 번 돌아보긴 했지만.

“……하아.”

그 굳은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저 내색 못했던 마음을 한숨으로 쏟아낼 뿐.

***

우와아! 와아아아!

시연회는 예상대로 성황리에 끝났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장로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일대제자 몇몇은 흥분한 얼굴로 바짝 힘이 들어간 팔을 허공으로 내질렀다.

석휘가 보인 모든 무공이 좋았지만, 특히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마지막에 선보인 환환미종보였다.

발을 한 번 구르는 순간 수십 개의 환영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환영이 이미 현묘함의 극에 달해, 허상과 실체가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들은 경외감에 가득 찼다.

“훌륭했습니다.”

“명불허전입니다, 석휘 도장. 정말이지 말을 잇기 힘들었습니다.”

“정말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장로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자, 석휘 도장은 그들에게 예를 표했다.

그렇게 한 명씩 응대를 하고 조용히 연무장을 걸어 나오는 석휘 도장, 설휘.

장로들 때문에 물러서있던 일대제자의 환호를 받으며, 그는 곧 한적한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사부님이 와 계셨는데……?’

설휘는 기억했다.

연무장에 언뜻 자신의 사부가 와 있었던 것을.

이제껏 청성의 직계제자로 있을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비급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사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이십 년이 넘는 동안, 참으로 많이 배웠다.

단순히 무공만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것까지.

제대로 된 사승관계 없이 혼자 배웠던 설휘에게,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배움이라 할 수 있었다.

‘왠지 표정이 좋지 못했어.’

조금 걸리는 것은, 사부의 표정이었다.

강호를 누비며 깨달았던 무공의 완성.

때론 실전되거나 해석이 다르거나 하는, 미완성의 무공들도 어떻게 정립하면 될지를 배웠다.

그리고 20여 년간 철저하게 청성의 제자로 살면서 그들이 표방하는 가르침을 이해했다고 자부했다.

한데, 어느 부분에서 사부의 마음에 들지 못했던 것일까?

때문에 설휘의 발걸음은 가볍지 못했다.

“대, 대청성검수를 뵙습니다……!”

사부의 거처로 가니, 수발을 드는 도사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설휘는 간단히 예를 표하며 물었다.

“사부님은 안에 계시는가?”

“예.”

“여쭈시게.”

설휘의 말에 도사가 말을 걸었고, 이내 허락이 떨어졌다.

설휘는 몸가짐을 조심히 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청성파에 입문하기 전, 그는 가지고 있던 마기를 완전히 없애고 기본부터 다시 쌓았다. 그렇게 청성의 무공들을 모두 학습하고, 배우고, 익히기를 반복했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사부의 웃음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만드는 행동이었다.

말 그대로 아버지. 그런 느낌의 존재.

“왔느냐…….”

그런 상념은 사부의 부름에 깨졌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한편에 앉아 있던 사부, 청허 진인이 천천히 걸어왔다.

“수고했다.”

“예. 심려 많으셨습니다, 사부님.”

다행히 설휘의 걱정은 기우로 그치는 듯했다.

사부는 웃으며 맞이했고, 하는 말투 하나하나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 추억을 잠깐이나마 즐겼다.

강호행을 하면서 사부가 그리웠던 설휘는 기억나는 대로 말했고, 사부도 웃으며 어울렸다.

술은 하지 않았다.

청허 진인은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입에 술을 대지 않았다. 하루라도 더 살아서 제자의 성취를 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그였다.

그렇게 한동안 웃으면서 얘기했을 때.

“석휘야, 이제 너는 청성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구나. 정말 잘 자라주었다.”

“아닙니다. 아직 사부님께 배울 것들이 많습니다.”

“허허. 내 머리에 있는 지식을 쏙쏙 빼가더니, 아직도 탐을 내려 그러느냐? 이제 더는 없다.”

사부는 허허롭게 웃었고, 설휘도 웃었다.

“시연회 때 보였던 무위로…… 장로들이 뭐라 하던가?”

“다들 좋게 봐주셨습니다. 아직 미흡함에도.”

“다행이구나. 장문인은? 만족해하시던가?”

“흡족해하셨습니다. 따로 시간이 될 때, 환환미종보의 요결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셨던가.”

“예……. 사부님?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청허가 심각하게 굳은 얼굴이 되더니, 이내 생각을 정리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장문인께서도 인정할 정도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지. 맞든 아니든, 일단은 청성의 것이니……. 그래, 그냥 그렇게 두는 것이 맞겠지…….”

“……사부님?”

뭔가 이상했다.

청허 진인은 마치 넋이 나간 얼굴로, 혼잣말인지 뭔지, 이해할 수 없는 얘길 주절거렸다.

“이젠 내려놓아야지……. 네 갈 길을 찾아가려무나.”

그러고는 마치 불이 꺼지듯, 조용히 말했다.

“……예?”

“못 들었느냐. 모두 내려놓고, 네가 가고 싶었던 길을 찾아가라고 했느니라.”

“…….”

섬뜩했다.

호통이라기엔 목소리가 또박또박했고, 농담으로 받기에는 너무 진지했다.

“사부님. 제자가 미욱하여 무슨 소리인지…….”

“모두를 속이는 데 성공했으니! 이쯤 하고 하산하란 말이야! 뭘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냐!”

“……!”

급기야 노기가 폭발한 청허 진인.

그제야 설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사부가 뭔가를 알고 있음을 안 것이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허니 말씀을 해주십시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이이…….”

그에 오히려 부들부들 떨며 화를 내는 청허 진인.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곧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장문인도 알아채지 못했으니, 사부를 속이는 정도는 쉬우리라 생각한 것인가.”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더니 잠깐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단순히 천장을 보는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금 입을 열었다.

“청성의 검은 무엇이냐?”

“비검불인. 검이 없으면 사람도 없는 걸 말합니다. 검을 목숨과도 같이 다뤄야 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마음도 검처럼 매섭게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청성의 정신은?”

“칼날 위에 선 자, 언제고 죽음을 맞이하는 법. 덧없는 인생에 한 올의 미련도 없이 걷는 것입니다.”

“청성의 중심 무공은 무엇이냐.”

“청풍검법입니다.”

“그럼 청풍은 무엇이냐.”

“……예?”

설휘가 되물었다. 하지만 사부는 오히려 지적하며 말했다.

“청성의 중심은 청풍이 아니냐. 그럼 청풍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지.”

청풍.

청풍검법에서 파생된 말로, 쉽게 직역하면 청성의 바람이다.

“…….”

하지만 설휘는 사부의 질문이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냥 청성의 바람 같은 말이 아닌, 더 깊고도 의미가 있는 단어를 요구하고 있다는 걸.

“그것이…….”

설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그간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청성의 중심은 청풍검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청풍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그냥 청성의 바람 같은 직역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내 무어냐고 묻지 않느냐.”

“…….”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게 된 설휘는 고개를 숙였다. 계속 우물쭈물하자 청허 진인이 말했다.

“설마…… 청성의 바람 같은 헛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아, 아닙니다.”

“한데 왜 대답을 하지 못하느냐. 무려 화경에 오른 녀석이, 어찌 청풍이 무엇인지 대답을 하지 못해!”

“……!”

청허의 질타에 설휘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응당 한 번은 고민했을 법했고. 또 들었어야 하는 의문이 지금에서야 떠오른 게 당황스러워서였다.

사실 설휘는 청풍이 무엇인지, 청성의 중심이 무엇인지 모르고도 화경에 올랐다.

그 점을 사부가 간파한 것이다.

“귀하, 대체 누구시오?”

“……예?”

“대저 청성의 무예는 돌개바람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 그렇기에 매진하기 힘들고, 그렇기에 천인합일이 아니면 대성하지 못하지. 바람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청성의 무예에 통달하지 못하는 법.”

“…….”

“허나 그대는 아래에서 위로 쌓아 올렸더군. 마치 소림이나, 그에서 출발한 무당처럼. 그러고도 청성의 무예를 형태나마 갖추었으니…… 이 어찌 괴변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설휘는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그는 청성의 검술을 익히다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무당과 화산의 선경으로 메웠다.

이는 전생을 가진 그 자신만 아는 부분으로, 사부가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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